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22)
을 위한 세계는 없다-22화(22/817)
〈 22화 〉 히로인을 위한 우연 (3)
* * *
***
모든 밀수꾼이 그러하듯, 장만은 사교적인 것과 거리가 멀었다.
어쩔 수 없었다. 직업적 특성이 그러했다.
팔아선 안 되는 것을 팔고, 가격을 매겨선 안 되는 것에 가격을 매겼으니,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술집을 찾아오는 손님을 보고 얼마짜리 인생일지 계산해 보고, 지나가는 아이를 보면 가격표를 떠올리는 삶.
그렇게 인생의 시작보다 끝이 더 가까운 나이가 되고 보니, 그의 주변에 남는 사람은 단 두 부류뿐이었다.
돈 되는 사람, 혹은 인간적으로 끌리는 사람.
아침 댓바람부터 그의 술집을 두들긴 건, 전자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오랜만입니다. 어르신.”
술집에 들어선 건 검푸른 코트를 두른 남자였다. 이마가 다 드러난 M자 탈모와 칼날처럼 날카로운 콧대가 특이한 남자였다.
컵을 닦고 있던 장만은,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월라드? 동냥 받으러 온 게냐? 일 없다.”
“동냥이라뇨, 어르신. 제가 언제 빈손으로 오는 거 보셨습니까?”
월라드라 불린 남자는 넉살 좋은 미소와 함께 손님용 테이블 앞에 앉았다.
“썩 꺼져. 네놈이 뭘 가지고 왔건 관심 없다.”
“아이고, 어르신. 물건도 안 보시고 그러시면 저 좀 서운합니다.”
월라드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크기의 새 두개골.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별 대단할 것 없는 물건이었지만, 장만은 단번에 그 물건이 뭔지 알아챘다.
“마도구… 완제품은 아니고, 어디서 떨어져 나온 파편이군.”
“역시 어르신! 척 보면 척이시군요. 이건 마법사의 완드에 달려 있던 해골입니다. ”
“…그래서?”
“제가 이걸 어디서 발견했을 거 같습니까?””
월라드는 두개골을 테이블 위로 굴렸다. 데구르르, 불길한 해골이 장만의 코앞에서 멈췄다.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고.”
“인천 앞바다. 운 없는 낚시꾼이 낚은 겁니다.”
“….”
“어르신, 저 바보 아닙니다. 나름 촉이 있으니 어르신을 찾아온 거라는 거. 아시잖습니까?”
탁! 장만은 닦고 있던 컵을 소리 나게 내려놓고, 월라드를 노려봤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뭘 그렇게 빙빙 돌리는 게야? 쥐구멍에 들어가더니 생각도 쥐새끼가 된 거냐?”
“쥐구멍이라뇨. 어르신, 적어도 이름으로는 불러 주십쇼. 푸른 쥐! 한국 바깥에선 나름 유명한 이름이란 말입니다.”
“쥐새끼파건, 고양이파건 상관없으니 용건이나 말해.”
장만이 쏘아붙였지만, 월라드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어르신, 제가 뭐, 대단한 걸 요구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냥 이거 하나만 알려주시면 됩니다.”
“뭘?”
“요 며칠간 인천에서 벌어진 이상한 일들… 어르신도 한 발 걸치셨지요?”
장만은 눈살을 찌푸렸다. 벌써 꼬리가 밟혔단 말인가?
“이상한 일? 바깥 물 좀 먹었다고 잊은 거냐? 이 도시는 언제나 이상했다.”
“그런 의미가 아닌 거 아시잖습니까.”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 형사 놀이할 생각으로 온 거라면 돌아가라.”
장만은 행주를 테이블에 집어 던지고 주방으로 향했다. 그런 장만의 등을 향해, 월라드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며칠 전, 폐쇄된 부두에서 폭발음과 함께 굉음이 울렸다더군요.”
장만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는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폭발음이 들린 이튿날, 정부가 인천에 요원들을 급파했다가, 불과 이틀 만에 싹 빼 버렸습니다.”
“….”
“그러자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 지구로 넘어온 빨갱이 엘프의 기사를 터트렸지요. 이거, 누가 봐도 정부가 푼 기사입니다. 대체 뭘 숨기려고 이런 패를 깠을까요?”
월라드는 장만의 표정을 살폈다. 눈에 띄는 동요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한숨까지 내쉬었다.
