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309)
을 위한 세계는 없다-309화(309/817)
***
햇살이 드리우는 1학년 여자 기숙사.
살짝 열린 방문 너머로 풋풋한 세제 향기와 소문을 퍼트리는 동급생들의 목소리가 울리는 시간에.
세티는 조용히 노트를 덮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그녀의 책상 위에는 밤새도록 탐독한 작가의 노트와 노트를 분석한 종이가 쌓여 있었다.
처음에는 기연의 위치나 외워둘까 하는 생각으로 훑어본 건데, 기연 위치를 파악할수록 묘한 감각이 그녀를 붙잡았다.
‘뭔가 이상해.’
중앙, 동, 남, 북… 아카데미 네 개의 섬마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퍼진 기연들.
그 기연들은 모두 의도적으로 어떤 ‘루트’를 유도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3학년은 도서관에서 낡은 일기장을 시작으로 학교와 마법 학부를 거쳐 해저터널로 가도록 유도한다.
2학년은 창고에 버려진 마법 반지를 시작으로 해저터널로, 외부인이나 졸업생이 활동하는 북쪽 섬 또한 하수도를 거쳐 해저터널로…
예외가 있다면, 1학년뿐.
1학년의 기연들은 어떠한 규칙도 없이 흩어져 있었다. 마치 아는 사람만 알아서 찾아 먹으라는 듯이.
‘우연? 아니면 누군가 의도한 건가?’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세티는 밤새 기연을 정리하고 지도 위에 연걸선을 그리고 또 그렸다. 이윽고 그녀가 내린 결론은…
‘누군가 의도적으로 기연을 퍼트렸다.’
세티가 그렇게 확신한 이유는 해저터널로 가는 길을 지키는 하수도의 용이었다.
네 개의 섬, 네 개의 루트. 하지만 결국 용과 만날 수밖에 없는 길이라니.
악의 어린 함정인지, 아니면 미래의 누군가를 위한 안배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어느 쪽이건 상관없었다.
해저터널로 가는 길을 알고 있는 이상, 의미 없는 미끼 기연들을 다 뛰어넘고 바로 해저터널로 향하면 그만이었으니까.
거기에 더해 기연들의 위치를 이용해서 한국 정부를 엿 먹이는 것도 가능하리라.
거기까지 생각을 이어 나간 세티는 조심스레 입술을 핥았다.
빈산에는 주인이 없다지만, 보물에는 주인이 있는 법. 여명은 딱 적절한 시기에 아카데미로 돌아왔…
“세티, 한숨도 안 잤어요?”
가벼운 엘프의 목소리가 세티의 상념을 끊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깨어난 쇠미리가 침대 위에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세티는 노트와 지도를 덮은 뒤, 별거 아니라는 듯 손을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쇠미리는 잠시 세티를 바라보다가, 침대의 이불을 걷어내며 말했다.
“저기, 세티, 오늘은 되도록 일찍 등교하는 게 어떨까요?”
“응? 왜?”
“그게, 음… 오늘은 여명이 기숙사로 데리러 안 올 테니까?
“…?”
저건 또 뭔소리람. 옷장에서 교복을 꺼내던 세티가 고개를 기울이자, 쇠미리가 덧붙였다.
“대역을 쓸 때는, 그, 가짜 여명이 매일 여자 기숙사로 가짜 세티를 데리러 왔거든요.”
“….”
“어, 어쩔 수 없었답니다? 대역을 들키지 않게, 최대한 자연스럽게 동선을 짜다 보니까…”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세티는 가볍게 콧방귀를 끼었다.
“그게 뭐 어때서?”
“음… 그게… 평소에, 그런 세티를 눈꼴 시렵게…? 보던 동급생들이 조금 있거든요.”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로드 하우 아카데미는 대놓고 연애질하는 걸 지양하는 편이었으니까.
그 상황에서 아침마다 깨를 볶아대는 커플이 보인다면… 그래 뭐, 아니꼽게 볼 수도 있겠지.
