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386)
을 위한 세계는 없다-386화(386/817)
***
차원문이 열린 이후, 화염 마법은 도태되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기껏해야 마나로 강화된 갑옷과 성벽을 두들기는 데 쓰이던 화염 마법 아닌가.
전함과 벙커를 뚫기 위해 개발된 지구의 화약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몇몇 원로 마법사들은 TNT의 수십, 수백 배가 넘어서는 화력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그런 자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그에 비해 지구인들은 이미 톤 단위의 화약이 담긴 폭탄을 뿌려대고 있었으니, 그 차이를 더 말해 무엇할까?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화염 마법으로 10강에 오른 오귀스트는 특이한 사례였다.
화염 마법계의 희망이자, 화염 마법을 쓰는 유일한 강자.
하지만 어떤 자들은 오귀스트가 유럽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10강에 뽑힌 거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고작 화염 마법으로 10강이 된 것도 어처구니가 없는데, 활발하게 활동하는 성검이나, 미국 빅 쓰리들과 비교하면 뒷방 늙은이나 다름없다나?
물론, 여명은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미 10강을 여럿 만나봐서? 아니, 변경 전쟁의 참전 용사가 약할 리 없다고 확신했으니까.
기사단장이나 젊은 시절 변경백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 시절 전장에서 이름을 떨친 자들은 누구나 강자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여명은 프레시외즈의 불길 앞에서 한점의 방심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과할 정도로 마나를 끌어 올리며 공격에 대비했다. 대비했는데…
화아악-!
그를 향해 쏟아지는 불길은 대비한다고 막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다가오는 열기가, 피부를 찌르는 마나가 동시에 경고하고 있었다.
막으면 죽는다.
여명은 도망치라고 소리치는 본능을 억눌렀다. 이곳은 현실이 아니었다. 그의 무아지경, 마법에 담긴 오귀스트의 사념, 그리고 세계수가 만들어준 정신세계.
이런 곳이 아니라면 언제 10강의 마법을 정면에서 맞아보겠는가?
검을 쥔 손이 오싹했다. 다가오는 불길을 따라 점점 더 서늘해지는 목덜미로 마나를 끌어 올리면서, 자세를 잡았다.
화악-
파양결이 담긴 검기가 불길과 충돌했다. 거대한 불길이 치솟는 것을 시작으로 전신 근육과 검이 춤을 췄다. 검기가 만든 선을 따라 불길이 밀려났다.
“…나쁘지 않군.”
차가운 평가였다. 어느새 공중에 떠오른 오귀스트는 불길을 베는 여명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주름진 손을 따라 불의 검이 더욱더 넓게 펼쳐졌다. 흡사 쓰나미가 생각나는 어마어마한 양.
무슨 짓을 해도 피할 수 없는 범위였다. 여태껏 이어진 여명의 반항을 비웃듯, 불길은 순식간에 그의 몸을 집어삼켰다.
화아악 – !
여명은 곧바로 마나를 펼쳐 전신을 보호했다. 몸에 마나가 어찌나 많은지, 피부가 타긴커녕 물집이 재생되는 게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고작 이 정도로 견딜 수 있는 불이라면 10강의 주력기라고 할 수 없는 법.
오귀스트가 주먹을 쥐자, 프레시외즈의 불길 속에서 마나로 이루어진 알갱이들이 튀었다.
주변의 불길보다 조금 더 밝은 탓에 그것은 마치 작은 점이나 불씨처럼 보였다.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알갱이였으나, 그것이 여명에게 닿은 순간.
…!
작은 폭발이 일어나며 알갱이에 닿은 마나와 피부가 동시에 녹아내렸다. 소이탄에 직격당한 것처럼 아찔한 고통이 신경을 타고 올라왔다.
여명은 몇 걸음 뒤로 물러나며 생각했다.
마나 무효화? 아니면 마나를 압축한 건가?
어느 쪽이건 그가 할 수 있는 건 불길 속에서 다가오는 불씨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 것뿐.
오귀스트는 그런 여명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두메아 가문의 계승자여, 몸이 타오르는 고통조차 참아가며 프레시외즈를 원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복수?”
