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331)
을 위한 세계는 없다-331화(331/817)
***
코르부스는 대단한 마법사였다.
무례한 용의 쪼인트를 까고, 부리로 눈을 쪼아댈 정도로 대단한 마법사.
특히 그녀의 발차기가 얼마나 매콤했는지, 온갖 영화 지식을 늘어놓으며 여명을 놀리던 용이 발차기 두 번에 주둥이를 다물 정도였다.
…아무튼.
어느새 수인 형태로 변신한 코르부스가 깃털 가득한 손으로 용의 앞에 서서 뭔가를 주저리주저리 설명하는 가운데, 성녀가 입을 열었다.
“코르부스의 무진연각… 오랜만에 보니 어때?”
여명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계속 반항하는 용을 구경하다가, 코르부스가 깃털 달린 손으로 용의 이마를 찰싹찰싹 때리는 걸 보며 대답했다.
“…날 두들겨 팰 때보다 더 강해지셨네.”
주가시빌리의 살기를 빼기 위해 코르부스에게 차이던 순간을 추억하며 꺼낸 말.
똑같은 순간을 떠올렸는지, 성녀가 쓴웃음을 지었다. 여명은 이마를 붙잡고 낑낑거리는 용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좀 심하게 때리시는데? 저러다 용 울겠다.”
성녀가 여명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대답했다.
“에이, 저 정도는 해야지. 널 두들겨 팰 때랑은 상황이 다르잖아.”
“…달라? 뭐가?”
“그때는 살기를 빼기 위한 발차기였고, 지금은 개념을 주입하기 위한 발차기잖아?”
꽤 그럴싸한 말이었다. 성녀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면 더 좋았을, 그런 말.
살짝 어이가 없어진 여명이 미간을 좁히는 사이, 성녀가 덧붙였다.
“정말… 여명은 너무 착하다니까.”
“…갑자기 뭔 소리야.”
“아니, 그렇잖아. 만박불통도 그렇고, 저 싸가지없는 용도 그렇고… 그 무례함을 다 참아낸 데다가, 심지어 걱정까지 해주잖아? 너무 착해서 걱정될 정도야.”
여명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성녀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나도 원래 이런 성격 아니었는데… 익숙해져서 그런가 보다.”
“익숙해졌다고? 예전에도 누가 저렇게 무례했….”
의아함에 고개를 돌리던 성녀는 여명과 눈을 마주쳤다.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린 그의 표정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성녀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우리 엄마?”
여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성녀를 바라본 채로.
“….”
그녀의 엄마 말고도 더 있다는 눈빛이 틀림없었다. 성녀는 잠시 고민한 끝에 다른 이름을 꺼냈다.
“…월라드?”
여명은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상태였다.
뭐지? 누가 더 있었더라.
“아, 다룰마?”
절레절레 고개를 가로젓는 여명.
“어… 그러면… 우리 아빠?”
절레절레.
“이 이상은 모르겠는데…? 어쨌든 나는 아닐 거 아냐?”
“….”
많은 뜻이 담긴 침묵.
성녀는 그제야 여명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깨닫고 그의 등을 때렸다.
“야! 내가 뭐 얼마나 무례했….”
“뒤통수에 총 겨눈 것보다 더 무례한 일이 있어?”
한 대 더 치려던 성녀는 뒤늦게 만주 때의 일이 떠오른 듯, 움찔 손을 멈췄다.
“…안 쐈는데? 쏠 생각 없었는데? 나 성녀인데…?”
“그때는 성녀인 거 안 밝혔잖아.”
“….”
뭐라 반박할 말이 없는 듯, 입술을 삐쭉이는 성녀.
오랜만에 한 방 먹인 여명이 웃으며 그녀의 하얀 머리카락을 막 헤집어 놓을 때쯤.
