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204)
을 위한 세계는 없다-204화(204/817)
〈 204화 〉 마지막에 남는 것 (4)
* * *
***
여명은 단장의 손에 들린 메이스를 눈에 담았다.
팔뚝보다 조금 더 긴 몸통과 손잡이, 그리고 그 끝에 달린 뭉툭한 쇠뭉치까지.
수련용으로나 쓸법한 싸구려 메이스였으나, 무기란 언제나 주인에 의해 그 가치가 매겨지는 법.
저 메이스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나 여명의 고민이 깊어지는 가운데, 그를 향해 달려오던 단장은 갑자기 허리를 곧게 펴고 어깨를 젖혔다.
자신이 무슨 공격을 할지 뻔히 보여주는 자세.
프레임 단위 속도 속에서 싸우는 초인간의 전투에서는 초보도 하지 않을 짓이었다. 치매 때문에 실수하는 건가?
아니, 아니었다.
들어 올린 그의 메이스가 붉게 물들며 불씨를 토해내더니…
“흡!”
그대로 허공을 강타했다.
그건 검기처럼 단순히 마나를 쏘아내는 것과 달랐다. 대형 마법, 혹은 혜성검에 가까운 상위 무술.
여명이 그것을 깨닫고 검을 들어 올렸을 땐, 이미 메이스의 무술이 공간을 찢어발긴 뒤였다.
콰아앙!!
묵직한 굉음이 울려 퍼지고,불길이 쏟아지며 단장 앞에 있던 모든 것들을 쓸어버렸다.
출렁거리며 아스팔트를 토해내는 도로, 무너지며 파편을 쏟아내는 별장들.
흡사 포탄이라도 떨어진 광경이었다. 폭발 범위 바깥에서 그것을 바라보던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유일하게 입을 연 건, 눈살을 가득 찌푸린 전용섭뿐.
“완성된 화산쇄설…?”
아쉽게도 그의 중얼거림을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의 시선은 폭발의 한가운데, 아직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여명에게 쏠려 있었으므로.
쿨럭.
먼지와 파편을 가득 뒤집어쓴 여명은 기침하며 검을 들었다.
검에 고인 검기는 그가 어떻게 폭발을 버텨냈는지 설명해주고 있었으나, 딱 거기까지였다.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싸움을 이어가는 건 불가…
“오?”
단장은 시시각각 재생되는 여명의 몸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부러진 팔이 제자리를 찾고, 벗겨진 피부가 다시 돋아나는 모습이라니.
“…괴수가 따로 없군.”
여명은 대답하지 않았다. 단장은 그 침묵에 씨익 웃으며 다시 달려들었다.
“그렇다면 재생하지 못할 때까지 두들겨 패주마!”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단장은 그대로 메이스를 내려찍었다.
조금 전 폭발을 일으킨 무술과 달리,이번에는 메이스가 아주 유려한 곡선을 그렸다.여명은 기다렸다는 듯 검을 휘둘렀다.
목표는 단장이 아닌, 메이스의 몸통.
쩌엉!
두 사람의 마나가 충돌하며 힘을 겨루는 바로 그 순간, 여명은 한 번 더 검에 힘을 실었다.
그의 마나가 단장의 마나를 밀어내며 중화되고, 각자의 무기가 직접 살을 맞댔다.
평소라면 낭비에 불과한 행동.
하지만 지금 단장의 손에 들린 건 잡철로 만들어진 수련용 메이스였고, 그가 들고 있는 건 드워프 장인이 직접 제작한 마나메탈 검이었다.
다음 순간, 여명의 검은 이빨 하나 나가지 않은 채 그대로 메이스의 몸통을 잘라냈다.
툭 소리와 함께 나뒹구는 메이스 머리.
단장은 잘려 나간 메이스와 여명을 번갈아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훌륭한 검이군. 드워프들에게서 빼앗은 건가?”
“선물 받은 겁니다.”
“…선물이라, 미국도 비슷한 소리를 하지. 엘프들의 영약을 빼돌린 게 아니라, 숲 주민들에게 선물을 받은 거라고.”
그가 이죽거리건 말건, 여명은 신경 쓰지 않고 단장에게 달려들었다. 무기를 잃은 지금이 기회였다.
