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369)
을 위한 세계는 없다-369화(369/817)
***
“…나치 좀비?”
성녀의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마탑주의 말을 끊었다. 그녀는 이게 다 무슨 개소리냐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좀비가 아니라 흑마법으로 강화된 언데드들이었다. 죽이면 죽일수록 강해지는 무시무시한….]“좀비는 좀비죠 뭐. 아무튼, 그래서 히틀러는 잡았어요?”
그녀의 되물음에는 약간의 비꼼이 섞여 있었다. 그게 진짜 사실이냐는 물음.
마탑주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은 이 장소가 아닌 먼 곳을 향하고 있었다. 어두운 하늘, 오염된 빗물, 광인의 웃음소리, 뒤틀린 시야, 그리고 어둠과 황금의 격돌.
잠시 후, 그는 작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물론, 쓰러트렸지. 우리는 최후의 슈츠슈타펠과 이제 막 마왕이 된 히틀러를 무찔렀다.]“….”
[신화적인 전투였고, 영웅적인 승리였다. 비록 우리도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지만… 그날은 내 평생의 자랑이다. 지구에서 시작된 광기를 막아내고 수백만, 어쩌면 그보다 많은 사람을 구한 것이니.]모두 입을 다문 가운데, 여명은 그것이 마탑주 스스로에게 하는 위로라는 것을 눈치챘다.
슬픔을 이겨내기 위한 위로이자, 잔혹한 세상을 견디기 위한 위로.
청소부들을 떠나보냈던 쇠똥구리 또한 비슷한 감정을 느껴봤기에, 여명은 그의 슬픔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마탑주에게 자신의 위로를 보탰다.
“고생하셨습니다.”
어쩌면 그보다 좋은 위로가 있을 수도 있었겠지만, 여명은 그 말 이상의 표현을 떠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마탑주의 반응은 예상보다 컸다. 그는 눈을 크게 뜨더니, 여명을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 너털웃음과 함께 말했다.
[하, 그래, 용사도 싸움이 끝난 직후 그렇게 말했지.]그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마치 ‘이놈은 역시.’ 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할 말을 잃은 여명이 볼을 긁적이는 사이, 세티가 귀신에게 손전등을 비추며 말했다.
“그런데, 그런 싸움이 왜 여태껏 알려지지 않은 거죠? 히틀러를 죽인 사건이면 교과서에 실려도 몇 번은 실렸을 이야기인데.”
[그거야 간단하지. 우리가 일부러 이 사건을 은폐했으니까.]“…예? 왜요??”
어이없어하는 성녀와 달리, 세티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치가 문제였던 거군요. 그렇죠?”
그녀는 바닥에 나치의 문양을 그렸다. 2차 대전의 원흉, 최초로 차원문을 열어젖힌 지구인, 그리고…
지구가 차원문 너머로 군대를 보낸 명분.
[그래, 나치가 문제였다. 제국 황제는 우리가 히틀러와 나치를 추적해 쓰러트렸다는 그 사실 자체를 은폐하길 원했다.]제국 황제란 단어가 나오자 성녀는 더더욱 모르겠다는 얼굴이 되었다. 그것을 본 마탑주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생각해보거라. 히틀러가 온전히 나치의 능력과 자원만으로 마왕 승천을 시도할 수 있었을까?]“아뇨, 하지만 그러면….”
[그래, 그건 지구의 의심대로 아샤의 수많은 귀족들이 히틀러의 선동과 사상에 매료되어서 그를 후원한 결과였다.]“….”
[물론, 귀족들은 유대인 혐오나 레벤스라움같은 이야기는 이해하지 못했다. 마왕은 더더욱 몰랐고. 하지만 우월한 인종과 저열한 인종이 있다는 사상. 그리고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는 선동 자체는 아샤의 귀족들의 마음을 흔들었지.]“…옛날 귀족들이 그렇게 멍청했어요?”
성녀가 되묻자, 귀신이 칼같이 대답했다.
[성도의 사제들은 지금도 만만치 않게 멍청하지 않나?]“앗… 그건….”
[부정할 생각일랑 말게. 연애는 몰라도, 성녀가 거짓말하면 안 된다는 건 논쟁의 여지가 없으니.]귀신의 날카로운 지적에 성녀는 바로 입을 다물어버렸다. 거짓말을 하느니 입을 다물겠다는 의지의 표현.
한 방 먹은 성녀를 위로하기 위해 여명이 그녀의 어깨를 두들겨주는 사이, 귀신이 설명을 이어 나갔다.
[공산주의, 책, 민주주의, 총, 자본주의, 비료… 지구 문물과 사상의 유입으로 예전보다 하층민들의 권리가 커지는 상황에서, 나치즘은 필연이었어.]그 순간, 여명은 문뜩 옛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문구를 떠올렸다.
