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384)
을 위한 세계는 없다-384화(384/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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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귀스트는 일렬로 도망치는 아이들의 사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세디달이 구한 아이들을 오귀스트가 구한 것처럼 조작한 프랑스 신문 기사를.
[전장을 떠나는 아이들] [무고한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오귀스트 대위의 결단.]왜 이런 조작 기사가 나왔는지,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이건 자부심의 문제였다.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그러했듯, 조국이 아이와 어른을 가리지 않고 학살하려 했다는 기사를 쓸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동시에 이런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거짓으로 지킨 자부심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오귀스트는 애써 떠오르는 의문을 삼켰다. 모든 건 그가 패배한 탓이었다. 그날, 그가 붉은 머리 여기사에게 지지 않았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
신문을 꾸깃꾸깃 구겨 바닥에 내던진 오귀스트는 조용히 마법책을 펼쳤다. 장병 수천 명을 입히고 먹일 수 있는 가격의 마법책.
그것은 조국이 그를 특별하게 생각한다는 증표였다.
물론, 순수하게 수련을 위한 책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전선에 있는 사람에게 ‘연구 보고서’ 같은 걸 쓰도록 강요하지는 않았겠…
그때, 꿈속의 오귀스트를 바라보던 쇠미리가 입을 열었다.
“당시의 프랑스는, 조급했어요.”
그녀는 여명의 옆으로 한 발짝 다가오며 덧붙였다.
“미국과 소련은 물론이고 영국조차 핵무기를 보유한 상황에 핵 개발은 지지부진했고, 식민지들은 하루가 멀다고 독립을 요구하고….”
“…그 와중에 잘도 새로운 식민지 전쟁을 일으킬 정신이 있었네.”
여명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하자, 쇠미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연합군이 나치를 핑계로 겔차 왕국을 피바다로 만들고, 미국과 제국이 국지전을 벌이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제국 구석에 있는 영토쯤이야, 미국에게 무기를 지원받으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 거죠.”
“욕심은 언제나 눈을 가리지.”
그리고 눈먼 자들은 언제나 대중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다. 나치가 그러했고, 무수한 독재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맞아요. 하지만 언제까지 눈먼 상태로 있을 수는 없었어요. 프랑스의 예상을 한참이나 벗어난 존재가 변경백령에 있었으니까요.”
쇠미리는 손을 휘둘러 꿈을 다음 장면으로 바꿨다. 이번에는 넓은 평야였다. 그것도 무수한 전차들이 지평선을 가리고 있는 평야.
하지만 여명은 어떠한 위용도 느낄 수 없었다. 백여 대에 이르는 전차들이 전부 처참하게 파괴되어 있었으니까.
지옥의 그것처럼 타오르는 불길과 바닥을 적시는 기름들.
그 강철의 공동 묘지 사이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은 단 하나, 변경백의 황금색 눈동자뿐이었다.
쇠미리는 피와 기름에 찌든 변경백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도 경험해봐서 알지만, 변경백은 너무 강했어요. 근현대 전술 교본을 모두 갈아 치우고도 남을 정도였죠. 란체스터 법칙이 먹히지 않는 와일드 카드, 살아있는 비대칭 전력, 그리고….”
“대량 살상 개인.”
여명이 대답을 가로채자, 쇠미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그가 혼자서 전차 대대를 몰살시킨 뒤, 전쟁의 양상은 완전히 바뀌었어요. 프랑스는 변경백이 차원문을 넘는 걸 우려해 문에 폭탄을 설치했고, 대통령은 아예 엘리제궁을 버리고 도망칠 계획까지 세웠죠.”
“….”
그러나 변경백은 차원문을 넘지 못했다. 그에겐 지켜야 할 백성과 땅이 있었으므로.
만약 자신이었다면 어땠을까? 파리를 통째로 불태우는 상상을 떠올리던 여명의 귓가로, 쇠미리가 설명을 이어 나갔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전대 성녀님과 성기사단이 무단으로 성도를 벗어나 전쟁에 참여하자… 프랑스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남았어요.”