상처를 내건, 마나를 낭비하게 하건어떻게든 지금 격차를 좁혀야 했다.조금 전 폭발을 일으킨 무술을 난사하기 시작하면, 승산은커녕 목숨조차 장담할 수 없었으니까.
한데, 맨손이 된 단장은 새 무기를 찾아 물러나지 않았다.
정신 나간 그의 눈에 무엇이 보이는 건지 모르겠지만, 단장은 절대로 후퇴하지 않겠다는 듯 주먹을 꽉 쥐고 여명에게 맞섰다.
여명은 또한 망설이지 않았다. 검기를 끌어 올리고, 주가시빌리를 제외한 모든 무술을 끌어올리며 검을 휘둘렀다.
가속하는 시야 속에서, 겨자가스를 닮은 연노란 칼날이 단장의 목을 노렸다.
번쩍이는 검광이 코앞으로 다가왔으나, 단장은 검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손을 뻗어 여명의 검을 붙잡으려 했다.
짧은 순간 속에서여명은 생각했다. 이대로 손가락을 베고 그대로 목까지 잘라버려야겠다고.
그때, 단장의 손이 붉게 물들며 불씨를 피워냈다.
조금 전 그 폭발을 일으킨 그 무술의 전조.
무기 없이 맨손으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고? 뭐 저딴 게 다 있
여명의 생각이 거기까지 이어진 그 순간, 단장의 주먹에서 폭음이 터져 나왔다.
!!!
그나마 메이스로 휘두를 때보다는 위력이 줄어 있었다. 덕분에 여명은 날아가는 대신, 검으로 폭발을 막아낸 자세 그대로 중심을 잃었다.
그리고 그것이야 단장의 노림수였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여명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검을 휘두르려면 팔꿈치가 먼저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
여명이 단장의 낭심을 노리고 비각술을 펼치는 것과 단장의 손이 붉게 물드는 건 거의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콰아앙! 천둥 같은 폭음이 터져 나왔다.
여명의 무릎에서, 허벅지 앞에서, 가슴을 노리는 공격을 반격하면서, 반격을 쳐내면서, 서로의 얼굴 앞에서, 발악하듯 펼친 염동력을 막아내면서…
연달아 이어지는 폭발음 속에서 먼저 빈틈을 보인 건, 여명이었다.
딱 한 번, 폭발에 휘말린 감각이 파고드는 주먹을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그 한 번의 대가는 처참했다. 단장의 주먹은 그대로 여명의 가슴을 후려쳤다.
우드득, 주먹을 따라 갈비뼈가 부러진다.거기서 멈추지 않고, 폭발.
폭발에 직격당한 폐와 위장, 그리고 심장이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명치가 움푹 파이고, 여명의 입에서 피가 쏟아졌다.
제아무리 초인이라도 즉사를 면할 수 없는 일격.
“좋은 싸움이었다. 지구인, 세티란 여인에겐 약속대로 꽃 한 송이 보내주지.”
여명이 날아가 바닥을 구르는 걸 본 단장은 승리를 확신하며 등을 돌렸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죽여야 할 지구인이 많았다. 특히 조금 전 우르르 도망간 지구의 군인들부터 죽여야…
그의 생각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등 뒤에서 작은 기침 소리가 들려온 탓이었다.
쿨럭.
그가 고개를 돌려보니, 여명이 살점 섞인 피를 토해내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단장의 질문에 대답하듯, 여명의 몸 위로 붉은 살기가 피어올랐다.
주가시빌리.
황천길의 앞에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여명은 이를 악물고 꾸역꾸역 전투 자세를 취했다.
“그 재생력… 미국이 흡혈귀들과 손을 잡은 건가?”
그 꼴을 본 단장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 놀람이나 즐거움은 없었다. 사람을 벗어난 존재를 향한 경악과 혐오뿐.
“역겹군. 그 힘을 손에 넣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선을 넘었지? 연인에게 부끄럽지도 않은가? 아니, 그 이전에 연인이 실존하긴 하는가?”
이번에는 단장의 주먹과 발이 동시에 붉게 물들었다. 여명도 질세라 검 위로 검기를 연달아 겹쳤다.
