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314)
을 위한 세계는 없다-314화(314/817)
***
“여, 불량 학생.”
아카데미 북쪽 섬, 기자회견장.
회견장 가장 뒤쪽에 놓인 의자에 앉아있던 여명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직후, 꽃향기가 물씬 풍기는 금발이 그의 이마에 닿았다. 슬쩍 머리카락을 밀어내자, 그를 내려다보는 쇠미리의 얼굴이 보였다.
“…불량 학생?”
“수업 땡땡이치고 여자 보러 온 게 불량 학생이 아니면 뭔데요? 양아치?”
“….”
여명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이게 지금 뭐라는 거야. 그는 손가락으로 쇠미리의 이마를 밀어내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족히 수십 명은 될 법한 기자들과 카메라가 와글거리며 기자 회견을 준비하는 모습.
하지만 회견장을 차지하고 있는 건 기자뿐만이 아니었다.
신앙심 깊은 학생과 교직원들 또한 성녀를 보기 위해 회견장 한편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셩녀님 인기 좋네요. 그거 알아요? 오늘 성녀님 본다고 결석 신청한 학생이 전교생 중 절반이나 된대요.”
어느새 옆자리를 차지한 쇠미리의 말. 여명은 고개를 저었다.
“성녀는 핑계고, 어젯밤 난리 때문에 그런 거겠지.”
아카데미 측에서 비상벨이 울린 이유를 훈련이라고 둘러댄 탓에, 선생님들은 쉴 시간도 없이 수업을 들어가야 했다.
물론, 초인 선생님이 많은 만큼 체력에 큰 문제가 없었지만, 밤새 경계를 서던 피로감과 스트레스가 어디 가겠는가?
때마침 성녀라는 적당한 핑계도 있으니, 하루 정도는 적당히 넘어가려는 것이리라.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네요.”
“뭐, 이런 날만큼은 너도나도 신실한 다섯 신 교도가 되는 거지.”
여명이 가볍게 대꾸하자, 쇠미리의 표정이 묘해졌다.
“쇠똥구리 씨… 많이 변했네요.”
“…응?”
“청소부 시절에는 땡땡이치는 사람들 싫어하셨잖아요?”
“….”
여명은 부정하지 않았다.
청소부 시절 작업반장님은 ‘땡땡히 치느니 빡세게 일하고 편히 놀자’ 라는 생각을 지닌 분이셨고, 쇠똥구리 또한 자연스레 그 마인드를 본받아 땡땡이를 싫어했으니까.
뭐, 그건 그거고.
“…내 과거를 얼마나 들여다본 거야?”
그가 주제를 돌리자, 쇠미리가 살짝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게 많이 보진 않았어요. 그 증거로, 여명도 제 과거를 들여다보지 못했잖아요?”
“그게 어떻게 증거가 돼?”
“어… 그 비유 있잖아요. 심연을 오랫동안 바라본다면, 심연 또한 당신을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그 비유를 댄 거였어요.”
그녀가 입에 올린 건 ‘선악의 저편’이란 철학서에서 언급된 경구였다. 문제는, 그게 지구의 철학자가 쓴 책이라는 것.
“엘프가 니체도 알아?”
쇠미리는 뭘 그런 걸 묻냐는 듯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 정도는 당연히 읽어봤죠. 사회주의는 기본적으로 지구의 근현대 철학 토대 위에 세워진 거라고요. 제가 누군지 잊은 건 아니죠?”
“빨갱….”
빨갱이 공주라고 대답하려던 여명은 쇠미리가 눈을 가늘게 뜨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시계를 힐끗 확인해보니, 기자회견이 시작되기까지 20분은 남아 있었다. 어색하게 보내기엔 긴 시간이었다. 여명은 대화 주제를 돌렸다.
“너도 많이 변했네.”
“제가요?”
“그래, 첫인상은 분명히…”
그때, 쇠미리가 대답을 가로챘다.
“빨갱이 공주? 아니면 시뻘건 귀쟁이?”
“….”
그렇게까지 말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어쨌든 비슷한 단어를 떠올리고 있던 여명이 어깨를 으쓱이자, 쇠미리가 말을 이었다.
“확실히, 달라지긴 했죠. 누구누구 씨와 꿈을 연결한 바람에.”
“….”
애써 외면하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이쯤 되자 궁금증이 솟구쳤다. 쇠미리는 대체 어디까지 자신의 기억을 읽고, 어디까지 영향을 받은 걸까.
혹시 미그니움이나 천사님에 대한 것도…
“천여명.”
그의 생각이 길어지려던 찰나, 익숙한 할머니의 목소리가 그를 현실로 끌어올렸다.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한 여명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호아나.”
“그래, 나도 반갑구나. 역시 와있을 줄 알았다.”