“그러고 싶으면 그러라고 해. 난 신경 안 써.”
“다, 다른 학생들이 시비를 걸지도 모르는데….”
“시비? 나한테?”
“대역을 맡은 분들 모두 세티랑 전투 스타일이 달라서, 최대한 시비를 피하며 다녔거든요.”
“….”
세티는 무어라 지적하지 않았다. 대역들의 면면을 생각해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으니까.
에이바 아줌마나, 자매들이 망치를 휘두를 수는 없는 법 아닌가.
세티는 스타킹을 찰싹- 끌어올리며 대답했다.
“그러면 이제 안 피하면 되지.”
“…예?”
“누군가 대표로 팔다리 하나쯤 부러지면 조용해지지 않겠어?”
살벌한 말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세티의 모습. 쇠미리는 셔츠의 단추를 잠그던 손을 멈추고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뭔가, 떠나기 전보다 과격해지셨네요.”
“원래 이 정도가 정상이야.”
“….”
쇠미리는 세티를 빤히 바라보다가, ‘하긴, 첫 만남부터 발길질을 했었죠’ 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세티가 여명에게 그런 것도 들었냐고 물어보려는 순간.
쾅! 소리와 함께 갑자기 기숙사 방이 활짝 열렸다.
“언니!”
안으로 들어온 건 교복 차림의 네티였다. 그녀는 마치 첫 입학식 전날처럼 잔뜩 흥분한 얼굴로 세티를 바라봤다.
그리고 대뜸…
“살쪘구나? 난 오히려 빠졌는데.”
“….”
“이야, 치마 터지겠… 악!”
네티는 로우킥 한 방에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종아리를 붙잡고 낑낑거리는 사이, 세티와 쇠미리를 교복을 다 챙겨 입었다.
“막내랑 시리는?”
세티가 기숙사 방을 나서며 물었다. 그녀의 동생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아직 안 깨어났어.”
“…아직도?”
세티가 잔소리를 장전한 순간, 네티가 빠르게 덧붙였다.
“내가 먼저 깨워봤는데, 오랜만에 늦잠 좀 자고 싶다고 칭얼대더라. 맨날 대역을 서느라 일찍 일어났다나?”
두 자매는 이 말이 사실이냐는 듯 엘프를 바라봤고, 마법으로 귀를 가린 엘프는 긍정의 의미로 미소 지었다.
“….”
세티는 자매들의 방이 있는 방향을 힐끗 바라본 뒤, 조용히 기숙사를 나섰다. 그녀가 아무리 엄격한 언니라 할지라도, 언니의 빈 자리를 메꾸기 위해 고생한 자매들에게 하루의 일탈 정도는 허락할 수 있었다.
그렇게 기숙사 바깥으로 나와 교실로 향하길 잠시.
등굣길을 걷는 몇몇 여학생들이 세티의 뒷모습을 보며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언니에게 앞으로 어떻게 활동할 건지 묻던 네티의 귀가 가려울 정도로 노골적인 목소리들.
내용은 다 거기서 거기였다. 오늘은 남친 안 부르냐,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더니 드디어 차인 거냐, 아니면 그보다 저열한 말들.
“제 생각보다 훨씬 심하네요….”
쇠미리가 그렇게 말할 정도였으나, 정작 세티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거 알아? 천여명, 걔가 사실 고아라서…
하지만 수군거림이 도를 넘어 여명의 이름이 나온 순간,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수군거리는 학생들의 면면을 빤히 바라봤다.
“미리, 저기서 가장 소문을 잘 내는 얘가 누구야?”
“…그건 왜요?”
“나는 상관없는데, 여명 앞에서까지 저러면 귀찮을 거 같아서.”
“아니, 아무리 그래도 학생을 패는 건…”
“나도 학생이야.”