작열하는 검기, 폭발하기 직전의 마나.
두 사람의 살기가 넘실거리며 동시에 서로를 노리려는 찰나.
익숙한 목소리가 두 사람 사이의 긴장을 끊었다.
“늦어서 미안하네.”
산초, 단장의 첫 기습에 날아가 버린 부단장이 검과 방패를 들고 난장판이 된 도로 위로 착지했다.
***
산초를 본 단장의 표정이 변했다.
그는 조금 전까지 여명을 노리던 긴장감은 전부 날려버리고, 입가에 가득 미소를 띠웠다.
“산초, 사과할 게 뭐 있나?아군의 퇴각을 돕는 데 늦고 빠른 게 뭐가 있다고.”
우뚝, 발을 멈춘 산초는 단장을 바라봤다. 그는잠시 손에 쥔 검을 꿈틀거리다가, 천천히 단장을 향해 다가갔다.
“우선, 저 괴물부터 함께 처리하…”
그렇게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단장이 무어라 말하려는 그때.
산초가 기습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정확히 목을 노린 일격.
단장이 반사적으로 몸을 피했으나, 산초 또한 경지에 오른 초인이었다.
푸확! 단장의 옆구리에서 피가 튀었다.
경악한 단장의 얼굴과 온갖 감정이 뒤섞인 산초의 얼굴이 교차했다.
“산초, 어째서?”
단장은 옆구리를 붙잡은 채로 뒤로 물러났다. 겨우 몇 번의 발걸음으로 훌쩍 거리를 벌린 그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산초를 바라보았다.
“설마 기사단을 배신한 것인가?”
“배신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단장의 눈에 혼란스러운 감정이 어렸다. 분위기가 묘해지는 가운데, 산초는 검과 방패를 들며 말했다.
“단장님, 예전에 제가 한 말 기억하십니까? 이 세상은 현실이 아니라는 말.”
“산초… 자네 미쳤나? 이 상황에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그가 무어라 소리치건, 산초는 검에 마나를 불어넣으며 말했다.
“그때 당신께선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이 현실인가 거짓인가는 중요하지 않다고. 기사는 어디서든 명예를 지키면 그만이라고.”
“뭐? 내가 그런 말을… 했었나?”
“예, 하셨습니다.”
단장의 얼굴 위로 혼란이 떠올랐다. 산초는 여명에게 눈짓하며 말을 이었다.
“전 언제나 그 말을 가슴에 품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저는 기사입니다.”
“산초, 이 친구야.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날 공격해서 지킬 명예가 무엇…”
그때, 산초가 단장의 말을 끊었다.
“당신의 명예.”
“….”
“동료를 위해 굴욕을 참고, 동포들을 위해 긍지를 꺾은 자의 명예.”
산초는 그렇게 말하며 걸음을 멈췄다. 단장과 겨우 몇 걸음, 서로의 숨소리가 들리는 거리.
“제가 살아있는 한, 단장의 이름에 학살자라는 꼬리표가 붙는 일은 없을 겁니다.이 세상에 정말로 기사도가 존재한다면,그래선 안 됩니다.”
그 단호한 목소리에, 단장의 얼굴 위에 있던 혼란이 사라졌다. 그의 눈동자는 여전히 탁했지만, 한껏 편안해진 얼굴로 산초를 바라보았다.
“산초, 그게 자네의 맹세인가?”
“예, 단장.”
“멋지군. 자네도 기사가 다 됐어.”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은 웃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범하게.
그리고 다음 순간.
치매 노인과 가짜 기사는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
두 제국 기사는 똑같은 무술을 펼쳤다.
화산쇄설, 전통적인 제국 기사단의 검술을 버리고 지구의 포탄을 모방해 만들어낸 집념의 상징.
단장이 폭발 소리를 들으면 안 되기에 지난 몇 년간 억눌러온 그 무술이 산초의 검에서, 그리고 단장의 주먹에서 터져 나왔다.
!!!
두 개의 폭발이 얽히며 서로를 집어삼켰다. 공기가 발작하고, 소리가 밀려났다.
첫 격돌의 승자는 산초였다. 커다란 사각 방패를 든 그와 달리, 단장은 그대로 폭발에 휘말려 날아가 버렸으니까.
