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213)
을 위한 세계는 없다-213화(213/817)
〈 213화 〉 지구에 있는 너에게 (6)
* * *
***
시간을 조금 뒤로 돌려, 여명 일행이 엄지손가락을 따라 VIP룸으로 들어선 순간.
클럽 상층 깊숙한 방에서 CCTV를 보고 있던 네크로맨서들은 하나 같이 짜증 섞인 표정을 지었다.
“젠장, VIP룸으로 들어갔어.”
그곳은 여명 일행 전부가 초인일 경우 안내하기로 한 장소였다.
두 명이 초인이라면 일반 룸, 한 명만 초인이라면 지하 시체 보관소로 가기로 했거늘.
수많은 CCTV를 앞에 앉아있던 약지 손가락은 호출기를 들며 오만상을 찌푸렸다.
“오늘 장사는 다 했네. 하필 이 시간에… 아오! 돈이 얼만데.”
네크로맨서보다는 장사꾼에 가까운 말투.
방에 모여있는 네크로맨서가 셋이나 됐지만, 그 말투를 지적한 건 딱 한 명뿐이었다.
“이 상황에서 돈 생각이 나더냐? 저놈들이 정말로 CIA요원이면 어쩌려고!”
꼬장꼬장한 목소리의 주인은 중지 손가락이라 불리는 노인이었다.
그는 엄지손가락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연장자답게, 미국 정부에 대한 두려움을 숨기지 못했다.
“이래서 미국이 아니라 멕시코로 가자고 했거늘…”
그러나 처음 입을 열었던 약지 손가락은 시큰둥했다.
“오버 좀 하지 마십쇼. 우리가 LA 시장에게 꽂아준 돈이 얼만데.”
“이놈아! 정부에서 델타 포스나 SAC를 보내면 그깟 시장 놈이 우릴 지켜줄 수 있을 거 같아?”
“영감님, 제발. 그런 특수부대가 여길 왜 옵니까?”
약지 손가락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늙은이들이란, 아직도 성기사를 피해 무덤을 파헤치던 시절인 줄 안다니까.
최신식 냉장 시설에 시체를 보관하는 현대 시대에 살면, 그 시대에 맞게 생각해야지.
“크흠, 일단 장사부터 접겠습니다.”
약지 손가락은 투덜거리며 부하들, 정확히는 클럽을 지키고 있는 구울들을 호출했다.
여기는 약지 손가락. 들리나?
그러자 CCTV 너머로 양복 차림의 남성들이 동시에 고개를 드는 게 보였다.
겉은 인간과 똑같지만, 그 속은 뒤틀린 마나와 저주받은 살점으로 가득 찬 언데드들.
손님들께 퇴거하셔야 한다고 전해라. 오늘 장사는 여기서 접는다.
녀석들은 명령을 듣자마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화려한 조명이 꺼지고, 음악이 멈췄다.
춤을 추던 손님들이 당황한 듯 고개를 두리번거리기 무섭게, 구울들이 나서서 사정을 설명했다.
술에 취한 손님 몇몇이 화를 냈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입장료와 술값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말 때문에? 아니, 구울들의 몸에서 풍기는 위압적인 기세 때문에.
약지 손가락은 우르르 클럽 밖으로 나가는 손님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손해를 생각하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나마 VIP 손님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뭣들 하느냐? 어서 구울들을 무장시키지 않고!”
그 와중에 중지 손가락은 뭐가 그리 걱정인지, 수염을 파들파들 떨며 소리쳤다.
“창고에 있는 무기는 전부 꺼내라! 혹시 모르니 데스나이트도 전부 깨우고!”
무장이라니, 약지 손가락은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답했다.
“…그러지 마시고, 그냥 데스나이트만 깨우는 게 어떻습니까?”
도심에서 총질하면 그게 다 돈이라고요.
사건을 덮으려면 경찰부터 기자까지 얼마나 뿌려야 하는지 아십니까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으나, 약지는 애써 말을 억눌렀다.
늙은이들이란 말이 통하는 존재가 아니었으므로.
“이놈아, 너는 엄지손가락이 직접 나서는 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느냐!?”
“…예, 예.”
약지 손가락은 궁시렁거리며 구울들에게 무장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전원 무장하라, 소음기는 필수, 폭발물은 최소한으로.
