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217)
을 위한 세계는 없다-217화(217/817)
〈 217화 〉 지구에 있는 너에게 (10)
* * *
***
불기둥이 솟아난 자리로, 무수한 파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박살 난 유리와 나뭇조각, 콘크리트와 가구의 잔해들…
길을 지나던 차량 경적이 비명처럼 이어지고, 파편에 맞은 행인들은 진짜 비명을 질렀다.
그 참상을 멍하니 지켜보던 여명은, 주먹만 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성녀의 머리로 날아오는 걸 보고 정신을 차렸다.
“아!”
그는 반사적으로 염동력을 펼쳐 콘크리트를 붙잡은 뒤, 아직도 멍하니 눈을 깜빡이는 성녀를 향해 물었다.
“…혹시, 터트릴 곳을 착각한 거 아니지?”
“으, 응? 아니, 아니야! 우리가 가져온 폭탄으로는 저렇게 큰 폭발은 못 일으켜!”
그러면 이 모든 게 우연이란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개 같은 우연이네.”
여명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걸로 조용히 네크로맨서가 숨어 있는 방을 터트리는 계획은 물 건너갔다.
네크로맨서들이 덤벼준다면 좋겠지만, 데스나이트와 싸울 때도 얼굴 하나 비치지 않은 녀석들이 과연 그럴까?
분명 이대로 도망가겠지.
거기까지 판단을 끝낸 여명은 딜라에게 포대를 지켜달라고 부탁한 뒤, 다시 클럽으로 돌입했다.
뒤로 성녀와 세티의 발소리가 들려왔지만, 여명은 이미 비각술로 성큼성큼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어, 어? 잠깐! 멈춰!”
계단을 지키고 있던 네크로맨서가 뒤늦게 여명을 발견하고 총을 겨눴지만, 여명은 이미 녀석을 훌쩍 뛰어넘은 뒤였다.
그리고 뒤이어 이어지는 총소리.
탕!
성녀의 리볼버는 정확히 네크로맨서의 손등을 꿰뚫었다.
네크로맨서가 총을 놓치고 비명을 지르는 사이, 성녀는 계단 위쪽을 보며 소리쳤다.
“엄호해줄게! 달려!”
여명은 기꺼이 그렇게 했다.
시발, 갈겨!
눈치 빠른 네크로맨서가 계단 난간으로 총구를 내밀었지만, 이어지는 성녀의 사격에 총을 떨구거나 겁에 질려 뒤로 물러날 뿐이었다.
그렇게 방해가 없어진 걸 확인한 여명은 더욱 빠르게 위층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겨우 몇 번 눈을 깜빡할 시간이 흐른 뒤, 그는 뒤틀린 마나가 느껴지는 두꺼운 철문 앞에 멈췄다.
마나가 엮어내고 있는 주문은 익숙했다. 아카데미 하수도에서 마주했던 뒤틀린 차원문의 주문.
역시 도망치는 중이었나.
여명은 즉시 검게 검기를 두르고 철문을 내려쳤다. 문을 통째로 날려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파지직! 주문에 걸려있던 마법이 반응하며 검기는 물론이고 검마저 밀어냈다.
저릿하게 손을 타고 올라오는 마력의 반발.
검에 힘을 더 실어봤지만, 문은 물론이고 주변 벽에도 방어주문이 꼼꼼히 새겨졌다는 사실만 깨달을 수 있었다.
이대로 세티가 던져놓은 폭탄을 터트려야 하나? 여명은 짧게 고민했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쪽까지 폭탄을 터트리면 LA 수사당국이 어떻게 나올지 몰랐다. 어쩌면 앞 건물을 터트린 놈들 대신 그들이 잡혀갈지도 모르는 일.
결국, 여명은 폭탄보다도 확실한 방법을 쓰기로 했다. 마나를 끌어 올리고, 검기를 중첩하고, 또 중첩해 오색찬란한 검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철문의 연결 부위에 검을 박아넣었다. 묵직한 검기가 반발하는 주문을 꿰뚫고, 철문의 틈을 파고든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검에 힘을 싣자, 문의 잠금장치가 갈라지며 철문이 통째로 밀려났다.
터엉! 밀려나는 철문 너머로 보이는 건, 사람 한 명이 겨우 넘어갈 만한 사이즈의 검은 차원문과 이미 대부분 넘어간 네크로맨서들이었다.
“이런 미친, 두 방에 그 문을 부쉈다고?”
