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266)
을 위한 세계는 없다-266화(266/817)
〈 266화 〉 비둘기 속의 고양이 (7)
* * *
***
시간을 조금 뒤로 돌려, 독화와 여명이 맞붙은 그 순간.
독화는 거대한 몸에 어울리지 않는 속도로 발을 뻗었다. 코트 사이로 튀어나온 두꺼운 종아리가 칼날처럼 여명의 목을 노렸다.
“스탈린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 지 10초도 안 지났다!”
여명은 다리를 향해 검을 휘두르며 대답했다.
“난 그 양반 얼굴도 본 적 없어.”
“하!”
직후, 검과 다리가 충돌했다. 유형화된 살기가 충돌하는 섬뜩한 소리가 뒤따르고, 마지막으로 총알이 쏟아졌다.
두두두두!
두 주가시빌리 몸에 구멍이 나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리를 벌린 뒤, 그제야 용병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용병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야, 이 병신들아! 쏘지 마! 아군이 맞는다!
근접 무기로 응전해!
포위! 포위하라고!
군대처럼 절도 있는 대응을 보여준 건 아니었지만, 주가시빌리가 뭔지도 모르는 용병들의 대응치고는 훌륭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야말로 주가시빌리가 가장 화려하게 날뛸 수 있는 상황이라는 점이었다.
상식적으로, 개인은 다수를 당해내지 못한다.
한 손으로 열 손 못 막는다는 격언처럼,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등이나 옆구리 같이 시야 바깥에서 오는 공격을 막는 건 불가능했으니까.
거기다 다수가 총을 들고 있다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주가시빌리는 그 상식을 뒤집는다. 방어는 필요 없다. 총알이 갈비뼈를 꿰뚫건, 칼날이 어깨에 처박히건 상관없이, 공격만 하면 됐다.
빠각!
여명은 바로 앞에서 권총을 겨누던 용병의 턱주가리를 칼등으로 후려쳤다.
곧이어, 바로 앞에서 동료가 쓰러지는 걸 본 용병이 분기탱천하며 여명의 등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살이 갈라지고 피가 흘렀지만, 여명은 개의치 않았다.
가슴을 찔리고, 목에 총알이 박히고, 등을 베이는 것 모두 무의미했다. 머리를 통째로 날려버리지 않는 이상, 주변을 가득 메운 살기가 몇 번이고 그를 되살려냈으므로.
“아니, 씨발… 이건 반칙 아니냐?”
칼을 쑤셨던 용병은 칼이 박힌 자리가 멀쩡히 재생되는 꼴을 보며 중얼거렸다. 직후, 그는 그대로 여명의 주먹에 얻어맞고 기절했다.
그리고 그가 쓰러진 자리로 또 다른 용병들이 밀고 들어왔다.
여명은 감각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향해 반격했다. 소리가 나면 주먹을 뻗었고, 총이 날아온 곳으로는 발을 휘둘렀다.
턱을 맞아 기절하는 놈, 팔다리가 부러져 후퇴하는 놈…
그렇게 수많은 용병들을 기절시키며 얼마나 지났을까?
격해진 전투 속에서 유형화된 살기는 더 진해질 수 없을 정도로 진해졌다.
씨발, 이 빨간 안개 좀 치워!
투시경으로도 안 뚫립니다!
용병들은 바로 옆에 있는 동료의 얼굴조차 보지 못해 우왕좌왕했다. 자칫하면 아군을 쏠 수 있는 상황.
초인이 아닌 놈은 부상자 챙겨서 밖으로 물러나!
그래도 짬밥이 어디가진 않는지, 용병들은 빠르게 판단을 내리고 후퇴를 시작했다.
자리를 지키는 건 마나로 주가시빌리를 쫓을 수 있는 초인들과 마법사뿐.
여명은 퉤 입에 고인 피를 뱉어낸 뒤 후퇴하는 용병들을 가만히 내버려 뒀다.
그리고 붉은 아지랑이 사이에 홀로 남아 잔뜩 긴장하고 있는 용병 마법사에게 달려들었다.
아니, 달려들려고 했다.
그런데 하필 그때 아지랑이를 꿰뚫는 굉음이 울렸다.
!!!
멀찍이 떨어져 있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인 폭발음.
‘누군가 수류탄을 깐 건가? 괜히 피해만 늘어날 텐데.’
여명은 마법사를 내버려 두고, 소리가 난 곳으로 방향을 돌렸다.
“응?”
한데, 폭발음의 근원은 수류탄이 아니라 독화와 어떤 초인 용병의 격돌이었다.
쩌엉 !
주먹과 군용 단검에 담긴 마나가 충돌하자, 아지랑이를 밀어낼 정도로 강렬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다른 용병들은 포위를 유지하는 게 고작일 정도로 격렬한 싸움.