어느새 훈육을 끝낸 코르부스가 허공에 커다란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검은 깃털과 대비되는 짙푸른 마나를 물감 삼아 곡선에서 직선으로, 원형에서 사각형으로, 그리고 복잡한 그림으로.
이윽고 코르부스가 마법진 한가운데에 손가락을 쿡 찍자, 깊은 탑의 설립자이자 초대 마탑주가 만들었다고 알려진 고대의 마법이 완성되었다.
“…고작 변신 주문 주제에 뭐가 저리 어렵담.”
완성된 마법진을 본 성녀의 평가는 꽤 신랄했다.
하긴, 저렇게 어려우니, 용은 고사하고 인간들도 거의 배우지 않는 것이리라.
육체를 변화시켜 거의 다른 종족 수준으로 만드는 마법이 ‘고작’ 변신 주문 같지는 않지만…
아무튼, 마법진을 본 용은 노골적으로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어렵다. 더 쉬운 마법은 없나?]코르부스는 대답 대신 폴짝 뛰어오르더니, 그대로 용의 이마를 내려쳤다.
찰싹-! 세티와 함께 용 둥지를 돌아다니던 데스나이트들이 고개를 돌릴 정도로 경쾌한 일격.
“쉬운 길을 거쳐 도착한 목적지에 보상은 없는 법! 헛소리 말고 지금 당장 손으로 마법진 그리기 100번, 마나로 그리기 100번을 실시하시오!”
[100번? 이런 씨… 이게 교육이야? 돌로레스 엄브릿지! 테런스 플레처! 웰튼 아카데미 놀란 교장 같으니!]용의 입에서 나온 건 여러 영화에 나오는 나쁜 선생님들의 이름이었다.
안타깝게도 그 이름들을 알아들은 건 여명뿐이었고, 코르부스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악! 자, 잠깐! 때리지 마라! 이 빌어먹을 수인…! 악! 잘못했어요!]발차기로 용을 순한 양으로 만드는 기적 같은 광경. 성녀는 그 꼴을 보며 살짝 질린 표정을 지었다.
“…코르부스, 의외로 폭력적이네. 여명한테는 저러지 않았는데, 부리로 쪼긴 하지만.”
“그야… 나는 태도부터가 다르잖아. 그리고 저렇게 어렵게 배우는 일도 없고.”
그러자 성녀는 여명의 옆구리를 콕 꼬집었다.
“…맞아가며 마법을 배우는 것도 남들 눈에는 충분히 이상해 보이거든?”
“….”
할 말이 없어진 여명은 인벤토리에서 책을 꺼냈다. 저번에 코르부스가 준 책 중 하나, ‘맹자’였다.
곧 여명이 자리를 깔고 앉아 책을 펼치자, 성녀가 따라 앉으며 물었다.
“책? 해저터널은 안 들어가게?”
여명은 손을 들어 저편에서 데스나이트들과 둥지를 돌아다니고 있는 세티를 가리켰다.
“앞으로 한 시간은 더 걸릴 거 같아서.”
그의 말마따나, 세티는 꽤 진지하게 베이스캠프를 고려하고 있었다.
두 명의 데스나이트가 그녀의 명령을 따라 둥지 벽면에 이리저리 표시를 새기는 걸 보아하니, 꽤 크게 지으려는 생각 같은데…
“오물 함정이 그렇게 충격이었나? 한 시간으로 모자라겠는데? 으음… 그동안 나는 뭐하지?”
여명은 맹자의 첫 구절, ‘맹자견양혜왕’을 눈에 담으며 대답했다.
“가서 세티 도와줘, 바빠 보이는데.”
“나는 가봤자 방해만 될 텐데?”
“…그건 그렇네. 너도 한 권 줄까?”
성녀는 난색을 표하며 고개를 뒤로 뺐다.
“엑, 됐어. 종교 경전이나 철학서는 이미 질릴 정도로 읽었어.”
좋은 책을 읽는다고 철이 드는 건 아닌가? 여명은 불현듯 떠오른 깨달음을 삼켰다.
