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258)
을 위한 세계는 없다-258화(258/817)
〈 258화 〉 마왕으로 가는 길 (7)
* * *
***
시카고가 내려다보이는 높은 빌딩 최상층.
휘황찬란한 인테리어 아래, 까마귀가 그려놓은 마법진이 촘촘한 지뢰밭처럼 깔린 곳.
탁자 위에 휴대폰을 여섯 대나 늘어놓은 한 드워프가 푹 한숨을 쉬었다.
“…벌써 4일 째군.”
조금 전까지 도움이 될만한 사람들에게 은밀히 연락을 돌리고 있던 드워프, 다룰마 둔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탁, 탁
초조함 때문일까, 손가락이 엇나가며 라이터에는 괜한 불씨만 튀었다.
그렇게 두어 번의 시도 끝에 담배에 불을 붙인 다룰마는 깊게 담배를 빨아들였다.
구강을 타고 목구멍을 넘어 폐를 찌르는 알싸한 향.
니코틴을 혈관 가득 흡수한 드워프는, 후우 연기와 함께 말했다.
“걱정도 안 되나?”
그의 목소리가 향한 곳은 소파 위에 조용히 앉아 있던 소녀였다.
직후, 눈을 감고 명상에 빠져 있던 하늘색 단발머리의 소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
“걱정이요? 딱히 안 되는데요?”
“….”
“언니랑 성녀님이 같이 갔는데, 별문제 있겠어요?”
태연하다 못해 여유가 넘치는 네티의 말에, 다룰마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손은 두서없이 흔들거렸고, 발가락은 쉴 새 없이 꼼지락대고 있었으니까.
남남인 자신보다 가족을 보낸 저 소녀가 더 걱정되는 게 당연하거늘.
다룰마는 자신의 무심함을 자책하며 한 번 더 연기를 내뱉었다.
“물론, 나도 별문제 없을 거라 생각하고, 또 그러길 바라지만…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문제?”
다룰마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이 시카고에서 여명 일행과 연락이 끊길 이유야 뻔했으므로.
네티 또한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깨달은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짧은 침묵.
그 침묵이 길어지기 전에, 다룰마는 생각해놓은 대책을 입에 올렸다.
“우선은 사설탐정을 고용해서 찾아보는 건 어떻겠나?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정도는 하루면 알 수 있을 걸세.”
그럴싸한 제안이었으나, 돌아온 건 거절이었다.
“불가하오.”
다룰마는 힐끔, 마법진 위에서 주문을 외우고 있는 커다란 까마귀를 바라보았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지 않은가.”
“다시 말하지만, 불가하오. 전화 통화도 아슬아슬한 상황에 돈까지 쓰겠다? 절대 허락할 수 없소.”
“그건 그렇지만… 성녀님과 여명이…”
“그만. 우리가 이곳에 숨어있는 이유를, 본인의 제자가 그쪽을 위해 무슨 위험을 감당하고 있는지 잊지 마시오. 드워프.”
까마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다룰마가 더 이야기를 꺼낼 수 없을 만큼.
그렇게 드워프가 침묵하고, 두 번째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을 때쯤.
여태껏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던 네티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아!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뭔지 알았어요.”
“…?”
다룰마와 코르부스 둘 다 갑자기 무슨 소리냐는 듯 네티를 바라보자, 그녀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며 덧붙였다.
“여자! 분명 또 형부가 누군지 모를 년하고 꼬인 거예요.”
“….”
뭐지? 분위기를 풀기 위한 농담인가? 다룰마는 담뱃불을 붙이다 말고 그녀를 바라봤다.
하지만 네티에게선 한 점의 농담기도 찾을 수 없었다. 그녀는 한없이 진지한 얼굴로 계속 말을 이었다.
“언니가 심부름 보낸 그 네크로맨서 년도 그렇고… 분명 이번에도 일행에 이상한 여자가 하나 더 추가될 거예요. 제 소녀의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눈을 가늘게 뜬 다룰마와 달리, 코르부스는 네티의 헛소리에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뭐, 아무튼.
다룰마는 혼자 불쌍한 성녀님… 같은 소리를 중얼거리는 네티를 무시하고 탁자 위에 놓인 휴대폰을 집었다.