지켜보는 용병 중 하나가 이를 물고 소리쳤다.
“마법사! 이럴 때 어디 있는 거야?! 당장 대장을 지원해!”
어디 용병단의 단장쯤 되는 인물인가?
여명은 다른 용병들의 뒤를 덮칠까 했으나, 독화와 단장의 싸움은 어느새 끝을 향하고 있었다.
사실, 처음부터 독화가 이름 모를 단장을 일방적으로 가지고 노는 싸움이었다. 결과는 뻔했다.
“안 돼!”
어느 용병의 새된 비명과 동시에, 독화가 군용 단검을 잡고 있던 용병단장의 팔목을 으스러트렸다.
그리고 그대로 자세가 무너진 단장의 머리를 향해 손날을 내려쳤…
그때, 여명이 뛰어내리며 독화의 머리를 차버렸다. 살기가 담긴 충격파가 터져 나오며 독화의 몸이 휘익 날아갔고, 여명은 착지하며 쓰러지는 용병단장의 몸을 받아냈다.
“이건 또… 뭔…?”
용병단장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여명을 올려다보며 눈을 껌뻑였다. 왜 자기를 구해줬냐는 표정이었다. 여명은 그의 목덜미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름은?”
“리, 리카르도…”
“리카르도, 부하들 전부 뒤로 물려라. 괜히 끼어들어서 사망 보상금 받지 말고.”
“잠깐… 뭐?”
여명은 대답하지 않고 그대로 리카르도를 뒤편으로 던져버렸다.
갑자기 날아온 대장을 받아낸 용병들이 당황한 표정을 짓건 말건, 여명은 몸을 털며 다가오는 독화를 바라봤다.
“…저걸 왜 살려 보내지? 설마, 여태껏 아무도 안 죽인 거냐?”
“용병 짓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굳이 죽기 살기로 싸울 필요 있나? 적당히 싸우면 그만이지.”
독화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주가시빌리의 입에서 나올만한 말은 아니군. 자연 발생한 주가시빌리라는 건 거짓말이었나?”
여명은 검기를 일으키며 대답했다.
“거참, 말 많네.”
“….”
독화는 복면 너머로 보일 정도로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그는 주먹을 들어 올리고, 양발을 살짝 벌린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질문은 이긴 다음에 하도록 하지.”
***
독화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사람은 땅을 박찼다.
여명은 먼저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우윳빛 검기에 휩싸인 검이 붉은 살기를 가르며 독화의 목을 노렸다.
독화는 날아오는 검을 보고도 겁을 먹긴커녕, 오히려 더욱 속도를 높여 여명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
팔꿈치와 검이 격돌하고,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펄럭였지만, 둘 중 누구도 밀려나지 않았다.
이 거리에서는 먼저 뒷걸음질 치는 쪽이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다는 본능적인 깨달음 때문이었다.
충격파가 지나가자마자, 동시에 어깨뼈가 움직였다. 재차 휘두른 검과 주먹이 부딪치고, 여명의 발이 녀석의 배에, 독화의 주먹이 그의 가슴에 처박혔다.
!
내장이 뒤흔들리는 충격. 두 사람은 똑같이 피를 토하면서도 공격을 이어 나갔다.
주먹, 발, 검, 손날 두 주가시빌리의 공방에는 자비도, 연민도 없었다. 둘은 영혼을 녹여버릴 것 같은 살기 속에서 주먹을 막아내고, 발차기를 흘려내고, 검에 찔리고, 손날에 베이고…
하나하나가 일반적인 초인을 죽음으로 몰고 가기에 충분한 공격이었으나, 두 사람은 주가시빌리였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완성된 주가시빌리 간의 싸움이었다. 영원히 싸움을 멈출 수 없는 수라도에 떨어진 영혼들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공방.
빠직
하지만 그때, 여명의 검에서 작은 균열이 일어났다. 평범한 합금으로 만든 검이 마나와 충격을 버티지 못한 것이다.
독화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칼날의 균열을 보자마자, 손날의 방향을 바꿔 여명의 검을 후려쳤다.
까앙!!압력을 버티지 못한 검은 쇳조각을 토하며 토막 났다.
오랜만에 검을 잃은 여명은 쌍욕을 삼키며 거리를 벌리려 했으나, 독화는 이미 땅을 박차고 있었다.
다음 순간, 둘 사이의 거리가 없어졌다. 주먹을 뻗기 전에 팔뚝이 먼저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
독화는 가속도를 이용해 그대로 무릎을 올려 쳤고, 여명은 반도 안 남은 칼을 휘둘렀다.
푸확! 무릎이 잘리며 피가 튀었으나, 다리를 통째로 잘라내기에는 길이가 부족했다.
