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362)
을 위한 세계는 없다-362화(362/817)
***
여명은 솟구치는 무수한 덩굴줄기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줄기들 모두 끝에 뾰족한 날이 서 있는 까닭이었다.
찔러 죽이시겠다?
그의 의심을 증명하려는 듯, 뾰족한 줄기들은 일제히 그를 노리고 쏟아졌다. 허공에 떠오른 여명은 끌어안은 쇠미리를 단단히 붙잡으며 반대편 손을 휘둘렀다.
번쩍-! 인벤토리 속에 잠들어 있던 검이 그의 손에 쥐어지며 빛을 흩뿌렸다. 너무 눈에 띄어서 한동안 꺼내지 못했던 산의 눈물.
드워프제 칼날은 마치 두부 자르듯 손쉽게 줄기들을 토막 냈다.
후두둑- 토막 난 녹색 줄기들과 함께 땅으로 착지한 직후, 여명은 그대로 비각술을 펼쳐 다시 뛰어올랐다.
곧이어 그가 착지했던 자리로 또 다른 덩굴줄기들이 우수수 꽂혔다. 튀어 오르는 흙과 잿가루가 등을 때리고, 줄기들이 공기를 가르며 쫓아오는 소리가 귀를 울렸다.
“너무 많네.”
여명은 담담하게 검에 마나를 모았다.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일 만큼 화려한 별빛.
그가 허리를 틀고, 검신을 따라 출렁이는 마나가 반원을 그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뒤에서 쫓아오는 무수한 줄기들을 향해 별빛이 터져 나왔다.
콰아아- !
검에서 시작된 빛은 궤도에 있는 모든 것을 지워버렸다. 잿가루와 불타는 잔해들, 그리고 쫓아오던 줄기까지. 전부.
그렇게 여명이 다시 땅에 착지했을 때, 줄기를 모두 잃은 자칭 세계수가 이죽거렸다.
-그 너덜너덜한 몸으로 잘도 싸울 마음이 생겼구나. 아니면 내 새싹이 그렇게 탐나더냐?
“…저는 딱히 싸울 생각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길을 터주시면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허튼소리! 이 뒤틀림을 끝낼 자격은 오직 나에게만 있다!
그렇게 소리친 세계수는 땅으로 손을 뻗었다.
쿠궁…!
곧이어 바닥이 흔들리며 무언가 땅 위로 솟구쳐 올랐다. 흙과 함께 튀어나온 그것은 그녀가 등지고 있는 거대한 나무의 뿌리였다.
그것도 여명의 머리 위로 그림자를 드리울 정도로 거대한 크기의 나무뿌리.
“씁.”
더는 대화로 풀 수 없다는 걸 확신한 여명은 쓴웃음을 지으며 쇠미리에게 말했다.
“미리, 조금 어지러워도 참아.”
“…네?”
그러자 그의 가슴팍에 몸을 기대고 있던 쇠미리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짙은 눈동자에는 같이 싸우고 싶다는 의지가 가득했으나, 세상에는 의지만으로 안 되는 일도 있는 법이다.
특히 길쭉한 귀에서 계속 피를 흘리는 엘프라면 더더욱.
여명은 인벤토리에서 물약을 꺼내 그녀의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염동력으로 띄워서 안전한 곳까지 밀어낼 테니까, 그 동안 치유에만 전념해. 알겠지?”
“잠깐, 여명, 저는…!”
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여명은 멋대로 그녀의 몸을 염동력으로 띄워 저편으로 날렸다. 대화는 여기까지 였다.
그렇게 쇠미리가 불타는 숲 저편으로 날아간 직후, 기다렸다는 듯 그가 서 있는 자리가 어두워졌다. 거대한 나무뿌리가 그의 머리 위로 드리운 덕분이었다.
질량은 곧 힘. 거대한 뿌리가 자신을 향해 떨어지는 걸 마주한 여명은 검을 뽑아 들며 말했다.
“전 최대한 피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니 처맞아도 후회하지 마십쇼.”
-방자하다.
뿌리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는 자칭 세계수의 대답과 동시에, 여명의 검에서 불씨가 흩날렸다.
뿌리의 그림자 아래에서 더욱 선명하게 빛나는 불씨.
여명이 검을 휘두르고, 불씨가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순간.
검과 뿌리가 충돌했다.
!
소리는 없었다. 너무나 큰 폭발의 충격에 주변 공기가 일제히 침묵했다.
산소를 집어삼키는 폭발, 터져 나오는 화염.
