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235)
을 위한 세계는 없다-235화(235/817)
〈 235화 〉 잡몹을 위한 도시는 없다. (6)
* * *
***
본격적으로 경매 레이스가 시작되자,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황급히 연락을 돌리는 자가 있는가 하면, 심각한 얼굴로 좌석 손잡이를 두들기는 졸부도 있었고, 따로 경비병을 불러 무언가 명령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행동들의 결과는 하나로 귀결됐다. 천정부지로 솟구치는 경매가.
[2,200만 달러! 2,200만 나왔습니다!]여명은 질린 표정으로 무대에 설치된 전광판을 바라봤다. 청소부 시절 월급으로 천 년 가까이 일해야만 모을만한 금액이었으니까.
게다가 경매가는 멈추지 않고 계속 늘어났다.
[2,800만 달러!] [3,100만! 3,000만이 넘었습니다!]가격이 올라갈수록, 진행자의 성량도 올라갔다. 말할 때마다 뱀 가면이 들썩일 정도였다.
대체 저 보석에 무슨 가치가 있길래 이렇게까지 하는가 라는 의문이 여명의 머리 위로 떠올랐지만, 그 의문은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변경백이란 칭호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었으니까.
지구 열강들과 몇 년간 전쟁을 벌이고, 핵무기마저 버텨낸 아샤의 가장 위대한 영웅이자, 비극의 주인공.
그의 혈통을 상징하는 보석이라면… 용의 뼈나 세계수의 결정에 버금갈만한 보물이었다.
물론, 이해와 수긍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6,000만!]여명은 이제 청소부 월급으로 이천년쯤 일해야 살 수 있게 된 보석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자본주의란.’
그가 속으로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젓던 그때.
소련 놈들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정확히는, 좌석 손잡이를 두들기는 손을 멈췄다.
가지고 온 액수를 넘은 건가?
레이스에 끼어든 졸부들을 보며 이를 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푸른 쥐의 규모를 생각하면, 육천만 달러가 한계는 아닐 것 같은데… 역시 푸른 쥐 전체를 점거하진 못한 걸까?
이유가 무엇이건, 여명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녀석들이 보석 꿀을 사지 못한다면 경매장 인원들도 여객선에 가지 않을 테고, 여객선 잠입은 더더욱 쉬워질 테니.
‘…운이 좋네.’
여명은 한결 편해진 태도로 소련 놈들을 감시했다.
녀석들은 계획이 어그러진 게 불만인 듯 자기들끼리 뭔가를 쑥덕거리고 있었는데, 개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녀석이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사님… 저희… 부족…
난리… 끝장을… 예… 감사…
도청을 의식한 건지, 통화 내용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돈을 빌리려는 건가? 하지만 이미 보석 꿀은 7천만 달러를 넘어서고 있었다. 이제와서 돈을 빌려봤자 보석 꿀을 사는 건…
그 순간, 소련 놈 중 한 녀석이 소매를 털어 무언가를 떨어트렸다.
녀석들을 감시하던 여명이나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은밀한 행동.
불길함을 느낀 여명은 즉시 세티를 불렀다.
“…세티.”
“응?”
“당장 어르신 모시고 바깥으로 도망쳐.”
“뭐? 왜”
그녀의 질문이 완성되기도 전에, 객석 의자 아래에서 파스스! 마나 가루가 피어올랐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법의 전조.
스탈린의 솔방울은 아니었지만, 뿜어져 나오는 마나의 양이 심상치 않았다.
“가, 당장!”
여명이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세티는 장만 어르신의 몸을 붙잡고 입구 방향으로 뛰었다.
뭐지?
마법! 마법이다!
경비는 대체 뭐 하고 있어!
그리고 이어지는 혼란. 무대 위 진행자가 이상함을 느끼고 경비들을 불렀으나, 이미 마법은 완성된 뒤였다.
번쩍!
경매장 한가운데에서 섬광이 터져 나오고, 지켜보던 모두가 눈을 감았다가 뜬 바로 다음 순간.
허공이 갈라지며 그 안에서 날카로운 손톱이 달린 팔이 튀어나왔다.
마치 커튼을 걷어내는 것처럼, 슬그머니 공간을 밀어낸 팔 너머로 무언가의 새빨간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분노, 적의, 그리고… 굶주림.
눈동자를 본 일반인들은 맹수 앞에 선 생쥐처럼 몸을 떨었고, 경비를 비롯한 몇몇 초인들은 불길한 마나에 침을 삼켰다.
그리고 여명은, 저 눈동자의 정체를 단번에 깨달았다. 만주에서 이미 본 적 있는 마나였으므로.
‘…괴수?’
그때, 처음 일을 꾸민 소련 놈이 소리쳤다.
“괴, 괴수다! 괴수야!”
