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224)
을 위한 세계는 없다-224화(224/817)
〈 224화 〉 All That Jazz (6)
* * *
***
스탈린의 솔방울이 폭발하기 직전.
머리 위로 솔방울을 던지는 블라디미르와 화산쇄설을 내려찍는 여명의 그림자가 겹쳐졌다.
검을 휘두르는 여명을 보며 블라디미르는 승리를 확신했다. 오죽하면 위력을 줄였어야 했나 같은 생각을 떠올릴 정도였다.
하지만 솔방울 내부의 마법진이 발동하며 불기둥이 솟아오른 바로 그때, 그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여명의 검에서 정체불명의 폭발이 터져 나온 까닭이었다.
화산쇄설, 차원문 너머의 기사들이 복수심으로 빚어낸 무술.
콰아아앙 !!!
두 개의 폭발이 충돌하며 요란한 충격파를 토해냈다.
바닥이 움푹 파이며 레스토랑의 식탁과 의자들이 쓸려나가고, 창문이 와장창 깨졌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솔방울의 불기둥이 천장을 꿰뚫거나, 열 폭풍이 사방을 쓸어버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폭발로 폭발을 상쇄했다?’
블라디미르는 헛웃음을 삼켰다.
황당하다 못해 허무맹랑한 이야기였지만, 눈앞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을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충격파 때문에 반대편 벽까지 밀려난 그는 머릿속으로 여명의 수준을 한 단계, 아니, 두 단계 상향 조정했다.
‘최소한으로 잡아도 펜타곤 독립 요원과 동급.’
피눈물의 환상을 완벽하게 익히고, 정교한 마법에, 이제는 솔방울급 폭발 무술까지?
하나 같이 일개 용병 출신이 익힐만한 기술이 아니었다. 성검이 그 재능에 관심을 보였다지만, 정도가 있는 법.
“만주의 용병, 용의 해방자, 아카데미 학생… 그래, 너무 화려하긴 했지.”
블라디미르가 입 안에 고인 먼지를 퉤 뱉는 사이, 자욱한 폭발의 먼지 사이에서 여명이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코앞에서 폭발을 받아냈음에도, 먼지나 조금 뒤집어쓴 모습.
“겉으로 드러난 것들은 전부 거짓이라고 치고, 대체 자네의 진짜 정체가 뭔가?”
“천여명.”
“…이거, 생각보다 상도덕이 없는 동무였군. 내가 알려준 정보가 몇 갠데, 그거 하나를 안 알려주나.”
대화를 가장한 짧은 숨 고르기는 거기까지였다.
다음 순간, 블라디미르가 먼저 기관단총을 들었다. 여명 또한 인벤토리에서 소총을 꺼내 방아쇠를 당겼다.
두두두두두!!
거의 동시에 불을 뿜는 총구, 똑같은 소련제 탄피가 흩날렸으나 총을 쏘는 두 사람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갈렸다.
총알을 피해 바닥을 구르는 여명과 달리, 블라디미르는 대놓고 총알을 맞아가며 방아쇠를 당겼다.
그가 쏘는 총알은 마탄이고, 여명의 총알은 일반탄이라서? 아니, 근본적인 재생력의 차이였다.
블라디미르의 재생력은 상식 바깥에 있었다. 종아리와 복부, 심지어 가슴 한복판에 총알이 박혔으나, 검은 살덩어리가 상처를 뒤덮으며 순식간에 상처를 메꿔버렸다.
흡사, 괴수의 재생력을 몇 배나 강화시킨 것 같은 모습.
고통조차 느끼지 않는 것인지, 블라디미르는 식탁 뒤로 숨는 여명을 향해 훈계를 내뱉었다.
“사격 실력은 초짜로군. 한국은 징병제 국가일 텐데? 아, 혹시 한국 국적도 가짜인가? 아니면 미필?”
여명은 그 헛소리에 대답하는 대신 얼음송곳 주문을 외웠다.
