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23)
을 위한 세계는 없다-23화(23/817)
〈 23화 〉 히로인을 위한 우연 (4)
* * *
***
쇠똥구리는 검술이 무엇인지 몰랐다.
평생 휘둘러본 검이라곤 식칼이 전부였고, 뭔가를 휘둘러 사람을 상처 입혀 본 적도 없었다.
아는 검술은 TV 너머로 보던 연예인들의 가짜 검술과 딱 한 번 본 엘프의 검술이 전부.
그마저도 형태만 조금 따라 해봤을 뿐, 마나를 움직이는 법과 검술에 담긴 고절한 진의는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쇠똥구리는 검술을 준비했다.
마음이 그렇게 하라 부추겼다. 발차기와 주먹으로 두들기지 말고, 단번에 목을 치라고 속삭였다.
장만을 위협하고, 그에게 총을 들이민 녀석들이었다. 살려둘 이유가 없었다.
쇠똥구리는 기억 속 엘프와 똑같은 자세로 손날을 세웠다.
부족한 마나 운용법은 파양결로 대신했다. 비어있는 진의는 재능으로 채웠다.
“으아아!”
쇠똥구리의 준비가 끝나기도 전에, 떡대가 먼저 달려들었다. 이름이 모티머라고 했던가, 생긴 것처럼 싸움꾼의 기질이 다분했다.
‘서로 노리는 건… 목.’
쇠똥구리는 말없이 손을 휘둘렀다.
마나가 대기를 찢었다. 손과 손이 교차하고, 초인의 육체가 충돌했다.
터엉!
첫 격돌은 무승부였다.
쇠똥구리의 손날은 모티머의 목이 아닌 가슴을 베었다. 모티머의 손아귀 또한 쇠똥구리의 목이 아닌 재킷 자락만 건드리고 끝났다.
‘짧아.’
검 대신 손날로 검술을 펼친 탓일까, 거리가 부족한 탓에 목이 아닌 가슴을 베고 말았다.
‘하지만 공격은 통했다.’
가로로 길게 갈라진 가슴에선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모티머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상처와 쇠똥구리를 번갈아 쳐다봤다.
쇠똥구리는 다시 거리를 벌리고, 손날을 세웠다.
다른 조직원들이 이때다 싶어 권총을 들었으나, 모티머가 손을 들어 그들을 막았다.
“모티머?”
“저놈, 강하다, 도망. 도움, 불러라.”
모티머의 말을 듣자마자, M자 탈모의 남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야? 저렇게 어린 놈을 못 이기겠…”
그가 의문을 표하기 전에, 쇠똥구리가 다시 한번 달려들었다. 모티머 또한 그에 맞서 몸을 날렸다.
파앗!
모티머는 쇠똥구리의 목이 아닌 오른손을 노렸다. 일격에 끝나는 승부사의 수가 아닌, 어떻게든 시간을 끝내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하지만 쇠똥구리는 이미 그의 손짓에 익숙해져 있었다.
황금색 눈동자 위로, 모티머의 모든 궤적이 선처럼 그려졌다.
큰 덩치와 힘에 의지한 단순한 공격. 지난날 겨뤘던 세티의 비각술이나 엘프의 검술과 비교하면 어린애가 손을 붕붕 휘두르는 수준이었다.
단지, 너무 단단한 게 문제였을 뿐.
그 단단함을 벨 수 있게 된 지금, 녀석은 도마 위에서 펄떡이는 생선과 다를 게 없었다.
녀석의 손을 내려치는 순간, 쇠똥구리는 그 틈 사이로 손날을 휘둘렀다.
촤악!
올려 치는 손날이 녀석의 오른팔과 만났다. 날카롭게 솟아오른 마나가 두꺼운 팔뚝의 피부, 근육, 뼈를 나란히 ‘벴다’
툭.
잘린 팔이 땅에 떨어지고, 붉은 피가 그 뒤를 따랐다.
“뭣…?!”
놀란 건 다른 푸른 쥐 일행뿐이었다. 팔을 자른 쇠똥구리도, 팔이 잘린 모티머도 서로를 노려본 채로 다음 격돌을 준비했다.
‘이번에는 목.’
반드시 죽이겠다는 생각으로, 파양결을 끌어올렸다.
휘릭!
이름조차 모르는 검술이 그의 손날을 타고 펼쳐졌다. 요동치는 마나가 다시 한번 공기를 밀어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거기까지.”