여명과 성녀님을 믿는 것과 상관없이, 지금 당장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본사 건물 관리인인 델만의 번호를 입력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건 간에, 일단 임원 회의에는 참석해야…
그때, 코르부스가 딱! 부리를 부딪쳤다.
“…왔구려.”
누가 왔는지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다룰마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이미 일어나 있던 네티는 ‘Never more!’ 같은 소리를 지껄이며 입구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녀가 문을 여는 것보다 조금 더 빨리, 정문이 열리며 세 사람이 돌아왔다.
“언니!”
활짝 웃으며 세티와 여명을 껴안으려던 네티는 움찔, 걸음을 멈췄다.
대체 4일 동안 뭘 한 건지, 피로에 절어있는 언니와 아예 선 채로 졸고 있는 성녀님의 모습.
하지만 그녀의 시선을 빼앗은 건, 일행 맨 뒤에서 후드를 벗고 있는 네 번째 인물이었다.
비현실적인 분홍색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가진 미인.
“….”
진짜로 여자 때문이었네? 네티는 현실로 튀어나온 걱정거리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세티와 성녀는 ‘졸려…’란 말과 함께 안으로 들어오더니, 좀비처럼 어기적어기적 침실로 가버렸다.
결국, 인사는 여명의 몫이었다.
“다녀왔어. 조금 늦었지?”
“…늦은 건 상관없는데요, 저… 저 여자는 누구죠?”
“아, 이분은…”
그렇게 여명이 라쉬크를 소개해주기 직전, 뒤늦게 입구에 도착한 다룰마가 놀란 얼굴로 끼어들었다.
“…소녀의 감이라는 거, 생각보다 정확했군?”
***
다룰마 둔은 유능한 드워프였다.
비록 원로들에겐 가주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어린 녀석들에게는 탯줄 잘 잡고 태어난 놈으로 평가받더라도.
다룰마 둔은 유능한 드워프였다.
그가 실종되고 겨우 5일 만에 혈족 내부 분위기가 변한 게 바로 그 증거였다.
뭔가 망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크게 안 좋은 방향으로.
대다수의 혈족들은 ‘붉은 별’ 때문이라고 지레짐작하고 있었지만, 정작 직접 ‘붉은 별’을 마주해 본 드워프의 생각은 달랐다.
“물과 기름 같은 원로들과 어린 녀석들이 여태껏 직접적으로 싸우지 않은 건, 다룰마 덕분이었던 게지.”
할 파갈다, 둔간 중공업의 원로이자 임원인 드워프는 기다란 지하 복도를 걸으며 말했다.
그러자 곧이어, 그의 뒤를 따르던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대답했다.
“그러니까… 다룰마는 위아래 모두를 아우르는 성능 좋은 욕받이였다, 이 말씀이십니까?”
걸음걸음마다 초인 특유의 살벌한 마나가 풍겨 나오는 그의 이름은 권몽주, 다룰마가 영입한 선죽 용병단의 단장이었다.
“욕받이? 중간 관리직보다 직관적인 표현이군. 마음에 들어.”
“….”
“어쨌든, 자네 말이 맞네. 다룰마는 욕받이임과 동시에, 욕받이도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의 산증인이었지.”
욕인지 칭찬인지 애매한 말이었으나, 권몽주는 굳이 그의 말을 평가하지 않았다.
할 파갈다 또한 딱히 평가를 원한 건 아니었는지, 대화 주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있나, 단장?”
단장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주변을 둘러봤다.
그와 늙은 드워프가 함께 걷고 있는 이 지하 복도는 시카고 외곽, 둔간 중공업이 소유한 창고 깊숙한 곳에 숨겨진 장소였다.
의아한 점이 있다면, 권몽주가 보기에 이곳의 구조는 냉전 때 쓰이던 핵 발사용 벙커와 비슷하다는 것.
하지만 군대도 아니고, 일개 기업이 왜 이런 벙커를 지었단 말인가?
잠시 고민하던 권몽주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자네 정도 되는 사람도 모를 정도인가?”
“제 군경험에 비춰 예상해보자면, 핵미사일용 벙커 같긴 합니다만…”
“뭐라? 핵미사일용 벙커?”