“휴전하느냐, 판을 더 키우느냐.”
정답이었다. 쇠미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시다시피, 프랑스는 휴전을 선택하지 않았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할 수 없었던 것에 가깝죠. 당시 집권당 사이에는 약한 모습을 보여주면 식민지들이 줄줄이 독립해버릴 거란 두려움이 팽배했거든요.”
고작 식민지 때문에 사람이 백만 단위로 죽어 나가는 전쟁을 벌였느냐고 지적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의 프랑스는 그럴 수 있다고 대답했으리라.
그건 국가의 자부심이 걸린 문제였다. 나치에게 패배해 부서진 세계 최강국의 자부심.
“프랑스는 영국과 미국에게 손을 빌리는 건 물론이고, 서독인들까지 꼬드겨 전장으로 보냈어요. 개중에는 나치 부역자들도 있었죠.”
뭐? 여명은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전직 나치를 용병으로 썼다고?”
“밀랍 산맥 너머 괴수들까지 끌어들였는데, 나치 용병쯤이야. 별것도 아니죠.”
“괴수…?”
쇠미리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녀는 천천히 손을 휘저어 또다시 풍경을 바꿨다.
***
다른 모든 지구인들과 마찬가지로, 오귀스트는 어째서 변경백령이 ‘변경’인지 알지 못했다.
기껏해야 번역상의 실수, 혹은 프랑스의 오래된 작위들이 그러하듯 이름만 남은 작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국군이 밀랍 산맥과 연결된 지역을 점령한 직후, 그와 지구인들은 어째서 제국인들이 이 땅을 변경이라 부르는지 이해했다.
밀랍 산맥은 괴수라 불리는 기괴한 생명체의 터전이었다.
녀석들은 지구인들이 알고 있던 일반적인 생명체와는 달랐다. 인간을 향한 비정상적인 공격성은 그렇다 쳐도, 새끼를 낳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더욱.
엄밀히 말해, 임신을 위한 기관 자체가 없었다.
그래도 총과 포탄에 죽는다는 사실만큼은 다른 생명체와 똑같았다.
잡아봤자 쓸모가 없다는 문제가 있었지만, 몇몇 창의적인 전략가들은 기어코 괴수의 쓸모를 찾아냈다.
그들은 괴수를 몰아 변경백령의 일반인들을 공격하면, 변경백을 묶어놓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변경백이란 괴수로부터 이 땅을 지키겠노라 맹세한 자였고, 아샤의 귀족에게 맹세는 절대적이었으니까.
물론, 많은 반대가 있었다. 그보다 더 많은 양심적 호소도.
그러나 모든 호소는 변경백을 전선에서 떨어트릴 수 있다는 합리성 앞에 무릎 꿇었다.
변경백을 차원문에서 멀리 떨어트릴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짓거리도 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오귀스트는 마지막까지 계획을 반대했으면서도 군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는 애써 자신을 위로했다. 이건 전쟁이었고, 전쟁은 지독할수록 좋다.
이번 계획으로 변경백령과 나치의 관계를 밝힐 수 있다면, 전쟁이 조금이라도 빨리 끝날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겠는가.
-자네만 믿겠네. 오귀스트 대위.
군은 괴수를 상대로 그동안 갈고 닦은 마법을 테스트하라며 그를 배려하는 척했지만…
오귀스트는 그 뒤에 숨겨진 진실을 알고 있었다.
그가 적기사에게 패배한 이후, 군은 그를 멀쩡한 전선으로 보내는 걸 꺼렸다. 특히 차원문 너머의 초인과 1:1로 싸우는 걸 병적으로 막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조국이 자랑하는 마법사가 변경백, 혹은 이름도 모를 아샤인 나부랭이에게 죽기라도 한다면?
