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216)
을 위한 세계는 없다-216화(216/817)
〈 216화 〉 지구에 있는 너에게 (9)
* * *
***
어느 순간, 클럽 내부에서 들려오던 소리가 끊겼다.
쿵쿵거리던 충격음도, 선명한 총소리도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승부가 난 것이다.
조마조마하게 클럽을 바라보는 성녀나 딜라와 달리, 세티는 여명이 승리했다고 확신했다. 모든 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으니까.
거기까지 생각한 세티는 느긋하게 고개를 돌려 딜라를 바라봤다.
병든 자의 그것처럼 탈색된 흰머리에, 다크서클이 가득한 네크로맨서.
딜라 본인은 모르고 있겠지만, 오늘 습격의 가장 큰 기여자는 바로 그녀였다.
딜라가 네티를 유혹하겠다며 내뱉었던 추락한 별에 대한 정보.
착한(?) 동생인 네티는 그때 들은 말 전부 언니에게 고자질했고, 덕분에 세티는 지구의 네크로맨서들이 자신의 혈통과 한국 정부에 관한 정보를 쥐고 있다는 걸 확신했다.
그녀는 즉시 네크로맨서들을 털 계획을 준비했다.
그렇게 LA에 도착한 뒤 딜라를 심문해 네크로맨서의 본거지와 전력을 알아냈고, 밤이 오자마자 클럽을 습격했다.
그래, 애초부터 세티는 네크로맨서와 거래나 대화 따위를 할 생각이 없었다.
양지에 있는 놈들도 아닌데, 굳이? 까짓것 다 빼앗으면 그만 아닌가.
그리고 그 생각을 증명하듯, 작전은 그녀의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 여명이 나오고, 이대로 폭탄을 터트려 창고와 금고만 남기고 쓸어버리면 끝이다. 끝이었는데…
클럽 바깥으로 나온 여명은 등에 커다란 포대를 지고 있었다.
창백한 노인의 머리가 빼꼼 튀어나온 포대.
저게 뭐지? 세티의 고개가 슬그머니 기울어지는데, 딜라가 노인의 얼굴을 알아봤다.
“…데스나이트?”
“뭐?”
그제야 두 사람도 놀라서 여명을 바라봤다.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그는 포대를 바닥에 내려놓고 있었는데, 안에 든 시체가 적어도 여섯 구는 되는 것 같았다.
“…이거 뭐야?”
많은 게 함축된 질문이었고, 여명은 조금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 그게… 이 분들은, 네크로맨서들이 조종하던 데스나이트인데…”
왜 데리고 왔더라?
여명이 대답할 말을 떠올리지 못하고 있는 사이, 고개를 내밀고 있던 노인이 세티를 힐끗 보며 한마디를 툭 던졌다.
우리 딸이 더 낫군.
세티는 어이가 없다는 듯 그 노인을 노려봤다가, 여명에게 재차 물었다.
“그래서, 왜 이 시체… 아니, 어르신들은 대체 왜 데리고 온 거야?”
그러자 이번에는 포대기 안에서 경쾌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게? 장례라도 치러주려고 했나?
벨라디바, 유언 따윈 남길 생각 없다던 그녀가 그렇게 낄낄거리자, 데릴사위를 운운하던 노인이 그 말을 받았다.
기사단의 그놈 때문 아니겠나. 그렇게 멋지게 가면 누구라도 흥이 붙는 거지.
우리가 부추긴 건 없다?
어허, 말조심.
그제야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깨달은 세티는 어깨를 으쓱이는 여명에게 다가가 이마를 꾹꾹 눌렀다.
“늙은이들한테 약한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세티는 그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뭐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여유가 있으면 이런 것도 할 수 있는 거지.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며 폭탄을 점화시키려는데, 포대 안을 힐끗거리고 있던 성녀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는 얼굴이 한둘이 아닌 탓이었다.
프리 로즈, 명가의 전전대 가주, 유명 용병단의 영웅, 심지어 성기사단의 옛 사범까지.
음? 자네는 날 아는 눈치로군?
