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222)
을 위한 세계는 없다-222화(222/817)
〈 222화 〉 All That Jazz (4)
* * *
***
식사와 뒷정리가 모두 끝난 뒤, 여명은 일행에게 자신이 알아낸 정보를 설명했다.
‘어젯밤에 폭탄을 터트린 범인은 푸른 쥐다.’
‘소련의 옛 마도구가 쓰인 걸 보면, 간단하게 넘어갈 일이 아닌 것 같다.’
그 말을 듣고 일행이 보인 반응은 둘로 갈렸다.
‘그럴 줄 알았다’와 ‘그래서 뭐 어쩌란 거냐.’
전자는 세티였고, 후자는 네티와 성녀였다.
네티야 푸른 쥐와 남남이니 그렇다지만, 성녀의 반응은 예상외였다.
아무리 그래도 가족이 관계된 일인데 걱정되지 않냐고 묻자, 돌아온 답변이 상상 이상이었다.
내가 푸른 쥐 사장도 아니고… 엄마가 잘못되면 아빠가 올 텐데 뭐.
부모님의 일은 부모님의 일이란 걸까? 아니면 부모님에 대한 믿음? 어느 쪽이건 고아인 여명으로써는 이해하기 어려운 감상이었다.
…뭐, 어쨌든.
여명은 이번 일이 자신이 핵미사일을 막아서 생긴 일이 아닐까, 확인해보고 싶다고 고백했다.
막연한 의심 때문에 그런 건 아니었다.
세계수 혁명단의 수장, 데메론드 입 맑스 또한 핵미사일이 터지지 않은 걸 보기 위해 드레이테리얼로 향했으니, 이번 일도 그것의 연장이 아니냐는 의심.
거기까지 설명을 들은 세티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티는 LA 맛집을 찾기 시작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좋은 눈치였고, 성녀는…
“이번에도 국밥집 아줌마 얼굴로 바꾸면 쏴버릴 줄 알아.”
여명은 기꺼이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이번에는 조금 더 친숙한 반찬 가게 할머니의 얼굴로 바꿨고, 성녀는 리볼버를 도끼처럼 휘두르는 것으로 화답했다.
코르부스가 한 소리 할 정도로 애정 어린(?) 난투극이 끝난 뒤에야, 여명은 일행 모두 평범한 얼굴로 바꾸고 선글라스까지 쓰는 것으로 성녀와 합의했다.
***
드넓은 LA에서 어떻게 푸른 쥐를 찾을 것인가?
코르부스가 하늘 위에서 감지 마법을 사용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겠지만, 세티와 코르부스 둘 다 고개를 저었다.
수인, 그것도 몰래 LA 차원문을 넘은 그녀가 도시에서 마법을 쓰고 다니는 건 자칫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나?
결국, 일행은 정석적인 방법을 쓰기로 했다.
직접 발로 뛰며 돌아다니는 것.
그나마 해리가 준 USB와 다른 정보상의 위치 덕분에 무작정 걷는 일은 없었지만…
“…정보상들은 다 야행성이야? 아직 점심시간인데 뭐 하나 열린 데가 없어.”
굳게 닫힌 술집의 문을 두들기던 성녀가 투덜거렸다.
총기상, 음식점, 술집… 이걸로 벌써 네 번째 허탕이라서 그런지 그녀의 목소리에는 살짝 감정이 실려 있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는 잡는 것도 모르나.”
그녀가 지구의 격언을 언급하자, 여명이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정보상은 새보다는 벌레에 가깝지.”
일찍 일어난 벌레가 잡아 먹히지 않냐는 말. 성녀가 그런가? 라며 납득하는 사이, 네티가 끼어들었다.
“그래도 이렇게 같이 다니니까 관광 온 거 같지 않아요?”
“관광? 폭탄을 든 빨갱이가 돌아다니는 도시에서 관광은 무슨…”
시큰둥하게 대답하는 세티와 달리, 네티는 진심인 거 같았다. 그녀는 해리에게서 빌려온(?) 스마트폰을 두들기며 말했다.