호아나 툴레. 그녀는 여명의 오른쪽 빈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또 다른 여자를 데리고 올 줄은 몰랐지만.”
“….”
그녀의 주름진 눈가는 쇠미리를 향하고 있었다. 정체를 숨긴 엘프는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레독스의 총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도 오랜만에 세계수의 아이를 보게 되어 기쁘구나.”
연륜 덕분일까? 호아나는 단번에 쇠미리의 정체를 꿰뚫어 봤다. 쇠미리가 슬쩍 쓴웃음을 지었으나, 호아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처음부터 그녀의 관심은 온통 여명에게 쏠려 있었다.
“여명, 잠깐 시간 괜찮겠느냐?”
“예, 저는 상관없습니다만… 기자회견까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긴 이야기는 아니란다.”
여명이 고개를 끄덕이기 무섭게, 호아나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바라나 선배님 말이다… 언제든 꺼낼 수 있는 거니?”
“….”
아, 그게 목적이셨군.
“예, 뭐… 주변에 보는 눈만 없다면요.”
“뭐, 유지하는데 따로 마나가 들고 그런 건 아니고?”
“완성된 데스나이트라, 제가 강제로 명령을 내리는 일 외에는 따로 마나가 들지 않습니다.”
“그러면…”
말끝을 흐린 호아나는 주머니에서 은근슬쩍 작은 보석 반지를 꺼내 여명에게 내밀었다.
“…이건?”
“피부를 화사하게 바꿔주는 미용 마도구에 마나를 숨기는 마법을 더한 반지란다. 이걸 끼면… 데스나이트라도 마나를 쓰기 전까지는 일반인처럼 보이겠지.”
“…데스나이트를 일반인처럼 보이게 해서 어디다 쓰시려구요?”
그거 네크로멘서도 안 하는 짓 아닙니까? 여명이 뒷말을 삼키자, 호아나가 부끄러운 듯 떠듬떠듬 말했다.
“선배와 옛이야기도 좀 하고… 위로도 해드리고… 뭐, 나 혼자 아카데미에 있으려니 적적해서 말이다.”
“….”
“아, 물론 공짜로 해달라는 건 아니란다. 이 고마움을 다 갚을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성의를 표하마. 원하는 게 있다면 말해보렴.”
내용과 달리, 호아나의 말투는 조금 간절했다. 여명은 작업반장님보다도 더 나이 많은 어르신의 간절함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공짜로 해줄 생각은 없었지만.
“저기 그럼, 그 반지 다섯 개만 더 구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다섯 개 더? 왜?”
그때, 쇠미리가 여명의 대답을 가로챘다.
“데스나이트가 여섯 명이거든요. 바라나만 돌아다니면, 다른 데스나이트들이 화를 내시겠죠.”
“…여섯 명? 데스나이트가 여섯 명이라고? 설마, 전부 바라나 선배와 동급이니?”
호아나는 사실이냐는 듯 놀란 표정으로 여명을 바라봤다.
여명은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호아나의 눈매가 좁아졌다.
“그만한 데스나이트가 여섯… 이 아카데미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이 바로 너였구나.”
“그게 그렇게 되나요.”
“교장에게는 절대 알리지 말거라. 알면 아주 뒤집어질 테니… 뭐, 나는 널 믿으니 상관없다만.”
그렇게 말한 호아나는 여명에게 반지를 내밀었다. 그리고 여명이 반지를 챙기자마자 의자를 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머지 다섯 개라면 금방 구해다 주마.”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가격이 좀… 있어 보이는데.”
본인이 요구하고도 좀 과했나 생각한 여명이 되묻자, 호아나가 호탕하게 웃었다.
“그거라면 걱정할 필요 없단다. 거의 공짜로 얻어낼 수 있으니까.”
“…?”
“아카데미 마법 학부장, 녀석이 내게 빚이 좀 있거든.”
마법 학부장 가단. 어떻게 만나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인연이 이렇게 이어지나?
그에게 ‘떨어진 별’에 관해 물어볼 것이 있다는 걸 떠올린 여명은 떠나려는 호아나에게 급히 말했다.
“호아나, 죄송하지만 학부장을 만나러 가실 때 함께 갈 수 있을까요?”
“왜? 녀석과 만나야 할 일이 있니? 뭐, 그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하단다.”
호아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날짜를 잡아서 함께 가자꾸나. 물론, 바라나 선배도 함께. 그놈에게 바라나 선배의 얼굴을 보여주면 아주 놀라 뒤집어질 게야.”
아니, 놀라게 할 생각은 없는데… 여명은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예, 언제든 연락주세요. 제 번호는 성녀가 알고 있습니다.”
“성녀님께서? 아… 뭐, 그래, 나중에 보자꾸나.”