커다란 옷가지에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있는 한 네크로맨서가 여명을 보고 기겁하건 말건, 여명은 즉시 방문으로 뛰어들었다.
한 명이라도 잡는다.
각오와 함께 폭발하는 비각술, 번쩍이는 검기의 빛.
“불사의 왕이시여!”
네크로맨서는 순순히 잡혀주지 않았다.
그는 계단에 있던 녀석들과는 수준이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짐을 집어 던지며 순식간에 주문을 엮어냈다.
고통의 빛, 감각의 저주, 뼈의 장벽.
세 가지 주문은 차례대로 여명의 시선을 빼앗고, 시간을 끌고, 길을 막았다.
주문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여명을 막기엔 부족했으나, 조합된 연계는 찰나의 시간을 버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찰나는 녀석이 차원문을 향해 몸을 던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뼈의 장벽을 박살 낸 여명의 검기가 네크로맨서의 등을 아슬아슬하게 베었으나, 녀석은 이미 차원문에 반쯤 몸을 집어넣고 있었다.
쏟아지는 피, 닫히는 차원문.
여명이 차원문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닫히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결국 여명이 볼 수 있는 건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네크로맨서와 그들이 등지고 있는 풍경이 전부였다.
어이없게도, 녀석들이 도망친 장소는 커다란 성당이 내려다보이는 건물 옥상이었다.
커다란 빌딩 숲 아래, 첨탑이 딱 하나뿐인 회백색의 성당이라니.
어디인지는 몰라도, 저런 장소라면 금세 찾을 수 있으리라.
“후우.”
순식간에 판단을 끝낸 여명은 서서히 닫히는 차원문 너머의 네크로맨서들을 향해 검을 겨누고, 목소리를 깔았다.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시체 도둑놈들아.”
의미 없는 협박, 혹은 심리전에 가까운 행동이었으나, 네크로맨서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듯했다.
특히 여명에게 등을 베인 네크로맨서가 그러했는데, 뒤돌아보는 그의 눈에는 분노와 두려움보다도 진한 공포가 깃들어 있었다.
“내가 금방 쫓아갈 테니.”
그 말을 끝으로, 차원문이 허공에서 사라졌다. 여명은 허세 가득한 자세를 풀고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금고에는 아직 그가 찾던 서류들이 가득 쌓여있었다. 물론, 마지막 녀석이 버리고 간 짐 사이에도.
“여명! 서류는?”
그렇게 서류 더미들을 꺼내고 있는데, 세티가 뒤늦게 방으로 뛰어들며 물었다.
여명은 금고에 남아있는 서류를 가득 들어 올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생각보다 너무 많은데…? 경찰 오기 전에 분류할 수 있을까?”
폭탄도 치워야 하는데. 세티가 걱정스러운 듯 덧붙이자마자, 여명은 가볍게 손을 쥐며 대답했다.
“꼭 여기서 분류할 필요는 없지.”
그 직후,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서류뭉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인벤토리의 권능.
핵미사일마저 깔끔하게 집어삼킨 아공간을 떠올린 세티는 그런 방법도 있었지 같은 표정을 짓다가, 무언가 떠오른 듯 손뼉을 쳤다.
“혹시, 잘라낸 데스나이트들도 거기에 넣을 수 있을까?”
“…살아있는 건 못 넣어.”
“데스나이트들은 죽었는데?”
“….”
그 철학적인 질문을 마지막으로, 여명과 세티는 네크로맨서의 금고를 싸그리 털기 시작했다.
***
한인 타운에서 정체불명의 폭탄 테러가 일어나고, 정확히 2시간이 지난 시점.
기사단이 LA에 몰래 준비해둔 주택.
가로등과 경찰차를 피해 주택에 도착한 여명과 그 일행은 주택 문을 두들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질문을 던졌다.
“햄버거의 치즈는 어디에 넣어야 하지?”
“…패티 바로 위야, 네티.”
미리 정해놓은 암구호(?)에 맞게 대답하자, 주택 문이 슬며시 열렸다.
“…치즈를 어디에 넣건 대체 무슨 상관이야?”
여명을 따라 주택으로 들어선 성녀가 투덜거리자, 의외의 인물이 대답했다.
“적당한 열기로 치즈를 녹이고, 녹은 치즈가 바닥에 흘러내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오. 몇 안 되는 햄버거의 전통이지.”
묵직한 중년인의 목소리.
성녀가 놀라 리볼버를 뽑아 들자, 주방에서 뭔가를 굽고 있는 살벌한 애꾸눈의 대머리 남성이 보였다.