“…지구의 것은 지구의 것으로 대항해야 한다.”
[그래, 딱 그거였다. 멍청하지만, 그럴싸한 생각이었지.]“….”
짧은 침묵.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꿈에 빠진 그릇이 크하하- 같은 우렁찬 웃음을 토해낸 까닭이었다.
전전대 마탑주는 현대 마법사의 추태를 보며 피식 웃은 후 씁쓸하게 말했다.
[뭐, 결론적으로 우리는 아샤의 죄악을 감추기 위해 명예를 포기했다. 용사란 본디 명예가 아니라 평화에 힘써야 하는 법이거든.]용사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명예를 포기하다. 듣기엔 아름다운 소리였지만, 미래를 알고 있는 여명은 마냥 감동할 수 없었다.
“프랑스가… 나치를 핑계로 변경백령을 침략할 때, 그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겁니까?”
[물론 말했지. 하지만 상관없다더군. 진짜 중요한 건 나치가 아니라 변경백령의 땅과 자원이었으니.]“….”
어떤 진실들은 듣는 것만으로도 입맛이 씁쓸해질 정도로 더러운 법이라더니,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었다. 여명은 씁쓸한 침을 삼켰다.
[오랜만에 진실을 이야기하니 속이 다 후련하군. 재밌는 이야기였지?]그러나 전전대 마탑주는 딱히 과거에 연연하지 않았다. 이미 흉터마저 희미해진 까닭인지, 아니면 새로운 희망을 찾아서 인지, 여명은 알 수 없었다.
[자, 이제 계단으로 가지. 시련과 기연을 위하여.]숙연해진 분위기 속에서 일행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여태껏 입을 다물고 있던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미리, 왜 그래?”
쇠미리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인상 찡그리고 있었다. 여명이 다가가자, 그녀는 애써 무릎에 힘을 주며 말했다.
“…별일 아니에요.”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아직 꿈의 여파가 남은 거야?”
여명이 손을 내밀자, 그녀는 조심스레 그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여전히 무릎이 흔들리는 걸 본 여명이 ‘혹시 힘든 거라면 여기 남아도….’ 라고 말하려는 찰나, 그녀의 손가락이 여명의 입을 막았다.
“가요.”
여명도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성녀가 쇠미리의 등짝을 두들기는 것을 신호 삼아 일행은 계단을 향해 나아갔다. 혼자 꿈속에 빠진 그릇의 웃음소리만이 길게 들려왔다.
***
어두운 해저 동굴 끝, 어둠에 휩싸인 계단 앞에 도달한 성녀가 말했다.
“이건 내려가는 계단이네요?”
위로 올라가야 했던 이야기 속 나치의 계단과는 반대 방향.
[똑같이 올라가는 계단으로 만들면 표절이니까.]전전대 마탑주, 마하간의 귀신은 능글맞게 말했다.
“….”
[마법사의 자존심을 우습게 보지 말… 농담이다. 성녀란 것들은 어째 하나 같이 유머를 모르는고.]농담 아닌 거 같은데? 여명은 굳이 그 사실을 지적하는 대신, 조금 더 유용한 질문을 꺼냈다.
“그러면 이야기 속 계단처럼 언데드가 나오지는 않겠군요. 이 계단에서 저희를 시험할 상대는 누굽니까?”
[내가 특별히 만든 환영들이다. 나를 위해 힘을 빌려주었던 기사들과 영웅들 그리고… 우리가 들어있지.]“…우리요?”
[용사 파티.]여명은 물론이고, 쇠미리와 세티의 머리 위에도 물음표가 떠올랐다. 농담인가? 하지만 마하간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전성기 실력에는 턱없이 모자랄 테니. 뭐, 너희가 마나를 퍼부어주면 또 모르겠지만.]“…미쳤군요.”
세티가 한마디 했지만, 마하간은 끌끌 웃을 뿐이었다.
[앞선 동굴의 기연도 그렇지만, 이 해저터널의 모든 것은 한계를 넘기 위해 준비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뛰어넘으려면 솔직히 이 정도는 해야지. 안 그렇더냐?]여명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 대신, 조금 더 원론적인 질문을 꺼냈다.
“왜 이런 걸 준비하신 겁니까?”
주인공을 위한 거라면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그를 위한 것인지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건 달랐다. 주인공과 상관 없는, 오르세 라날을 죽이지 않고 해저 터널을 연 사람을 위해 준비된 기연.
확률로 치면 로또보다도 낮은 확률일 텐데, 왜 이런 기연을 준비했단 말인가?
마하간의 답은 간단했다.
[성녀의 부탁이었다.]“…?”
안대를 쓴 현재의 성녀는 ‘제가요?’ 라며 어리둥절했지만, 여명은 그가 말하는 성녀가 전대 성녀님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전대 성녀님이 왜 이런 걸…?”
