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278)
을 위한 세계는 없다-278화(278/817)
〈 278화 〉 꿈의 끝, 현실의 일.
* * *
사람 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기고, 동종 업계 고객 응대 매뉴얼은 원래 비슷한 법이다.
『다섯 신 교단과 지구 종교의 교리가 유사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전대 성녀의 검열된 대답.』
***
아야톨라 혐오스러운 지구의 언어가 아닌, 종말 교단의 언어로 ‘이름을 버린 자들’의 일원이 되는 순간.
종말은 이름과 성씨를 버린 자에게 두 개의 힘을 하사하신다.
권능과 천벌.
이름 대신 종말을 퍼트리니 권능이요, 성씨 대신 손으로 종말을 휘두르기에 천벌이라 불리는 힘.
그중 꿈을 흘리는 자가 하사받은 건 꿈을 조종하는 악몽의 권능과 공간을 비트는 단절의 천벌이었다.
두 기술 모두 하나만으로도 능히 종말을 퍼트릴만한 힘이었다. 기나긴 세월 동안, 지구와 아샤 두 곳을 모두 뒤져도 이보다 강한 무술과 마법은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더 말해 무엇할까?
그렇기에.
검게 물드는 여명의 손을 본 아야톨라는 녀석이 단절의 천벌을 도둑질해갔으리라고 지레짐작했다.
일견즉해가 종말의 천벌마저 훔칠 수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지만… 상대는 바깥에서 온 자.
그들은 운명에 묶여 있되 인과에서 벗어난 자들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미 꿈의 권능을 훔쳐 어쭙잖게 꿈을 조작하고 있지 않나.
“…그러나 훔친 힘에는 한계가 있는 법.”
기껏해야 조금 전 그의 천벌을 빗나가게 한 것 정도가 녀석의 한계이리라.
그런 야아톨라의 판단은 상식적이었다. 그리고 곧 이어진 대응 또한 상식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는 주먹을 쥔 여명의 검은 손을 향해 똑같이 손을 뻗고, 단절의 천벌을 사용했다.
깡 마른 아야톨라의 손바닥이 쥐어지는 것과 동시에, 여명의 주먹은
까앙!
그의 가면을 후려쳤다. 주먹에 담긴 힘이 얼마나 큰지, 아야톨라는 그대로 균형을 잃고 날아가 바닥을 굴렀다.
‘뭐? 지금 대체 무슨 일이’
아야톨라의 생각은 그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또다시 여명의 주먹이 그의 가면을 후려쳤으니까.
!!!
가면을 울리는 충격을 따라, 두개골이 흔들린다.
벽으로 날아가는 내내 시야가 까맣게 암전되고, 귀에서는 삐이 이명이 들려왔다.뭐지? 대체 무엇에 당한 거냐.
쿵!
TV에 충돌한 아야톨라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즉시 이어지는 공격을 막기 위해 꿈을 조작하려다가… 움찔, 움직이던 손을 멈췄다.
“…?”
여명은 처음 주먹을 쥐던 그 자리에 그대로 서있었다. 마치,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은 것처럼.
뭐지? 환상인가? 아니면 백보신권처럼 공간을 넘어 충격을 가하는 무술? 그것도 아니면 마법?
아니, 그가 아는 무술과 마법 중에서 이런 공격을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혼란스러워하는 아야톨라를 향해, 여명이 손을 뻗으며 대답했다.
“이런 짓.”
여명이 주먹을 쥐는 것과 동시에, 아야톨라는 세상의 빛이 사라지는 감각을 느꼈다.
TV 화면의 빛으로 번쩍이던 벽도, 두 사람이 흘린 핏자국으로 어지러웠던 바닥도 남지 않았다.
보이는 건 오직 하나, 갑작스레 거대해지는… 아니, 가까워지는 주먹 뿐.
아야톨라는 그제야 여명이 자신에게 달려드는 게 아니라, 자신이 여명을 향해 끌려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건 너무 늦은 깨달음이었다.
쩌엉 !
세 번째 주먹은 아야톨라의 가슴을 강타했다. 갈비뼈가 부러지며 그의 가슴이 움푹 파이고, 폐가 찌그러졌다. 그리고 아직도 남은 충격은 그대로 그의 몸을 날려버렸다.
이번에도 벽에 충돌한 아야톨라는, 가면 아래로 주르륵 피를 흘리며 말했다.
“인력?力… 끌어당기는 힘…? 이 무슨… 그딴 기술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여명은 냉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당연하지. 이건 내가 방금 만든 무술이니까.”
“그 짧은 사이에 그만한 진의를 깨닫고, 무술까지 만들었다고? 그딴 게 가능할 리가…”
말끝을 흐리던 아야톨라는 뭔가를 깨달은 듯 주먹을 꽉 쥐었다. 직후, 그는 마치 먹이를 확인하는 맹수처럼 여명의 위아래를 훑었다.