파스스 난장판이 된 식당 허공에서 스무 개에 가까운 얼음송곳이 생성되더니, 그대로 블라디미르를 향해 쏟아졌다.
마트에서 쐈던 얼음 바늘과는 전혀 다른, 살벌한 크기의 송곳.
블라디미르는 그런 얼음송곳을 피하지도, 막지도 않았다. 오히려 양팔을 넓게 벌리고 정면으로 송곳을 맞이했다.
그렇게 얼음송곳이 그의 몸에 닿은 바로 그 순간.
파삭! 송곳들은 일제히 형태를 잃고 얼음 가루가 되어버렸다. 마치, 강풍에 부딪힌 민들레처럼.
비정상적인 항마력. 블라디미르는 대수롭지 않게 몸에 붙은 얼음 가루를 털어내며 말했다.
“이보게, 천여명. 내가 왜 자네에게 중요한 정보들을 줄줄 말해줬는지, 아직도 모르겠나?”
그는 탄창을 갈아 끼우며 여명이 숨은 식탁으로 다가갔다.
쓰러진 식탁을 가운데 두고, 두 사람의 숨소리가 정적을 만들어내길 잠시.
철컥, 블라디미르는 식탁을 겨누며 선언했다.
“자네의 입을 막아버리는 건 내게 너무나 간단한 일이거든.”
***
그 말을 끝으로, 총구가 다시 불을 뿜었다.
두두두! 날카로운 총성과 함께 탄피와 나뭇조각이 튀었다.
식탁은 물론이고, 그 뒤에 있는 여명까지 동시에 벌집으로 만들어버릴 사격.
한데, 너덜너덜해진 식탁 사이에서 여명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뭐지? 분명 숨소리를 들었는데?’
블라디미르의 머리로 의아함이 떠오른 바로 다음 순간, 그는 작은 기척을 감지했다.
여명의 기척이 느껴지는 곳은…
바로 머리 위.
그가 황급히 고개를 들었으나, 눈에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보이는 게 없었기에, 그는 여명이 무슨 짓을 수를 썼는지 깨달았다.
“투명 망토?! 모리네 그 딸 병신이 별걸 다 줬군!”
정답이었다. 곧바로 허공이 갈라지며 여명의 검이 튀어나왔고, 그대로 블라디미르의 어깨를 내려찍었다.
두부처럼 갈라지는 뼈와 살, 울컥 쏟아지는 피.
왼팔이 땅에 떨어지는 그 짧은 시간 속, 여명은 검의 방향을 바꿔 블라디미르의 목을 노렸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연속 베기.
블라디미르는 반사적으로 총을 들어 검을 막아냈다.
끼기긱!총 몸통과 검이 부딪히며 불씨가 튀어 올랐다.
겨우 총 몸으로 검을? 여명은 그대로 총과 함께 녀석을 토막 낼 생각으로 검에 힘을 실었다.
그런데…
쩌엉!
총은 갈라지긴커녕, 역으로 검을 떨쳐냈다. 그리고 이어지는 사격.
총알을 피해 다시 투명 망토 속으로 숨어든 여명은 가장 먼저 블라디미르의 기관단총부터 확인했다.
성인 남성의 팔뚝보다 조금 긴 기관단총은 그의 검을 받아내고도 조그마한 흠집만 나 있었다.
대체 어떻게?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마나 메탈.’
마도구나 검도 아니고 총에 마나 메탈을 코팅했다고? 돈이 썩어 나는 미친놈인가?
여명이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사이, 블라디미르도 비슷한 말을 꺼냈다.
“통짜 마나 메탈로 만들어진 검이라니. 대체 어떤 미친놈이 그딴 검을 만든 건가? 코팅 기술을 개발한 첼로메이 동지가 무덤 속에서 울겠군!”