[나도 모르지. 난 부탁을 받았고,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뿐인 이야기다.]그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여명은 아야톨라의 꿈속에서 만났던 전대 성녀님을 떠올리며 짧은 상념을 떠올렸다.
당신께서는 대체 뭘 꾸미셨던 겁니까?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여명은 일행들의 얼굴을 한 번씩 바라본 뒤, 인벤토리에서 검을 꺼내 들며 말했다.
“갈까?”
세 소녀는 각자 웃거나, 어깨를 으쓱이며 무기를 꺼냈다. 마하간이 네 사람을 보며 과거를 떠올리는 가운데, 일행은 동시에 계단을 밟았다.
***
저벅-
직접 들어선 계단은 최신 LED 손전등으로도 밝힐 수 없을 정도로 넓었는데, 뽀얗게 쌓인 먼지가 흩날리며 시야를 방해했다. 좋은 신호는 아니었다.
아무튼, 그렇게 먼지를 가르며 천천히 내려가던 중 여명이 문뜩 걸음을 멈췄다.
그가 손전등을 들어 어둠 저편을 비추자, 새하얀 갑옷을 입은 수십 명의 기사들이 세 사람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성….”
…기사단? 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탕! 성녀의 리볼버가 불을 뿜었다.
가장 앞에 있던 기사의 투구에 구멍이 나며 뒤로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기사들의 검에서 빛이 터져 나오며 계단을 밝혔다.
환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검에 실린 신성력은 성녀의 총에 깃든 그것만큼이나 밝게 타오르고 있었다.
[소개하기도 전에 쏴버리면 어떻게 하나? 인성하고는… 아무튼, 그 시절의 성기사단일세!]그리고 뒤늦게 울리는 마하간의 목소리를 신호 삼아, 성기사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자, 시련을 시작하지. 아,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너무 긴장하지 말게. 죽지는 않을 테니. 그냥 며칠 뒤지게 아플 뿐이야.]“어느 정도로 아픈데요?”
[글쎄, 생리통의 100배쯤?]“…이 미친 늙은이가.”
성녀는 이죽거리며 탄창을 비우는 사이, 여명은 성기사들과의 거리를 가늠했다. 대충 계단 30개 정도의 거리.
“마나를 쓰면 쓸수록 상대가 강해진다고 했지.”
세티는 여명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들고 있는 손 망치를 빙글 돌렸다.
“일점돌파? 아니면….”
“최대한 마나를 아끼면서 전투. 미리는 주문을 아끼고, 성녀만 사격. 우선 내가 상대 수준부터 확인할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세티는 방패를 비스듬히 들어 총알을 도탄 시키는 성기사를 보며 말했다. 성녀가 한 탄창을 더 비웠지만, 기껏해야 둘을 더 쓰러트리는 게 한계였다.
리볼버로는 택도 없겠군. 여명은 아래로 뛰어내리며 말했다.
“미리와 성녀를 지켜줘.”
그대로 가속한 여명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올라오는 성기사들과 격돌했다.
시작은 맨 앞에 있는 성기사였다. 쌍검을 쓰는 그는 검을 가위처럼 한곳을 찔러 들어왔다.
익숙한 검술이었다. 성녀의 아버지가 쓰던 바로 그 검술이었으니까.
여명은 가위의 중심으로 찔러넣어 공격을 무효화시킨 뒤, 그대로 상대의 목을 쳤다.
피는 튀지 않았다. 그 대신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그는 쓰러지면서도 악착같이 여명의 팔을 붙잡으려 했다.
덕분에 여명은 검을 한 번 더 휘둘러야 했고, 뒤따라온 성기사의 공격에 조금 느리게 반응해야 했다.
까앙-! 높은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진짜 검과 검이 충돌하는 듯한 감각.
여명의 일격을 막아낸 성기사는 검 대신 방패를 내밀어 그의 자세를 무너트리려 했다. 여명은 방패와 함께 그의 몸을 통째로 반으로 베어버렸다.
하지만 전투는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첫 격돌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한 여명은 곧바로 성기사들의 반격을 마주해야 했다. 그들은 능숙하게 방패진을 만들어 그를 압박했다.
방패 사이로 찔러 드는 검, 머리 위로 떨어지는 둔기, 그리고 축복이 걸린 방패 그 자체.
여명은 마나를 아끼며 이들과 싸운다는 게 얼마나 오만한 말인지 뒤늦게 깨달았다. 하지만 깨달음은 깨달음이고, 싸움은 싸움이었다.
그는 뒤로 물러나는 대신 한 계단 더 아래로 내려갔다. 좁아진 거리로 검이 가속하고, 붉은 마나가 실린 검이 더욱더 강하게 성기사들의 방패를 후려쳤다.