“콘크리트 두께나, 벽에 발린 마나 감지 차단 도료만 보자면 그렇습니다. 이 정도면 거의 비대칭 전력 급 초인이 와야 탐지할 수 있을 겁니다.”
“감지 차단 도료? 그 비싼 걸 이 통로 전체에 처발랐다고…?”
할 파갈다는 의심 가득한 눈으로 주변을 훑었다. 마치, 자신도 이곳의 정체를 모른다는 듯한 태도였다.
권몽주로서는 의아한 일이었다. 여기가 어딘지 알고 찾아온 게 아니란 말인가?
늙은 드워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의 대화가 끊어지고, 복도로 발소리만이 울리길 잠시.
할 파갈다는 복도를 틀어막은 커다란 철문 앞에 멈췄다. 그는 문을 열지 않고 뭔가를 생각하듯 잠시 뒷짐을 졌다가, 권몽주를 보며 말했다.
“권 단장. 내가 왜 단장씩이나 되는 자네를 호위로 신청해서 여기까지 끌고 왔는지 아는가?”
뜬금없는 질문. 권몽주는 착 가라앉은 눈으로 생각했다.
그가 할 파갈다를 따라다니는 이유?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며칠 전 붉은 별에게 당한 용병단의 초인, 톈린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였다.
물론, 일개 용병단원의 빈자리를 단장이 채우는 건 여러모로 비정상적이었다.
누가 봐도 다른 의도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상황.
권몽주가 해석하기에, 이건 정치적인 행동이었다.
할 파갈다가 다룰마를 대신해 선죽 용병단의 주인이 되어주겠다는 제스처이자, 다룰마가 완전히 숙청됐다는 신호.
하지만 할 파갈다에게는 그 외의 이유가 있는 듯했다.
“…질문 놀이는 제 취향이 아닙니다. 직접 말해주십시오. 왜 저를 부르신 겁니까?”
“내가 믿고 부를 수 있는 초인 중 자네가 가장 강하거든.”
“…?”
갑자기 이게 또 무슨 소리인가 싶어 권몽주는 입을 다물었다. 할 파갈다는 쓰게 웃으며 철문에 손을 올렸다.
“최소한 5년 전부터, 우리 내부 장부에 구멍이 생겼어. 젊은 놈들이 한량 짓에 쓸 돈을 빼내는 건가 싶어 무시했는데… 빠져나간 자금이 어마어마하더군.”
“….”
“만주에 가기 전까지, 다룰마는 그 자금을 추적하고 있었네. 그리고 최근 자금이 어디로 갔는지 거의 다 알아냈고… 그대로 실종되었지.”
음모의 냄새가 났다. 그것도 거대한 음모의 냄새가.
“그 자금 대부분은 이곳으로 흘러왔더군. 이상하지 않나? 몇 년 전부터 존재한 지하 벙커, 다룰마의 실종, 붉은 별의 등장…”
“모든 사건이 연결되어 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할 파갈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모든 걸 우연이라 치부하기엔, 너무나 공교로웠으므로.
권몽주는 마나를 끌어 올리며 물었다.
“제게 원하시는 게 뭡니까.”
“이 문을 박살 내주게. 나는 이 가문의 원로로서, 안에 뭐가 들었는지 봐야겠어.”
“…저 말고 다른 분들에게는 알리지 않으신 겁니까?”
“자칫하면 가문의 분열로 이어질지 모르는 일이야. 모든 게 명확해지기 전까지, 나 혼자만 알고 싶네.”
권몽주는 늙은 드워프의 고집이 어리석다 지적하지 않았다. 그는 용병이었고, 용병은 고용인의 말에 따르는 법.
짧게 심호흡한 그는 양손에 어마어마한 불길을 일으켰다. 접근 불가지역이 된 중국 국경 지대에서 구한 이름 모를 무술.
“뒤로 물러나십시오. 조금 뜨거울 겁니다.”
만주에서 용의 불꽃을 막아내기도 했던 그 불꽃이 철문에 닿자. 소름 돋는 치이익 소리와 함께 철문이 가열되기 시작했다.
