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378)
을 위한 세계는 없다-378화(378/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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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부스에게 마법을 배우며 새삼스레 깨달은 게 하나 있다면, 그녀의 마법 취향이 여러모로 편향적이란 사실이었다.
그녀는 이상하리만치 얼음 마법에 심취해 있었다.
얼음으로 송곳, 창, 방패 등을 만드는 고전적인 마법은 물론이고 과학 이론을 적용한 최신 마법까지.
아는 마법이 얼마나 많은지, 시범을 보이는 과정에서 용의 둥지 온도를 10도 정도 낮출 정도였다.
옷이 얼어버린 여명이 스승을 향해 화염 마법은 없냐고 묻자, 코르부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10년 수련해도 현대 무기보다 약한 화염 마법을 공부하느니, 석유 회사에 취직하는 게 낫소.’
마찬가지로, 전격 마법은 연구실에서나 쓸법한 마법이라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뭐, 핸드폰 충전할 때나 유용한 마법이라나.
여명은 얼음 마법도 그게 그거 아니냐고 되묻지 않았다. 그는 스승의 편협함에 기꺼이 동조할 만큼 좋은 제자였으니까.
얼음 마법 최고.
지켜보던 마하간이 쌍으로 염병한다며 혀를 찼지만, 여명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코르부스를 믿었다.
적어도 스승이 저번에 알려준 ‘급속 냉각’ 마법의 시범(?)을 보일 때까지는 그랬다.
“자, 이론은 이만하면 됐고, 이제부터는 직접 경험해 보시오.”
잘 보시오도 아니고 경험해보라니. 여명이 그게 무슨 말이냐고 질문하기도 전에, 코르부스는 날개를 휘둘러 마법을 사용했다.
얼음 마법의 기초인 온도 조절 주문에 범위 증가, 위력 증폭, 급속, 그리고 열전도 수식을 겹치는 간단한 마법.
그러나 일반적인 마법사들에게는 낭비라고 여겨질 정도로 막대한 마나를 사용하기에 고급 마법으로 분류되는 바로 그 마법은 눈 깜짝할 사이에 여명의 몸을 뒤덮었다.
발동 속도만큼이나 결과 또한 신속했다.
숨 한번 들이쉬자 틈에 온몸이 꽁꽁 얼어붙으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 서리가 뒤덮일 정도.
위력도 모자람이 없어서, 여명은 뼛속까지 침범하는 살벌한 냉기를 견디기 위해 마나를 잔뜩 끌어 올려야 했다.
“어떻소? 신속하고, 위력 또한 강력하오. 마나 걱정 없는 지금의 제자에게 딱 맞는 마법이라고 할 수 있소!”
코르부스는 흡족한 듯 가슴을 내밀며 말했다.
“자자, 빨리 배우려면 이걸로는 부족할 테니, 본인의 마나가 남을 때마다 한번 씩-”
“…스승님.”
여명은 뚱한 표정을 숨기며 스승의 말을 끊었다.
“왜 그러시오?”
“다음부터는, 적어도 교복 갈아입을 시간 정도는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
코르부스는 그제야 얼어버린 교복을 보며 부리를 다물었다.
곧이어 여명이 보란 듯 손을 들어 올리자, 꽝꽝 얼어있던 교복이 찢어지며 맨살이 드러났다. 아예 박살 나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플라스틱 단추는 덤이었고.
“….”
“….”
반쯤 알몸이 된 제자와 스승이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는 가운데, 마탑주 귀신이 마지막으로 한번 더 혀를 찼다.
[이래서 마법은 마탑에서 배워야 한다니까.]***
변경백과의 싸움은 여명에게만 자극을 준 건 아니었다. 그와 함께 시련을 참가했던 세 소녀 또한, 큰 충격을 받았다.
물리적인 충격과, 정신적인 충격 모두.
가장 힘들었을 여명이 애써 웃지 않았다면, 시련을 포기해도 이상하지 않을 충격이었다.
그러나 여명이 견뎌내는 것을 봤기에, 세 소녀는 각자의 방법으로 충격을 해소했다.
세티는 수업 시간을 아껴가며 수련에 매진했고, 쇠미리는 호위인 리메와 대련하며 감각을 갈고 닦았으며, 성녀는… 여명이 고자에게 지지 않기를 기도했다.
어쨌거나, 방법도 방향도 다른 세 소녀의 생각이 맞닿는 부분이 하나 있었으니, 여명에 관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여명에게 먹일 더 강한 기술이 필요해.”
점심시간, 한자리에 모인 세 소녀 사이에서 성녀가 꺼낸 첫마디는 그것이었다. 세티와 쇠미리 모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아카데미에서 변경백의 무술보다 더 좋은 무술을 찾는 건 불가능해.”