그때, 데릴사위를 운운하던 노인이 성녀의 표정을 보며 말했다. 성녀는 당혹감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그, 두메아 가문의 전대 가주… 신가요?”
역시, 네 사람 중 한 명 정도는 날 알아볼 줄 알았지! 어떤가, 우리 가문은 아직도 잘나가나?
“아, 예, 그…엄청난 천재를 배출한 가문으로 유명해요.”
천재라, 여자인가, 남자인가?
“여자인데, 그건 왜요?”
그 답변을 듣자마자, 두메아 가주가 여명을 보며 눈썹을 들었다.
데릴사위?
“….”
여명은 애써 쓴웃음을 지운 뒤, 노인을 비롯한 데스나이트들을 포대 속으로 넣고 꼼꼼히 잘 싸맸다.
“나중에, 일이 끝나고 들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포장(?)을 끝낸 직후, 여명은 세티에게 눈짓했다. 세티는 두말없이 위층에 던져놓은 폭탄을 준비했다.
그림자로 폭탄을 조작하고, 그대로…
쾅
폭탄이 터지며 불기둥이 밤하늘을 물들였다.
한데, 딜라는 물론이고, 일행 모두가 그 불기둥을 바라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저거?”
***
넷째 손가락, 약지를 비롯한 네크로맨서들은 CCTV 너머 화면을 보며 불안하게 눈동자를 굴렸다.
데스나이트들이 적을 제압하지 못하고 있는 탓이었다.
아무리 생전 강함을 재현할 수 없다지만, 여섯이 하나를 상대하고 있거늘.
어지간히도 답답했는지, 구경하고 젊은 네크로맨서가 한마디 했다.
“저 머저리들, 대체 뭐하고 있는 거야? 빨리 둘러싸서 죽이지 않고…!”
다른 네크로맨서들도 그에 호응해서 한마디씩 내뱉으려 하자, 가운뎃손가락이 소리쳤다.
“닥쳐라!”
도제들을 비롯한 네크로맨서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걸 지켜보던 약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신 설명했다.
“그게 가능했다면 벌써 했을 거다. 초인의 싸움이 어떤 건지도 모르면서 데스나이트의 전투 방식에 의문을 제시하지 마라.”
기본적으로 모든 데스나이트는 살아생전의 전투 경험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로봇에 가까웠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데스나이트로 만들어지는 시체들은 보통 무술의 극에 도달한 초인이었고, 그런 육체를 네크로맨서가 직접 조종해봤자 방해만 될 뿐이었으니까.
그러니 지금 CCTV 너머의 데스나이트들은 초인다운 판단으로 침입자에게 달려들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불안정한 초인 여섯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놈이라니… 어쩌다 저런 놈이 들러붙은 건지.
약지는 한숨을 쉬며 다른 CCTV를 확인했다. 그리고 녀석을 따라온 두 계집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두 년은 어디로 간 거지?”
질문의 답은 의외의 곳에서 들려왔다.
“바깥에서 뭔가를 꾸미고 있더구나.”
약지의 뒤통수, 방의 허공에서 검은 구멍이 벌어지더니, 그 사이로 두개골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허공에 두둥실 떠다니는 두개골.
마치 괴담 속 유령처럼 보이는 해골이었으나, 손가락이 아닌 젊은 네크로맨서들은 그것을 본 즉시 무릎을 꿇었다.
“두 번째 손가락을 뵙습니다.”
불사의 왕이 이 땅에 내리신 두 번째 손가락, 검지는 의례적으로 인사를 받은 뒤, 즉시 말을 이어 나갔다.
“우리가 당했다. 저년들 모두 열차에서 심상 세계로 들어왔던 것들이야. 별들이 우리를 쫓아온 게지!”
“저것들이 추락한 별이란 말씀이십니까?”
“그게 아니면 제미니 시티에서 일이 끝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바로 우리를 공격했겠느냐?”
그럴싸한 말이었다. 딱히 반박할 여지를 떠올리지 못한 약지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면 어쩌시겠습니까? 내려가서 데스나이트들과 합류할까요?”