곧이어 다른 젊은 네크로맨서들도 지팡이를 들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불사의 몸통에 속박된 영혼들이여, 너희의 충성을 보여라.
클럽 건물 지하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는 데스나이트를 깨우기 위한 주문.
주문이 완성되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잠시 후, 지하 깊은 곳에 준비되어 있던 관이 벌컥 열리며 일곱 구의 데스나이트들이 나오는 모습이 CCTV로 보였다.
“…이건 좀 과하지 않나.”
일단 준비하긴 했지만, 약지 손가락은 혀를 찼다.
총으로 무장한 구울 수십 마리에, 데스나이트 일곱, 손가락급 네크로맨서에 도제급 네크로맨서를 합쳐 19명.
이 정도면 작은 군부대 정도는 가볍게 털어먹을 수 있는 전력이었다.
까놓고 말해서, 고작 초인 세 명을 상대로 꺼내기에는 과했다.
하지만 중지 손가락은 그걸로도 만족을 못 했는지, 지팡이를 들어 건물 곳곳에 있는 마법진들을 발동시키기 시작했다.
독 안개, 감각의 저주, 쇠약의 저주, 뼈 함정, 인식 저해…
개중에는 한 번 사용하면 다시 설치해야 하는 일회용 마법진도 있었기에, 약지 손가락은 기겁하며 소리쳤다.
“아, 좀! 적당히 좀 하십쇼! 그러다 진짜 델타 포스가 왔을 때 상대할 것들도 없어지겠습니다!”
“….”
“뭘 그리 걱정하십니까? 딜라 년이야 어차피 전투보다는 영혼계가 주특기인 년인데. 저걸 잡아 온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감이다.”
중지 손가락은 기어코 일회용 마법진들까지 모조리 사용하며 말을 이었다.
“딜라와 함께 갔던 검지 손가락께서 말하지 않았느냐, 추락한 별을 하나도 아니고 다섯이나 본 거 같다고.”
“그거 노망난 거라고 결론 내지 않았습니까. 다섯이 한 열차에 타고 있었다고요? 그게 말이나 됩니까?”
“원래 세상은 말이 안 되는 것 투성이다. 사방에 트럭이 돌아다니면, 개구리는 재수 없게 치여 죽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
개구리? 트럭? 뭔 말이 안 통하네. 약지는 울화통이 터지는 걸 참으며 엄지손가락을 호출했다.
…호출하려 했다.
하지만 그가 호출기를 붙잡는 순간, 방의 한가운데에 서 있던 해골이 파르르 떨며 눈구멍에서 붉은 안광을 내뿜기 시작했다.
“뭐, 뭐야?”
약지가 당황하는 것과 동시에, 해골의 입이 열리며 엄지손가락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특급 초인 셋. 유니콘의 뿔 가지고 있음. 클럽의 병력을 전부 사용한다. 반복한다, 위기 상황이다….]“제기랄, 내 이럴 줄 알았다!”
늙은이가 소리 지르건 말건, 약지 손가락은 얼떨떨한 상태로도 구울들을 급파했다.
그렇게 최신예 총기로 무장한 구울 수십 마리가 복도로 늘어서는 모습이 CCTV로 비추길 잠시.
콰앙!!!
갑자기 방문이 폭발하며 그 앞으로 몰려가던 구울 십수 마리를 쓸어버렸다.
“아, 이런 씹…”
기껏 폭발물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했는데, 저놈이 폭발을 쓰는 놈일 줄이야.
약지 손가락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나는 가운데, 문밖으로 나온 금색 눈동자의 중년인이 CCTV를 똑바로 올려다봤다.
***
CCTV를 보던 여명은 고개를 돌려 자신에게 겨눠진 수십 개의 총구를 바라봤다.
겉으로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되, 속은 이미 썩어버린 언데드들이 총으로 무장한 꼴이라니.
산 사람의 뇌를 뒤틀린 마나로 오염시킨 한국 정부나 이놈들이나. 결국 생각하는 건 거기서 거기였다.
세상에서 박멸해야 할 쓰레기들.
여명이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 순간.
구울들이 일제히 방아쇠를 당겼다. 자동소총의 총구가 불을 뿜고, 주르륵 탄피가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차라리 넓은 공간에서 쏟아부었다면 피하는 것밖에 답이 없었을 텐데.