오귀스트를 두려워하던 식민지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 조국을 물어뜯을 것이다. 전선에 나간 장병들의 사기는 바닥을 칠 테지.
그래서 오귀스트는 군부가 원하는 대로 움직였다. 자신은 한 적도 없는 인터뷰가 기사로 실리는 걸 묵인하고, 더러운 계획에 기꺼이 참여했다.
목숨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조국을 위해서.
조국을 위해서.
어제는 거짓말을 했고, 오늘은 자신을 속였다. 그리고 미래에는 민간인을 향해 괴수를 몰아갔다.
이게 정말 조국을 위한 일인가? 그는 생각했다. 정말 이것으로 나치가 더럽힌 조국의 자부심이 돌아온단 말인가?
억누르지 못할 정도로 커진 의문을 삼키고 또 삼키면서, 그는 괴수를 몰고 밀랍 산맥을 가로질렀다.
목적지는 변경백령의 후방, 대략 삼만 명이 거주하는 작은 성.
괴수와 거리를 유지하고, 공중 보급을 받아 가며 나아간 그와 부대원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성이 보이는 산등성이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려다본 성은 생각보다 아름다웠고, 동시에 생각보다 낙후되어 있었다. 조국의 시골이 그러하듯이.
그에 비해 그들을 따라온 괴수의 숫자는 어림잡아 수천 마리에 달했다. 그만한 괴수를 막기에 성벽은 너무 낮았고, 성문은 너무 얇았다.
기관총 포대와 넉넉한 총알이 있지 않은 이상, 저 성의 모든 민간인들은 괴수의 밥이 되리라.
그걸 알면서도, 오귀스트는 괴수의 시선을 끌기 위한 혈액병과 마법을 준비했다. 적기사와 다시 겨룰 때를 위해 익혀둔 발광 마법.
혈액병의 피 냄새에 눈을 멀게 할 정도로 강렬한 발광 마법이 더해지면 수천 마리의 괴수가 곧장 이곳으로 몰려올 터였다.
그사이 그들이 공중 지원을 받아 유유히 빠져나갈 테고, 이곳에 도착한 괴수들은 성을 발견해서…
-대위님. 계획을 중지해야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닙니다.
오귀스트가 주문을 완성하기 직전, 같은 부대의 군인이 갑자기 그렇게 말했다. 그는 프랑스에서 열한 번째로 초인이 된 젊은 군인이었다.
아직 전쟁의 잔인함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젊은 군인.
그의 떨리는 눈동자를 본 오귀스트는 고개를 저었다.
-소위. 왜 갑자기 마음이 약해졌지?
-저 성을 보십쇼! 괴수를 막기는커녕 전부 학살당할 겁니다. 저희 계획은 변경백의 시선을 끄는 거였지, 이런 미친 짓이 아니었습니다! 작전을 재고해주십시오!
-마음은 이해하지만, 멈출 수 없다. 우리 말고도 이미 다른 부대가 비슷한 계획을 진행 중이다. 우리만 멈추는 순간 다른 계획도 모두 어그러질 거다.
-하지만 이건….
젊은 초인은 말끝을 흐리며 총을 쥐었다. 만약 상대가 오귀스트가 아니었다면 총구를 겨눴을 만큼 뭔가를 억누르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 그러면 최소한 괴수가 온다는 걸 성에 미리 알려줄 수는 없겠습니까?
-우리가 이 사태의 범인이라는 걸 밝히자는 말인가?
-….
그는 아무 반박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해서 침묵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었다.
젊은 군인의 눈동자에서 떨림이 사라지고, 총을 올리는 소리가 산등성이로 퍼졌다.
-뭐 하는 건가.
총구가 머리를 겨누고 있었음에도, 오귀스트는 무덤덤하게 혈액병의 뚜껑을 열었다. 화학 처리가 된 피 냄새가 코를 찔렀다.
-조국을 배반할 생각인가?