하지만 산초는 검을 다잡으며 여명에게 소리쳤다.
“일부러저택으로 날아갔네! 무기를 들고 올 생각이야! 막아야 하네!”
여명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단장과 산초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검에 혜성의 빛을 모아 놓은 그는 그대로 검기를 쏘아냈다.
번쩍! 혜성검이 단장의 마나가 느껴지는 곳을 향해 쏘아졌다.
빛으로 이루어진 칼날은 폭발의 먼지는 물론이고, 단장이 숨어든 저택마저 통째로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혜성의 빛은 승리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혜성검은 무언가에 닿는 순간, 얼음에 미끄러지는 것처럼 휘어져 버렸으니까.
허무하게 하늘로 날아가는 혜성의 빛 아래, 산초와 똑같은 방패를 든 단장이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설마, 방패로 혜성검을 휘어지게 한 건가?
여명이 황당함을 느끼는 사이, 단장이 방패 뒤에서 메이스를 꺼내 들었다.
처음에 봤던 싸구려 메이스가 아닌, 섬세한 장식이 새겨진 ‘진짜’ 단장의 주 무기.
그것을 본 산초가 말했다.
“전대 황제께서 직접 하사한 메이스… 조심하게, 저건 조금 전 메이스와 달리 잘리지 않을 테니.”
여명이 그 정도는 보면 안다고 대답하려는 순간, 그의 귓가로 낯선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단장을 생포해라.]마법으로 직접 흘려보내는 목소리.
위치를 숨길 생각도 없었는지, 마나가 날아온 방향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슬쩍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 전용섭이 그를 향해 입술을 달싹거리는 게 보였다.
[이건 권고가 아니다. 명령이다.]“….”
[나는 전용섭, 미국 국방성 소속 마법사이며,그대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줄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돈, 명예, 영약…원하는 게 무엇이든,연방 정부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겠다.]갑자기 포격을 날려 일을 여기까지 키운 당사자가 뭐라고 지껄이는 거지?
여명이 눈살을 찌푸리는데, 전용섭의 경고가 이어졌다.
[반복한다. 단장을 생포하는데 협조해라, 이건 지구와 인류 모두를 위한 일이다. 그는…]“지랄.”
여명은 그대로 마나를 움직여 마법을 차단해버렸다.
전용섭의 표정이 팍 일그러지건 말건, 그는 산초에게 말했다.
“정면에서 합공하면 손발이 안 맞을 거 같은데, 제가 위에서 공격할 테니, 부단장은 정면을 막아주십시오.”
“…위? 위라니?”
여명은 대답 대신 얼음송곳을 펼쳐, 그대로 하늘 위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다음 순간, 어느새거리를 좁힌 단장이 화살처럼 달려와 산초에게 메이스를 휘둘렀다.
폭발은 없었지만, 메이스에 담긴 힘만으로도 탱크를 찌그러트릴만한 공격이었다.산초는 방패를 내밀고 다른 손으로 검을 휘둘렀다.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군. 반응이 살아있어”
단장의 목소리를 따라 허공을 가르는 메이스, 일격 사이로 번뜩이는 검, 방패를 두들기는 묵직한 힘.
두 사람은 상대가 무슨 수를 펼칠지 아는 바둑처럼, 차곡차곡 수를 교환했다.
무기를 내밀면 방패로 막고, 방패로 밀어내면 물러나고, 때때로 한발 앞서 공간을 점유하고, 방패 모서리를 찔러넣고…
지난 수십 년간 쌓아온 경험이, 함께해온 시간이 서로의 무술을 타고 펼쳐졌다.
그리고 그렇게 충분히 공격을 주고받았다고 확신한 순간, 두 사람의 방패가 동시에 불씨를 흩날렸다.
무기가 아닌 방패로 펼치는 화산쇄설.
억눌려있던 마나가 터져 나오며 서로를 향해 폭발했다. 공기가 으스러지며 콰앙 비명을 내질렀다.
폭발이 너무 강했기에, 두 사람은동시에 물러났다. 단장은 한 걸음, 부단장은 네 걸음.