뻔한 수작이었으나, 동시에 훌륭한 계책이었다. 괴수라 단어를 듣자마자, 경매장 전체에 패닉과 혼란, 그리고 공포가 퍼졌다.
시발, 비켜!
경비! 나, 나를 지켜라!
눈치 빠른 VIP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나 입구나 경비를 향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반응한 건지, 갈라진 공간 사이에서 괴수가 툭 떨어졌다.
빼빼 마른 몸통, 비정상적으로 긴 팔다리, 원숭이 두개골을 닮은 혐오스러운 얼굴과 이마 정중앙에 박힌 단 하나의 붉은 눈동자까지.
객석에 떨어진 녀석은 도망치거나 멍하니 자신을 지켜보는 인간들과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입을 벌렸다.
“┒┙┎ ─ ┎┕!!”
인간의 귀로는 이해할 수 없는, 징그러운 비명.
그 비명이 신호가 되었는지, 허공의 구멍에서 똑같이 생긴 괴수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싸구려 공포 영화 속 그것처럼 현실감 없는 광경이었으나, 피부를 찌르는 마나는 이 모든 게 현실이라는 걸 똑똑히 알려주고 있었다.
‘미친 새끼들.’
그깟 보석 좀 얻겠다고 괴수를 뿌려?
여명은 장만을 등에 업고 계단으로 뛰어가는 세티의 뒷모습과 무대 위로 난입하는 소련 놈들, 그리고 사람들에게 달려드는 괴수들을 번갈아 보며 손을 쥐었다.
그렇게 인벤토리에서 꺼낸 것은 검이 아닌
불렀나?
데스나이트, 그중에서도 두메아 가문의 전대 가주였다.
드디어 우리 가문에 관심을 될…
그는 이번에도 주책없이 데릴사위를 운운하려다가, 좌석 사이로 뛰어오르는 괴수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괴수? 이런 곳에서?
여명은 기나긴 설명 대신 경매장 무대로 뛰어오르며 말했다.
“어르신, 괴수가 이곳에서 못 나가게 막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우리 사이에 부탁은 무슨.
두메아 가주는 그렇게 능청을 떤 뒤, 괴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검이 번뜩이며 괴수를 베어내는 것을 마지막으로, 여명은 고개를 돌리고 비각술을 펼쳤다.
목표는 소련 놈들이 보석 꿀을 챙기고 있는 무대 위.
좌석을 사뿐히 밟으며 뛰어오른 여명은 그대로 녀석들의 바로 앞에 착지했다.
쿵!
무대 바닥이 비명을 지르고, 소련 놈들의 시선이 여명에게 쏠렸다.
“빨갱이가 아니라 좀도둑이었나?”
빨갱이… 아니, 좀도둑 네 명은 대답 대신 동시에 권총을 뽑았다.
여명도 딱히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그저 얼음송곳을 조준할 시간을 벌기 위해 한 말이었을 뿐.
총구가 불을 뿜기 전에, 수십 발의 얼음송곳이 녀석들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
푸른 쥐의 ‘건전한 대화’ 도우미, 모티머는 얼음송곳을 피하며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KGB 노인들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지만, 그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지금 코앞에서 검을 뽑아 든 녀석이 천여명이란 것을.
인천에서 그에게 가슴이 베이고, 팔이 잘려서? 아니, 그는 누님이 노골적으로 편애하는 ‘사위’ 였으니까.
‘…어쩌지?’
모티머는 여명의 목숨을 걱정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혼자서 달려든 건지 모르겠지만, 이쪽에는 그를 포함해 초인이 넷, 게다가 그중 둘은 KGB 요원이었다.
상식적으로, 뭣도 모르는 여명이 죽을 길로 뛰어든 게 확실한 상황.
‘…살려야 하는데.’
인질로 잡힌 누님 때문에 억지로 싸우고 있긴 했지만, 누님의 사위를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이대로 KGB 요원들에게 목숨이 위험해지면, 자신이 몸을 날려서라도 구해야…
모티머의 생각이 거기까지 이어진 순간, 무대 위로 피가 튀었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피를 흘린 당사자는 여명이 아니었다.
바닥에 떨어진 것은 KGB 요원의 오른손이었고, 팔이 잘린 그는 여명의 검을 피해 훌쩍 무대 뒤로 물러섰다.
…어?
인천에서는 분명 자신과 비슷한 수준이었던 녀석이, KGB 요원을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상대한다고?
모티머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싸움을 바라보는 사이, 여명의 검에서 검기가 뿜어져 나왔다.
마나가 일렁이다 못해 파도가 출렁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검기.
그 살벌한 검기를 마주한 KGB 요원도 쉽지 않은 상대라는 걸 직감했는지, 마나를 끌어 올리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모티머! 지금 당장 VIP를 모시고 배로 돌아가라! 보석 꿀을 확보해!”