다른 부대원들이 젊은 초인에게 총구를 내밀었음에도, 젊은 초인은 굴하지 않았다.
-배반이요? 아닙니다. 정반대입니다.
-소위, 항명이 배반이 아니라면 뭐지?
그제야 오귀스트는 하던 일을 멈추고 젊은 초인을 바라봤다. 그는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는 아샤인들이… 제가 사랑한 프랑스를 미워하지 않도록 막고 있습니다. 프랑스인이 다 식민주의자는 아닙니다.
-진심인가? 목숨을 이렇게 낭비하겠다고?
-우리 부대와 제 조국이 나치가 아니라는 증거가 필요하다면, 예, 당연히 죽겠습니다. 하지만 훗날 시간이 지나면… 제가 옳았음이 밝혀질 겁니다.
젊은 초인의 말이 끝나자, 그를 겨누고 있는 부대원들의 시선이 오귀스트에게 쏠렸다.
오귀스트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국이 패배해도 자네가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
-나치에게 패배한 날, 파리의 수많은 여인들이 강간당했다. 그것을 지켜보던 파리 시민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 견습 요리사였던 누군가는 군인이 되었지만, 간살 당한 누이가 돌아오는 일은 없었어. 패배란 그런 것이야.
궤변에 가까웠으나, 그 속에 담긴 감정은 진짜였다. 나치 휘하의 치욕을 겪은 모든 프랑스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감정.
-오늘 일로 조국이 패배한다면, 그래도 그 잘난 신념을 지껄일 수 있겠나?
그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부대원들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고, 그의 총구가 살짝 떨리던 그때.
젊은 초인이 어떤 결심과 함께 대답했다.
-예. 설사 패배한다 해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내 기꺼이 그 신념을 존중하겠네.
그렇게 선언한 젊은 초인이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오귀스트가 먼저 염동력으로 그의 방아쇠를 붙잡았다.
총이 멈춘 찰나의 시간, 부대원들은 순식간에 그를 제압했다. 총을 빼앗고, 무릎을 꿇리고, 차가운 총구가 그의 뒤통수를 눌렀다.
오귀스트는 제압된 젊은 초인을 향해 덤덤하게 말했다.
-자네의 항명은 기록되지 않을 걸세. 가족들에게는 작전 중 사망으로 알리겠네. 그리고 유언은… 듣지 않도록 하지.
-….
그것을 끝으로 오귀스트는 손을 내렸다. 하지만 젊은 초인의 뒤통수로 총이 발포되는 일은 없었다.
산등성이 아래에서 정체불명의 기사들이 튀어나왔으므로.
-지구인들! 여기서 뭣들 하는 거냐!
네 명의 기사들의 맨 앞, 중년의 끝자락을 바라보고 있는 나이의 남성이 소리쳤다.
길쭉한 검을 들고 갑옷을 입은 그는 누가 봐도 지휘관으로 보였는데, 지켜보는 여명과 쇠미리는 한눈에 그가 누군지 알아봤다.
“두메아 가주….”
“데스나이트일 때랑 별 차이 없으시네요? 아닌가? 훨씬 강한가?”
그러나 오귀스트 부대는 그가 누군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기껏해야 눈동자 색을 보고 변경백이 아니라고 안심하는 정도.
하지만 오귀스트는 두메아 가주가 우습게 볼 수 없는 강자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는 침을 삼키며 물었다.
-이름을 밝혀라.
-허어, 이름은 내가 아니라 그쪽이 먼저 밝혀야지. 구조 요청을 보낸 건 그쪽 아닌가.
-…뭐?
그게 뭔 소리냐는 듯 눈살을 찌푸리는 오귀스트를 향해, 두메아 가주가 손가락질했다. 정확히는 그가 들고 있는 발광 마법을 향해서.
오귀스트는 입을 다물었다.
그때, 쇠미리가 작게 덧붙였다.
