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330)
을 위한 세계는 없다-330화(330/817)
***
스칼렛 오하라.
제미니 시티로 향하는 기차에서 만난 인연을 시작으로, 치매 기사단장의 일로 계속 얼굴을 마주쳤던 CIA 요원.
그녀가 아카데미에 숨어들었다는 건 미국이 비밀리에 아카데미의 무언가를 노리고 있다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그게 아니라면 국무부나 미군 같은 공식적인 채널을 두고, 굳이 CIA 요원을 보낼 이유가 없을 테니까.
거기까지 설명을 들은 성녀가 뭔가를 번뜩 떠올렸다.
“어? 그러면 혹시… 초대 학장의 보물이 목적인가?”
여명은 어깨를 으쓱였다.
“어쩌면?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을 수도 있고, 지금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어.”
“…내가 주지사 놈을 이용해서 알아볼까?”
그때, 쇠미리가 끼어들었다.
“굳이 그럴 필요 있어?”
“응?”
“CIA건 뭐건 간에 어차피 우리랑 엮이지만 않으면 그만 아닌가 싶어서.”
그러자 여명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래. 보물이 목적이라면 우리가 먼저 해저터널을 털 테니 상관없고, 다른 게 목적이라면 괜히 뒤를 캐서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 없지.”
굳이 문제가 있다면 용에게 변신 마법을 가르치는 시간 정도? 여명이 속으로 시간을 계산하고 있자, 쇠미리가 상황을 정리했다.
“어느 정도 대비는 해야겠지만, 괜히 먼저 찔러보진 말자. 가뜩이나 대련 때문에 관심받을 텐데.”
“…그래, 그렇게 하는 게 맞겠다. 어차피 나도 조지 칸을 만난 김에 퀴니 코완의 말이 진짜인가 싶어서 찾아본 거니까.”
“그러면 앞으로 계획은…….”
그렇게 두 사람이 쑥덕거리는 사이, 가만히 듣고 있던 성녀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졌다.
“야, 빨갱이.”
“…여명 앞에서도 빨갱이라고 부르네.”
“빨갱이를 빨갱이라고 부르지 뭐… 아무튼! 우리가 아카데미 바깥에서 겪은 일을 네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
“그것도 꼭 옆에서 직접 겪은 것처럼 말하네?”
쇠미리는 그제야 자신의 말실수를 깨달은 듯 아, 소리와 함께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성녀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여명을 빤히 바라봤다.
“여명, 너도 다 아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굴고.”
“….”
평소의 그녀답지 않은 날카로운 질문. 여명이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고민하자, 쇠미리가 먼저 대답했다.
“어… 네가 교장에게 잡혀있는 동안 들었어.”
“나 고작 이틀 억류되어 있었거든? 그 사이에 여명한테 보고서라도 받아 봤어? 만약 그게 사실이라고 쳐도, 나도 못 알아본 CIA 요원을 어떻게 한 눈에 알아본 거야?”
“….”
“…세티한테 들었다고 핑계 대면 나 진심으로 화낼 거야.”
퇴로까지 차단하는 성녀의 지적에 쇠미리는 여명에게 도움의 눈빛을 보냈다.
뭐, 여명이라고 딱히 답이 있는 건 아니었다.
두 사람의 꿈이 연결되는 바람에 쇠미리가 그의 기억 중 일부를 훔쳐볼 수 있다고 어떻게 설명하겠… 아니, 못할 것도 없나?
이걸 굳이 비밀로 둘 이유가 있나? 여명은 쇠미리의 귓가에 대고 설명했다.
‘사실대로 말해도 될까?’
‘…제가 성녀한테 총 맞는 거 보고 싶어요?’
‘안 그럴걸? 성녀가 그렇게 분별없는 얘는 아니야.’
‘…솔직히 성녀의 부모님도 안 믿을 소리인 거 알죠?’
‘내가 장담할게.’
‘하아, 그러면 좋아요. 계속 비밀로 할 수도 없으니까… 대신, 성녀 총 뺏은 다음에 해요.’
여명은 힐끗, 성녀의 모습을 확인했다. 팔짱을 낀 채로 입술을 삐쭉이는 게, 어지간히도 심술이 난 듯했다.
“성녀, 총 좀 줄래?”
“…왜.”
“사실대로 말할 테니까, 총 줘.”
“….”
성녀는 잠깐의 고민도 없이 순순히 홀스터를 풀어 리볼버를 여명에게 내밀었다.
그녀도 학생인지라, 리볼버에 장전된 건 실탄이 아니라 고무탄… 아니, 실탄이 장전되어 있네.
‘….’
…뭐, 아무튼.
리볼버를 챙긴 여명은 진실을 입에 올렸다.