“여기에서 사거리 하나만 넘어가면 유명한 푸드 트럭 거리가 있데요. 어차피 다음 정보상 가려면 그쪽으로 가야 하니까, 가면서 겸사겸사 하나 사 먹죠?”
“푸드트럭?”
“갈빗살이랑 콩이 듬뿍 들어간 칠리 콘 카르네를 판대요. 가게 평점도 괜찮고, 사진도 맛있어 보이고, 또…”
네티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여명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칠리는 넘어가자. 그거 말고 다른 거 사줄게.”
“왜요? 형부 혹시 칠리 싫어하세요?”
“아니, 나 말고, 세티가 콩 싫어하잖아.”
여명이 그렇게 말하자마자, 세 소녀의 시선이 동시에 그의 얼굴에 꽂혔다.
무릎을 주무르던 성녀는 물론이고, 선글라스를 닦고 있던 세티까지.
갑자기 뭐지? 뭔가 말실수했나 싶어 여명이 고개를 돌리기 무섭게, 네티가 말했다.
“평소에는 안 그러는데, 가끔 아무렇지도 않게 부끄러운 말을 꺼내시는 걸 보면, 참 뭐랄까…”
“….”
“관상대로 산다?”
그러자 뭐가 그리 웃기는지, 성녀가 풉 웃음을 터트렸다.
뭐라 대답할 말이 없던 여명은 큼큼, 헛기침하며 네티의 휴대폰을 빼앗았다.
“…칠리파는 트럭 옆에 쿠바 샌드위치 파는 트럭도 있네. 이거 먹자. 내가 살게.”
일행은 별 불만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는 동안 성녀가 작은 목소리로 ‘사실 나도 콩 싫어해’ 라고 속삭이고, 네티가 쿠바 샌드위치가 어떤 음식인지 떠들어댄 덕분에 심심할 일은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도착한 푸드 트럭 거리는 네티의 말처럼 유명한 곳인 듯싶었다.
화려한 간판을 내건 푸드트럭이 죽 늘어선 도로 주변으로, 줄을 서거나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바글거리고 있었으니까.
인천에서 종종 보던 야시장이 떠오르는 풍경.
세티와 성녀 모두 이런 풍경에 익숙하지 않은 듯 조금 어색한 모습을 보여주는 가운데, 네티가 재빨리 앞으로 나섰다.
“줄은 한 명만 서면 되니까, 제가 줄 지키고 있을게요. 형부랑 언니들은 가서 자리 좀 잡아주세요.”
여명은 그러겠노라고 대답한 뒤, 두 사람과 함께 대충 가까운 화단에 자리 잡았다.
아직 해가 창창한 하늘 아래, 온갖 음식을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들, 코를 간지럽히는 음식 냄새.
“이렇게 앉아 있으니까, 정말로 관광 온 거 같기도 하네.”
“에이, 관광지는 여기보다는 우리 성도가 진짜지. 나중에 같이 가자. 내가 바가지 안 쓰게 잘 안내해줄게.”
“…바가지?”
“성도 물가가 좀… 세거든.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솔직히 너무해. 매년 순례자 겸 관광객에게 뜯어내는 돈이 국가 예산의 2할이 넘는다니까?”
“….”
세티가 말하고, 성녀가 받았다.
그렇게 성스러운 성국의 비밀을 알아버린 세티가 정색하고, 성녀가 신나서 또 다른 비밀을 까발리길 잠시.
“거, 자리 좀 빌리겠수다.”
여명의 옆자리로 익숙한 남자가 앉았다. 이마가 다 드러난 M자 탈모와 칼날처럼 날카로운 콧대가 특이한 남자.
자리에 앉은 그는 힘겹게 쿠바 샌드위치를 우물거렸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입맛이 달아날 정도로 피곤한 몰골이었다.