“…꿈속이라 가능했군.”
여명은 부정하지 않았다. 아야톨라는 사납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꿈을 이용해도 그만한 무술을 그냥 만들 수 있을 리 없다… 무술은 실전 없이 완성되지 않…”
정확한 해석을 내뱉던 아야톨라는 말끝을 흐렸다. 이 해석의 결론은 하나뿐이었으니까.
“나와 나의 꿈을… 그 무술을 위한 양분으로 삼겠다…?”
“눈치 좋네.”
즉답. 꿈을 흘리는 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내게 너무 맞아서 돌아버린 것이냐? 너희는 나와 타락석을 막기 위해 이 꿈으로 온 것일 터. 시간은 나의 편이다. 네가 그깟 무술에 매달리는 사이 타락석의 오염이 끝나면…”
“그럴 일 없어.”
“…?”
“난 널 이용해 무술도 완성하고, 타락석도 막을 거다.”
교만하다 못해 광기마저 느껴지는 말이었다. 여명은 또다시 손을 검게 물들이며 미소 지었다.
“내기해볼까? 서로 목숨을 걸고.”
“….”
아야톨라는 대답 대신 조용히 가면 위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여태껏 무슨 짓을 해도 흠집조차 나지 않았던 가면이 스스로 꿈틀거리더니, 갑자기 촤악 크기를 키워 아야톨라의 머리를 전부 뒤덮었다.
단순히 얼굴을 가리던 가면에서 머리를 통째로 보호하는 투구가 된 모습.
아니, 투구의 구멍이란 구멍마다 피가 철철 흘러내리는 걸 보니, 가면이 아예 머리를 대체한 것처럼 보였다.
“이건 브라우닝에게 쓸 생각이었지만… 내 기꺼이 너의 내기에 어울려주마.”
이제는 인간 같지도 않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녀석은, 그대로 자신의 몸을 향해 주문을 사용했다.
“바친다.”
아야톨라의 주문을 따라, 황금가면이 비명을 내뿜는다.
꺄아아아아아!!!
종말 교단의 성물과 고위 사제의 이중주.
끔찍하게 뒤틀리는 마나를 따라, 아야톨라의 몸에 온갖 마법들이 겹쳐지기 시작한다.
강력한 힘, 민첩 증강, 강철 피부, 그리고… 악몽의 형상.
곧이어 아야톨라의 몸 곳곳에서 팔과 다리, 심지어 촉수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뼈가 늘어나고, 살이 부풀어 오르는 그 모습은 그 자체로 악몽의 현현이나 다름없었으나, 여명은 뒷짐을 진 채 녀석의 변신을 지켜만 봤다.
아야톨라가 무슨 짓을 하건, 그는 처음부터 막을 생각 없었다. 아니, 오히려 바라는 바였다.
이런 기회는 쉽게 오지 않으니까.
꿈속에서 일대일로, 그것도 이렇게 강대한 적과 싸울 수 있다니. 이제 막 싹을 틔운 그의 진의로 만든 무술을 완성하기에 이만한 환경도 없었다.
그래서, 타락석의 오염이 터지는 시간마저 담보로 걸었다.
브라우닝을 비롯해 타락석을 막으려던 사람들이 보면 미친 짓이라고 손가락질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쩌겠는가?
그는 맹자가 아니었다. 맹자가 될 생각도 없었다.
여명은 물고기와 곰 발바닥 중 하나만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의와 생명 모두 그가 원하는 바라면, 모두 손에 넣을 것이다.
설사 현실이 그를 막을지라도, 그렇게 살아가리라.
***
…여명의 짧은 다짐이 막 끝나는 순간.
“ !!!!!!”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고함과 함께 꿈을 흘리는 자의 변신이 끝났다.
둘로 갈라진 몸통, 여섯 개의 다리, 여덟 개의 팔, 몸 곳곳에 박힌 촉수와 눈동자까지.
역겹기 그지없는 녀석의 몸에서 인간다운 흔적은 두 몸통 사이에 박혀 있는 황금가면이 전부였다.
여명은 뒷짐을 풀고, 그 황금가면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시작할까?”
[이미 시작했다.]아야톨라가 그렇게 말한 순간, 여명의 시야에 닿는 모든 TV 화면에서 녀석과 똑같은 괴물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시작은 물량인가.
여명은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채 빈손을 들었다. 검도, 화산쇄설도, 마법도, 없었다.
사용하는 건 오직 하나, 아직 이름조차 붙이지 못한 그의 무술뿐.
생각을 따라 진의가, 진의를 따라 마나가, 마나를 따라 꿈이 움직인다.
