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366)
을 위한 세계는 없다-366화(366/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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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니미, 변경백, 고놈이 기어코 불알을 고치고 자식을 낳은 게야?]여명은 당황하지 않았다.
귀신 좀 봤다고 놀라기엔 요 며칠 간 싸운 적들의 수준이 너무 높은 까닭이었다.
어제는 미국의 대행자, 오늘은 세계수.
책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귀신 따위야, 그 둘과 비교하면 신기한 축에도 못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변경백과 닮았다는 소리는 너무 자주 들어서 이제 식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정작 변경백과 마주했던 기사단장도, 두메아 가주도 그를 보고 변경백의 자식이라고 확답하지 못하는 판에, 일개 귀신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일 리가?
그렇기에 여명은 조지 선생에게 천연덕스럽게 대답할 수 있었다.
“별일 아닙니다. 잠깐 마나가 흔들려서요… 그냥 착각이었나 봅니다.”
“그래? 음… 그러면 일단 책을 옆으로 넘기게, 혹시라도 이상이 느껴지면 바로 알려주고.”
여명은 고개를 끄덕인 뒤 성녀에게 책을 넘겼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얼굴을 들이미는 귀신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노골적인 무시.
[이런 고얀 놈을 봤나. 조금 전에 눈 마주친 걸 똑똑히 기억하거늘. 어른을 무시해?]귀신이 뭐라고 지껄이건, 여명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자 성녀와 세티 또한 그를 따라 눈치껏 귀신을 외면했다.
그리고 그릇은… 노골적으로 귀신을 향해 고개를 고정하고 있었으나, 베일로 얼굴을 가린 덕분에 크게 티가 나지 않았다.
[이놈아! 반응 좀 해봐라!] [허어, 보이는 거 알고 있다니까?] [천여명? 이름은 또 왜 조선식이야?] [이승만 그놈이 조선은 예의가 자랑인 나라라고 했거늘, 전부 헛소리일 줄 알았다!]귀신은 끝없이 떠들어댔다. 성녀를 시작으로 방에 있는 모두가 책의 마법진을 사용할 때까지, 계속.
“모두 내 고집에 어울려 줘서 고맙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명을 제외한 모두… 그러니까 전윤성조차 지구-아샤 혼혈이라는 걸 확인한 조지 선생은 꽤 홀가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체 무슨 이유로 혼혈 검사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조지 선생님도 꽤 부담되는 일이었던 모양.
그러나 안타깝게도, 조지 선생의 일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사람이 뭐 이리 많이 모여 있어? 여기 어디 성녀라도 있느냐?]주절거리는 귀신의 말마따나, 그사이 동아리실 앞에 모인 사람들의 숫자는 더욱 늘어난 까닭이었다.
“이제 어떻게 나가죠?”
아도 선배는 동아리실 너머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살짝 질린 표정을 지었다.
일행들은 각자 다른 답을 내놨다.
창문으로 나가자는 전윤성과 자신이 해산시키겠다는 조지 선생, 그리고 여명이 선배들을 두들겨 패는 사이에 우리만 도망치면 안 되냐는 그릇까지.
하지만 성녀의 의견은 달랐다.
“우리가 범죄자야? 창문으로 도망치게? 그리고 창문 바깥에도 구경하는 사람들은 어쩌려고?”
“선생님, 저게 말로 해산되겠어요? 들어올 때도 못 한 걸 어느 세월에 하시려고요?”
“마지막으로, 그릇 너는 진짜… 천재 맞아? 머릿속에 뭐가 들어있는 거야?”
속사포 같은 성녀의 지적에 세 사람이 입을 다물자 여명은 슬쩍 커튼 바깥을 확인하며 물었다.
“그럼 어쩌게? 좋은 생각이라도 있어?”
성녀는 치마 주머니를 툭툭 치며 대답했다.
“설득하면 되지.”
“설득? 총으로 겨누는 건 설득이 아닌….”
“너까지 그럴래? 당연히 말로 하겠다는 거지, 말로!”
그렇게 말한 성녀는 곧 주머니에서 짧은 어깨 망토를 꺼내 걸쳤다. 다섯 교단 사제단의 상징인 순백의 망토.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고작 망토 하나 걸쳤을 뿐인데, 진짜 성녀처럼 보였다.
[성녀? 성녀라고?]귀신마저도 그녀의 변신에 놀라는 사이, 성녀는 그릇의 손을 붙잡았다.
“나, 나는 왜?”
놀란 그릇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반항했으나, 성녀는 다짜고짜 그녀를 질질 끌고 동아리실 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흠흠, 목소리를 가다듬은 성녀는 그대로 문을 활짝 열었다.
-성녀님이다!!
-성녀님! 이쪽을 봐주세요!
-그릇…
우르르 모여 있던 선배들… 특히나 교인들은 성녀를 보자마자 함성에 가까운 소리를 내뱉었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지켜보던 귀신이 귀를 막을 정도.