여명은 슬쩍 곁눈질해 당황한 표정의 성녀와 세티에게 어떤 신호를 보낸 뒤, 다시 고개를 돌려 남자에게 물었다.
“그 쿠바 샌드위치, 먹을만 합니까?”
갑자기 말을 걸어올 줄은 몰랐는지, 남자는 조금 귀찮은 표정으로 여명을 흘겨봤다.
“그냥저냥 입에 들어갈 수준은 되지. 근데, 딱히 추천할 정도는 아니오. 사 먹을 거면 그냥 옆에 있는 칠리나 사 먹으쇼.”
“그래요? 쿠바는 공산주의 국가인데, 역시 빨갱이 음식이 입에 맞나 봅니다?”
“….”
남자의 미간이 팍 구겨졌다. 개소리를 들은 사람 특유의 표정.
하지만 그 표정은 단박에 당황으로 바뀌었는데, 여명의 옆에 있던 두 여자가 어느새 일어나 자신을 포위했다는 걸 깨달은 탓이었다.
서서히 거리를 좁히는 모습을 보아하니, 둘 다 초인이 틀림없었다.
쯧, 남자는 먹던 쿠바 샌드위치를 종이 그릇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누구냐, 너?”
“당신을 찾던 사람.”
“나를 찾았다고? 누군데? FBI? 기사단? 소사이어티? 그것도 아니면 연맹이냐?”
여명은 대답 대신 염동력을 일으켜 그의 목을 붙잡았다. 만주에서, 아카데미에서 그랬던 것처럼.
남자, 월라드도 그 익숙함을 느끼고 두 눈을 크게 떴다.
“천여명? 설마… 피눈물의 환상…? 켁!”
여명은 그 이상 질문을 허락하지 않고 그대로 목을 졸랐다.
초인이 아닌 월라드는 반항하지 못하고 그대로 기절해버렸으나, 여명은 염동력으로 그가 그저 고개를 숙이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운이 좋네.”
툭, 그의 손에서 떨어지는 종이 샌드위치 그릇을 받아낸 성녀의 말이었다.
***
월라드는 바닥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에 눈을 떴다.
“끄응…”
그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감각에 집중했다.
눈앞이 흐릿한 가운데, 콘크리트의 탁한 냄새와 쿠바 샌드위치의 진한 버터 냄새, 그리고 팔과 다리를 묶은 밧줄의 감촉이 느껴졌다.
덕분에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어딘지 모를 폐건물에 잡혀 왔다는걸.
“어? 의외로 빨리 일어나셨네.”
낯선 목소리를 따라 월라드가 고개를 들자, 선글라스를 쓴 하늘색 단발머리의 소녀가 보였다.
“여기, 아저씨가 드시던 거 남아있어요.”
누굴 놀리는 건지, 그녀는 묶여있는 월라드를 향해 샌드위치 그릇을 내밀었다.
“녀석이 왜 이 도시에 있는 거냐? 아가씨는 어디에 두고? 우리 아가씨라면 분명 녀석을 찾아갔을 텐데?”
월라드는 샌드위치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물었다.그의 목소리는 다급했으나, 정작 돌아온 대답은 느긋하기 그지없었다.
“나? 난 왜 찾아.”
바로 등 뒤에서 들리는 성녀의 목소리.
월라드가 고개를 돌리자, 한 손으로는 리볼버로 그를 겨누고, 또 한 손으로는 샌드위치를 오물거리고 있는 낯선 얼굴이 보였다.
“…아가씨?”
“왜, 월라드.”
낯선 얼굴 위로 보이는 저 뚱한 표정은 분명 성녀님의 그것이었고, 월라드는 안도감과 난감함을 동시에 느꼈다.
“녀석이… 피눈물을 익혔군요. 거의 완벽한 수준으로.”
“…보통은 못 익혔을 것처럼 말한다?”
“….”
월라드는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재빨리 말을 돌렸다.
“녀석이 아가씨와 함께 이 도시에 있을 줄이야. 세상 참 좁습니다.”