아, 그랬지. 쇠미리는 그제야 힐끗 등굣길의 여학생들을 훑었다. 잠시 후, 그녀는 다섯 명이 우르르 몰려 있는 집단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마법부 학생들이요. 쟤들이 가장 말이 많아요.”
곧이어 쇠미리의 손가락을 본 다섯 여학생이 뭘 보냐는 듯 피식 웃었다. 말이 많은 건 모르겠지만, 싸가지가 없는 건 분명했다.
“저기 리더가 누군데?”
“명목상으로는 ‘그릇’인데… 그녀는 활동을 거의 안 해서, 저기 매부리코, 미리엄이라는 프랑스인이 무리를 이끌어요.”
그녀의 말마따나, 매부리코 백인이 갈색 머리카락을 베베 꼬며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네까짓 게 보면 어쩔 거냐는 표정.
세티는 네티에게 가방을 내밀며 말했다.
“너희는 먼저 등교해.”
“…뭐 하려고? 저기, 언니…? 언니?!”
네티가 뭐라고 하건, 세티는 손을 풀며 성큼성큼 마법부 학생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대뜸 손을 들더니-
철썩!
미리엄이란 학생의 뺨을 갈겨버렸다. 쇠미리는 물론이고, 지나다니던 학생들의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화끈한 싸대기.
“이, 이 미친년! 이게 무슨 짓이야!”
설마 길거리에서 뺨을 맞을 줄은 몰랐던 건지, 미리엄이란 소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주변의 무리들도 비슷한 소리를 내뱉으려는 찰나.
세티가 미리엄의 머리채를 붙잡으며 말했다.
“대련장으로 따라와, 쌍년아. 한판 붙자.”
***
등교 시간이 가까워진 까닭일까, 아침 훈련장은 고요했다.
공용 휴게실에는 드문드문 땀 냄새가 남아있긴 했지만,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모자랐는지, 전윤성은 가장 큰 훈련실을 대여했다.
그리고 그렇게 무기와 허수아비가 준비된 새하얀 트레이닝 룸에 들어선 뒤에야, 여명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전윤성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뒤따라온 바오닉을 바라봤다. 자리를 비켜달라는 눈빛.
녀석은 그 눈빛이 뭔지 모르는 척하자, 전윤성이 한마디 더 했다.
“바오닉, 미안하지만 바깥에서 망 좀 봐줄래?”
“….”
바오닉은 그제야 어색하게 웃으며 터덜터덜 훈련실 바깥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울리고, 새하얀 공간에 단둘이 남은 여명과 전윤성이 서로를 마주했다.
여명은 전윤성의 얼굴에서 그의 아버지를 찾을 수 있었다. 목을 부러트려서 망정이지, 아예 죽였으면 마주보기 거북할 뻔했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사이.
전윤성이 입을 열었다.
“저기, 천여명, 너 말이야…”
그는 매우 조심스러운 말투로, 두 사람만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게 물었다.
“혹시, 네가 주인공이야?”
“…?”
여명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 새끼가 뭐라는 거야?
그 침묵을 다르게 해석한 걸까, 전윤성이 급하게 덧붙였다.
“아니, 오해하지 마. 이건 미군이 아니라 나 스스로 고민해서 하는 말이니까.”
“….”
“아카데미에서 벌어진 사건을 연달아 해결한 것도 그렇고, 강함도 그렇고… 아무리 생각해도 네가 주인공…”
여명은 그의 말을 끊었다.
“아니, 난 주인공이 아니야.”
단호한 대답에 전윤성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
“저, 혹시 인생의 주인공은 너다, 뭐 그런 주인공으로 알아들은 거 아니지? 내가 말하는 건 그런 주인공이 아니라… 조금 더 그… 초현실적인? 형이상학적인? 그런 주인공이야.”
의외로 말주변이 없네. 여명은 팔짱을 끼며 되물었다.
“너야말로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쓰는 거냐?”
“…어?”
설마 이런 답변을 들을 줄은 몰랐던 건지, 전윤성의 표정이 멍해졌다.