그러자 검지가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다.
“싸워? 우리가 왜?”
“예? 합공하는 편이…”
“아니, 우리는 죽음을 다루지, 죽음에게 시험받지 않는다! 미국은 넓고, 시간은 우리의 편이란 걸 모르느냐?”
고풍스럽게 말했지만, 결국 튀자는 소리였다.
약지는 어이가 없어서 한 소리 하려다가, 다른 네크로맨서들이 조용하다는 걸 깨닫고 고개를 돌렸다.
아까 전부터 징징거리던 중지는 당연히 찬성하는 듯 입을 다물고 있었고, 젊은 네크로맨서들 또한 도망가고 싶은 눈치를 숨기지 않았다.
이 식충이들 새끼들, 여기서 도망가면 날리는 돈이 얼만데! 재무관리가 뭔지도 모르고 돈만 쓰는 인간들이란!
욕을 삼킨 그대로 약지는 핑곗거리를 찾다가, 이곳에 없는 손가락을 떠올렸다.
“하지만 아직 엄지손가락께서 오지 않으셨는데요…”
그러자 검지는 있지도 않은 코로 콧방귀를 꼈다.
“우리가 다 죽어도 엄지손가락은 살아남을 거다. 그가 우리 몰래 챙겨둔 예비용 육체가 몇 개인지는 아느냐?”
“….”
“그런 쓸모없는 걱정일랑 접어두고, 아래층에 있는 도제들에게 시간을 끌라고 명령해라. 나는 그사이 차원문을 열겠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중지가 CCTV실 벽면으로 달려가 화면이 꺼진 모니터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똑, 똑, 똑. 그는 손에 마나를 담아 정해진 순서대로 모니터를 두들겼다.
곧이어 끼기긱 소리와 함께 모니터가 밀려나고, 그 속에 숨겨져 있던 금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약지는 피눈물을 삼키며 그 꼴을 바라봤다.
모든 게 전자화된 시대라지만, 범법자인 네크로맨서들에겐 아직 실물로 보관해야 하는 재산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금고 속에 고이 모셔진 증명 서류와 수표, 금괴와 보석, 그리고 작은 타락석들이 바로 그런 종류의 재산이었다.
자루 포대 하나 없는 상황에서 금고에서 절반이나 챙겨갈 수 있을까.
넷째 손가락이 그런 생각을 하며 옷을 뜯어 보자기를 만드는 사이, 검지가 말했다.
“이제, 차원문을 열겠다. 모두들 금고 속에서 챙길 수 있는 물건은 전부 챙기도록”
검지는 입으로 타락석을 받아들고는, 아작 깨물었다.
곧이어 타락석 속에 잠들어 있던 뒤틀린 마나가 바닥으로 질질 흘러내리다가, 그대로 공간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고오오
임시 차원문이 생겨나는 가운데, 네크로맨서들은 부랴부랴 자리에서 일어나 금고에서 재산을 챙기기 시작했다.
“데스나이트들이 당했다!”
“마법까지 쓴다고?”
CCTV 너머로 데스나이트 여섯이 꽁꽁 얼어붙어 확인 사살당하는 모습이 방영되고 있는 까닭이었다.
“금괴보다는 수표부터 챙겨! 가벼운 것부터 챙기라고!”
“서류들은 어쩌죠?”
“전부 버려! 돈 안 되는 건 다 버리고 간다!”
그렇게 네크로맨서들이 바리바리 물건을 싸 들고, 차원문이 완성되기를 기다리던 어느 순간.
!!!!
폭발음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네크로맨서들은 기겁하며 보석을 흘리거나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에 엎드렸다.
파편이 날아와 벽을 두들기는 소리가 울리고, 외부 화면을 잡는 CCTV로 하늘 높이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뭐, 뭐야? 저긴 왜 터져?”
약지가 중얼거렸으나, 대답하는 네크로맨서는 아무도 없었다.
클럽 건물이 아닌, 길 건너편 식당 건물이 폭발한 이유를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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