그리고 녀석은 가속도가 붙은 상태 그대로 팔꿈치를 휘둘러 여명의 머리를 후려쳤다. 우그극 어금니가 박살 나는 소리가 두개골을 울렸다.
시야가 흐릿해졌지만, 여명은 입술을 씹어 정신줄을 붙잡았다.
그대로 주먹을 휘둘러 반격, 막힌다. 옆구리로 날아오는 손날, 막는다. 나도 무릎을 올려 친다. 막힌다.
다시 주먹, 붙잡히는 팔, 꺾인다. 우드득 부러지는 뼈, 재생하며 발차기, 까그극 갈비뼈를 박살 낸다.
피가 튄다. 재생된다. 부러진다. 재생된다.
고통을 따라 신경이 비명을 지르고, 뇌가 하얗게 탈색됐다. 사지를 움직이는 건 붉은 살기와 투쟁심뿐.
그렇게 다시 주먹으로, 무릎으로, 발꿈치로, 그리고…
박치기.
쿵!
이마와 이마를 부딪친 순간, 둘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리고 충격파에 휩쓸린 아지랑이들이 다시 잠잠해질 때쯤, 독화와 여명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뒤로 한 걸음씩 물러났다.
“두개골, 두께는, 네가… 우위군.”
뇌진탕이 온 건지, 독화의 혓바닥이 꼬여 있었다. 퉤 여명은 부러진 이빨이 섞인 피를 내뱉으며 대답했다.
“…근접 격투는 동급이고.”
그러자 눈 몇 번 깜빡일 시간 만에 상처를 재생한 독화가 헛웃음을 흘렸다.
“동급이라니. 검이 부러지지 않았으면 이겼을 것 같나?”
여명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쪽이 내 생각보다 훨씬 강해서… 순수하게 주가시빌리와 무술만으로 이기려면 며칠은 걸리겠어.”
조금 전까지 주먹을 겨룬 상대만이 느낄 수 있는 존중이 담긴 말투.
독화는 팔짱을 끼며 대답했다.
“허어, 숨겨둔 수가 더 있나? 그러면 지금이라도 꺼내 봐라. 못 쓰고 죽으면 그보다 억울한 것도 없으니.”
허세인지, 아니면 단순히 정정당당한 승부를 바라는 건지 알 수 없었으나, 독화는 달려들지 않고 진짜로 여명에게 시간을 줬다.
‘파순도 그렇고, 마그두도 그렇고 이 자식들은 진짜…’
여명은 슬쩍 본사 빌딩과 아지랑이 바깥으로 후퇴한 용병들을 확인한 뒤, 다시 독화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더 시간 끌지 않고, 최대한 빨리 끝내자. 생각을 마친 여명은 곧바로 손을 쥐어 인벤토리에서 블라디미르의 기관단총을 꺼냈다.
“…KGB?”
마나 메탈로 코팅된 총을 알아본 독화가 멍한 표정을 지었을 땐, 이미 그의 총이 불을 뿜기 시작한 뒤였다.
드르르르륵!!
수십 발의 마탄이 아지랑이를 뚫고 독화를 덮쳤다. 녀석은 팔뚝에 살기와 마나를 모은 뒤, 팔뚝으로 머리를 보호했다.
정성적이고 완벽한 방어였다. 수십 발의 총알이 그의 몸을 훑고 지나갔지만, 주가시빌리의 재생력은 순식간에 상처를 회복했으니까.
하지만…
‘일부러 총알을 흩뿌렸다?’
엉성하다 못해 허접한 사격술을 본 독화는 즉시 다음 공격에 대비했다.
‘다음은 뭐냐. 수류탄? 샷건? KGB라면 촉수가 날아올지도 몰…’
그의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독화의 몸이 기우뚱 기울어졌다. 오른 다리가 통째로 잘려 나간 탓이었다.
주가시빌리라도 전부 재생하려면 몇 초는 걸리는 중상.
그렇게 균형이 무너진 그 짧은 순간, 여명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휘둘러 그의 사지를 차례대로 토막 냈다.
보이지 않는 검? 뒤늦게 독화가 상황을 파악했지만, 너무 늦은 깨달음이었다. 그는 문자 그대로 통나무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독화는 이제 막 재생된 오른 다리를 이용해 거리를 벌리려 했지만, 여명이 쓰러진 그의 이마에 총구를 겨누는 게 조금 더 빨랐다.
여명의 손에 들린 총은 짧은 더블 배럴 샷건 아래 총구가 하나 더 뚫려 있는 특이한 총이었는데, 그 총이 무엇인지 알아본 독화는 한숨을 쉬었다.
“KGB의 컴비네이션 건…”
“이 총이 뭘 할 수 있는지 안다면 이야기가 빠르겠군.”