물론, 그런 표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양손을 꽉 쥐며 대답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충은 알아. 수백만의 목숨을 구하고, 신들에게 인정받고, 세상을 구원한 영웅. 그게 주인공이야.”
“…그건 너무 과장된 거 같은데. 수백만을 구해? 그러면 미국 대통령이 주인공이겠네.”
여명의 대답을 들은 전윤성이 피식 웃었다.
“역시, 너도 알고 있었구나….”
“…역시?”
“아니, 그냥, 너라면 왠지 알고 있었을 거 같아서.”
서투른 연기였지만, 여명은 그 이상 파고들지 않았다. 전윤성의 뒤에 있는 미군도 그렇고, 아버지도 그렇고… 미국과 연관된 일이 분명했으니까.
지금 당장 미국이 뭘 꾸미는 건지 모르겠으나, 그가 주가시빌리를 익힌 시점에서 좋은 관계가 되는 건 불가능이나 다름없었다…
여명은 애써 불길한 생각을 머리 한쪽으로 밀어내고,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미국 하니 생각난 건데, 아까 미군 어쩌고 한 건 정확히 무슨 소리지?”
“아, 그거… 아까 말했던 그대로야. 너희가 실종됐는데 교장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내가 아는 대위님에게 너희 수색을 부탁드렸어.”
“….”
대위. 높다면 높고 낮다면 낮은 계급이었다.
일개 학생의 부탁을 들어주기에는 높고, 대대적으로 CIA나 군 상부에 도움을 요청하기엔 낮은 계급.
하지만 여명은 낙관론을 믿지 않았다. 그는 미군, 적어도 아카데미를 포위했던 함대가 자신의 실종을 알고 있다고 가정했다.
‘귀찮게 됐네.’
물론, 전윤성은 선의로 저지른 일이겠지만… 여명은 쓴웃음을 삼켰다. 전윤성은 조금 어수룩한 얼굴로 물었다.
“역시, 내가 실수한 건가? 미안해.”
“…괜찮다. 신경 쓸 필요 없어.”
어차피 네 손을 떠난 문제니까. 여명은 굳이 뒷말을 꺼내지 않았다. 전윤성은 못내 찝찝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사과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나도 비밀 하나 내놓을게.”
“…?”
“지금, 아카데미의 보물을 노리고 외부에서 몇몇 고수들이 오고 있어.”
“아카데미의 보물?”
“그, 도시 전설 있잖아. 초대 교장이 남긴 보물.”
“….”
또 도시 전설이야? 나만 모르고 있던 거야? 여명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전윤성은 무기 진열대에 몸을 기대며 계속 말했다.
“사실, 네가 실종되기 직전에 아카데미로 온 특별 교사 중 몇몇은 처음부터 그 보물을 노리고 왔다고 해. 세바 레르몬토프나, 검은 날개의 코르부스라던가…”
코르부스란 이름이 나오자마자, 여명의 눈썹이 휘어졌다. 여기서 코르부스가 왜 나와?
그 반응을 본 전윤성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아, 그 수인은 네 교사였지? 조심해. 그녀가 성녀 옆에 딱 붙어있는 이유가 보물 때문이라는 의견이 미군에 파다하니까.”
참신한 해석이었으나, 이해 못할 해석은 아니었다.
그만한 고수가 성녀를 짝 지어주기 위해 붙어있다는 현실보다야, 그런 해석이 조금 더 상식적이었으니까.
…뭐, 아무튼.
여명은 재차 질문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아카데미에 들어오려는 외부 고수가 누군데?”
“일단 확실한 건 호주의 만박불통, 프랑스의 오귀스트 정도? 미국에서는 메이커가 온다는 말도 있어.”
“….”
전윤성의 입에서 나온 이름들을 듣자마자, 여명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10대 초인들의 이름이 나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어마어마한 고급 정보 같은데… 왜 그런 걸 알려주는 거냐?”