화산쇄설의 폭발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겨우 폭발 한 번으로 처리하기엔 뿌리가 너무 거대한 까닭이었다. 질이 부족하다면 양으로 채울 수밖에.
-미친놈.
도망가는 것도, 피하는 것도 아닌 이런 무식한 수를 쓸 줄이야. 자칭 세계수는 뿌리를 반으로 가르며 다가오는 폭발을 보며 오싹함을 느꼈다.
정신 나간 기사단장과 변경백이 만들어낸 증오의 불길.
아무리 꿈속이라지만 저 무술이 하필 자신에게 겨눠지다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군.
그녀의 머릿속으로 저 폭발을 막아낼 온갖 수가 떠올랐으나, 길게 이어지진 못했다. 어느새 폭발의 불씨가 그녀의 코앞에 도착했으므로.
쿠우웅!
반으로 갈라진 나무뿌리가 땅에 추락하는 것과 동시에, 여명이 뿌리 위로 올라섰다.
-인간 천여명, 방자하고 또 어리석은 자여. 너는…
대화는 없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천여명은 검을 양손으로 잡고 화산쇄설을 휘둘렀다.
세계수는 자신을 덮치는 거대한 불꽃을 보았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반짝이는 천여명의 두 눈동자도. 그의 황금색 눈은 어떤 불꽃보다도 강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익숙한 투쟁심, 익숙한 광기.
그와 눈을 마주하던 세계수가 뭔가를 떠올린 순간, 폭발이 찾아왔다.
콰아아앙 – !
화염은 게걸스럽게 그녀의 몸을 씹었다. 몸을 이루고 있던 덩굴줄기가 찢어지고, 불타며 몸이 바스러졌다.
살아있는 생명체였다면 피를 토하며 기절했을 충격이었으나, 그녀는 분신에 불과했고 이곳은 꿈이었다.
-이것으로 끝날 거라 생각했느냐?
그녀는 폭발의 범위를 벗어나며 소리쳤다. 볼썽사납게 뿌리 위를 구르는 꼴이 추하기 그지없었으나, 반격의 틈을 찾기엔 충분했다.
-나의 뿌리는 고작 하나가 아니다!
그녀의 선언과 동시에, 또 다른 뿌리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쿠구궁…! 지진에 가까운 소리와 함께 솟구친 뿌리들은 어찌나 굵은지, 불타는 잔해들과 시체들이 그 위에 그대로 놓여있었다.
다가오는 뿌리를 확인한 여명은 즉시 비각술을 펼쳤다. 그는 뿌리들과 일일이 싸우는 대신, 자칭 세계수의 분신체를 향해 염동력을 펼쳤다.
도망갈 틈을 주지 않겠다는 의도였으나, 분신체는 의외로 손쉽게 그의 주문을 흩어버렸다.
-우둔한 것. 네 마법의 근원이 전부 나의 마나일진대, 내가 너의 마법에 해를 입겠느냐?
“….”
-나의 마나가 없었다면, 너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용을 쓰러트리지도 못했고, 동궁정백을 이겨 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녀가 뭐라고 지껄이건, 여명은 거침없이 그녀를 쫓았다. 마법이 안 되면 직접 칼을 박아주면 될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의 검이 분신체의 머리를 반으로 갈라버렸음에도, 그녀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네가 이룬 모든 것! 네가 가진 마나! 그건 전부 주인공을 위한 것이었다! 도둑놈! 남의 것을 훔쳐 자리를 차지한 참칭자! 너는 결코 나의 새싹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그냥 머리통을 날리는 걸로는 모자란가? 여명이 눈살을 찌푸리며 화산쇄설을 일으키는 찰나, 갑자기 총소리가 들려왔다.
탕!
***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이 노린 건 잘린 세계수가 아닌 여명이었다. 정확히는, 그의 머리를 노린 사격.
“?!”
여명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틀어 총알을 피했다. 하지만 설마 총알이 자신을 노릴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한 탓에 반응이 늦었다. 총알이 스친 볼이 길게 갈라지며 피가 흘렀다.
“뭔-”
총알이 날아온 방향을 본 그의 눈이 일그러졌다.
솟구친 저편에서 그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건… 불타는 숲 곳곳에서 볼 수 있던 인간의 시체였으니까.
시체의 뒤통수에는 뿌리에서 뻗어 나온 나무줄기가 꽂혀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좀비 같았다.
“…언데드? 세계수가?”
여명은 황당함을 느끼면서도 얼음송곳을 만들어 좀비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그리고 픽 쓰러지는 좀비를 뒤로한 채 세계수의 분신체를 노려봤다.
