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3)
을 위한 세계는 없다-3화(3/817)
〈 3화 〉 재수 없는 하루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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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기울이자, 발소리가 더욱더 선명하게 들려왔다. 두꺼운 신발을 신고 있는 걸까? 발소리는 묵직했다.
발소리가 조금 더 가까워지자, 쇠똥구리는 발소리가 하나가 아니라 두 개라는 걸 깨달았다.
“아, 드디어 끝났네.”
예상대로, 어둠 속에서 두 명의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익숙한 방독면, 익숙한 복장…같은 청소부 길드에 소속된 청소부들이 틀림없었다.
“시발, 하다 하다 청소부가 청소부를 치우는 날도 있네.”
두 사람은 그들과 똑같은 청소부 복장의 시체를 질질 끌어오고 있었다. 각자 다리 한쪽씩 잡고 시체를 끄는 바람에, 그들이 지나온 자리에는 기다란 피의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시체를 이곳으로 끌고 온 게 저놈들일까?
쇠똥구리는 숨을 죽인 채, 녀석들의 시야 바깥으로 움직였다.
그가 아슬아슬하게 청소부들의 시야에서 벗어날 때쯤, 두 청소부는 끌고 온 시체를 시체 더미 사이로 내던졌다.
철퍼덕! 쌓인 시체 사이로 피와 오물이 튀었다. 죽은 자에 대한 어떠한 예우도 없는 행동이었다.
쇠똥구리는 눈살을 찌푸리고 녀석들의 시야 바깥으로 도망쳤다.그는 플레이어가 자신을 죽이기 전에 했던 말… 윗대가리가 그들을 팔아먹었다는 이야기를 잊지 않았다.
그게 사실이라면, 저 청소부들은 그의 잠재적인 적이었다.
‘…숨어있다가녀석들이 나갈 때 몰래 뒤를 밟아서 이곳을 벗어나자.’
쇠똥구리가 탈출 계획을 세우는 사이, 두 청소부가 손전등을 켜고 시체 더미로 다가왔다. 그들은 이리저리 손전등을 비추며 시체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쇠똥구리가 숨어있는 방향이었다.
‘설마, 들킨 건가?’
다행히 그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두 청소부는 아슬아슬하게 쇠똥구리가 보이지 않는 거리에 서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야, 시간 좀 남지 않냐? 가볍게 서리 한 번?”
“서리? 그… 뭐, 대충 40분 정도 남긴 했는데.”
“임마, 특근 나온 건데 뭐 하나는 건져가야지.”
서리란 단어를 듣자마자, 쇠똥구리는 구역질을 참았다.
서리. 그건 시체에서 돈 될 만한 걸 털자는 청소부들만의 은어였다.
‘서리는 무슨, 역겨운 놈들’
그건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용서 받을 수 없는 더러운 짓이었다.
이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서리라니? 별것 아닌 척, 가벼운 일인 척하기 위해 붙인 위선적인 이름 아닌가.
그 증거로, 청소부가 아닌 사람들은 서리를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구더기짓.
몇몇 더러운 청소부들의 구더기짓 때문에, 청소부의 이미지는 날로 나빠지고 있었다. 생전, 작업 반장님과 동료들은 절대 서리를 하지 않았다.그들은 청소부지, 구더기가 아니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저 두 놈은 구더기였다.
죽은 자를 존중할 줄도 모르고, 돈에 눈이 멀어 마지막 인간성조차 포기한 구더기들.
‘저런 놈들도 버젓이 살아 있는데, 어째서 우리는….’
쇠똥구리는 시체 사이를 기웃거리는 청소부들을 보며 아랫 입술을 씹었다. 죽은 동료들을 생각하자마자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참아야 할 때다. 참자, 다른 건 이곳을 나간 뒤에 생각하자. 도망, 복수… 앞으로 무엇을 하던, 지금은 숨어있어야 했다.
쇠똥구리가 그렇게 인내를 되새기며 어둠 속에 몸을 숨기는 사이, 녀석들은 시체 사이를 요리조리 누비며 돈이 될 물건을 찾아내기시작했다.
“어우, 이 양아치 새끼들. 어떻게 금니 하나가 없냐.”
“돈 있는 놈이 인천에서 양아치 짓 하겠냐? 능력 있으면 개성이나 부산에 갔겠지. 이 망할 도시에 모이는 건 떨거지들하고 시체뿐이야.”