혹시라도 가짜 정보일까 떠보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전윤성은 담백하게 진실을 입에 올렸다.
“내가 실수로 손해를 끼친 만큼, 되돌려주는 게 공평하니까.”
공평함. 올곧은 말이었으나… 그건 선천적인 올곧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여명은 녀석의 목소리 뒤에 숨어있는 어떤 트라우마를 읽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사내새끼의 트라우마 따위는 관심 없었기에, 여명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의문을 날려버렸다.
“…정보 고맙다.”
여명의 말을 끝으로,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딱히 대화를 나눌 사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따로 접점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물론, 녀석과 친해져서 미군의 정보를 캘 수도 있겠지만… 미국이 그렇게 호락호락할 리가 있나. 여명은 바로 생각을 접었다.
결국, 어색한 침묵이 두 사람 사이를 채웠다. 그리고 그 침묵이 길어지기 전에, 여명이 훈련실을 벗어나려는 순간.
전윤성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저기, 천여명?”
“뭐.”
“괜찮으면, 어… 나중에 대련… 아니, 훈련같이 할래?”
“….”
왜인지 모르겠지만, 녀석이 말을 건 가장 큰 이유가 저 말 때문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얘 설마 아직도 바오닉말고 친구가 없는 건가?
‘…너무하네.’
여명이 쓴웃음을 삼키고, 그 정도는 가끔 같이하자- 라고 대답하려는 그때.
쿵쿵!
갑자기 바오닉이 훈련실의 문을 두들기며 소리쳤다.
-야! 야! 지금 애들 몰려왔어! 나와서 봐봐!
몰려왔다고? 이 시간에? 여명과 전윤성 모두 몸을 돌려 훈련실의 문을 열고 바깥을 보니, 정말로 1학년 학생들이 휴게실에 우글우글 몰려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세티?”
세티가 누군지 모를 학생의 머리채를 붙잡은 채 대련실을 빌리고 있었다.
-놔! 놓으라고 씨발년아!
머리채가 잡힌 매부리코의 여학생이 뭐라고 지껄이건, 대련실을 빌린 세티는 문을 열고 그녀를 안으로 집어 던졌다.
-꺄아악!
아직 육체 강화 마법을 잘 다루지 못하는 건지, 매부리코 학생은 바닥을 몇 바퀴 구른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씩씩거리며 눈을 부라리는 걸 보니, 그나마 강단은 있는 모양이었다.
-왜 저러는 거래? 여태껏 조용했잖아.
-남친 욕 했다는데?
-아니, 이번이 처음도 아닌데….
-참다 참다 터진 거겠지.
-누가 이길까? 입학 순위만 따지면 미리엄이 더 높잖아.
학생들의 수군거림이 이어지길 잠시. 세티는 훈련용 망치를 들고 대련실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보던 전윤성과 바오닉이 여명을 보며 한마디씩 던졌다.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쩐다, 씨발.”
여명은 두 사람 모두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훈련실의 문을 쾅! 열어젖혔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학생들의 시선이 그에게 몰렸다.
그와 전윤성이 한자리에 있는 걸 보고 세티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짓고, 학생들마저 ‘투톱?’이란 말을 중얼거리는 바로 그 순간.
여명은 학생들에게는 일절 관심을 주지 않고 그 너머, 휴게실 구석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교사가 여기서 뭐 하고 계시는 겁니까?”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직후, 학생들은 누구 하나 빠짐없이 놀란 얼굴이 되었다.
분명 아무도 없던 휴게소 구석에는, 다섯 개의 검을 허리에 주렁주렁 매단 중년 여성이 서 있었으니까.
학생들 중 몇몇은 그녀의 정체를 알아보고 중얼거렸다.
“…세바 선생님?”
세바 레르몬토프. 천검, 혹은 무한류라는 명칭으로 널리 알려진 용병이자, 교장이 특별히 초대한 외부 특별 초청 교사.
“오호?”
여명과 눈을 마주친 그녀의 눈썹이 길게 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