누구가 우위에 서 있는지 명확히 보여주는 장면이었으나,단장은 방심하지 않았다. 조금 전 하늘 위로 올라간 여명, 그가 낙하하는 게 느껴졌으므로.
고개를 들자, 비처럼 쏟아지는 어마어마한 양의 얼음송곳이 보였다.
“그만한 무술에 마법까지? 재주가 많은 괴물이군.”
단장은 머리 위로 방패를 들어 가볍게 화산쇄설을 펼쳤다.
콰앙! 폭발에 휘말린 송곳들은 기본 마법답게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사라졌다.
“기껏 하늘로 올라가서 한다는 게 이런 마나 낭비”
단장의 감상은 이어지지 않았다. 폭발의 불길 사이, 검을 든여명이 낙하하고 있었으니까.
얼음송곳은 눈속임이었나? 나쁘지 않군.
그가 그런 생각을 떠올릴 때쯤, 산초도 달려들며 검을 찔러넣었다.
눈속임 이후 이어지는 양면 공격.
단장의 대응은 즉각적이었다. 그는방패를 기울여 여명을 흘려내고, 메이스를 휘둘러 산초의 검을 막아냈다.
두 공격의 궤도를 전부 읽어야만 가능한 신기였으나, 단장은 가볍게 성공했다.
긴 시간 쌓아온 수련이, 무수한 실전 경험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물론, 여명의 공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공격이 막힌 순간, 그는 거의 바늘만큼 압축한 얼음송곳을 단장의 눈을 향해 쏘아냈다.
삼중으로 준비한 회심의 일격.
최소한 눈 하나는 빼앗을 생각으로 펼친 공격이었으나, 단장은 너무나 가볍게 그의 얼음송곳을 파훼했다.
피하거나, 막아냈느냐? 아니, 단장이 얼음송곳을 막아낸 방법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는 대뜸 입을 벌리더니, 날아오는 얼음송곳을 이빨로 콱 붙잡았다.
“….”
콰직, 그가 얼음송곳을 씹어먹는 꼴을 본 여명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으나, 단장은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말했다.
“이런 기습은 통할 것 같나?난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살았다. 이런 건 미군의 저격수들과 비교하면 어린애 장난에 불과해.”
“….”
치매 노인의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광오한 말. 그러나 여명은 부정하지 못했다.
단장은 여태껏 싸워온 적들과 달랐다. 무술과 실전 경험 양면에서 정점에 이른 자.
그에게 승리하려면, 단순한 방법으로는 부족했다. 적어도 그가 상상하지 못할 일격이 필요했다.
다행히 여명에겐 그런 방법이 있었다.
무술에 대한 재능.
고민은 짧았고, 행동은 빨랐다.
여명은 단장과 거리를 벌리며 산초에게 말했다.
“산초, 제가 신호하면 방패로 그 폭발 무술을 펼쳐 주십시오.”
“…방패로? 알겠네.”
산초가 그렇게 대답하기 무섭게, 단장이 두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특히 여명이 다시 하늘로 뛰어오를 수 없도록 집요하게 메이스를 휘둘렀는데, 합공이 낯선 두 사람은 숫자가 무색하게 계속 뒤로 밀려났다.
쩌엉!
방패가 검을 내려찍고, 메이스가여명의 몸을 후려치는 소리.
마나를 대체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건지, 단장은 옆구리의 상처를 지혈하면서도 둘을 몰아쳤다.
“산초! 뭐 하는 건가! 자네의 맹세가 겨우 이 정도였단 말인가?”
단장이 그렇게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그의 메이스와 방패가 동시에 붉게 물들었다.
강대한 화산쇄설의 전조.
불씨를 본 여명이 소리쳤다.
“지금!”
직후, 산초의 방패가 붉게 물들며 불씨를 토해냈다. 그리고 그대로단장에게 화산쇄설을 펼치려던 그때.
여명이 빈손을 쥐어 인벤토리에서 수류탄을 꺼냈다.
‘겨우 수류탄?’
대체 무슨 비책을 펼칠까 기대하던 산초의 눈으로 실망이 피어오르다가, 곧바로 경악으로 물들었다.
다음 순간, 그의 검과 수류탄이 동시에 붉게 물들며 불씨를 토해내기 시작했으므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