사아아아아
오직 여명에게만 들리는 소리와 동시에 손이 검게 물들고, 마나가 수백 수천 번의 파문을 일으킨다.
파양결과 닮았으나, 그것은 파도가 아니었다.
파문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작디작은 구멍 하나.
그 구멍을 손에 올린 여명은 몰려드는 괴물들을 향해 담담히 주먹을 쥐었다.
그 이상 손을 움직일 필요도, 발을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몰려들던 괴물들은 여명의 주먹으로 끌려왔다. 날아오는 내내 서로 부딪히고, 부대끼고, 비틀리고, 이윽고 압축되었다.
부러지는 뼈, 으깨지는 살, 터져 나오는 비명.
꺄아아아아아!!!
이윽고 여명의 앞에 도달했을 때, 남은 건 형체를 잃은 살덩이들뿐이었다.
황금 가면의 본체가 호시탐탐 그의 틈을 노렸지만, 여명은 개의치 않았다. 여태껏 잠들어 있던 진의가 그를 부추기고 있는 탓이었다.
그의 재능, 그의 각오, 그의 욕망. 세 가지가 하나로 이어지며 혈관을 타고 흘렀다. 그것은 마치 마약처럼 여명의 정신을 자극했다.
더, 더, 더!
현실이란 제약을 벗어 던진 꿈속에서, 여명은 주먹을 쥐었다. 곧바로 그가 원하는 모든 것들이 그에게 끌려왔다.
악몽의 괴물들은 끌려오는 과정에서 서로를 짓밟고, 으깨고, 압박하며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갔다.
끌어당기는 힘에 저항하는 건 황금가면을 쓴 본체뿐.
분신체들이 죽어 나가는 걸 조용히 지켜보던 녀석은, 역겨운 걸 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네 진의가 무엇인지, 예상이 간다.]“그래?”
[감당하지 못할 진의를 받아들였구나. 데메론드가 그러했듯이.]여명이 무어라 대답하기 전에, 녀석이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쓰레기 같은 분신체들과 달리 녀석은 으깨지지도, 박살나지도 않았다.
오히려 다른 놈들을 짓밟고, 여명의 인력을 이용해 더욱 빨리 가속 하더니
푸확!
그대로 세 개의 팔을 휘둘러 여명의 오른 손목을 잘라냈다.
허공으로 피와 잘린 주먹이 떠오르고, 여명의 무술이 멈췄다.
아직 오른손으로밖에 펼치지 못하는 걸 눈치챈 아야톨라의 일격.
그렇게 무술을 멈춘 틈으로 파고든 아야톨라는 팔과 다리, 그리고 촉수를 연달아 휘둘렀다. 심지어 몸에서 돋아난 촉수 중에서는 여명을 향해 마법을 쏘아내는 것들도 있었다.
여명은 피하는 것 외에는 변변찮은 반격도 하지 못했다. 주가시빌리도 사용하지 않는 탓에 재생은 더뎠고, 비각술을 펼치지 않은 탓에 상처는 계속 늘어났다.
누가 봐도 수세에 몰린 모습이었으나… 여명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뭐가 그리 웃기지?]아야톨라는 그 불길한 웃음을 보며 물었다. 여명은 촉수에서 쏟아지는 광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내가 정말로 오른손으로만 끌어당길 수 있는 걸까?”
[….]“나는 그냥 몸만 끌어당기는 걸까? 다른 건?”
아야톨라는 그제야, 이상함을 느꼈다. 왜 아무 무술도 안 쓰는데 내 공격을 버티고 있는 거지?
의문의 답은 금세 찾을 수 있었다.
그의 몸에 가득하던 마나가 실시간으로 줄어드는 느낌. 그것이 문제였다.
현실이라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나, 이곳은 꿈이었다. 무한한 꿈의 마나가 줄어드는 게 느껴진다고?
[설마 마나를]아야톨라가 질문을 내뱉기도 전에, 여명이 웃음을 터트렸다. 여태껏 보여준 적 없는 웃음.
그리고 그 웃음소리의 끝자락에서, 여명은 왼손 주먹을 쥐었다.
[이건 말도 안 된다! 바깥에서 온 자라도 이런 것을 휘두를 수 있을 리 없!]몰아치던 아야톨라의 몸이 왼손을 향해 쑤욱 쓸려나간 바로 다음 순간.
여명의 주먹이 그의 가슴 한가운데, 황금 가면을 강타했다.
!!!!
여태껏 휘두르던 주먹의 위력을 한참이나 초월한 위력.
꿈을 흘리는 자의 살이 뭉개지는 것과 동시에, 가면 정중앙에 쩌적 금이 갔다.여태껏 흠집조차 나지 않았던 가면에 처음으로 생긴 균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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