“그러게, 나도 설마 월라드가 직접 찾아와서 잡혀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
성녀는 그렇다 대답하며 샌드위치를 크게 베어 물었고, 미처 씹지 못한 피클 하나가 샌드위치 뒤쪽으로 삐쭉 뛰어나왔다.
묘하게 긴장감 없는 광경.
월라드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뒤늦게 뭔가를 떠올리고 다급히 말했다.
“아가씨, 누님이 당했습니다. 은혜도 모르는 노멘클라투라들이… 뒤통수를 쳤습니다.”
노멘클라투라. 그건 소련이 세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던 시절, 공산당의 고위 간부를 뜻하는 단어였다.
그러나 소련이 망한 현재에는, 소련의 유산을 독차지한 공산 귀족들을 가리키는 멸칭일뿐.
“엄마가 그 구더기들한테 당했어? 신기하네. 명분도 없었을 텐데.”
“…피눈물의 열쇠를 함부로 외부인에게 넘긴 걸 문제 삼았습니다. 꽤 오래전부터 반란을 준비한 것 같습니다.”
“그딴 걸 명분으로? 아니, 뭐 닳는 물건도 아니고 누구에게 넘기던 엄마 마음… 하긴, 뭐든 그냥 꼬투리만 잡으면 그만이었겠지.”
웃기는 노인네들, 성녀는 그렇게 중얼거리곤 다시 샌드위치를 베어 물었다.
짧은 침묵.
그녀는 얼마 남지 않은 샌드위치를 전부 먹어 치운 뒤, 리볼버의 공이를 뒤로 당겼다.
철컥.
곧이어, 총구의 차가운 감촉이 월라드의 이마에 닿았다.
“그래서, 노멘클라투라랑 같이 이 도시에 폭탄을 설치한 이유가 뭐야? 혹시, 승진 안 시켜줘서 우리 엄마 뒤통수친 거야?”
“…제가 그딴 이유로 누님을 배신했겠습니까? 그리고 저번에도 말했지만, 저 승진했습니다.”
“그러면?”
“…누님이 인질로 잡혔습니다. 그거 때문에 저 말고도 다른 쥐들 모두가… 노인네들에게 억지로 협조하고 있는 판입니다.”
엄마가 인질로 잡혀 있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성녀의 반응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세티 앞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냉정한 얼굴로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리볼버를 회수했다.
“노인네들이 갑자기 움직인 이유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워낙 갑작스러운 일인지라.”
“핵미사일 때문은 아니지?”
“…핵? 핵미사일이라니요?”
정말로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성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여명 때문은 아니었네. 그냥 아빠나 불러야겠다.”
“저… 매형이라면 이미 오고 계십니다. 아마 일주일 내로 차원문을 넘으실 거라고…”
“아 그래? 그러면 우리는 이대로 빠져야겠네.”
성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휴대폰을 꺼냈다. 그녀가 번호를 누르는 사이, 네티가 슬쩍 끼어들었다.
“성녀님, 정말 안 도와주실 거예요? 어머니가 붙잡혔다면서요.”
“엄마를 생각하면 더욱더 도와주면 안 되지. 우리 엄마도 그걸 바랄걸?”
“…?”
“아빠면 모를까, 내가 끼어들면 정치적으로 귀찮은 일이 한두 개가 아니라서…여명이 폭탄 수거해오면 그대로 빠지자.”
그때, 월라드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천여명, 그가 지금 스탈린의 불… 아니, 솔방울을 찾으러 간 겁니까?”
“응, 지도에 표시해 놨길래, 겸사겸사?”
성녀가 말하는 지도는 월라드가 품에 넣고 다니던 지도를 말했다.
교단의 비밀 기지로 의심되는 곳을 표시해둔 지도.
표시된 곳을 폭탄이 설치된 곳으로 오해한 건가? 월라드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가씨, 지금 당장 그에게 돌아오라고 하는 게 좋겠습니다.”