“그도 그렇다만.”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지, 녀석들은 골라낸 시체를 능숙하게 털었다. 입을 벌려 금니를 뽑고, 옷을 벗겨 주머니를 털고…
어느새, 녀석들은 동료들의 시체가 있는 곳까지 접근했다.
‘제발, 그냥 지나가.’
쇠똥구리가 속으로 애원했지만, 녀석들은 동료들의 시체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저 역겨운 새끼들은, 청소부의 옷을 입은 구더기들은.
“아따, 이 양반, 가실 때도 깨끗하게 가셨네.”
작업반장님의 시체 앞에 서서, 손전등을 비췄다. 처참하게 짓밟힌 시체가 백일하에 드러났지만, 녀석들에겐 어떠한 예의나 존중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시체를 발로 툭툭 건드리며, 비웃음 섞인 조롱을 내뱉었다.
“쯧쯧, 서리하지 말라고 그렇게 지랄을 하시더니. 어찌 이리 가셨소. 완전히 다진 고기가 됐네.”
“지랄하니까 갔지. 이 사람 팀 전체가 윗선에 찍힌 거 모르냐?”
“윗선에? 그래도 일은 잘하는 양반이었는데, 어쩌다?”
“소장이 시체 몇 구 빼 오랬더니 싫다고 들이박았잖아. 뭐, 죽은 자를 모욕하면 안 된다나?”
“이야, 이거 아주 대단한 분이셨네. 본인이 모르닥 교단 사제라도 된 줄 아셨나? 모욕은 무슨, 시체는 시체지.”
그 꼴을 지켜보던 쇠똥구리는 이를 꽉 깨물었다. 피가 차갑게 식는데, 머리는 터질 것처럼 들끓었다.
“그러고 보니 이 양반, 모아둔 돈 좀 있지 않았나? 가족도 없었잖아?”
“그거 다 소장님의 주머니로 들어갈 돈이니까 눈독 들이지 마라. 너도 여기에 시체로 눕고 싶냐?”
“씁, 그럼 다른 놈들은? 이놈들 팀에 그 누구냐… 덕배? 덕배 그놈 큼지막한 금반지 끼고 다니지 않았나?”
“금반지?”
덕배 아저씨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쇠똥구리는 눈을 감았다.
녀석들이 동료들의 시체를 헤집고, 덕배 아재의 시체를 모욕하는 걸 보면, 더는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보지 말자. 보지 말고 참자…참아야 해.’
쇠똥구리는 몸을 웅크리고, 마음속으로 천사를 찾았다.
천사님, 천사님. 어째서입니까.
어째서 사람을 경험치로 보는 미친놈이 당당히 세상을 활보하는 겁니까.
어째서 부하를 25만 원에 팔아먹는 개 같은 소장 놈 대신, 저의 동료들이 죽어야 했습니까.
어째서 제 동료들은 죽은 뒤에도 모욕당하고, 조롱당해야 합니까.
천사님, 차원문 너머에 있다는 신님, 부디 대답해 주십시오.
정말로 선이 존재한다면, 이 세상은 왜 이렇게나 불합리하고 잔인합니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오, 찾았다. 금반지!”
“이야, 드디어 돈 되는 것 좀 건졌네.”
필사적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던 쇠똥구리의 귓가로, 신이 난 녀석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쇠똥구리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들었다.
‘…아.’
녀석들이 덕배 아저씨 손가락을 비틀어 금반지를 빼내고, 시체를 그대로 집어 던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철퍼덕! 내동댕이쳐진 덕배 아저씨의 상반신이 바닥을 굴렀다. 아주 짧은 순간, 쇠똥구리는 구르는 아저씨의 눈과 마주쳤다.
덕배 아저씨의 눈에선,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순간, 쇠똥구리 안에서 무언가가 끊어졌다.
“이 새낀 결혼도 못 한 게 금반지는 왜 끼고 다녔데?”
“우리한테 서리 당하려고?”
“으흐흐, 그러네. 우리 주머니 채워주려고 끼고 다닌 거였네.”
어둠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른 채, 녀석들은 희희낙락거리며 다른 시체들을 뒤졌다.
“야, 시간 별로 안 남았다. 빨리 끝내고 가자.”
“엘프도 있다고 하지 않았나? 넌 가서 엘프 좀 살펴봐, 난 청소부 몇 놈 더 뒤져볼 테니까.”