감탄인지, 비꼼인지 알 수 없는 어투. 여명의 인기척이 사라진 걸 확인한 그는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자신의 왼팔을 주워 어깨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어깨에서 지렁이를 닮은 검은 살덩어리들이 팍 튀어나오더니, 그대로 잘린 팔과 어깨 사이를 연결하는 게 아닌가.
역겨운 모습과 달리, 효과는 확실했다. 투명 망토 속 여명이 눈을 몇 번 깜빡이는 사이, 팔의 재생이 끝날 정도.
“어떠냐? 이 놀라운 재생 속도가?”
“….”
“너도 초인이라면 이 재생력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알겠지. 하지만 이것조차 극한에 다다른 주가시빌리와 비교하면 반푼이에 불과하다. 어떠냐? 배우고 싶지 않느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그냥 우리와 손만 잡으면 된다.”
“…그렇게 좋으면 당신이나 배우시지.”
날이 선 대답에 블라디미르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여명의 기척을 찾아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대뜸 자신의 상의를 뜯어버렸다.
그렇게 드러난 맨살을 본 순간, 여명은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만천하에 드러난 블라디미르의 상체 곳곳에는 그의 상상을 뛰어넘는 물건들이 박혀있었으니까.
“안타깝지만, 우리는 이미 다른 걸 짊어지고 있다.”
낫과 망치 모양()의 쇳조각들.
가슴부터 복부까지 빼곡하게 박혀있는 쇳조각에서는 강렬한 반마력장과 검은 살덩어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도구인가? 아니면 설마 인공 성물?
어느 쪽이건 전성기 시절 소련이나 만들 법한 물건인 건 확실했다.
“이걸 보고도 계속 싸울 마음이 든다면야, 얼마든 계속 싸워주마. 팔다리를 잘라두면 싫어도 주가시빌리를 배우게 될 테니.”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오만한 말투였으나, 여명은 그 오만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스탈린의 솔방울과 마나 메탈로 코팅된 총기, 그리고 몸에서 반마력장과 재생력을 뿜어내는 마도구까지.
하나하나가 웬만한 초인은 압살해버릴 만한 것들이었으므로.
물론, 여명은 웬만한 초인이 아니었고, 이해와 납득은 다른 문제였다.
‘곧 경찰도 올 테고… 더 볼 건 없겠군.’
판단을 끝낸 여명은 투명 망토를 벗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검을 축 늘어트린 채, 블라디미르의 뒤통수를 향해 말했다.
“혹시, 더 나불거릴 게 남아 있나?”
“아니, 나는 이제 자네에 대해 알고 싶은 걸?”
여명은 말없이 녀석과 마주 섰다. 블라디미르는 그동안 보여주던 오만한 모습과 다르게 총기를 짧게 올려 잡고, 다리를 넓게 벌렸다.
언제든 달려들 수 있도록 하체와 상체를 정렬하고, 즉시 조준 사격을 할 수 있는, 완벽한 근거리 사격 자세.
거기서 끝나지 않고, 녀석의 몸에 박힌 성물 사이로 검은 촉수가 튀어나와 허리춤에 있는 스탈린의 솔방울을 붙잡았다.
팔다리를 날려버리겠다는 게 빈말이 아니었는지, 그의 눈동자에선 살기가 넘실거렸다.
만약 상대가 여명이 아니었다면, 혹은 주가시빌리가 아니었다면 완벽한 전투 자세였으리라.
그러나 상대는 여명이었고, 그는 기꺼이 살기를 이용했다.
“빨리 끝내자.”
여명의 말을 끝으로, 그의 어깨 위로 붉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주가시빌리 특유의, 유형화된 살기.
식당에 있는 두 사람의 살기를 모두 집어삼킨 아지랑이는 마치 구름처럼 식당 허공을 가득 채웠고, 시야가 붉게 물든 블라디미르는 당황한 얼굴로 여명을 바라봤다.
“…어떻게?”
허탈한 미소를 짓는 그를 향해, 여명이 내달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