평범한 사람이라면 주눅들만 한 모습이었으나 성녀는 당당하게, 혹은 뻔뻔하게 선배들을 향해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신실한 형제, 자매들이여. 이렇듯 저희를 만나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뜨거운 환영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평소의 방정맞은 목소리가 아니라, 감미로운 영업용 목소리로.
“그러나 안타깝게도, 저희 두 사람은 이 환영에 보답하지 못할….”
***
30분 후, 북쪽 섬 하수구 입구로 향하는 길.
“중간에 창문 열고 도망치려던 사람 누구?”
성녀가 여명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할 말이 없던 여명이 슬쩍 고개를 돌리자, 그녀는 허리에 양손을 올리며 말했다.
“믿음이 부족한 자여, 내가 누구?”
“…성녀님이십니다.”
“그래, 성녀! 이제야 널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지 실감 되느냐?”
“예, 성녀님.”
그의 대답을 들은 성녀는 한껏 더 의기양양하게 콧대를 높였다.
그 모습을 본 세티가 피식 웃었으나, 정작 그녀에게 붙잡혀 설교용 액새서리(?) 취급을 받은 그릇의 반응은 뚱했다.
“…종교인들이란.”
“종교인이 뭐가 어때서 이 주문 쟁이야.”
그릇은 그걸 몰라서 묻냐는 듯 대답했다.
“아니, 그렇게 모여놓고 다음에 기도회를 열 테니 돌아가란다고 돌아가는 게 정상은 아니잖….”
“그래? 그럼 그쪽 주문쟁이 선배들은? 어떻게든 너랑 만나겠다고 마지막까지 명함 내미는 게 정상이야? 응?”
“그건… 마법사는 본질적으로 학자들이다 보니…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좀….”
“아 그러셔? 그러면 그냥 버려두고 올 걸 그랬나? 그 뭐냐, 대통령 아들? 그 인간한테 붙잡혔으면 볼만했겠네.”
“…아들 아니고 손자인데.”
“고맙다고? 별말씀을.”
그릇은 대답하지 않았다. 기연을 찾는 줄 알고 성녀와 세티를 쫄래쫄래 따라온 건 전적으로 자신의 잘못이 맞았으니까.
뭐, 그건 그거고…
“그래서, 저 귀신은 어쩔 거야?”
그녀의 시선이 여명의 머리 위에 앉아있는 귀신을 향했다. 아까 전부터 무시한 탓인지, 얼굴 가득 심술이 쌓인 모습.
귀신이 입술을 삐쭉이며 말했다.
[그래, 이제 내게 관심이 좀 생기느냐?]그릇과 세티, 성녀, 그리고 여명. 귀신은 자신을 볼 수 있는 네 사람을 하나하나 훑었다.
여명은 그의 반투명한 눈을 마주하며 말했다.
“무시해서 죄송합니다. 어르신, 선생님에게는 숨기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그러면 선생과 헤어진 뒤에도 계속 무시한 이유는 뭐냐?]“까먹었습니다.”
[….]솔직한 대답. 귀신은 미간을 잔뜩 구기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름도 그렇고, 그놈 아들치고는 싸가지가 영….]“….”
[쓰읍, 이건 됐고. 그 외에 날 못 보는 다른 혼혈아들도 내버리고 온 걸 보면, 너희 넷이 파티냐?]이번에는 여명의 고개가 기울어질 차례였다.
“…파티? 무슨 파티 말입니까?”
[이 시대의 용사 파티.]여명은 물론이고 뒤에서 듣던 소녀들도 모두 스스로의 귀를 의심했다. 이건 또 뭔 개소리야?
“그게 무슨 소립니까?”
[말 그대로의 의미다. 용사 파티. 용사와 떨거지들, 운명이 싸고 다닌 똥을 치우라고 다섯 신이 무일푼으로 부려 먹는 만능 하인들.]“…??”
[그 반응은 뭐냐? 너희를 봐라. 누가 봐도 용사 파티잖느냐.]귀신은 손가락을 들어 일행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성녀, 마법사, 전사, 그리고… 황금 혈통을 이은 용사.]황금 혈통? 귀신의 손가락 끝에 겨눠진 여명을 향해 일행들의 시선이 모였다.
그리고 그게 뭔지 몰라 의아해 하는 세티와 달리, 그릇은 갑자기 어깨를 떨었다.
“화, 황금 혈통? 당신 황족이었어요?”
“황족은 무슨. 여명은 여명이야. 그냥 저 귀신이 노망든 거겠지.”
그의 과거를 아는 성녀가 단칼에 반박했지만, 그릇은 빠르게 자세를 다잡고 슬쩍 여명의 눈치를 봤다.
“…미국 대통령 손자 명함도 안 받았으면서.”
그 꼴을 본 성녀가 이죽거렸으나, 그릇은 역으로 성녀를 나무랐다.