쇠똥구리의 손이 우뚝 멈췄다.
***
어디서 들려 온 지 알 수 없는 말 한마디와 함께, 술집 전체의 공기가 차갑게 내려앉았다.
도망치려던 푸른 쥐들도, 죽음을 각오한 모티머도 정지화면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뱀 앞에 선 쥐가 움직이지 못하는 것처럼… 그들은 눈을 빙글빙글 굴리면서도, 입도 뻥끗하지 못했다.
살벌한 고요 속에서, 그나마 고개라도 돌릴 수 있는 건 쇠똥구리가 유일했다.
‘뭐…지?’
그는 반사적으로 온몸의 마나를 끌어 올렸다. 그러자 막대한 마나가 반발하며 다시 한번 그의 몸을 찍어눌렀다.
“이야, 이걸 움직이네?”
부서진 술집 문 너머, 시장의 뒷골목 사이에서 껄렁한 미성이 들려왔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저 목소리의 주인이야말로, 이 갑작스러운 침묵의 원인이라는 걸.
쇠똥구리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봤다.
그리고 상대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자신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
멀찍이서 술집을 향해 걸어오는 사람은, 너무나 익숙했다.
깔끔하게 올려 묶은 황갈색 포니테일과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아름다운 외모.
그리고 무엇보다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없는 왼쪽 눈의 안대까지.
그 모든 것이 TV 속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모습과 똑같았다.
‘프레아 칸…?’
성검, 멜버른의 구원자, 화이트 파이어의 수호자, 호주의 자랑… 그리고 지구에서 가장 강한 열 명 중 한 명.
그런 사람이 왜 지금, 이런 곳에?
쇠똥구리가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프레아 칸은 느긋하게 술집에 들어섰다.
그녀는 난장판이 된 술집을 내부를 확인하고는, 그나마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카운터 위에 걸터앉았다.
“이거 참. 요즘 초인들은 기운이 넘치네. 대낮부터 도심에서 맞짱도 뜨고.”
안대에 가려지지 않은 그녀의 담갈색 눈동자가 쇠똥구리와 푸른 쥐들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녀의 시선이 잠시 쇠똥구리에게 고정됐다가, 푸른 쥐 일당에게 향했다.
“야, 쥐새끼들.”
그녀가 한마디 하자마자, 푸른 쥐 일당을 짓누르고 있던 압박이 사라졌다.
육체의 자유를 되찾은 녀석들은 놈들은 기겁하며 엉덩방아를 찧거나, 눈을 굴리며 프레아 칸을 바라봤다.
녀석들이 그러건 말건, 프레아 칸은 손가락을 들어 푸른 쥐 일당 사이에서 M자 탈모의 남자를 가리켰다.
“야, 너, 이름이 뭐냐.”
“워, 월라드입니다! ”
“좋아, 월라드. 내가 뭐 하나만 물어보자.”
“예, 예! 뭐든 물어보십시오!”
월라드는 몸을 벌벌 떨면서도 연신 허리를 굽신거렸다. 그러나 다음 질문을 듣는 순간, 그의 허리가 뻣뻣하게 굳었다.
“요즘 느그 두목은 무슨 생각으로 사냐?”
“예?”
“그 있잖아. 벤. 너그 쥐새끼 대장.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살길래 이런 곳까지 사람을 보내는 거야?”
“저, 그, 그게… 저는 그분을 자주 뵐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서…”
“몰라?”
월라드의 대답이 시원찮았던 걸까?
프레아 칸이 작게 눈썹을 찌푸린 순간, 월라드의 오른팔이 뚝 떨어졌다.
보이지도 않는 출수였다.
마나를 느끼는 쇠똥구리만이 그나마 그 끝자락이라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검술.
“흐이익!”
잘린 팔에서 한발 늦게 피가 쏟아졌다. 월라드는 기겁하며 자신의 어깨를 붙잡았다.
“월라드. 느그 두목한테 가서 전해. 입학 시즌에는 그냥 쥐 죽은 듯 살라고.”
일방적인 협박이었으나, 프레아 칸의 말이었다. 월라드는 감히 이유를 물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줄초상 치르기 싫으면 똑바로 전해라. 알았지? 자, 그럼, 이제… 꺼져.”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월라드와 모티머를 포함한 모든 푸른 쥐 일당들이 도망치듯 술집 바깥으로 나갔다.
