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257)
을 위한 세계는 없다-257화(257/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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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7화 〉 막간 젊은 카탁포이어의 슬픔
* * *
남들은 다 비웃는 이야기지만, 딜라 카탁포이어는 네크로맨서와 공산주의자가 닮았다고 생각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과감성이나,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잔인성 때문에? 아니.
과감함과 잔인성이라면 미국도 못지않았다. 그들이 자국민에게 저지른 콘트라 사건이나, 프로젝트 울트라, 하이퍼 같은 실험들을 보라.
그게 어디 굴라그보다 인도적이던가?
네크로맨서와 공산주의자의 공통점은… 조금 더 본질적이고 감상적인 부분에 있었다.
높은 이상을 가지고 세상과 투쟁했으나, 결국 수많은 사람을 지옥 구렁텅이에 몰고 갔다는 점.
누가 그랬더라? 이 세상에 천국을 건설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지옥을 만든다고.
지구의 철학자였던가, 아니면 용 비석이었던가?
슬프지만, 그 말이 맞았다.
하늘 위에 계신 신들을 이 땅으로 추락시켰음에도, 우리는 천국을 만들 수 없었으니까.
***
연금술사의 공방에서 여명이 잠들어있던 시각.
딜라 카탁포이어는 조용히 시카고의 도로를 걸었다.
창백한 머리카락을 금발로 염색하고, 네크로맨서 특유의 복장 대신 기다란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평범한 미국 시민처럼 보였다.
실제로 거리의 누구도 그녀를 신경 쓰지 않았다. 빈 그릇을 내미는 노숙자나, 코가 좋은 들개들 정도만이 그녀를 힐끗거릴 뿐.
어쨌거나, 딜라는 털래털래 거리를 가로질러 시카고 시내의 한복판, 커다란 사각형 건물 앞에 멈췄다.
청동색 지붕과 올빼미 동상이 인상적인 이 건물은 해럴드 워싱턴 도서관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히라리아의 대 도서관만큼은 아니었지만, 미국 중부에서 가장 큰 도서관.
딜라 카탁포이어는 잠시 도서관을 올려다보다가, 곧 그 안으로 들어섰다.
탁
로비 입구에 발걸음을 딛자마자, 어떤 마법이 그녀의 몸을 향해 날아오는 게 느껴졌다.
CCTV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감지 마법.
불사의 왕께서 이 세상에 내린 손가락답게, 그녀는 순식간에 감지 마법을 인식하자마자 자신의 내면을 조작했다.
네크로맨서의 뒤틀린 마나는 감추고, 얼마 없는 순수한 마나를 앞으로 내민다.
그리고 다음 순간, 멍청한 감지 마법은 그녀를 네크로맨서가 아니라 멀쩡한 마법사로 인식했다.
“안녕하세요, 마빈 씨?”
“또 오셨군요.”
드넓은 1층 로비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남자가 슬쩍 웃으며 딜라의 인사를 받았다.
선량하고 인사성 밝은 남자였지만, 감지 마법 실력은 영 별 볼 일 없었다. 하긴, 그러니 도서관 로비나 지키고 있는 것이리라… 어디까지나, 겉으로는.
딜라가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사이, 마빈이라 불린 남자가 조금 사심을 담아 말했다.
“오늘도 연구서를 보러 오신 겁니까?”
“예, 아직 궁금한 게 많아서요.”
의례적인 대화를 끝낸 딜라는 도서관 내부로 향하려 했지만, 마빈이 그녀의 걸음을 막았다.
“저, 아가씨?”
“예?”
뭔가 각오한 듯, 입술로 혀를 문지른 마빈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오늘 저랑… 그, 저녁 식사 어떠세요? 주변에 근사한 러시아 레스토랑이 하나 있는데.”
“….”
딜라는 가식적으로 놀란 표정을 지은 뒤,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
묘한 침묵이 흐르고, 바닥을 닦던 청소부 아저씨가 두 사람을 이상하게 바라볼 때쯤.