“그야 당연하지. 대통령 핏줄이 또 대통령이 되는 건 아니잖아? 하지만 황금 혈통은 어느 종족에게 가도 대접받을 수 있다고, 제국이 왜 아직도 대우받는지 몰라?”
그렇게 그릇이 빤히 자신을 바라봤음에도, 여명은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귀신을 향해 역으로 물었다.
“어르신께서는 누구시길래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까?”
귀신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크흠, 헛기침과 함께 분위기를 잡더니…
[내가 바로, 전대 마탑주다.]징징 울리는 목소리와 함께 그의 머리 뒤에서 작은 불빛이 번쩍거렸다. 싸구려 연극 소품처럼 노골적인 효과.
그러나 그가 원하던 반응은커녕 조롱조차 없었다. 일행들은 거의 동시에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웠으니까.
[어… 반응이 왜 이런 거냐?]여명이 대표로 대답했다.
“그게… 제가 아는 전대 마탑주랑 다르신데요? 그분은 여성이셨습니다.”
[그래? 그럼 전전대 마탑주인가 보군.]“….”
[아니, 전전전대인가…? 애송아, 올해가 몇 년이고?]여명은 곧바로 현재 년도와 지난 마탑주가 언제 바뀌었는지 설명했다. 직후, 귀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거, 책 속에 오래도 있었군. 제기랄.]“….”
[아무튼, 다시 하지. 크흠, 나는 전전대 마탑주, 마하간이다.]빠밤. 이번에는 한층 더 밝은 빛이 그의 뒤통수에서 뿜어져 나왔다. 잠시 그 꼴을 바라보던 여명과 일행은 휙 고개를 돌려 그릇을 바라봤다.
저 말이 진짜인지 밝혀줄 사람은 이 자리에서 그녀가 유일했으므로.
허나 그릇이라고 딱히 나을 건 없었다. 그녀는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그… 마탑 계단에 걸린 그림이랑 닮으신 거 같기도 하고… 안 닮은 거 같기도 하고….”
“….”
“사, 사실 너무 늙으셔서 못 알아보겠어요….”
말끝을 흐리며 눈치를 보는 그녀를 구해준 건 현대문물이었다. 정확히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세티.
“맞네. 전전대 마탑주 마하간.”
그렇게 말한 세티는 휴대폰을 들어 [마탑주 마하간]이란 제목의 흑백사진을 보여줬다. 확실히, 사진 속 마하간은 귀신과 여러모로 닮아있었다.
[아, 암살당하기 몇 년 전에 찍은 사진이군. 컬러였다면 더 좋았을 것을. 아쉽게도 당시 아샤에서는 컬러 사진을 찍기 어려웠거든.]“….”
정말 전전대 마탑주란 말인가? 여명은 여전히 의아함을 숨기지 못하는 사이, 그릇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베일을 벗었다.
“마, 마탑의 후예가 전전대 탑주를 뵙습니다.”
그녀는 레스토랑에서 그랬던 것처럼 유려하면서도 과장되게 허리를 굽혔다.
한쪽 손을 가슴에 올린 채, 다른 쪽 손으로 옷자락을 잡고 비스듬히 허리를 굽히는 차원문 너머 예법.
이번에도 뭐라 흠잡을 곳 없는 완벽한 자세였고 귀신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와 똑같은 자세로 인사했다.
[이 고풍스러운 예법이 남아있다니. 선조로서 기쁘기 그지없구나. 아이야, 이름이 무엇이고?]“사, 살로메 두메아입니다.”
[…두메아? 두메아가 살아있어? 나 죽고 당연히 망했을 줄 알았는데! 캬, 세상일은 정말 모른다니까.]“그, 그게 무슨…?”
[살아있으면 됐지. 뭘 이유까지 알려고 하느냐? 됐고. 다시 용사 이야기로 돌아가자꾸나.]그릇이 무어라 되묻기도 전에, 마탑주는 여명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이 시대의 용사야. 너는 그놈의 아들이냐?]그놈이 누구를 뜻하는지는 뻔했다. 여명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용사가 아니고, 그분의 아들… 도 아닐 겁니다. 그분께서 불임을 치료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으니.”
[그래?]말과 달리 마탑주는 그의 말을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는 여명에게 고개를 들이밀고 이리저리 얼굴을 뜯어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뭐, 본인이 아니라는 데 어쩌겠느냐. 아니라고 치자.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
[지금 진짜 중요한 건, 너희가 용사 파티란 점이다.]아까전부터 그는 단언했다. 여명은 슬쩍 일행들을 훑어본 뒤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십니까?”
[그거야 너희가 날 보고 있잖느냐. 아까 그 아해들과 달리 너희가 날 볼 수 있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느냐?]“…?”
[운명의 구슬을 지닌 운명의 주인들. 오직 그들만이 날 볼 수 있지. 즉, 너희는… 모두 운명의 주인이란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