VIP, KGB가 소련의 유산을 팔아 만든 회사의 바지사장.
모티머는 KGB의 명으로 이 경매장의 회원권까지 얻어낸 바지사장 놈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꼴에 KGB의 노예라고 푸른 쥐인 자신을 무시하던 녀석은 진짜 초인들의 싸움을 보며 겁이라도 먹은 건지, 그를 닦달했다.
“어, 어서 배로 가자!”
모티머는 기꺼이 그렇게 했다. 그러니까, 녀석의 팔을 꺾고 목을 붙잡았다.
“이 쥐새끼가 감ㅎ…! 끅!”
함부로 입을 놀리려던 바지사장 놈의 목을 조른 모티머는 녀석의 주머니에서 보석 꿀을 꺼낸 뒤, 두 KGB 요원을 불렀다.
“늙은이들, 동작, 그만. 움직이면, 보석 꿀, 이놈, 모가지, 동시에, 박살.”
“….”
그러자 두 KGB 요원은 물론이고, 여명마저 검을 멈추고 모티머를 바라봤다. 당혹과 어이없음이 반반씩 섞인 눈빛.
“모티머, 무슨 짓이냐? 네가 감히 우리를 배신…”
“배신은, 니미, 염병. 난, 누님, 부하. 그쪽, 부하, 아니다.”
“…모리네는 우리 손아귀에 있다.”
“손끝도, 못, 건드린다. 나도, 알 건, 다, 안다.”
“….”
두 요원의 표정이 일그러지건 말건, 모티머는 여명을 향해 말했다.
“너, 나, 알지?”
“…예. 압니다.”
“내가, 붙잡고, 있는, 동안. 도망, 쳐라. 가서, 누님, 남편, 성녀님, 찾아.”
나름 비장한 태도로 말했으나, 정작 여명은 도망치지 않았다. 여전히 검기를 일렁이며, 당황한 KGB 요원들을 노리고 있었다.
이래서 젊은 나이에 힘을 얻은 것들이란…!
모티머는 답답함을 억누르며 다시 한번 소리쳤다.
“노인들, 아직, 모든 힘, 쓰지, 않았다! 성물, 쓰기, 전에, 당장, 가라!”
성물이란 단어가 나오자마자, KGB 요원들의 표정이 돌변했다. 그들은 그 이상 모티머가 입을 놀리는 걸 두고 보지 못했다.
“이래서 쥐새끼들이란. 진즉에 전부 쓸어 버렸어야 했거늘!”
두 요원은 동시에 성물을 사용했다. 반마력장이 그들의 몸을 뒤덮고, 몸 곳곳에서 촉수나 팔이 돋아났다.
다음 순간, 두 명의 요원이 각각 여명과 모티머를 향해 달려들었다. 인질이고 뭐고, 모티머부터 죽이겠다는 태도.
“제, 길.”
멋지게 희생하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된 걸 확신한 모티머는 붙잡고 있던 바지사장 놈을 집어 던졌다.
요원은 바지사장을 받기는커녕 슬쩍 피해버리고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모티머를 향해 촉수를 내려쳤다.
바람을 찢을 듯 가속하는 촉수와 피부를 찌르는 살기.
모티머는 필사적으로 바닥을 굴렀다. 그도 꼴에 초인이었기에, 첫 일격은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원의 몸에 달린 촉수는 하나가 아니었고, 그는 몸을 노리고 쏟아지는 촉수 다발을 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유언을 남기고 싶었지만, 어릴 적 굴라그에서 잘린 혓바닥은 그에게 많은 말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조용히 친우의 이름을 불렀다.
“월라드…”
“월라드는 LA에 있습니다.”
“…?”
뭐? 모티머는 슬쩍 눈을 떴다. 그의 눈앞에는 잘린 촉수 다발을 짓밟고 서 있는 여명의 등이 있었다.
그새 요원 하나를 떨쳐 내고, 그를 구했단 말인가?
모티머는 놀라움과 동시에 누님에 대한 존경심이 샘솟았다. 역시, 누님이 사람 보는 눈은 정확하다니까.
그가 누님을 떠올리는 사이, 여명이 재차 물었다.
“보석 꿀은?”
“여기, 있…”
모티머는 안주머니에서 보석을 꺼내려다가, 주머니가 텅 비었다는 걸 깨닫고 촉수를 휘둘렀던 KGB 요원을 노려봤다.
그러자 녀석은 씨익 웃으며 보석 꿀을 들어 올렸다.
“이걸 찾나? 쥐새끼?”
“빌어, 먹을, 놈.”
모티머가 뭐라고 말하건, 두 요원은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다. 그 꼴을 본 여명이 검을 늘어트리며 말했다.