세티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들기며 고민했다.
당장 아카데미에서 구할 수 있는 일반적인 무술은 여명이 익힌 화산쇄설보다도 아래였다.
그나마 만박불통의 천지불인 정도라면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문자 그대로 도움 정도일 뿐.
10강 최하위의 무술로 최상위의 무술을 이겨내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 남는 건 역시 마법인데….”
무술에 비하면 마법은 아직 여지가 있었다. 코르부스의 가르침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이곳은 로드 하우 아카데미였다.
그릇을 비롯한 온갖 잘나신 마법사들의 후예가 득실거리는 곳. 마법 도둑질을 한다면 이만한 곳도 없었다.
물론, 이쪽도 ‘맞아가며’ 배워야 한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긴 했지만.
거기까지 생각한 성녀는 도시락을 깨작거리며 말했다.
“고학년 중에 그럴싸한 가문 선배 하나 잡아다가 마법을 뽑아낼까?”
“아이디어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어떻게? 여명의 몸에 마법 좀 쏴주세요- 이걸 무슨 수로 부탁하게?”
“….”
세티가 반박하자, 성녀는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쇠미리가 샌드위치를 오물거리며 뭔가를 고민할 때쯤, 그녀는 힘껏 손뼉 치며 입을 열었다.
“아, 그래! 여명이 내 순정을 이용하고 버렸다고 하면 어떨까? 그러면 복수를 핑계로….”
“…기각.”
“왜? 이거면 전교생이 여명한테 마법을 쏘고도 남을 거 아냐.”
어리둥절한 성녀의 목소리. 세티는 그제야 그녀가 농담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한숨을 쉬었다.
“…지금도 모르는 사람은 여명이 양아치인 줄 아는데, 성녀의 순정을 이용해? 왜, 아예 인간쓰레기라고 얼굴에 써 붙이고 다니지?”
세티가 그렇게 쏘아주자, 성녀는 어색하게 볼을 긁었다.
“어, 그렇네… 난 나중에 진짜로 사귄다고 하면 괜찮을 줄 알았어.”
“….”
“아, 이건 양다리라 다른 의미에서 인간쓰레기 취급받으려나?”
“…인간쓰레기 이전에 다섯 신 교도들에게 암살당하겠지. ”
세티는 포크를 내려놓고 성녀의 볼을 꼬집었다. 그리고 그녀의 대외적인 이미지를 얼마나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지 잔소리하려는 찰나.
여태껏 입을 다물고 있던 쇠미리가 말했다.
“엘랑의 불은 어때요?”
“…응?”
“그, 프레시외즈요. 저번에 세티가 결투에서 두들겨 팼던 프랑스인이 썼던 마법.”
“…걔 이름은 미리엄이야.”
세티는 성녀의 볼에서 손을 놓고 대답했다.
프레시외즈(Précieuse). 그건 프랑스를 넘어 유럽을 대표하는 10강 오귀스트의 마법이었다.
미리엄의 손에서 펼쳐졌을 때는 기껏해야 2m짜리 화염검을 내뿜는 마법에 불과했지만, 진짜 10강 손에서 펼쳐지는 마법은 대량 학살 무기에 비견될 정도.
그 불길을 실제로 본 적 있는 쇠미리의 눈이 번뜩이는 사이, 세티가 물었다.
“확실히 엄청난 마법이긴 하지만… 어떻게 훔치려고? 저번에 나랑 싸운 뒤로 걔랑 나는 완전 원수 사이인데.”
자연스레 여명은 원수의 남자친구 취급을 받았다. 세티가 무서워서 그렇지, 뒤로 얼마나 호박씨를 까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설마, 원수의 남자친구이니 불을 쏘게 하자는 말은 아니겠지?’
쇠미리도 성녀와 비슷한 수준은 아니겠지. 세티의 걱정과 달리, 쇠미리가 내놓은 계획은 조금 더 그럴싸했다.
“이번에는 세티랑 상관없어요. 중요한 건, 미리엄이 그릇과 친해지고 싶어 한다는 거죠.”
“…그릇?”
“마법과 쪽에서는 유명한 이야기예요. 시리랑 네티도 알고 있을 걸요? 그릇과는 대화도 못 하는 그릇의 추종자. 자연스레 여명이랑 그릇이 무슨 사이인지도 모를 테고… 그릇을 이용하면 생각보다 엄청 간단할 거 같은데. 어때요?”
“….”