마지막 녀석이 문밖으로 나갈 때쯤, 프레아 칸이 갑자기 그들을 불러 세웠다.
“야! 너희 팔은 챙겨가야지. 사제한테 부탁하면 붙이는 거 어렵지 않을 텐데.”
그녀가 눈짓하자, 월라드의 팔과 쇠똥구리가 자른 모티머의 팔이 두둥실 떠올라 녀석들에게 날아갔다.
신기에 가까운 마나 응용력을 본 녀석들은 기겁하면서도, 팔 두 짝을 챙겨 후다닥 시장 거리 너머로 도망쳤다.
녀석들의 발소리가 희미해질 정도로 시간이 지난 뒤.
프레아 칸은 아직도 굳어있는 쇠똥구리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야, 너 어느 유파 제자냐?”
그녀의 질문과 동시에, 쇠똥구리의 몸을 압박하던 마나가 사라졌다. 타인의 마나가 사라지자, 억눌려 있던 마나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쇠똥구리는 자신도 모르게 겸손하게 대답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실력은 물론이고, 인성으로도 까마득한 윗사람이었다.
“유파 말이야. 유파. 어느 유파 무술을 배운 거냐고.”
“….”
“살기가 아주 비범하던데? 나이를 보니 주가슈빌리 유파는 아닌 거 같고, 차원문 너머에서 온 유파냐?”
살기? 유파? 주가슈빌리? 쇠똥구리는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뭐 하나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의 연속이었다.
“저, 당최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야, 임마. 뭘 숨기고 있어. 내 명성이 있는데 이딴 걸로 널 괴롭히겠냐?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거야.”
“….”
“…?”
짧은 침묵, 오고 가는 시선.
프레아칸의 눈썹이 길게 휘어지더니, 대뜸 손을 들었다. 그녀는 주먹을 쥔 뒤, 검지와 중지를 쫙 폈다.
검결지.
쇠똥구리가 썼던 손날과 달리, 진짜 맨손으로 검술을 구현하기 위한 손 모양.
그녀는 검결지를 알아보지 못하는 쇠똥구리를 보며 한 번 더 눈썹을 휘었다.
‘이놈 뭐지?’
그리고 다음 순간, 검결지를 휘둘렀다.
두 손가락 사이로 차오른 검기가 대기를 가르며 쏘아졌다.
“?!”
쇠똥구리는 반사적으로 손날을 펴 그녀의 일격을 막아냈다.
쩌엉!
날아온 마나의 옆면을 후려치자, 손아귀가 찢어질 거 같은 충격이 손에서 발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쇠똥구리는 균형을 잃고 기우뚱 넘어가다가, 아슬아슬하게 자세를 유지했다.
그는 놀람 반, 당황 반의 표정으로 프레아 칸을 노려봤다.
“갑자기 이게 무슨 짓입니까?”
프레아 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쇠똥구리의 위아래를 훑은 뒤, 뭔가를 확인하듯 또다시 검결지를 휘둘렀다.
쩡!
쇠똥구리는 이번에도 그녀의 공격을 받아냈다. 첫 번째와 달리 충격마저 완벽하게 흘려내, 무릎조차 흔들리지 않았다.
“….”
그 모습을 본 프레아 칸의 하나뿐인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시작은 그냥 초인 후배를 훈계하려는 생각이었다. 도시 한 가운데서 살기를 줄줄 흘리며 싸움을 벌이는 꼬락서니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정작 마주하고 보니, 녀석이 지닌 재능이 심상치 않았다.
아까 전 자신의 압박을 이겨내고 몸을 움직인 게 단순히 우연이 아니었다. 몸에서 느껴지는 마나가 정순하다 못해 투명했다.
하필 이런 순간, 이런 장소에서 이런 녀석을 만나게 된 건 단순한 우연일까? 프레아 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말을 걸었고, 검결지를 휘둘렀다.
녀석이 펼치는 무술을 보고 정체를 확인하려는 생각이었다. 무술은 그 형태만으로도 수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녀석의 무술을 확인한 순간…그녀의 머릿속에 의심을 풀긴커녕, 커다란 물음표가 떠올랐다.
“야, 너… 대체 정체가 뭐냐?”
“….”
“뭔데 인간이 엘프 검술을 쓰고 있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