여명은 멀어지는 호아나를 보며 어째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린다고 생각했다. 역시 세상은 인맥인 걸까?
다음 순간, 쇠미리가 한마디 곁들였다.
“이거 좀 불안하네요.”
“…뭐가?”
“여명이 뭔가 잘 풀리면 꼭 사고가 나던데.”
“….”
여명은 괜히 초 치지 말라고 대답하려다가, 여태껏 겪어온 사례를 떠올리고 입을 다물었다.
침묵.
짧다면 짤고, 길다면 긴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성녀가 기자회견장의 문을 열고 들어올 때가 돼서야,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나라고 맨날 사고를 부르는 건 아니야. 그런 사례가 없긴 한데… 아무튼 이번에는 아니야. 누가 아카데미 한복판에서 사고를 치겠어?”
“…여태껏 그거 고민하고 있던 거였어요?”
여명은 대답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대답하지 못했다.
호아나가 성녀의 옆에 서고, 기자회견장의 문이 닫히는 순간, 회견장의 불이 일제히 꺼졌으므로.
***
“말이 씨가 된다더니.”
황당해하는 쇠미리의 말을 시작으로, 기자회견장에 소란이 번지기 시작했다.
-어? 어? 창문은 누가 닫았어?
-뭐야? 누가 장난질하는 거야? 빨리 불 안 켜?
-모두 당황하지 마시고, 물러나 주세요! 불이 켜질 때까지, 단상 위에는 경호원과 성녀님만 남겠습니다!!
당황한 목소리들이 귀를 찔렀지만, 다행히 패닉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기자들은 오히려 특종을 잡았다는 듯 카메라를 들어 올렸고, 신앙심 깊은 교직원들과 학생들은 조용히 다섯 신의 상징물을 꺼냈다.
누가 이 혼란을 일으킨 건지 모르겠지만, 장소를 잘못 잡았다.
아카데미 한복판, 그것도 성녀를 만나는 자리에서 겨우 불 좀 꺼졌다고 겁을 먹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겁을 먹지 않은 건 여명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안구에 강제로 마나를 불어넣어 어둠에 시야를 맞추고, 마나를 퍼트려 회견장 전체를 감지했다.
‘뭐지?’
회견장 전체를 훑어본 여명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마나가 느껴지지 않은 까닭이었다.
강제로 창문을 걸어 잠그고, 전원을 차단한 기술이 있을 텐데. 잔향조차 남아있지 않다니?
그런 의문을 떠올리던 그때, 귓가로 낯선 목소리가 울렸다.
“부하고.”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지만, 마나가 듬뿍 담긴 목소리.
여명이 그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린 곳은, 성녀와 경비원들이 모여잇는 단상 바로 위였다.
다음 순간, 여명은 이미 단상 위로 달려들고 있었다. 생각보다도 몸이 먼저 움직였다.
주가시빌리 대신 파양결을 펼친 게 그에게 남은 유일한 이성이었다.
“이기무사지언… 흡?!”
그리고 경비원 사이에 숨은 녀석이 뭔가를 저지르려던 그때, 여명의 발길질은 이미 녀석의 머리 코앞에 있었다.
“역시! 올 줄 알았다!”
경비원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녀석은 곧바로 부드럽게 손바닥을 펼쳤다.
직후, 여명의 날아 차기가 미소 지은 얼굴과 손바닥을 동시에 박살 낼 기세로 들이닥쳤다.
!
충돌음은 없었다. 여명은 두꺼운 물을 찬 것 같은 저항감을 느끼고 몸을 틀었다.
탁! 단상 위에 내려선 뒤에야, 그는 상대가 손바닥 두 개로 발차기를 흘려냈다는 걸 깨달았다.
“좋은 발차기여ㅆ…”
녀석이 무어라 입을 열기 전에, 여명은 인벤토리에서 검을 뽑아 휘둘렀다.
산의 눈물이 아닌 아카데미 연습용 철검에 불과했지만, 마나가 담긴 검은 살벌한 궤도를 그렸다.
이어지는 검을 본 상대는 이번에도 손바닥을 펼쳤다. 그리고 그렇게 검과 손바닥이 충돌하기 직전, 검과 손바닥이 수평을 이룬 순간.
손바닥 위로 마나가 방출됐다. 검광이 번쩍이고, 검이 그대로 밀리는 것 같았으나….
이번에는 녀석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여명의 검은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에 밀려나긴커녕, 오히려 정확하게 그 흐름을 타고 올라가 손바닥을 길게 베었다.
푸확-! 양 손바닥이 길게 갈라지며 피가 튀었다.
“이런!”
습격자는 당황한 듯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몇 걸음 가기도 전에 벽과 부딪쳤고, 여명의 검은 그대로 녀석의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흡!”