“거, 진짜 별짓을 다 하시네.”
-역겨운 배신자들의 시체다. 이렇게라도 쓰이면 다행인 줄 알아야지.
말은 그렇게 했으나, 세계수 본인도 내키는 모습은 아니었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아마 세계수에게 증오를 산 인간들이 아닐까?
물론, 지금 이 순간에 중요한 건 그런 의문이 아니었다.
여명은 하늘을 가리는 거대한 뿌리들과 그 뿌리 위에서 스멀스멀 일어나는 좀비들, 그리고 자신을 향해 기어 오는 무수한 덩굴들을 보며 검을 꽉 쥐었다.
“…정말 끝까지 가보자는 겁니까?”
-돌아가라는 나의 제안을 거부한 순간부터 정해진 일이었다. 너는 죽어 마땅하다.
그녀의 말이 끝나는 순간, 여명은 땅을 박찼다. 파양결이 섞인 비각술.
-어딜 감히!
삽시간에 거리를 좁혀오는 그의 앞길을 방해하기 위해 무수한 줄기와 총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여명은 개의치 않고 주가시빌리를 일으켰다.
상대를 죽이겠다는 의지가 담긴 붉은 아지랑이가 그의 몸을 뒤덮은 바로 다음 순간.
검 끝에서 터져 나오는 폭발이 발길을 막아서는 모든 것을 지워버렸다. 좀비와 줄기, 그리고 머리를 덮치는 거대한 뿌리까지.
쾅, 쾅, 쾅!
세계수의 뿌리 위를 내달리는 그는 작은 불씨처럼 보였다. 물론, 쫓기는 세계수의 분신체가 보기엔 그 어떤 산불보다도 공포스러운 불씨였지만.
-죽어! 죽으란 말이다!
분신체는 다가오는 여명을 보며 있지도 않은 이를 악물었다.
천여명은 시체를 조종하는 그녀를 보며 별짓을 다 한다고 지껄였지만, 그녀가 보기엔 주가시빌리를 펼치는 여명이 더 끔찍해 보였다.
줄기에 팔다리가 꿰뚫려도, 총알을 맞아 목에 구멍이 나도 멈칫하긴커녕 더욱더 빠르게 달려드는 인간이라니.
초대 용사가 맞서 싸웠던 마왕이 따로 없었다.
쿠웅!
때마침 거대한 뿌리가 그의 몸을 짓눌렀으나, 잠깐의 시간 벌이에 불과했다.
여명은 화산쇄설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술로 자신을 짓누른 뿌리를 터트리고, 불태우고, 자르며 그녀를 쫓았다.
-저, 저 미친 것.
세계수의 분신체가 치를 떨며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이어지길 잠시.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거대한 나무 코앞까지 도달하고 나서야,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참칭자, 도둑놈, 그리고 인간 천여명이여.
여명은 대답하지 않고 그녀와의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별빛을 가득 머금은 그의 검에서 검기가 뿜어져 나오려는 순간.
-내가 이겼다.
거대한 나무의 가지가 채찍처럼 휘어지며 여명의 배를 꿰뚫었다.
조금 전까지 몸을 꿰뚫던 총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은밀하고, 무지막지한 힘이 실린 나뭇가지.
“큭!”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주가시빌리가 가지를 밀어내려 했으나, 가지는 역으로 주가시빌리가 만드는 마나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뭐지? 당황한 여명의 몸이 힘을 잃고 가지를 따라 허공으로 떠오르는 가운데, 분신체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내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여기까지 끌어들였겠느냐? 참칭자야. 내가 말하지 않았더냐. 나의 마나가 아니었으면 너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
여명은 가지에 붙잡힌 자세 그대로 분신체를 노려봤다. 덩굴줄기로 이루어진 분신체는 잘린 머리를 복구하고는, 마치 쇠미리의 그것처럼 상쾌한 미소를 지었다.
-주제도 모르고 세계수의 결정을 먹을 때는 즐거웠겠지? 욕심은 화를 부르는 법이다. 참칭자여. 몸의 마나가 엘프인지 인간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결정을 먹어 치운 대가를 치르게 되었구나.
“….”
그녀의 말마따나, 여명의 마나는 세계수나 엘프의 그것에 가까웠다. 첫 영약으로 세계수의 결정을 먹고, 거의 완벽에 가깝게 그것을 소화한 결과였다.
종종 그와 쇠미리의 마나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 더 말해 무엇할까?