덕배 아재의 금반지를 뺀 녀석은 쇠똥구리 쪽으로 다가왔고, 다른 녀석은 엘프의 시체 쪽으로 멀찍이 떨어졌다.
쇠똥구리는 본능적으로 지금이 기회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조용히, 피에 젖은 작업복을 벗었다.
질기고 튼튼하다는 것을 빼면 아무 장점도 없는 싸구려 작업복이었다.
하지만 이 순간, 쇠똥구리에겐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는 작업복을 돌돌 말아, 기다란 밧줄처럼 만들었다.
돌돌 말린 옷을 양손에 쥐고, 천천히… 발소리를 죽인 채 금반지를 챙긴 녀석의 뒤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뭐 하나만 더 건질 거 없… 케헥!”
돌돌 말린 작업복으로 녀석의 목을 휘감고, 목을 졸랐다.절대 빠져나갈 수 없도록, 양팔에 힘을 꽉 주고 양다리로 몸통을 붙잡았다.
“켁, 크, 컥.”
기습당한 녀석은 목을 붙잡고 발버둥 쳤다. 몸을 비틀고, 발길질하고, 팔을 휘둘렀다.
그러나 모두 헛수고였다.
죽은 자를 모욕하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비열한 구더기 새끼는, 올가미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의 몸이 축 늘어졌다. 쇠똥구리는 발치에 쓰러진 구더기를 보며 숨을 삼켰다.
‘아.’
손에 힘이 빠지고, 머릿속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살인… 그래, 이건 살인이었다.
‘내가 사람을 죽였어.’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어째서인지,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성취감도, 죄책감도 없었다.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듯, 구더기가 눈에 보이면 밟아 죽이듯… 당연한 일을 했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살인은 살인이었다. 쇠똥구리는 살인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자신에게 역으로 충격받았다.
‘어째서 아무렇지도 않은 거지?’
그때 갑자기, 엘프의 시체를 서리하러 간 녀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대박 났어! 여기, 엘프 시체에 목걸이가 있어!”
동료를 부르던 녀석은 자연스럽게 이쪽으로손전등을비췄고…
“어, 시발…?”
손전등 불빛 아래, 구더기의 목을 졸라 죽인 쇠똥구리의 모습이 드러났다.
빛을 본 쇠똥구리가 고개를 돌리자,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했던가? 두 사람 모두 방독면을 썼음에도, 서로가 무슨 생각을 떠올리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죽인다.
이런 미친.
아주 짧은 침묵이 둘 사이를 메웠다가, 사라졌다.
먼저 움직인 건 구더기 놈이었다. 녀석은 망설임 없이 등을 돌리고 달렸다. 쇠똥구리는 죽은 구더기를 내던지고 녀석의 뒤를 쫓았다.
추적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아악, 젠장!”
우당탕! 녀석은 조금 전 그가 내던진 시체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죽은 시체는 억울함을 모르고, 하늘은 침묵하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이 저지른 모욕의 대가를 돌려받았다.
“이런 젠장! 오지 마! 오지 말라고!”
녀석이 시체에서 흘러나온 오물 위에서 허둥거리는 사이, 쇠똥구리가 녀석을 덮쳤다.
구더기 녀석은 쇠똥구리에게 깔리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다. 하지만 고지를 선점당한 그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쇠똥구리가 녀석의 상체에 올라타고, 무릎으로 어깨와 명치 사이를 짓눌렀다.
“잠, 커헉, 잠깐, 악!”
녀석의 고지를 점령한 순간, 쇠똥구리는 바로 주먹을 내려찍었다. 사람을 두들겨 팬다는 망설임은 없었다. 감히 작업반장님을 비웃고, 덕배 아재의 시체를 모욕한 놈이었다.
“사, 살려 줘! 제발, 제, 컥! 그만!”
녀석은 필사적으로 외치며 손을 휘둘렀지만, 주먹은 멈추지 않았다.
퍽, 퍽, 퍽! 방독면이 찢어지고, 피가 튀고, 마지막으로 무언가 박살 나는 소리가 이어졌다. 쇠똥구리는 원초적인 폭력과 본능에 몸을 내던졌다.
지금 내려치는 게 누군가의 머리인지, 아니면 그동안 억누르고 있던 무언가인지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쇠똥구리는 더 이상 주먹을 휘두를 수 없을 때까지 주먹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가 주먹을 멈춘 그 순간…
『드디어.』
‘그것’이 입을 열었다.
『선을 넘었구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