그러건 말건, 금세 심심해진 성녀는 여명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전윤성의 팔을 치료한 사소한 이야기부터, 호아나가 마법학부에 술을 챙겨 갔다는 소소한 일상 이야기, 그리고…
“…아, 그리고 조지 칸 선생님? 오늘 치료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만났는데, 나한테 이상한 거 주더라.”
“이상한 거?”
여명은 그에게 브라우닝의 선물을 넘기며 성녀의 이름을 팔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혹시 그의 말에서 이상한 점을 찾아낸 걸까?
하지만 이어진 성녀의 말은, 그의 의심과는 전혀 상관없는… 다분히 아카데미다운 것이었다.
“지구-아샤 문화 교류 동아리실 초대장.”
“….”
“자기가 담당하는 동아리라고, 친구들 데리고 한 번 찾아오라던데?”
“…친구들?”
“세티랑 너, 특히 너를 꼭 데리고 와달라고 하더라.”
세티와 나를 동시에? 왜? 여명의 고개가 기울어지는 가운데, 용의 애처로운 비명이 둥지를 울렸다.
***
여느 아카데미들과 달리, 로드 하우 아카데미는 학생 자치 동아리를 적극 권장한다.
물론, 순수하게 교육적인 목적만 있는 건 아니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이러한 동아리 지원에는 정치적인 목적이 짙게 묻어있다.
당장 미국 대통령의 막내아들과 제국의 황족이 같은 동아리에 소속되어 있는 모습부터가 그렇지 않나.
누가 봐도 연출인 다섯 신 교단의 사제 지망생과 기독교 목사 지망생들이 함께 기도하는 사진은 또 어떤가.
귀족 출신 학생과 노예 출신 학생이 함께 만화책을 보는 사진은?
(중략)
…지구 우선주의자나, 아샤 독립운동가들은 그런 아카데미 홍보물을 보며 ‘역겨운 프로파간다’ 라며 손가락질했지만, 아카데미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이런 것조차 없으면 국적과 인종, 심지어 출신 차원마저 다른 학생들을 어떻게 한 자리에 모아놓을 수 있겠는가?
자치 동아리는 아카데미의 학생들을 학생으로 묶어 놓기 위한 수단에 가깝…
(중략)
…결론적으로, 극단주의자들이 아니꼬워 한다는 사실은 동아리를 통한 아카데미 홍보가 그만큼 잘 먹힌다는 방증이나 다름없다.
현 교장인 히메나 리베로는 이러한 홍보의 귀재로서 스스로의 정치적 입지를…
『뉴스 코프 오세아니아, 엘 간도의 사설 중 발췌.』
***
여명이 용 둥지에서 책을 보던 시점에서 시간을 조금 뒤로 돌려, 해가 지는 저녁 시간.
로드 하우 아카데미 중앙 섬, 자습의 전당이라는 이름보다 그냥 ‘동아리 건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커다란 건물의 한 동아리실에서, 아도-길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안 올 겁니다.”
그의 말이 향하는 곳은 동아리 건물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창가, 정확히는 창가에 서 있는 흑인 선생님이었다.
“어떻게 확신하나.”
“조지 선생님. 생각을 좀 해보세요. 1학년도 아니고 2학년 선생님이 대뜸 동아리를 찾아달라고 하면 어떤 1학년이 찾아오겠어요?”
“….”
“게다가 지구-아샤 문화 교류 동아리라니… 이름부터 구리잖아요.”
조지 칸은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초대 학장님이 직접 만든 유구한 전통을 가진 동아리다만.”
“예, 참 낡았네요. 사격 동아리를 들락거리던 성녀님이 퍽이나 찾아오겠네요.”
아도-길로의 독설이 날카롭게 조지 칸을 찔렀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네 누이처럼 다른 동아리로 가도 상관없다. 그저 이 방에만 오면 충분해.”