“저기, 일부러 숨기려던 건 아닌데, 사실 나랑 쇠미리는….”
그 순간, 드르륵- 소리와 함께 병실 문이 열렸다. 어이없을 정도로 정확한 타이밍.
일행이 모두 휙 고개를 돌리자, 웨슬리가 문 사이로 얼굴만 빼꼼 내밀고 있었다.
“야, 나는 증언 다 했어. 쇠미리, 이제 네가 증언할 순서… 어… 셋이서 뭐 하고 있냐?”
뒤늦게 묘한 분위기를 감지한 웨슬리가 문을 닫으려는 순간, 쇠미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전 증언하러 갈게요!”
이때다 싶어 순식간에 문밖으로 나가, 복도 저편으로 사라지는 쇠미리.
웨슬리는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과 팔짱 낀 성녀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툭 한 마디 던졌다.
“난 아무것도 못 본 거다.”
“아니, 잠깐만, 무슨 오해를….”
“됐고, 이런 일은 엮이기 싫어. 나중에 밥 사는 거 잊지 마라.”
“야!”
쿵, 닫히는 문을 향해 여명이 일어나려 하자, 성녀가 그의 옷자락을 꾸욱- 붙잡았다.
“어딜 가려고. 하던 말 다 하고 가. 정말로 귀쟁이랑 무슨 관계야?”
“귀쟁이라니… 그런 차별 발언 쓰면 안 돼.”
웨슬리를 쫓아가봤자 소용없을 거라는 걸 느낀 여명은 한숨과 함께 성녀의 옆에 앉았다. 성녀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대답했다.
“난 지옥에 갈 일 없으니 괜찮아. 그러니 빨리 말해.”
그런가? 여명은 그럴싸하다고 생각한 자신이 어이가 없어서 픽 웃어버렸다. 성녀는 웃지 않았지만, 그의 웃음을 보고 조금 기분이 풀린 듯 팔짱을 풀었다.
여명이 말했다.
“들으면 의외로 별거 아닌 이야기야.”
“…그렇게 말하니까 더 불안한데?”
“….”
여명은 크흠, 헛기침으로 분위기를 환기한 뒤, 아직도 심술이 난 성녀의 팔을 끌어당겨 그녀의 손등 위로 손을 포갰다.
“시작은 너도 잘 아는 물건이야. 만주에서 먹었던 세계수의 결정, 기억하지? 그게 시작이었어….”
***
오르세 라날의 둥지로 이어지는 하수도.
두 명의 소녀와 한 명의 소년, 그리고 그의 어깨에 앉은 까마귀가 어둠과 습기로 가득 찬 길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네 사람… 아니, 세 사람 모두 꽤 빠르게 걷고 있음에도,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안대를 쓴 소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하수도를 울리고 있었으니까.
“아니, 이게 말이 돼? 여명이 귀쟁… 아니, 엘프도 아니고 그년하고 꿈이 연결된다는 게?”
“….”
“세계수 때문일 거라는데, 세계수 그거 그냥 큰 나무 아니었어? 언제 중매쟁이로 직업을 바꾼 거래?”
“…성녀님.”
성녀의 발언이 선을 넘으려 하자, 가만히 듣고 있던 코르부스가 나직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성녀도 좀 심했다고 생각했는지, 조금 전보다 작아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무튼, 여명이 잘 때마다 꿈이 연결돼서, 그 귀쟁이가 여명의 기억을 볼 수 있었다는 거야. 완전 음흉하지 않아? 그 뭐냐 그… 그….”
“관음증?”
“그래! 관음증! 쇠미리, 그거 완전 관음증 환자라니까?”
“….”
성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티가 고개를 돌려 뒤따라오는 여명을 바라봤다.
‘이게 다 진짜냐’ 혹은 ‘이걸 왜 얘한테 말했냐’ 는 듯한 표정. 여명은 쓴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나 세티는 놀라지 않았다. 쇠미리와 여명이 특별한 관계라는 것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으므로.
쇠미리가 여명에게 도움을 준 게 어디 한두 번이던가? 그녀의 금제를 풀 때 도움을 준 것도, 드레이테리얼로 네티를 보낸 것도 쇠미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데메론드가 여명에게 호의적으로 가르침을 내려준 게 결정적이었다.
지구인을 만 단위로 죽였을 괴물이 여명을 죽여 세계수의 결정을 회수하는 대신, 도토리니 딸의 애인이니 지껄이며 사람처럼 굴다니.
그건 인천의 인연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었다.
“…으음.”
물론, 꿈이 연결됐다는 건 의외였다.
여명의 몸에 흐르는 마나 중 거의 절반 이상이 세계수의 마나라지만, 종족을 뛰어넘어 엘프의 꿈과 연결되다니?