“당시의 지구인들은 발광 마법이 구조신호로 쓰인다는 걸 몰랐어요. 실명 마법이 따로 있다는 걸 마탑이 안 알려줬거든요.”
그녀의 말이 끝날 때쯤, 오귀스트도 상황을 어렴풋이 이해했다. 그는 상대에게 적의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말을 돌렸다.
-나는 프랑스 군의 오귀스트 대위다. 그쪽은?
-두메아 가문의 가주, 롭 리어 두메아다. 오귀스트라…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아! 그 녀석이군! 58명 아이들의 안전을 보장한 지구인. 세디달에게 이야기 들었다.
적기사의 이름이 세디달인가? 오귀스트는 조롱이 아니라 순수한 놀라움으로 자신을 훑는 두메아 가주를 보며 얼굴이 후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어쨌든, 너 같은 자가 여기서 뭘 하고 있던 거냐. 구조신호는 왜 보낸 거고?
오귀스트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상대와 자신의 수준을 가늠했다. 상대가 가주급 초인이라면 목숨 걸고 싸워볼 가치가 있었다.
문제는, 지금 그들의 뒤편에서 괴수들이 우글거리고 있다는 점.
괜히 싸웠다가 시간이 끌리면 공중 지원도 못 받고 괴수 밥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건 자신이 아샤의 초인에게 1:1로 지는 것보다 조국에 더 큰 타격이 될 터였다.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었다.
결론을 내린 그는 부대원들을 쓱 훑어본 뒤, 두메아 가주에게 말했다.
-괴수에게 쫓겨 이곳까지 왔다. 도움을 요청하는 바다.
-괴수? 하, 멍청한 지구인들 같으니! 밀랍 산맥이 얼마나 엿 같은지도 모르고 후방 침입을 노린 건가.
-….
거기까지 단번에 파악한 건가? 오귀스트는 긴장하며 부대원들에게 손짓을 보냈다. 내가 마법을 사용하면 즉시 사격하라는 손짓.
하지만 그가 마법을 쓰는 일은 없었다.
-너희를 쫓는 괴수는 몇 마리나 되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적어도 수천 마리는 된다.
-뭐? 수천? 아, 다섯 신이시여… 이 어리석은 자들을 어찌할꼬. 괴수는 불어나기 전에 싸우는 게 기본이거늘.
두메아 가주는 푹 한숨을 쉬더니, 그대로 검을 허리춤에 다시 꽂아 넣었다.
-수천 마리? 여기서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군. 우선 같이 성으로 내려가지.
-성으로? 거절하겠다. 우리는 죽는 한이 있어도 포로로 잡히는 일은….
-포로? 포로라니. 가끔 보면 지구인들도 유머 감각이 있단 말이야. 수천 마리의 괴수 앞에서 포로는 무슨.
-….
-씁, 내 명예를 걸고 약속하마. 괴수 앞에서 포로는 없다. 아, 죽이겠다는 말은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고. 성으로 가는 건 저 코딱지만 한 성벽이라도 없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야.
거기까지 말한 두메아 가주는 그의 부대원들을 싹 훑으며 덧붙였다.
-그리고 너희에게 일말의 명예가 있다면… 너희가 끌고 온 괴수가 민간인을 잡아먹게 내버려 두지 않을 테지.
-….
-내가 정확히는 몰라도, 너희 프랑스 것들도 샤를… 샤를… 흠, 미안하군. 정확한 이름이 기억 안 나네. 어쨌든, 기사 중의 기사가 세운 나라의 후예라고 들었다. 그렇지?
샤를마뉴 대제를 말하는 건가? 오귀스트는 놀라움을 삼킨 뒤, 부대원들을 보며 말했다.
-작전 변경. 우리는 성으로 내려간다.
-이 자식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부대원 중 한 명이 무릎 꿇은 젊은 초인을 향해 턱짓했다. 오귀스트는 덤덤히 말했다.
-데려간다. 원하는 대로 됐으니, 가장 열심히 싸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