“그게 날 찾아온 이유냐? 내가 해줄 수 있는 답은 하나다. 난 모르는 일이다.”
“….”
“문 닫을 시간이다. 이제 꺼지거라.”
월라드는 뭔가 말하려는 듯 살짝 일을 열었다가, 입술만 핥고 입을 다물었다.
짧은 침묵이 흐른 뒤, 그는 다시 일을 열었다.
“어르신. 왜 이렇게 화를 내십니까? 그러시니까 꼭…”
쫙 찢어진 월라드의 눈이 살벌하게 장만의 얼굴을 훑었다.
“…뭔가 찔리시는 것처럼 보이잖습니까.”
장만이 무어라 화를 내기도 전에, 짝! 월라드가 손뼉을 마주쳐 박수 소리를 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술집 문이 벌컥 열리며 웬 남자 다섯이 술집으로 들어섰다.
그들 모두 월라드와 똑같은 검푸른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그들 중 유독 한 명의 떡대가 눈에 띄었다.
떡대는 거의 천장에 닿을 만큼 커다랬는데, 길게 늘어트린 코트 때문에 마치 커튼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가 눈길을 끄는 건 단순히 덩치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눈동자… 흰자위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새까만 눈동자는 마치 짐승의 그것처럼 번들거리며 장만의 시선을 끌었다.
“어르신, 너무 겁내지 마십쇼. 전부 제 친구들입니다. 여기 덩치 큰 친구는 모티머라고 하는데, 우리 조직에서 건전한 대화 도우미로 활동하는 친구지요.”
“…건전한 대화?”
장만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 저런 괴물을 옆에 끼고 퍽이나 건전한 대화가 오고 가겠군.
“어르신, 쉽게 쉽게 갑시다. 아는 걸 전부 말해주시지요. 정보 값은 톡톡히 치르겠습니다.”
“나는 정말로 아는 게 없다만?”
“뭐, 굳이 어렵게 가시겠다면야… 모티머! 어르신이 말하기 쉽게 좀 도와드려라!”
모티머라 불린 떡대는 성큼성큼 장만에게 다가갔다. 녀석이 테이블 앞에 서자, 장만의 머리 위로 길게 그림자가 드리웠다.
“지금이 마지막 기횝니다. 어르신.”
월라드가 이죽거렸다. 장만은 모티머와 월라드를 번갈아 쳐다본 뒤,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좆까라,애송아.”
말이 끝나자마자, 모티머가 손을 뻗어 장만의 멱살을 붙잡았다.
장만이 늙은 몸으로 저항해봤지만, 녀석은 간단하게 장만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다른 손을 활짝 펼쳐, 장만의 뺨을 후려쳤다.
아니, 후려치려 했다.
끼익.
장만의 뺨이 터지기 직전, 술집 문이 열리며 모자를 눌러쓴 누군가가 술집으로 들어섰다.
월라드와 그의 일행들, 그리고 모티머의 시선이 동시에 불청객에게 향했다.
“…어르신?”
불청객의 금색 눈동자 위로, 살벌한 분노가 비췄다.
***
술집에 들어선 순간, 쇠똥구리는 눈에 비친 풍경을 이해하지 못했다.
술집을 채우고 있는 푸른 코트의 남자들, 그리고 그들과 똑같은 코트를 입고 장만을 위협하는 거한.
이해할 순 없었지만… 감정은 확실했고, 할 일은 명확했다.
쇠똥구리는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가장 앞에 있는 녀석에게 발을 휘둘렀다.
“커헉!”
배를 차인 녀석이 붕 떠올랐다. 뒤늦게 반응한 푸른 코트의 남자들이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때 뒤에서 월라드가 급히 소리쳤다.
“병신들아! 초인이다! 총 뽑아!”
초인.
그 단어를 들은 녀석들이 잠시 멈칫했다. 쇠똥구리는 그렇게 생겨난 틈을 놓치지 않았다.
탓! 그는 몸을 날려 장만을 붙잡은 떡대의 뒷무릎을 후려 찼다.
“끄, 끅!”
인체의 급소인 오금을 공격당하자, 녀석은 장만을 쥐고 있던 손을 풀고 무릎을 붙잡았다.