꿈속에서라면…
불현듯 뭔가를 떠올린 세티가 여명에게 물었다.
“저기, 여명, 혹시… 꿈속에서 먼저 했어?”
“뭐? 그게 무슨 소리…… 아.”
세티는 대답 대신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성녀와 코르부스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 오르는 가운데, 여명은 그녀의 말을 이해하고 얼굴을 쓸었다.
“…내 처음은 너야.”
“그럼 됐어.”
대답을 들은 세티는 작게 미소 짓고는, 다시 용의 둥지로 걸음을 옮겼다.
“크흠.”
그제야 무슨 대화가 오고 간 건지 이해한 코르부스가 딱- 소리 나게 부리를 다문 것과 달리, 성녀는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이게 뭔 소리야? 여명? 세티? 응? 코르부스? 코르부스는 알아요?”
“…유니콘에게 중요한 이야깁니다.”
코르부스는 차마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겠다는 듯 말을 돌렸고, 여명과 세티 또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결국, 성녀는 혼자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아무리 둔한 그녀라도 무슨 소리인지 깨달을 때쯤.
일행이 용의 둥지로 향하는 물줄기에 도착했다. 세티는 두말할 것도 없이 물줄기로 몸을 내던졌다.
풍덩- 세티가 사라진 걸 본 코르부스는 ‘물은 좀….’이라고 중얼거리면서도 물줄기로 뛰어들었고, 마지막으로 여명이 성녀의 허리를 붙잡자, 그녀가 물었다.
“내가 먼저야, 걔가 먼저야?”
“하아… 쇠미리하고 나는 그런 관계 아니야. 꿈속에서도, 현실에서도.”
여명의 대답을 들은 성녀는 즉시 주먹을 꽉 쥐었다.
“하! 내가 이겼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
이겼다니… 이게 무슨 내기도 아니고. 절레절레 고개를 저은 여명은 그대로 물줄기를 향해 뛰어들었다.
***
소독약 냄새가 가득한 물줄기에서 벗어나 용의 둥지에 들어선 직후, 코르부스는 부르르 몸을 털었다.
그리고 곧이어 두 명의 데스나이트 사이에서 쿨쿨 코를 골고 있는 용을 보며 말했다.
“제자여, 생각보다 어린 용이로구려.”
“…혹, 변신 마법을 가르치는 데 문제가 있는 겁니까?”
여명이 마법으로 옷을 말리며 물었다. 코르부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아니오. 태어날 때부터 혈관에 마나가 흐르는 종족에게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소. 단지… 오르세 타불의 동생이라고 하지 않았소?”
“예, 오르세 라날이라고 합니다.”
“본인이 아는 한 오르세 타불은 드워프 왕가와 수십 세대를 함께한 고룡이오. 근데 저 용은 기껏해야 이백살 쯤 먹은 거 같구려. 그리고 무엇보다… 오빠는 화룡인데 여동생은 왜 수룡이오?”
그녀의 질문에 대한 답은 용에게서 돌아왔다.
[우리는 이복 남매야.]오르세 라날은 눈곱도 없는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용의 감각 덕분에 일행이 들어온 건 감지한 것이리라.
[우리 아빠는 성욕이 왕성한 용이었거든. 아, 물론 이상성욕은 아니었어. 용을 사랑하는 정상적인 용이었지. 날개가 이쁜 용만 꼬시긴 했지만.]“…아버지가 있었어?”
[나도 생물이니 당연하지. 그리고 지금은 돌아가셨어. 젊은 용을 꼬시다가 소련에게 사냥당했거든.]“….”
[너희도 봤을걸? 루뱐카의 기둥을 장식했던 용 비늘, 그거 우리 아빠 꺼야.]뜬금없이 역사의 비사를 듣게 된 일행들은 물론이고, 데스나이트들까지 입을 다물었다.
어색한 침묵이 고개를 드는 가운데, 오르세 라날이 날개를 펄럭였다.
[뭐, 아빠 이야기는 됐고, 그 수인이 나한테 마법을 가르치러 온 스승이야?]그제야 어색함을 이겨낸 여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섰다.
“응, 이분은 까마귀의 수호자이자 갈림길을 걷는 모든 이들의…”
“제자여, 낯부끄러우니 그냥 짧게 하시구려.”
“…내 스승님이신 코르부스야.”
여명의 스승이란 말 때문인가, 용은 목을 길게 빼고 코르부스를 향해 킁킁거렸다.
어떤 의식 같은 건가 싶어 가만히 내버려 두자, 오르세 라날이 뚱한 얼굴로 말했다.
[…당신 제자 성격이 좀 이상하다는 거, 알고 있지?]“….”