“너무 좋아하지 마. 당신들은 오늘 여기서 죽을 테니까.”
“꼬맹아. 실력은 인정한다만, 경륜이 부족하구나.”
조금 전까지 여명과 싸우던 요원은 그렇게 지껄이며 품에서 붉은 솔방울을 꺼냈다.
스탈린의 솔방울, 그것도 이미 충전이 끝난 듯 마나가 일렁거리고 있는 물건이었다.
여명은 미간을 좁혔다. 이런 좁은 경매장에서 저걸 터트리면 어떻게 될지 뻔했으니까.
“허, 이것도 알아보다니… 정체가 심히 궁금한 아이로구나.”
“그럼 여기서 끝을 보지?”
“세상 일에는 우선순위라는 게 있어서 말이다. 안타깝지만, 궁금증은 여기서 접도록 하지.”
그 말과 동시에, 솔방울을 머리 위로 집어 던졌다.
주변의 마나를 빨아들이는 솔방울, 바지사장과 보석 꿀을 챙겨 도망치는 요원들의 뒷모습, 객석 사이를 뛰어다니는 데스나이트와 괴수들.
무대 위에서 그 모든 광경을 바라보는 여명의 머릿속이 가속하며, 선택을 종용했다.
이대로 데스나이트만 회수해 녀석들을 쫓을 것인가, 아니면 폭발을 막을 것인가?
이성은 그에게 전자를 선택하라고 종용했다. 이 경매장의 VIP나 경비가 죽든 말든, 그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래, 이미 장만 어르신과 세티가 빠져나간 시점에서 누가 죽건 상관없었다.
하지만 감성은, 그의 등 뒤에 있는 모티머를 생각하라고 속삭였다.
그를 알아보자마자 자신을 희생하려고 한 푸른 쥐.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대책 없는 짓을 저지른 건지 모르겠지만, 그의 행동은 진심이었다.
‘…진심이라.’
거기까지 생각한 여명은 짧게 숨을 들이쉬고, 무대를 박찼다. 그리고 임계점을 넘어선 솔방울을 붙잡고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럼 나도 진심으로 가야지.’
여명의 마나가 솔방울을 장악했으나, 이미 시작된 폭발은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다른 물건들이 그랬던 것처럼, 소유권을 가져올 수는 있었다.
그렇게 폭발까지 채 1초도 남지 않은 순간,여명은 폭발 직전의 솔방울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무대 위로 착지.
“무슨, 짓을, 한…?”
여명이 벌인 기행을 본 모티머가 당황한 듯 떠듬떠듬 물었으나, 여명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됐고, 괴수나 막아주세요.”
“너, 는?”
“쫓아가야죠. 모리네를 구하기 위해서.”
“모리, 네? 장모, 님, 이라고, 불러”
모티머의 헛소리는 여명에게 닿지 않았다. 그는 이미 경매장을 가로질러, 요원들이 나간 방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으니까.
***
“맞죠? 내 말 맞죠?”
호텔 창가에 저격총을 거치한 채, 창밖 바라보던 성녀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뒤에서 창밖을 바라보던 네티와 코르부스는 웃을 수 없었다.
짧은 사이 창밖으로 보인 광경이 심상치 않은 까닭이었다.
웬 노인을 업은 채로 쇼핑몰에서 튀어나온 세티를 시작으로, 우르르 뛰쳐나오는 양복쟁이들, 그리고… 몸에서 촉수를 흩날리며 여객선을 향해 내달리는 두 노인까지.
“세티랑 여명이 같이 다니면 무조건 사고가 터진다니까요? 와 진짜, 사고뭉치 커플이 따로 없어요.”
성녀는 세기의 수학 공식을 증명한 수학자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코르부스는 멋쩍게 예, 예 하며 맞장구쳤고, 네티는 영혼 없는 목소리로 ‘성녀님이랑 같이 다녀도 사고 터지던데요?’ 같은 소리를 내뱉었다.
…아무튼.
호들갑을 끝낸 성녀는 즉시 총에 축복을 걸었다.
“붉은 레독스시여, 당신의 총에게 걸맞은 분노를.”
붉게 물든 총을 잡은 성녀가 사격 자세를 잡기 무섭게, 코르부스가 까마귀발로 지팡이를 들어 올리며 창가 전체에 소음 마법을 걸었다.
“히라리아의 적막이여”
축복에 마법까지, 거의 완벽한 저격 준비를 끝마친 직후 여명이 쇼핑몰에서 나왔다.
그는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여객선을 향해 달리는 두 노인을 발견하곤 비각술을 펼쳤다.
그것을 본 성녀는 바로 두 KGB 요원을 조준하고…
“저게 KGB 촉수였어? 에이, 생각보다 별로네.”
실없는 소리와 함께 방아쇠를 당겼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