“그러니까! 이 방에 안 올 거라니까요?”
“….”
“선생님은 걔들이 얼마나… 어후, 말을 말아요.”
그제야 조지 칸은 고개를 돌려 아도-길로를 바라봤다.
“걔들? 성녀와 천여명? 그 둘이 뭐가 어떻다는 거냐.”
“아, 그건… 죄송해요. 말 못해요.”
“이유는?”
“교장 선생님께 맹세했어요.”
“히메나 교장님께? 흠, 그럼 어쩔 수 없지.”
짧은 문답이 끝나기 무섭게, 둘 사이로 침묵이 들어찼다. 창문 바깥에서 들려오는 학생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뒤섞인 기묘한 침묵.
그 침묵이 길게 늘어지다 못해 귀 아래로 흘러내릴 때쯤, 조지 칸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너도 알다시피, 이번 1학년에는 유독 혼혈들이 많이 입학했다. 이 동아리는…”
“…둘만 있을 때는 그냥 잡종이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아도-길로가 자조적으로 중얼거리자, 조지 칸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혼혈이다. 인간은 가축이 아니야.”
“에이, 어차피 마탑에서도 잡종이라고 부르는 판에… 뭐, 선생님이라도 그렇게 말해주니 좋네요.”
쓰읍, 괜히 입맛이 써진 아도-길로는 괜히 시선을 돌렸다. 조지 칸은 얼굴 위로 드리우는 석양을 피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어쨌든, 지금이라도 1학년 혼혈들의 인적 사항을 파악해야겠다. 아도, 너도 도와라.”
“아… 밥 사준다고 해서 왔더니 이거 원… 정말 이러깁니까? 저 말고 도와줄 혼혈 없어요?”
“당장 날 도와줄 수 있는 학생은 2학년 중에서 네가 유일하다. 3학년은… 미군이 너무 많아.”
“씁….”
정말로 본인뿐이었나. 아도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귀찮아서? 아니, 그는 조지 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으므로.
조지 칸은 그런 아도-길로를 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네 누이와 너를 도와준 대가를 내놓으라는 게 아니다. 그냥 도와 달라는 거야.”
“아니, 그렇게 말 안 하셔도 도와드릴 겁니다만… 그냥 어림짐작으로 파악하면 안 될까요? 성녀님이랑 홍세티는 누가 봐도 혼혈인데.”
조지 칸은 고개를 저었다.
“테러도 그렇고 성녀님도 그렇고… 올해는 특별해. 늦었지만 확실하게 가야 한다. 성녀님과 홍세티의 자매, 그리고 천여명까지 전부 확인해야 안심이 될 것 같다.”
“천여명이요? 걔는 혼혈 아닐 텐데.”
“…아는 사이인가?”
“이걸 안다고 한다면야… 예, 알긴 알죠.”
길로의 말을 어떻게 이해한 건지 모르겠지만, 조지 칸의 얼굴의 화색이 돌았다.
“그러면 천여명과 홍세티의 자매들, 전부 이 방으로 데리고 와줄 수 있나?”
“…어허, 요구 조건이 자꾸 늘어나시네?”
아도-길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그의 타고난 성정 탓도 있었지만, 본인도 궁금한 탓이었다.
천여명이 정말로 잡종… 아니, 혼혈일까? 자신이 그런 것처럼?
별로 친한 사이도 아니었고, 심지어 친해질 생각도 없었지만 그는 여명이 혼혈이었으면 바라는 자신을 발견했다.
동병상련이랄까, 이 넓고 잔인한 지구에서 같은 처지인 사람이 한 명쯤 있으면 했으므로.
…어쨌거나, 기왕 이렇게 된 거 누이의 부탁과 조지 칸의 부탁을 동시에 처리해야 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연락처를 확인한 순간, 그의 이마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소중한 나의 누이] [읽지 않은 메시지 : 139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