[날 자유롭게 풀어주기 위해 변신 마법을 가르치겠다니, 솔직히 말해서 제정신이 아니….]세티가 슬그머니 망치를 꺼낸 덕분일까, 용은 입을 다물었다. 그걸 본 코르부스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제자여, 정말 이 용에게 마법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오?”
“네, 좀 이상한 용이긴 하지만… 그의 오빠에게 도움을 받았잖습니까. 부탁드립니다.”
“하아, 알겠소. 그러면 제자의 수련은…”
그때, 세티가 끼어들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여명도 새벽마다 여기서 수련할 거니까.”
거기서 그치지 않고, 세티는 이곳에 해저터널을 탐사하기 위한 베이스캠프를 설치할 거라고 덧붙였다.
코르부스는 감탄과 걱정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정학당한 김에 뽕을 뽑으려는 것이오?”
세티는 부정하지 않았다. 쇠뿔도 단김에 빼는 거라고, 여명이 정학당한 김에 일을 진행하는 게 맞았으니까.
원래는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계획을 진행할 생각이었는데… 정학 기간에는 ‘징계’를 받느라 시간이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사정을 전부 이해한 것일까, 코르부스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뭐, 본인은 괜찮소. 제자와 저 귀엽지 않은 용을 동시에 가르치겠소.”
“감사드려요. 코르부스.”
그렇게 대화를 끝낸 코르부스는 여명을 따라 용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세티와 성녀는 베이스캠프를 세울 공간을 측정하기 시작했는데…
용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여명에게 말했다.
[내 둥지에 베이스캠프를 짓는다고? 그럼 먹을 거랑 DVD도 가져올 거야?]“…뭐?”
갑자기 뭔 소리야? 여명이 눈썹을 들어 올리자, 용이 신나서 지껄였다.
[나는 영화! 영화가 좋아. 만화책은 너무 작아서 보기 힘들거든. 아, 그리고 콜라를 많이 가져와. 영화에는 콜라가 필요하니까.]“….”
여명은 슬쩍 용의 둥지 구석에 쌓인 영사기와 DVD를 확인했다. 저번에 왔을 때는 미처 몰랐는데, 혼자 있기 심심해서 영화를 보고 있던 건가?
그 의문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용이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현재 학장은 쪼잔해서 영화도, 드라마도 반년에 한 번밖에 안 줘. 그래서 본 거 또 보고, 본 거 또 보고… 내용을 아주 달달 외울 정도로 본다니까? 명작이라도 이렇게 보면 물려!]“…쪼잔한 게 아니라, 보안 때문일 텐데.”
[이유가 뭐든 간에! 과자와 DVD를 요구한다! 죽겠다는 날 살린 건 너잖아?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지금이라도 죽일까? 여명이 실없는 고민을 떠올리는 사이, 세티가 말했다.
“마법 잘 배우면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어. 보고 싶은 영화랑 먹을 과자 목록 만들어서 주면 가져다줄게.”
그러자 용은 마치 강아지 꼬리처럼 날개를 흔들며 말했다.
[진짜냐? 그러면 작년에 개봉한 타란티노 신작하고, 알파 원 영화 시리즈 전부하고… 또… 그, 브래드 피트가 신작 찍었다는데, DVD 나왔나?]“…확인해볼게. 대신, 마법 잘 배우는 거다?”
[물론이지! 아, 그리고 또 생각났는데, 2000년도 이후에 나온 뤽 베송 신작도 전부 필요해! 그리고 한국에서 만든 드라마랑…]용의 요구가 길어지려는 찰나, 여명이 끼어들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만든 지구 문화 시리즈는 어때? 적어도 100시간은 충실하게 즐길 수 있는데.”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용이 정색했다.
[지구 문화 시리즈?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를 말하는 거냐?]용이 노골적으로 눈살을 찌푸리자, 여명이 한마디 했다.
“왜? 영화 좋아한다며, 다큐멘터리도 영화만큼이나 재밌….”
[다큐멘터리가 재밌다니. 지나가는 인간 백 명에게 물어봐라, 백 명 중 구십 구명은 그런 걸 보느니 가슴 큰 금발 여자랑 마초남이 나와서 총질하는 영화를 보는 게 낫다고 할 거다.]“….”
[그리고 또 생각해봐, 유명한 영화 감독 이름은 누구나 댈 수 있지만, 유명한 다큐 감독 이름? 아무도 모른다.]“…댈 수 있는데? 체코의 에두아르트하고, 미국의 존 어빙하고, 또….”
[전부 처음 듣는 이름이군. 역시 내 말이 맞다.]“….”
여명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용을 올려다보자, 지켜보던 코르부스가 딱- 부리를 다물었다.
“제자여, 저 용 말이오. 말보다는 주먹이 더 잘 통하는 스타일 같구려. 본인이 좀 강하게 가르쳐도 되겠소?”
“…예, 빡세게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