“갑자기 왜? 뭐 문제 있어?”
월라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지도에 표시한 곳은 폭탄을 설치한 곳이 아니라, 이제 곧 폭탄을 설치할 교단의 비밀 기지 위치를 표시한 곳이라는 것.
그리고 자신을 따라온 노멘클라투라가 그곳을 주시하고 있으며, 자칫하면 그가 여명을 발견하고 습격할 수도 있다는 사실까지.
“천여명이 학생 수준을 한참이나 뛰어넘긴 했지만, 그래도 옛 소련의 노괴에게 비할 바는 못 됩니다. 문제가 생기기 전에 당장 돌아와야 합니다!”
조금 전의 상황이 다시 재현되었다. 월라드는 다급했고, 성녀는 느긋했다.
“이 도시에 온 노괴가 누군데?”
“블라디미르 베레좁스키, 원로원의 폭탄으로 알려진 초인입니다.”
“베레좁스키…? 아, 생각난다. 그 수염 이상하게 난 노인네. 스위스 은행 돈으로 영약이나 처먹지. 굳이 힘자랑하러 다니다가 명줄을 앞당긴다니까.”
“예?”
월라드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성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걱정할 거 없다는 뜻이야. 그 노괴 수준이라고 해봐야 여명은 못 이기니까. 게다가 세티도 같이 있으니, 잘해봐야 옷이나 좀 그을리고 오겠지 뭐.”
“….”
그렇게 단언한 성녀가 느긋하게 휴대폰의 통화 버튼을 누르는 사이, 네티가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성녀님, 근데 혹시… 형부랑 언니가 찾아간 장소가 진짜 교단의 비밀 장소면 어떻게 하죠?”
“에이, 그럴 리가 있나.”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게 있잖아요. 그리고 형부랑 언니는 좀… 그, 재수가 없잖아요?”
“….”
성녀는 그럴 리가 있냐는 듯 손사래를 쳤으나, 휴대폰 통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뒤늦게 놀란 성녀와 네티가 월라드를 버려두고 폐건물을 뛰쳐나갈 때까지, 계속.
“아가씨? 이건 풀어주고 가셔야죠!”
***
여명과 세티가 지도를 따라 도착한 곳은 푸드트럭 거리에서 멀지 않은 슈퍼마켓이었다.
쇼핑몰이라기엔 작고, 동네 가게라고 하기엔 큰 크기의 매장이었으나 오늘따라 손님이 꽤 많았다.
스탈린의 솔방울이 터진다면 자칫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낼 수도 있는 곳.
여명이 딱히 영웅은 아니었지만, 이런 곳에서 폭탄이 터지는 걸 내버려 둘 정도로 무감정한 사람도 아니었다.
특히 폭탄을 인벤토리에 넣어 써먹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아무튼, 그는 세티와 나눠져 슈퍼마켓 내부를 살피기로 했다.
스탈린의 솔방울이 마도구인 이상, 분명 이상한 마나를 풍길 테니까.
그렇게 여명 혼자 마켓 이곳저곳을 둘러보길 잠시.
그는 야채와 과일 등 신선 식품을 파는 냉장고 뒤편에서, 이상한 것을 감지했다.
뒤틀린 마나로 만들어진 마법진.
네크로맨서의 클럽에서 겪어보기 전이었다면, 그대로 무시하고 지나쳤을 정도로 은밀한 마법진이었다.
뭐지? 스탈린의 솔방울을 숨기기 위해 마법진을 쓴 건가? 아무리 봐도 소련식은 아닌데.
잠시 의문이 이어졌으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여명은 인벤토리에서 언제라도 검을 꺼낼 수 있게 반쯤 주먹 쥔 뒤,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고 쓰인 매장 냉장고 앞에 섰다.
그리고 마법진을 뚫고 냉장고 안으로 들어가려던 바로 그 순간.
낯선 노인의 목소리가 여명의 발목을 잡았다.
“…피눈물의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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