쇠똥구리는 아슬아슬하게 떨어지는 장만을 챙긴 뒤, 카운터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어르신! 초인이라뇨! 이러고도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실 수 있습니까?”
배를 맞고 쓰러진 한 녀석을 제외하고, 녀석들 전부 권총을 꺼내 들었다. 오금을 공격당한 모티머도 금세 자리에서 일어나 콧김을 뿜어냈다.
녀석들이 그러건 말건, 카운터 뒤에 숨은 쇠똥구리는 장만의 상태를 살폈다.
“어르신,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푸른 쥐. 녀석들이 네 흔적을 밟았다.”
“…푸른 쥐요?”
“정보상이니 뭐니 지껄이는 다국적 깡패들이다. 원래 한국과는 연이 없는 놈들인데… 하필 이런 때에.”
장만의 설명을 들은 쇠똥구리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깨달았다. 하지만 당황은 없었다.
세티가 흔적의 중요성을 보여 준 뒤, 늦건 빠르건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어르신, 뒷문으로 도망치세요.”
“뭐? 나만? 너는 어쩌려는 거냐?”
쇠똥구리는 대답 대신, 허리춤에서 수류탄을 꺼냈다. 네크로맨서와 싸운 뒤, 마지막으로 남은 수류탄이었다.
장만은 쇠똥구리가 핀을 뽑는 걸 보자마자, 기겁하며 주방 쪽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어르신! 그냥 순순히 항복하시지요! 우리 모티머도 초인입니다! 그쪽 초인이 얼마나 강한… 이런 씨”
쇠똥구리는 카운터 너머로 수류탄을 집어 던지고, 다리에 마나를 끌어모았다. 허벅지와 종아리의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콰앙!!
폭발음과 동시에, 몸을 날렸다. 카운터를 넘자 수류탄에 반파된 술집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문자 그대로 폭발에 휩쓸린 테이블들은 모조리 부서져 있었고, 깨진 술병들이 이리저리 나뒹굴었다.
하지만 술집 상태와 달리, 적들은 멀쩡했다. 수류탄에 휩쓸려 목숨을 잃은 녀석은 한 명도 없었다.
녀석들 모두가 덩치 큰 녀석 뒤에 숨어,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구했다.
‘맨몸으로 수류탄을 버텨? 초인이었군.’
초인 대 초인의 싸움. 그것도 적에게 원군이 있는 경우를 두 번 연속으로 치를 줄이야.
어쩐지 재수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쇠똥구리는 그대로 바닥을 박찼다. 푸른 쥐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쏴! 쏘라고 병신들아!”
좁은 술집에서 총알이 빗발쳤다.
파앗!
쇠똥구리는 손을 들어 머리를 보호하고, 갈지(之)자를 그리며 녀석들에게 달려들었다.
모든 총알을 피할 순 없었지만, 그는 자신의 재생력을 믿었다. 치명상만 피한다면, 권총탄 정도는 맞아도 죽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온다! 모티머, 막아!”
“으어어어!”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저 덩치 큰 초인뿐. 다행히, 녀석에게 무술의 묘리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터엉!
쇠똥구리와 녀석이 발과 주먹을 부딪친 순간, 쇠똥구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예상을 뛰어넘는 반발력이 파양결의 마나를 타고 올라온 탓이었다.
‘덩치의 차이인가? 아니면 마나량의 차이?’
마치 강철을 찬 것 같았다. 쇠똥구리는 발을 회수하고, 파양결의 묘리를 담은 주먹을 후려쳤다.
퍼억!
이번에도 타격감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하지만 모티머는 쓰러지긴커녕, 역으로 손을 뻗어 쇠똥구리의 왼손을 붙잡았다.
꽈지직, 쇠똥구리의 왼팔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압도적인 악력… 아니, 힘이었다.
쇠똥구리는 치미는 비명을 삼키고 비각술을 펼쳐 녀석과 거리를 벌렸다.
‘무술을 쓰는 것 같지는 않은데. 어떻게 충격을 버티는 거지?’
그는 부러진 왼손을 확인하며 모티머를 노려봤다. 수류탄에 찢어진 코트 사이로, 흉악한 근육들이 꿈틀거렸다.
‘타격이 안 된다면….’
쇠똥구리의 오른 어깨를 따라 파양결의 파도가 몰아쳤다. 마나가 출렁이는 가운데, 손날을 폈다.
‘벤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