딜라는 살짝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좋아요.”
“싫으시면 어쩔 수 없… 예?”
“좋다구요. 저녁 식사.”
설마 성공할 줄 몰랐다는 듯, 마빈은 놀란 입을 벌렸다.
“어, 저기… 농담이나… 그런 게 아니라… 저, 정말이시죠?”
“저, 이런 걸로 농담하는 여자 아니에요.”
딜라가 웃으며 말하자, 마빈은 그저 입만 벙긋거렸다. 마치,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그렇게 또 다시 침묵이 찾아오려는 찰나, 딜라는 그의 손목을 잡았다.
“저녁만 드실 건가요?”
“예, 옛?”
“식사하기 전에, 서로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어떠세요?”
“알아야 한다고요? 어, 어떻게요?”
풋풋하고 어리숙한 말. 딜라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삼키며 대답했다.
“음… 그러면 우선은 열람실까지 안내해 주실래요?”
“하, 하지만 저는 로비를 지켜야…”
“예끼! 헛소리하고 말고 어서 따라가!”
마빈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구경하고 있던 청소부 아저씨가 끼어들었다. 어지간히도 답답했는지, 그는 들고 있던 걸레 자루를 빙빙 돌려댔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마빈은 침을 꿀꺽 삼킨 뒤 말했다.
“그, 그럼 가실까요?”
딜라는 미소로 화답했고, 두 남녀는 훈훈한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도서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런 무언의 응원들과 상관없이 연구서가 보관된 지하 열람실까지는 동안 마빈은 입을 열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딜라도 딱히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거기다 하필이면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지하 열람실로 향하는 길인지라, 열람실에 도착할 때까지 둘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만이 이어졌다.
그 침묵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윽고 두 사람이 지하 열람실의 두꺼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순간.
딜라 먼저 입을 열었다.
“씨발 새끼가… 갑자기 저녁은 또 뭐야?”
“예, 예?”
“뭘 연기를 계속하고 있어? 척 보면 이미 들켰다는 거 몰라?”
그녀가 뭐라고 말하건, 마빈은 놀란 표정으로 딜라를 바라봤다.
어떻게 당신처럼 아름다운 사람이 그런 말을 하냐는 눈빛이었지만, 딜라는 아랑곳하지 않고 품에서 단검을 꺼내 휘둘렀다.
반짝이는 칼날이 반월을 그리고, 그대로 마빈의 목을 베어버리려는 순간.
마빈의 몸이 가속하며 칼날의 범위에서 훌쩍 물러났다. 일반적인 마법사는, 특히 감지 마법조차 제대로 못 쓰는 마법사가 낼 수 없는 속도.
“…어떻게 알았지?”
마빈이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딜라는 단검을 축 늘어트리며 대답했다.
“너 같은 구울이 노골적으로 치근덕거리는데, 어떻게 모르겠니?”
“….”
구울, 초인을 되살린 데스나이트와 달리, 평범한 언데드에 강제로 마나를 불어넣어 자아를 만든 존재.
모든 면에서 데스나이트의 하위 호환이나 다름없었지만, 딱 한 가지 장점이 있었다.
척 봐도 시체인 데스나이트와 달리, 적당히 꾸미면 이렇게 민간인들 사이에 잠입시켜도 이상할 게 없다는 것.
“FBI… 아니, 간 큰 마법사인가?”
정체를 들킨 마빈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딜라는 피식 웃었다.
“구울 치고는 궁금한 게 많구나? 근데, 궁금한 건 니 주인에게 물어보렴.”
노골적인 도발이었고, 마빈은 그 이상 참지 않았다. 질문은 언데드로 만든 뒤에 해도 늦지 않았으니까.
“…네년 간이 혓바닥만큼 맛있기를 바라마.”
그 말과 동시에, 마빈의 팔이 까그극 소리와 함께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살과 뼈가 진흙처럼 일그러지며 살벌한 분위기를 풍기길 잠시.