컴비네이션 건의 세 번째 총구에 장전된 총알은킴 필비가 여명을 죽이기 위해 준비한 재생 억제 탄이었다. 주가시빌리라도 심장이나 머리에 맞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총알.
“마나 메탈 코팅 총, 투명 마법이 걸린 검, 그리고 컴비네이션 건까지…”
독화는 어느새 재생된 팔을 머리 위로 들며 말했다.
“설마 했는데… 너는 KGB 쪽에서 키운 소련의 계승자인가? 드워프들을 습격한 건, 소련이 돌아왔음을 알리기 위해서고?”
“….”
여명은 그의 상상력(?)을 칭찬하는 대신, 총구로 그의 이마를 꾹 눌렀다.
“질문은 내가 한다.”
“뭐… 하고 싶으면 해라. 나도 이기면 질문이나 하려고 했으니.”
“….”
왜 이렇게 고분고분하지? 여명은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죽어도 입을 열지 않겠다! 같은 걸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저항할 거라 예상했는데…
그때, 독화가 덧붙였다.
“되도록 빨리 질문하는 게 좋을 거다. 시간이 별로 없어.”
“…뭐?”
“1분 정도 남았군.”
여명은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는 대신, 재빨리 질문부터 꺼냈다.
“스탈린에게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붉은 별의 다섯 꼭짓점이 대체 뭐냐?”
“….”
독화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스탈린이란 단어 때문인지, 아니면 다섯 꼭짓점이란 단어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잠시 아지랑이 너머, 시카고 차원문을 바라봤다가, 푸념하듯 말했다.
“킴 필비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나 보군. 너도 결국 KGB의 꼭두각시…”
“잡소리 말고 대답이나 해.”
독화는 혀로 입술을 핥은 뒤,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다섯 꼭짓점은 어떤 예언에서 나온 말이다. 그것도 미국 정부가 꽁꽁 숨기고 있던 예언이었지.”
“…예언?”
“소련의 유산을 꽃 피운 다섯 명이 모이면 별로 향하는 길이 열릴지니, 스탈린은 크렘린에서 기다리고 있다…”
“뭐?”
이건 또 무슨 엿 같은 소리야? 여명이 설명을 요구하기 전에, 독화가 계속 말했다.
“이 예언의 가장 정석적인 해석은 베리야의 해석이다. 소련의 기술을 극한까지 익힌 다섯 초인이 크렘린에 모이면, 스탈린이 실종된 차원으로 향하는 차원문이 열린다더군.”
“…다섯 명의 초인? 그 정도는 소련이 지금도 충분히 모을 수 있을 텐데?”
“소련의 기술을 극한까지 익혀야 한다는 조건이 달리면 이야기가 다르지.”
“….”
“원래부터 정점에 있던 베리야와 데메론드가 두 자리를 차지하겠지만, 나머지 셋이 문제다. 이미 몰락한 소련의 기술을 누가 익히겠나? 주가시빌리를 연구하기만 해도 모스크바 정부가 암살자를 보내는 판인데.”
그 정도였어? 주가시빌리를 대놓고 쓴 적 없는 여명은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 문뜩, 독화의 말에서 이상한 점을 찾아냈다.
‘…왜 베리야가 살아있는 것처럼 말하지?’
스탈린의 오른팔, 최초이자 최후의 KGB 국장이 아직도 살아있을 리… 아니, 굳이 따지자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당장 킴 필비만해도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 아니었던가?
거기까지 생각을 이어간 여명은 더 고민하지 않고 그냥 대놓고 물어봤다.
“…베리야가 살아있나?”
그러자 독화는 뭐 그런 질문을 하냐는 듯 어이없는 표정으로 여명을 올려다봤다.
“그럼 죽었겠나? 발터나 바실리도 아니고… 그가 문자 그대로 잡아먹은 흡혈귀가 몇 마리인데, 당연히 살아있겠지.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
다음 순간, 여명은 뒤늦은 깨달음에 입을 다물었다.
붉은 별의 다섯 꼭짓점.
베리야와 데메론드가 두 자리를 차지했다면, 나머지 자리에 올라설 사람들은 명확했다. 주가시빌리의 살기에 미치지 않고 온전히 살기를 이용할 수 있는 세 명.
차원문 너머의 동궁정백, 눈앞에 있는 독화, 그리고…
“…나.”
안타깝게도, 그 깨달음이 질문으로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여명이 무어라 말하려는 순간, 땅에 묻혀있던 무언가가 마나를 내뿜기 시작했으므로.
혐오스러운, 그리고 동시에 익숙한 마나를 느낀 여명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아카데미에서 플레이어가 불러낼 때 사용했던 바로 그것.
타락석의 마나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