그리고 이건 다시 말해…
-이제 눈치챘느냐? 지금 나는 나의 것을 되찾는 것이다. 지구 자본가들의 천박한 표현을 빌리자면, 이자까지 톡톡히 쳐서.
“….”
승리를 확신하는 분신체를 보며 여명은 한숨을 삼켰다.
그의 마나를 빨아들이는 나무는 점점 더 거대해지고 있었는데, 이대로 한 시간 정도만 더 성장하면 지나면 고개를 들어도 높이가 안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물론, 여명은 한 시간이나 마나를 빼앗겨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배를 꿰뚫은 가지를 꽉 붙잡으며 말했다.
“세계수.”
-왜, 지금이라도 자비를 구걸하겠느냐? 허나, 이미 늦었다.
여명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제 인벤토리 속에는 수폭이 있습니다.”
-하, 드레이테리얼에서 주운 그것 말이냐? 허튼 협박이로다. 이 상황에서 너는 그것을 기폭 시킬 힘도 능력도 없다. 터트릴 수 없는 핵무기는 그냥 비싼 장식에 불과한 법. 하찮은 혓바닥으로 나를 협박할 생각일랑 하지 말라.
“기폭 직전의 수폭이 있다면 어쩌실 겁니까?”
-…허튼소리.
분신체의 감정을 공유하는 걸까, 배를 꿰뚫은 가지가 그의 내장을 쑤셔댔다. 여명은 쿨럭 피를 토하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쇼. 꿈속이라지만, 핵무기를 쓸 생각은 없으니까요.”
아직 꿈속에 있는 쇠미리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도 있었지만, 이것만큼은 진심이었다. 핵무기는 쓰지 않는 게 옳다. 그렇기에 한국을 날려버리자는 세티의 제안도 거절하지 않았던가.
뭐, 어쨌건. 잠시 뜸을 들인 여명은 위장의 마나를 일으키며 말을 이었다.
“…수폭을 사용하지 않는 대신, 질문 하나만 하겠습니다.”
-이 상황에서? 질문? 유언이 아니라…? 하, 그래, 어디 해보거라.
분신체는 승자의 아량이라도 베푸는 것처럼 말했다. 여명은 피를 삼키며 물었다.
“세계수 본체의 의도는 어느 쪽에 가깝습니까? 쇠미리? 아니면 당신?”
마나를 빨리며 죽어가는 와중에 할만한 질문은 아니었다. 분신체는 어이가 없다는 듯 여명을 노려보며 말했다.
-당연히 내가 세계수의 진짜 의지다. 쇠미… 씁, 미리디스는 작은 새싹에 불과해. 그래서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말았지. 너무나 조각나버린 우리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그 뿐인 이야기다.
그제야, 여명은 눈앞의 세계수가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쇠미리에게 전해준 주먹만 한 세계수 결정. 그 결정이 쇠미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결정과 합쳐지며 자아를 각성한 것이다.
데메론드… 아니, 쇠미리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아마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마지막까지 여명의 편을 들었다.
단순히 고집 때문에? 아니면 그를 진심으로 믿어서?
알 수 없었다. 알 필요도 없었고.
담담하게 생각을 정리한 여명은 분신체를 내려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동안 확신하지 못했는데… 당신 때문에 확신이 섰습니다. 역시, 쇠미리는 제가 가져야겠습니다.”
-뭐라?
분신체가 그를 미친놈처럼 바라본 순간, 여명의 위장에 잠들어 있던 뒤틀린 마나가 풀려나기 시작했다.
세계수의 마나와 전혀 상관없는, 죽은 용의 심장에 담겨있던 뒤틀린 마나.
그 마나는 여명의 혈관을 타고 내달리며 푸른 불꽃으로 변했다. 시체를 되살리고, 산자를 불태우는 불꽃.
터스키기의 귀화(鬼火)
여명의 몸을 태우며 피어난 불길은 삽시간에 그를 꿰뚫은 가지를 타고 올라가더니, 나무로 번져나갔다.
-뒤틀린 용의 마나… 이 미친 것, 이걸 몸에 품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아느냐?
분신체는 파랗게 타오르는 불길을 피하며 소리쳤다. 주가시빌리의 적색과 귀화의 청색을 동시에 몸에 두른 여명은 땅에 발을 디디며 대답했다.
“모릅니다. 알고 싶지도 않고. 단지, 지금 내가 아는 게 하나 있다면….”
그는 말끝을 흐리며 손을 들었다.
“당신은 그냥 큰 나무가 될 거라는 거지.”
그의 손짓을 따라, 나무로 옮겨간 불길이 한층 더 커지며 나무 전체를 뒤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