이런 좁은 복도라면야, 여명 입장도 대응할 방법이 무궁무진했다.
화산쇄설.
그의 검에서 불씨가 피어오르는 것과 동시에, 폭발이 총알이 쇄도하는 복도를 갈랐다.
!!!
폭발에 휩쓸린 언데드들은 비명조차 남기지 못했다. 그을음이 지나간 자리로 남은 건 어지럽게 흩날리는 피와 살점, 그리고 조각난 총기뿐.
여명은 그 잔해들을 밟으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CCTV에 잡힐 수 있도록, 노골적이고, 과장되게.
적의 관심을 끄는 것, 그것이 성녀와 세티가 일을 꾸미는 사이 그가 할 일이었다.
그리고 그 계획이 성공한 건지, 라운지로 나오자마자 일곱 명의 인영이 그를 맞이했다.
모두 하나같이 푸르딩딩한 피부에, 붉은색 눈동자를 번들거리는 초인들.
‘데스나이트…’
카할 마그두가 소환했던 것들에는 못 미쳤지만, 하나하나가 아카데미 교사들에 꿀리지 않는 마나를 지니고 있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기사야.
게다가 말까지? 여명은 CCTV를 보던 시선을 내려 말을 건 데스나이트를 바라봤다.
중년 남자의 시체로 만들어진 그의 눈동자에선 어떤 열망이 느껴지고 있었다. 여명이 대답했다.
“미안하지만, 통성명은 못 해. 듣는 귀가 많아서.”
중년 남자는 이해한다는 듯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거대한 여자가 앞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거의 천장까지 올라오는 커다란 덩치 때문인지, 여명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난 벨라디바 돈 레다. 변경백령 전쟁은 어떻게 됐지? 아, 이건 통성명이 아니니 말해줄 수 있겠지?
검을 들어 올리던 여명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며 데스나이트들의 면면을 살폈다. 복장을 보아하니, 지구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딱 한 명 뿐이었다.
나머지 여섯은 전부 아샤인, 그것도 꽤나 오래전에 죽은 사람들인 듯싶었다.
“황제가 프랑스에 변경백령을 넘겼습니다.”
여명이 그렇게 대답하자, 벨라디바의 인상이 콱 찌그러졌다.
황제가? 그럴 리 없는데.
“아마 당신이 아는 황제랑 제가 아는 황제랑 다른 사람일 겁니다. 전쟁 중에 황제가 바뀌었거든요.”
황태자도 그럴 인물이 아니다만.
“현 황제는 전 황제의 동생입니다. 황손은 전부 죽었습니다.”
룽게? 그 씨발 새끼가 황제가 됐어? 제국은 망했군.
“….”
설마, 진짜 망했냐?
두 사람이 그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데스나이트들이 전투 자세를 잡았다.
표정과 몸이 따로 움직이는 광경이 꽤나 우스꽝스러웠지만, 그 우스꽝스러움 사이로 보이는 노련함은 비범하기 짝이 없었다.
후, 그래도 사실을 알려줬으니 최대한 고통 없이 죽여줄게.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선 건 벨라디바였다. 그녀는 거구의 몸과 어울리지 않는 손바닥만 한 쌍 도끼를 무기로 사용했다.
휘익 !
첫 공격은 가벼운 내려찍기… 가 아니었다. 오른손으로 머리를 노리고, 왼손으로는 손도끼를 던지는 연계 공격.
뭔가 투척에 전문화된 무술을 익히고 있는 건지, 날아오는 도끼가 코앞에 다가올 때까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푸확!
여명이 머리를 찍는 도끼를 막아내는 것과 동시에, 날카로운 도끼날이 옆구리를 길게 가르며 파고들었다.
그대로 내장이 쏟아질 만한 위력이었으나, 도끼는 피만 조금 뿌릴 뿐이었다.
마치 무언가에 단단히 붙잡힌 듯, 그대로 옆구리에 고정돼버린 도끼.
여명은 그 도끼를 뽑아 바닥에 내던지며 말했다.
“혹시 고통을 느끼십니까?”
왜, 너도 고통 없이 보내주려고?
“예, 장담은 못 해 드립니다만.”
미군 군복을 입고 있는 한 명을 제외한 모든 데스 나이트들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특히 가장 먼저 말을 걸었던 중년인은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내 말이 맞지? 깨어날 때부터 운수가 좋을 거 같았다니까. 내가 이 시체팔이들의 똥줄이 타게 할 정도로 강자가 온 거라고 했어, 안 했어?