철검이 번뜩이는 것과 거의 동시에, 녀석은 호흡을 삼키며 피 흘리는 손을 휘둘렀다.
까가강!!
마나와 마나가 충돌하며 불씨가 튀었다. 둘의 마나가 워낙 두터운 탓일까. 여명은 뒤로 쭉 밀려나고, 녀석의 갈라진 손바닥에서 또 한 번 피가 터져 나왔다.
짧은 정적.
경비원 복장의 남자는 침음을 흘렸다.
“이런… 벌써 열 십자의 이치를 알고 있다고? 어떻게? 대체 어디서 배운 겐가?”
열 십자의 이치. 그건 시카고에서 파순이 알려주었던 무술의 이치이자, 조금 전 녀석이 여명의 검을 흘려내기 위해 사용한 이치이기도 했다.
여명은 대답하지 않고 검을 들어 올렸다. 자신에게 플래시와 카메라가 쏠리는 게 느껴졌지만, 자제할 기분이 아니었다.
대놓고 성녀를 습격하다니. 염병할 새끼.
살벌한 여명의 눈빛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몰라도, 습격자는 쩝쩝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말하지 않을 텐가? 그렇다면 실력을 보는 수밖에 없겠… 읍!”
적이 지껄이는 걸 가만히 듣고 있을 여명이 아니었다. 그는 염동력으로 상대의 목을 붙잡고, 다시 몸을 날렸다.
갑작스러운 마법에 놀란 것일까, 상대는 경악했다. 게다가 그 경악을 오래 이어갈 수도 없었다.
여명의 몸이 주욱- 늘어나는 것처럼 가속한 까닭이었다.
번쩍이는 카메라의 불빛, 그 아래 점멸하는 검.
그 짧은 순간 속에서 습격자는 아공간에서 두꺼운 나무 막대를 꺼냈다. 손때가 묻은 등산용 지팡이에 가까운 막대였다.
습격자는 막대를 길게 휘둘렀다. 이미 출발한 여명의 검과 비교하면 한참이나 늦은 출발.
하지만 그 안에는 여명의 검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력이 담겨 있었다.
나중에 출발하여 먼저 제압한다는 후발선제後發先制의 이치가 담긴 수.
여명은 그 이치를 알지 못했지만, 이대로 검을 휘두르면 패배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찰칵.
누군가 터트린 플래시의 빛이 음영을 드리우는 순간 속에서, 나무 막대와 연습용 철검이 무수한 잔영을 펼쳤다.
상대와 여명만이 볼 수 있는 경우의 수.
하지만 아무리 많은 경우의 수를 계산해도, 결과는 단 두 개뿐이었다.
이대로 검을 휘두른다. 몸에 막대기에 맞아 패배.
검을 틀어 막대를 막는다. 검이 부러지며 패배.
습격자는 승리를 확신했다. 자랑할 것도 없는,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잘난 아이라도 상대는 학생이지 않나.
하지만 그가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여명은 학생이었던 시절보다 그렇지 않았던 시절이 더욱 길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그는 일반적인 초인이라면 절대 사용하지 않을 수를 사용할 수 있었다.
철검에 마나를 쑤셔넣고, 그대로 터트려 버리는 것.
판단은 빨랐고, 행동은 더욱 빨랐다. 여명은 검을 휘두르는 와중에 파양결을 일으켜 검기를 출렁였다.
고작 연습용으로 만들어진 검은 그 마나를 견디지 못했고, 그대로-
쾅.
막대기와 충돌하기 직전, 철검이 터지며 검의 파편이 터져 나왔다. 파파팍! 거의 모든 파편이 습격자의 몸뚱아리 위로 쏟아졌다.
!!!
여명이라고 폭발에서 무사하진 않았다. 하지만 저 무지막지한 마나가 담긴 막대기에 맞는 것보다는 나았기에, 여명은 폭발을 역이용해 거리를 벌렸다.
그렇게 막대기가 허무하게 허공을 가른 직후, 여명이 뒤로 물러났다.
모든 게 순간 속에서 벌어진 공방이었다. 초인이 아닌 사람의 눈에는 그저 검이 터지는 것만 보일 정도로 빠른 공방.
“이 뭔….”
검의 파편을 뒤집어쓴 습격자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피부를 꿰뚫은 파편 때문에? 아니, 아니었다. 여명이 쏟아낸 수백 개의 파편 중 정작 그의 피부를 꿰뚫은 건 두세 개밖에 되지 않았다.
그가 당황한 진짜 이유는, 여명이 마지막에 검에 불어넣은 파도였다.
“진짜 파양결이라니. 이 무슨 해괴한… 대체 그걸 어디서 배웠는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