“누, 누구세요?”
“해리 마이어라고 하오. 해리라고 불러도 좋소.”
“….”
그게 누군데? 성녀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자, 거실에서 네티가 거들었다.
“음식 솜씨가 대단하신 분이에요!”
“…음식 솜씨가 좋다고? 사람을 요리하게 생겼는데?”
성녀가 외모 차별적인 발언을 꺼내자, 앞서 주택에 들어온 여명이 피식 웃으며 그녀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산초가 말했던 기사단원이야. 아까 내가 사 온 치즈버거 가게 주인이기도 하고.”
“아…?”
성녀는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한가지 질문을 더 떠올렸다.
“근데 그런 분이 왜 여기에…?”
여명도 거기까진 몰랐는지, 세티와 동시에 해리를 바라봤다. 해리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팬케이크가 가득 담긴 접시를 거실 탁자에 내려놓은 뒤, 시럽 소스까지 뿌린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이 좀 꼬였소.”
“…오, 그래요? 저희도 그런데.”
해리는 속없는 소리를 하는 성녀를 힐끔 바라본 뒤, 그녀에게 포크를 내밀며 말을 이었다.
“사실, 이 도시에서 내가 하는 일은 반쯤은 정보 길드나 마찬가지라오. 그래서 여러 정보 길드와 두루두루 인연을 맺고 있었소만… 그게 문제가 되었소.”
“문제라면?”
여명은 정보 길드 사장의 딸인 성녀를 힐끔 바라봤다. 성녀는 별다른 감상 없이 팬케이크를 잘라 입에 넣고 있었는데…
“푸른 쥐가 갑자기 찾아와 목숨을 위협했소. 가짜 정보를 줘서 상황을 넘겼지만, 아무래도 가짜란 사실이 벌써 들킨 모양이오.”
켁, 켁. 팬케이크를 삼키던 성녀가 놀라 콜록거렸다. 해리는 그런 성녀에게 우유를 따라주며 계속 말했다.
“그러니 미안하지만, 오늘만 이곳에 숨어 있겠소. 날이 밝는 대로 다른 도시로 떠날 테니, 여러분들이 피해를 보는 일은 없을 거요.”
“….”
갑작스러운 말이었고, 딱히 그에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기에 여명은 그러라고 대답했다. 물론, 우유를 벌컥벌컥 삼킨 성녀는 그렇지 못했다.
“푸른 쥐가 공격했다고요? 대체 왜 그랬대요?”
“내가 어찌 알겠소? 굳이 예상해보자면… 푸른 쥐의 내부에 있는 KGB의 잔당들이 현 사장에게 반기를 든 게 아닐까 하오만.”
“….”
“그냥 내 예상일 뿐이오. 빨갱이 같은 노인네가 일을 주도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소.”
성녀가 침묵하는 사이, 해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하실로 향했다. 도움이 필요하면 불러달라는 말을 남긴 채.
그렇게 일행만 남은 거실로 짧은 침묵이 찾아왔다가, 팬케이크를 우물거리던 네티가 침묵을 깼다.
“그래서, 함께 간 일은 어떻게 됐어?”
“지금부터 봐야지.”
세티는 그렇게 말하며 여명을 바라보았고, 여명은 가볍게 손을 들어 주먹을 쥐었다.
곧이어 그의 손에서 무수한 서류 뭉치가 나타… 아니, 쏟아지기 시작했다.
거실 소파는 물론이고, 바닥까지 쌓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서류.
그 서류 탑을 본 네티는 잠깐 질린 표정을 지었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위층에서 코르부스님이 마법진을 설치하고 있는데… 내가 올라가서 도와드려야겠지?”
그녀의 언니는 무심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성녀는 몰라도 넌 여기 있어야 해.”
“아, 왜. 여태껏 집 잘 지켰잖아.”
“집을 지킨 건 코르부스겠지.”
“….”
“징징대지 말고 서류 집어. 한국 관련 서류를 찾는 거니까.”
형부에게 도움의 눈길을 보내봤지만, 그 형부조차 말없이 서류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망칠 명분이 없는 상황.
결국, 네티는 입술을 삐쭉이며 쏟아진 서류 뭉치 사이에서 아무 서류나 집어 들었는데…
초심자의 행운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단순히 운이 좋았던 걸까?
그녀는 형부가 찾던 서류 중 하나를 단번에 찾아냈다.
『’해와 달의 아들’한국의 지도자와 애국자들의 정체에 대한 연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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