듣고 있던 성녀가 ‘난 그릇 싫은데’라고 투덜거렸으나, 이어진 쇠미리의 말은 그녀조차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그리고… 코르부스의 냉기 마법과 오귀스트의 화염 마법을 동시에 쓰는 여명, 보고 싶지 않아요?”
***
세 소녀의 계획을 모르는 여명이 마법 수련과 시련을 병행한 지 고작 하루.
일행이 미처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체력 부족. 그것도 여명을 제외한 일행 전원의 체력이 빠르게 바닥을 보였다.
우선 계단의 시련에 도전하는 삼인방. 세티, 쇠미리, 성녀의 경우에는 상태가 심각했다.
낮에 무슨 짓을 벌이고 다니는 건지, 시련의 계단으로 향하는 동안 꾸벅꾸벅 조는 건 물론이고 눈 밑에 진한 다크서클이 보일 정도였으니, 더 말해 무엇할까.
정학당한 덕분에 여유가 있는 여명과 달리, 세 사람 모두 아마 잘 시간을 쪼개가며 시련에 도전하다 보니 생긴 불상사인 듯했다.
그리고 다음으로 구더기 공주와 그릇.
온종일 연구실에 처박혀있다 온 두 여자는 첫날부터 여명에게 시간과 예산을 더 달라고 호소했다.
특히 그릇은 욕까지 해가며 쌍으로 부려 먹는다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다가, 성녀의 리볼버를 보고 입을 다물 정도였다.
아마 마폭고 연구가 어마어마하게 어려운 듯했다. 빨리 결과물을 내놓으라고 두 사람을 쪼아댄 여명의 입장에서는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마폭고 연구를 늦추거나, 시련을 소홀히 할 수도 없는 일.
여명은 고민 끝에 해답을 내놨다. 청소부 시절 야근으로 다져진 지극히 상식적인 해답을.
일단 밥이라도 먹이자.
체력이란 건 결국 배가 불러야 차는 법.
여명은 여유 시간 동안 아카데미 북쪽 섬에 있는 일반 마트를 돌며 식재료를 잔뜩 사서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리고 일행들이 모이기 전에 먼저 베이스캠프에 도착해 자리를 잡고, 휴대용 가스레인지와 커다란 솥을 꺼내 요리를 준비했다.
[요리? 너 요리도 할 줄 아냐?]아직도 변신술을 익히지 못해 코르부스에게 혼나던 용이 구경하건 말건, 여명은 묵묵히 요리를 준비했다.
첫날 레시피는 덕배형이 종종 해주던 어묵탕.
간장을 푼 멸치 육수에 무를 잔뜩 썰어 넣고, 무가 익었을 때쯤 파와 마늘 같은 야채를 추가한 뒤 마지막으로 어묵을 쏟아 넣는 남자의 요리였다.
투박한 노동자의 요리라서 섬세한 일행들의 입맛에 안 맞으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일행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특히 탐욕스러운 용은 솥을 통째로 씹어먹을 정도였다. 빌어먹을 파충류 놈. 대용량 솥이 얼마나 비싼데.
어쨌거나, 야식이 일행들의 체력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걸 확인한 여명은 그 이후로도 매일 요리를 준비했다.
자기도 먹고 싶다고 떼를 쓰는 용 때문에 40인분에 가까운 양을 요리했음에도, 손이 덜 가는 요리들만 고른 덕분에 별문제 없이 척척 야식을 차릴 수 있었다.
어느 날은 춘식이 형이 좋아하던 부대찌개를.
어느 날은 고기를 먹고 싶어 하는 성녀를 위한 미트 스튜를.
또 어느 날은 그놈의 샌드위치가 뭔지 직접 먹어보겠다는 구더기 공주와 그릇을 위한 샌드위치를.
변경백의 검을 10번 이상 막아낸 날에는 축하의 의미로 남은 재료를 다 때려 넣은 카레를….
여유롭지만, 충실한 나날들이었다.
여명의 정학도 끝나고, 마폭고 연구도 진전을 보였으며, 변경백 또한 용사의 무술을 꺼낼까 말까 고민하는 수준까지 도달한 나날.
이대로만 진행되면 더할 나위 없겠다고 생각한 나날은 다른 누구도 아닌 홍용완에 의해 끝났다.
정확히는, 그가 보낸 문자로 인해서.
[내일, 한국 사절단이 예정보다 하루 일찍 도착할 겁니다.사절단에는 비공식적으로 조웅찬 기획재정부 장관님께서 함께하고 계십니다.
사위님이 요구한 조직에서 오신 분입니다. 중요한 일은 아니고, 의례적으로 사위님을 직접 보고자 하십니다.
그래도 우리 둘 모두에게 아주 중요한 분이시니, 각별한 준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