할 파갈다는 붉게 물든 철문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철문은 붉게 달궈지기만 할 뿐, 녹는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탓이었다.
하긴, 겨우 사람 손에서 만들어진 불길이 합금으로 만들어진 문을 녹이는 건…
그때, 권몽주 단장의 손에서 피어나던 불길이 한점으로 뭉쳤다. 검지 손가락 끝에 소리 없이 뭉친 불길.
단장은 곧 손가락을 뻗어 그대로 철문을 꿰뚫었다. 그러자 마치 용접기처럼, 철문이 불티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치이익 !
그럼에도 철문은 녹지 않았다. 그 대신, 단장의 손가락을 따라 아주 정교하게 잘려나갔다.
그렇게 단장이 동그랗게 팔을 돌린 직후, 쿵! 소리와 함께 잘린 철문이 떨어져 나가며 문에 구멍이 났다.
딱 드워프 한 명이 지나다닐만한 크기의 구멍.
“…잠시 후에, 열이 식은 뒤에 들어가시지요.”
어느새 불길을 끈 권몽주 단장은 이마의 땀을 훔치며 말했다. 할은 단장이 그의 상상 이상으로 강한 초인이라는 걸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후, 철문이 만질만한 열까지 식은 걸 확인한 할은 결연한 표정으로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두꺼운 철문 너머에서 드워프를 기다리고 있던 건…
거대한 공장이었다.
자동화된 레일이 움직이며, 로봇팔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무언가를 끝없이 찍어내는 공장.
자본가인 드워프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광경이었지만, 문제는 공장에서 생산되는 물건이었다.
“이게 대체…”
가장 가까운 기계 팔들은 레일을 따라 오는 징그러운 살덩어리를 붙잡더니, 그 안에 회로칩을 꽂아 넣었다.
지지직!
회로 칩에 꽂힌 살덩이는 꿈틀거리면 전기인지, 마나인지 모를 것을 토해내다가, 축 늘어졌다.
대체 저게 뭔지 모르겠지만, 기계 팔은 늘어진 살덩이에서 회로 칩을 뽑아내더니, 그대로 ‘폐기’라고 적힌 라인으로 집어 던졌다.
철퍽, 살덩어리가 버려지는 소리가 섬뜩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섬뜩한 건, 이 살벌한 풍경과 달리 공장에서는 피 냄새는커녕 그 흔한 악취조차 맡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너무나도 익숙하고 산뜻한, 굴라그 실험실에서 맡을 수 있던 냄새.
‘설마…’
할 파갈다는 고개를 저어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끔찍하고 역겨운 상상을 떨쳐냈다.
“어떤 미친 새끼가 이런 짓을…!”
이런 미친 광경을 그의 동족이, 그것도 혈족이 만들었단 말인가?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한 할 파갈다는 뒷걸음질 치다가, 뒤이어 들어온 권몽주의 다리에 등을 부딪쳤다.
흠칫, 정신을 차린 할 파갈다는 입술을 씹으며 말했다.
“…단장, 내가 따로 말할 때까지, 여기서 본 건 절대 발설하지 말게. 알겠나?”
단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할이 고개를 돌리자, 권몽주는 눈을 감은 채 귀를 쫑긋거리고 있었다.
“단장? 무슨 문제라도 있나?”
할이 걱정스레 질문한 다음 순간, 권몽주가 그의 몸을 잡아 들었다.
“죄송하지만 여기서 바로 나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왜, 무슨 일인가?”
“…이곳을 향해 누군가 달려오고 있습니다. 발소리로 보아 숫자는 적어도 열 명 이상. 전부 초인으로 판단됩니다.”
그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권몽주는 당황하는 할을 철문 구멍 너머로 집어 던진 뒤, 커다란 불덩이를 만들어 반대편 공장 기계에 집어 던졌다.
부디, 저 불길이 자신들의 흔적을 지워주기를 바라면서.
화르륵! 곧이어 레일에 불이 옮겨붙는 걸 확인한 권몽주는 자신도 철문 구멍으로 몸을 비집고 들어갔다.
“업히십시오. 달리겠습니다.”
늙은 드워프가 허겁지겁 그의 등에 업힌 순간, 권몽주는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지하 통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