곧 녀석의 손은 괴수의 그것처럼 변했는데, 날카로운 발톱 사이로 힘줄이 꿈틀거리는 모습이 흉측하기 그지없었다.
“오랜만에 주인님께 기쁨을 드리겠구나!”
마빈은 그렇게 소리치며 딜라에게 달려들었다.
초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간치고는 꽤 빠른 속도였다. 연약한 마법사인 딜라는 그대로 손톱 아래 토막 날 것 같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딜라가 구울에게 단검을 겨누며 뒤틀린 마나를 끌어 올렸다.
“뭐!? 네크로맨서가 왜…”
마빈의 유언은 이어지지 못했다. 딜라의 주문이 한 발 더 빨랐으니까.
“시체 폭발.”
곧 구울의 머리가 수박 터지는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 후두둑 피가 튀고, 통제를 잃은 녀석의 몸이 그대로 열람실 바닥을 굴렀다.
딜라는 축 늘어진 구울의 몸을 내려다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뒤틀린 마나로 주문을 썼으니, 아무리 멍청한 미국 경찰이라도 그녀를 눈치챘을 테니까.
“…여기까지 와서 타임 어택이라니. 좆 같은 보안 구울.”
그녀는 바닥에 고인 썩은 피를 짓밟으며 열람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책장과 책장이 죽 늘어선 열람실 구석에는 작은 틈새가 있었다. 소화기 하나만이 달랑 놓인 틈새.
딜라는 소화기를 붙잡고, 무게를 실어 꾹 밀었다.
철컥 무언가 아다리가 맞는 소리와 함께 소화기가 기울어졌다. 그 직후, 소화기 뒤편의 벽이 열리며 작은 통로가 드러났다.
몸집이 작은 그녀조차 허리를 굽혀야만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좁디좁은 통로.
안으로 들어가 보니, 진한 먼지 냄새가 났다. 딜라가 허리를 굽히고 안으로 들어가자 등 뒤에서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저걸로 대충이나마 시간을 벌 수 있으리라.
아무튼, 일방적으로 죽 이어진 통로에는 빛 한 점 없었다. 뭐, 갈림길도 없이 그냥 통로만 따라가면 되는 길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그녀의 배가 꼬르륵 울렸다.
“…밥 먹고 올걸.”
그녀는 작게 투덜거렸다. 빌어먹을 세티가 시카고 공항에서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면, 이렇게 굶고 다니는 일은 없었을 텐데.
그런데 어째서일까, 이 순간 딜라는 여명의 얼굴이 떠올랐다.
“…샌드위치 먹고 싶네.”
여명이 만들어주던 수제 샌드위치를 떠올리던 딜라는, 입에 고이는 침을 삼켰다.
대체 그 샌드위치에 뭘 넣은 걸까? 여명 일행과 찢어진 뒤로 다른 샌드위치들을 먹어봤지만, 그 샌드위치만큼 맛있는 건 찾을 수 없었다.
‘분명, 사악하고 중독적인 무언가를 넣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통로를 가로지르길 잠시.
그녀는 어느새 통로의 끝, 불길한 나무문 앞에 도착했다.
그것은 시체를 양분 삼아 자란 나무로 만든 문이었고, 동시에 네크로맨서가 아닌 자가 문고리를 잡으면 온갖 저주와 공격 마법이 쏟아지도록 만들어진 마도구이기도 했다.
물론, 네크로맨서인 딜라에게는 별 의미 없는 물건이었지만.
끼익
그녀가 그대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넓은 방이 그녀를 반겨줬다.
무수한 금괴와 달러, 수표, 심지어 구하기 힘든 타락석까지.
이 방은 네크로맨서들에게 보물창고나 다름없는 공간이었고, 실제로 보물창고로 쓰이는 곳이었다. 미국 동부에서 벌어 들인 재산을 모은 곳.
“…쓰읍.”