입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의 몸은 여명을 향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익숙한 검기, 익숙한 궤도.
쩌엉 !
여명은 무리 없이 공격을 막아냈다. 당연한 일이었다. 상대의 검술은 산초가 사용하던 제국 기사단의 검술이었으니까.
역시! 기사단을 알고 있군! 혹시, 기사단원인가?
여명은 그의 검술 사이로 파고들며 대답했다.
“아뇨. 최근에 연이 닿았을 뿐입니다.”
곧이어, 여명의 검이 그의 가슴에 기다란 상처를 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당장 생사를 오고 갔을 상처.
데스나이트의 검술 실력은 산초에게 뒤지지 않았으나, 언데드가 되며 딱딱해진 몸이 검술을 따라오지 못한 탓이었다.
단장님은 어떻지? 잘 지내고 계신가?
“나이 때문에 조금 편찮으십니다.”
하하! 그 양반도 나이는 못 피해 갔군!
갈라진 가슴 사이로 검은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음에도, 데스나이트는 흥겹게 웃어 재꼈다.
물론, 그의 몸은 무시무시한 검술을 펼쳐내는 중이었다. 주변의 데스나이트들이 접근조차 못 할 정도로 격렬한 검술.
클럽 라운지가 과자처럼 박살 나는 가운데, 그가 계속 입을 놀렸다.
다른 인원들은? 아, 산초는 어떤가? 그 새끼 결혼은 했나?
“아뇨, 독신이셨… 흡!”
여명은 아슬아슬하게 고개를 꺾어 머리를 노린 검을 피했다. 검은 머리카락 몇 가닥이 잘리며 흩날렸다.
역시, 내 말대로 됐군. 그놈에게 부단장직을 넘겨주면 가정도 못 꾸릴 거라고 단장에게 그렇게나 말했는데, 귓등으로도 안 듣더라니까?
“….”
아, 그리고, 방심은 하지 말게. 난 이 중에서 두 번째로 강하니까.
그의 말마따나, 그는 한가롭게 대화를 나누며 싸울 정도로 여유로운 적이 아니었다.
‘최대한 빠르게, 고통 없이 보내주자.’
여명은 짧게 숨을 삼킨 뒤, 검에 살기를 실었다. 붉게 파도치는 살기를 따라, 그의 검술이 돌변했다.
조금 더 날카롭게, 조금 더 빠르게.
살아있는 인간과 죽은 자 사이의 벽은 넓지도, 좁지도 않았다. 하지만 승패를 가리기에는 충분했다.
최후를 직감한 것일까? 중년의 데스나이트는 웃으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
이름 모를 기사여, 미안하지만 산초에게 전해주겠나? 첫째를 낳으면 내 이름을 붙이겠다는 약속, 반드시 지키라고.
“…기회가 닿으면, 전해드리겠습니다.”
좋아, 맹세는 받았다.
그 말을 끝으로, 여명은 데스나이트의 목을 베었다.
피 한 방울 튀지 않고 땅으로 떨어지는 머리는 어딘가 편안해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머리를 바라보던 여명은 그의 이름을 듣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으나, 고개를 저어 그 생각을 떨쳐냈다.
저 머리를 기사단에 전해주면 산초가 알아서 이름을 알려줄 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언이라, 낭만적인 짓을 하는군.
그의 앞에는 아직 여섯이나 되는 데스나이트들이 남아 있었으니까.
참고로 난 유언 따윈 없다.
“….”
그런 건 살아서 제 할 말 다 못하고 죽은 놈이나 하는 거거든.
벨라디바가 손도끼를 빙빙 돌리며 거리를 좁히고, 그 뒤로 두꺼운 흉갑을 찬 미녀가 따라붙었다.
그건 당신 같은 야만인이나 그렇고, 난 할 말 많아요. 우리 딸, 지금은 할머니가 되었겠죠?
자네, 혹시 독신인가? 내가 죽을 때만 해도 우리 가문이 데릴사위를 구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미안하네. 다들 죽은 뒤로 염병만 늘어서.
그렇게 입과 몸이 따로 노는 데스나이트들을 보며, 여명은 자세를 고쳐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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