쉽사리 역습을 허용할 수 있는 공격이었지만, 성기사들은 그 이상 여명을 압박하지 못했다.
탕-! 방패가 내려가는 순간, 머리를 노리고 성녀의 저격이 날아왔으니까.
후방에 있던 몇몇 성기사들이 성녀를 노리고 여명을 지나쳐 계단을 올랐지만, 쇠미리와 세티가 한발 앞서 그들을 요격했다.
[훌륭한 연계로군. 함께 싸우는 게 아주 능숙해… 이래도 아직도 용사 파티가 아니라고 할 텐가?]“시끄러워요!”
마하간이 감탄하건 말건, 성녀는 사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가지고 있던 리볼버 탄창이 바닥날 때쯤, 여명이 타이밍 좋게 인벤토리에서 소총을 꺼내 던졌다.
[자동소총? 하지만 아군을 맞추면 어쩌려….]성녀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총에 축복을 걸고 방아쇠를 당겼다. 두두두두-! 총구가 불을 뿜자마자, 방패를 든 성기사들이 우수수 쓰러지며 계단 뒤로 밀려났다.
[이야, 그 상황에서 한 발도 안 맞추다니. 놀라운 걸. 이 정도면 퀴니보다 더 잘 쏘는…]“…아뇨, 그냥 갈긴 겁니다.”
여명은 총알에 맞은 어깨를 재생하며 반론했다. 성녀는 고작 한 발이라고 항의했으나, 그가 옆구리에 튄 파편을 꺼내자 입을 다물었다.
마하간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성녀들이란 정말… 아니, 자네 재생력은 또 왜 그따위인가?]“타고난 체질도 있고, 익히고 있는 무술 덕분이기도 합니다.”
[무술? 무슨 무술?]여명은 대답 대신 주가시빌리를 일으켰다. 환상은 살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 덕분에 오로지 그 자신만의 살기로 이루어진 옅은 아지랑이.
하지만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성녀가 마구잡이 사격을 시작하는 것과 동시에, 여명은 성기사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방패 사이로 산의 눈물이 파고들었고 검광과 함께 맨 앞에 있던 성기사의 머리를 갈라버렸다.
갈라진 머리통에서는 피와 뇌수 대신 마나 가루가 튀었지만, 시야를 가린다는 점에서 큰 차이는 없었다.
빠르게 끝내자.
여명의 다짐과 함께 검이 물결을 그렸다. 가짜 성기사들은 파도에 휩쓸린 돌멩이처럼 우수수 쓰러지며 계단 아래로 쓰러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성녀의 사격 소리. 눈을 가리는 먼지와 마나 가루.
싸움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마나를 아끼지 않기로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주가시빌리? 빨갱이 무술을 쓰는 용사라. 재밌는 걸 보는군.]마하간은 성기사였던 마나 가루 사이를 밟고 선 여명을 보며 껄껄 웃었다.
여명은 대답하지 않고 성녀와 쇠미리 앞에 쌓인 마나 가루의 양을 확인하고 좌절했다.
나름대로 잘 막았다고 생각했는데, 적어도 열 명이 넘는 성기사가 세 소녀를 노린 게 분명했으니까.
“…이거, 오늘 내로 끝내는 건 힘들겠네.”
그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자, 마하간이 언성을 높였다.
[뭐? 하루 만에 끝내려 했다고? 내가 이걸 만드는 데 얼마나 걸렸는데, 도둑놈이 따로 없구나!]“죄송합니다. 제가 좀 오만했습니다.”
[순순히 인정하면 넘어갈 줄 아느냐? 좋아. 내 장담컨대, 오늘 너희는 여기 이하로 내려가지 못할 것이다.]그 말이 끝난 직후, 계단 아래에서 또다시 빛이 번쩍였다. 조금 전에 쓸어버렸던 성기사단과는 다른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었는데, 계단을 오르는 걸음걸이가 어딘가 묘하게 익숙했다.
“…제국 기사단.”
[그래, 거기에 너희가 조금 전 쓴 마나를 더해서 시련을 하나 더 추가했다.]“하나 더 요? 그게 무슨….”
그 순간, 어둠 저편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탕!
여명이 뒤늦게 반응했으나, 총알은 음속보다 빠르게 그의 목을 관통했다. 쿨럭, 여명은 피를 토하며 총알이 날아온 방향을 노려봤다.
기사단의 저 뒤쪽, 젊은 여성이 그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짧은 단발에 구릿빛 피부를 지닌 그녀가 든 총은 권총이라기에는 너무 크고, 대포라기엔 너무 작은 크기의 총을 들고 있었다.
저건 설마…?
[퀴니 코완. 젊을 때는 정말 아름다웠었지. 성격은 엿같았지만.]여명은 대답할 수 없었다. 그녀가 쏜 두 번째 총알이 정확히 낭심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