설마 동료들의 창고를 털게 될 줄이야. 딜라는 배신자 특유의 무의미한 눈물을 찔끔 흘리며 방의 구석 깊숙한 곳으로 걸어갔다.
창고를 털더라도, 오늘은 아니었다. 오늘 그녀가 털어야 할 물건은 따로 있었…
『불사의 왕이 적은 별의 명부.』
그때, 형언할 수 없는 목소리가 방을 울렸다.
움찔, 놀란 딜라는 즉시 단검을 뽑아 들고 전투 자세를 잡았다.
“누구냐?!”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대신, 방구석에 고여있던 검은 그림자가 꿈틀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림자를 본 딜라는 바로 주문을 외웠다. 정확히는, 외우려고 했다.
하지만 혓바닥은커녕, 몸속의 마나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세티가 그녀를 조종할 때 그랬던 것처럼.
그렇다면 설마? 그림자의 정체를 짐작한 딜라는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었다. 그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재밌는 책이로구나. 주사위가 게임에게 저항하다니. 이조차도 게임의 일부일 뿐이거늘.』
그림자는 자연스레 바닥에 굴러다니는 낡은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귀중한 책이라는 걸 알아볼 수 없도록 매일매일 표지가 바뀌는 마법이 걸린 책.
『녀석은 주인공을 위해 이걸 준비했겠지만…』
그림자는 책을 펼쳤다. 촤르륵 움직이는 종이 사이로, 라, 케프리, 아툼의 이름이 스쳐 지나간다.
『모든 것은 결국, 나의 간택자를 위한 것이로다.』
딜라는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지 못했다. 영혼을 짓누르는 압력에 폐가 쪼그라들고, 심장이 비명을 지르는 탓이었다.
턱, 턱 막히는 숨. 흐릿해지는 시야.
‘사, 살려…’
딜라는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았다.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시도하지 못한 노력이 몇 개인데.
『살고 싶으냐?』
죽음 앞에서, 그림자가 물었다. 딜라는 그렇노라고 소리쳤다. 자신은 그저 세티가 시킨 대로 명부를 챙기려 했을 뿐이라고, 열리지 않는 입으로 소리쳤다.
『살고 싶다면 살거라. 그렇게 오래 살았는데, 겨우 이걸 못 늘려줄까.』
비웃음인지, 아니면 농담인지 알 수 없는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그녀를 압박하던 압력이 사라졌다.
“허, 허억…!”
딜라는 무릎 꿇고 숨을 들이 쉬었다. 폐에 산소가 들어차는 것과 반대로, 그녀의 얼굴에서는 참았던 눈물과 침이 아래로 질질 흘러내렸다.
그렇게 얼마나 숨을 만끽했을까?
그녀는 아직도 허공에 떠 있는 책을 보며 물었다.
“위, 위대한 분이시여. 제, 제게 그, 무엇을 원하십니까?”
『눈치가 빠른 아이로구나. 그래서 더 아쉽구나, 아쉬워. 네가 조금만 더 일찍 왔으면, 매와 나무 대신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예?”
『지금의 너는 여덟 번째도 힘들어 보이니… 지금은 그저 시키는 일이나 하면 될 것이다.』
여덟 번째?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지만, 딜라는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며, 명령을 내리시옵소서, 무엇이든 하겠나이다.”
『나의 아이에게 이 책을 전하거라. 그러면 그 아이가 알아서 할 것이다.』
나의 아이. 딜라는 그것이 세티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걸 깨닫고 더욱 깊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하, 하겠나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나의 간택자에게 말을 전하라.』
딜라는 간택자가 누군지 묻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런 위대한 별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자가 몇이나 있겠는가?
이 자리에서 그녀가 알아야 할 것은 무슨 말을 전해야 하느냐 뿐이었다.
대체 어떤 무시무시한 전언을 남길 것인가.
딜라가 침을 삼키고, 방의 모든 그림자가 꿀렁거리며 미소 지은 바로 그때.
어둠이 말했다.
『이 세상은 현실이니, 그대는 하고 싶은 것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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