여명은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복수는 맞지만, 프랑스를 향한 복수는 아닙니다.”
“뭐?”
“아까 말씀드렸잖습니까. 저는 용서도 심판도 못 한다고. 제가 이 마법으로 프랑스에 복수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
”저는 제 복수와 욕심만으로도 어깨가 무겁습니다. 그런데 수십 년 전 전쟁의 복수라니, 그런 오지랖을 제가 어떻게 부리겠습니까?”
“하지만 너는 두메아 가문의 무술을….”
여명은 그의 말을 끊었다.
“그 무술은 가주께서 증손녀 좀 잘 봐달라는 뜻으로 그냥 주신 겁니다. 두메아 가문의 증손녀는 어르신의 증손녀만큼이나 무례하거든요. 솔직히 이 무술만 아니었어도 머리털을 전부 뽑아 버렸을 겁니다.”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오귀스트는 잠시 눈썹을 씰룩이다가 물었다.
“…황당한 대답이로군. 두메아 가문의 복수도 아니고, 오직 너의 욕심 때문에 10강의 마법을 원한다고?”
“예. 바로 그겁니다”
때때로, 뻔뻔함은 진심을 동반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이 딱 그런 순간이었다.
오귀스트는 망치에 머리를 맞은 사람처럼 멍하니 여명을 바라보다가,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그래… 끝까지 그렇게 나온다면… 어디, 이 마법을 익힐 자격이 있는지 보겠다.”
***
여태껏 만들어낸 불길은 장난이었다는 듯, 프레시외즈의 불길이 더욱더 크기를 키웠다.
어둠밖에 없는 공간으로 불이 차오르는 모습은 문자 그대로 불지옥이 따로 없었다.
쇠미리는 무사할까? 안구가 바짝 말라가는 와중에도 여명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쇠미리는 작은 완드를 꺼낸 채 보호막을 펼치고 있었다. 그녀도 어지간히 당황했는지, 여명과 눈을 마주치자마자 연신 고개를 숙였다.
여명은 쓴웃음으로 괜찮다는 말을 대신한 뒤, 오귀스트를 올려다봤다.
흡사 지옥의 군주처럼 불길 사이에 서 있는 남자.
여명은 본능적으로 그가 진심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사념이라서? 아니면 자신의 수준이 부족해서?
후자라면 여러모로 아쉬운 일이었다. 여명은 그의 힘을 전부 끌어낼 심산으로 주가시빌리를 펼쳤다.
불길 속에서도 확연히 눈에 띄는 붉은 아지랑이가 그의 어깨 위로 피어오르고, 불길 속에서도 상처가 재생되길 잠시.
“빨갱이? 설마, 혁명 때문에 복수를 포기한 건…?”
“…빨갱이 아닙니다. 그리고 저의 복수가 있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저놈의 빨갱이 소리는 몇 번을 들어도 익숙해지질 않는다니까. 눈을 껌뻑거리는 오귀스트를 마주하던 여명은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무슨 무술로 대항해야 하지? 혜성검? 이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화산쇄설? 기사단의 불꽃은 후회하는 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고민이 길어지려는 순간, 초인의 본능이 속삭였다.
지금이야말로, 두메아 가문의 비전 무술을 사용하라고.
짧은 생각, 그보다 빠른 행동. 그 이후에 이어지는 모든 행동은 본능의 영역이었다.
탁, 여명은 검을 잡은 그대로 불을 향해 오른발을 내밀었다. 무게 중심이 기울어진 상태로 검을 위로 들고, 마나는 아래로.
그리고 의지는 자유롭게.
우웅.
검이 호응하며 검기를 뿜어냈다. 여명은 그대로 몰려드는 화염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느릿하게, 혹은 여유롭게.
그것을 본 오귀스트의 눈썹이 크게 씰룩였다. 불길을 가르며 다가오는 검이 두메아 가문의 비전 무술이라는 걸 알아본 까닭이었다.
“그때 가리지 못한 승패를 가리겠다는 것이냐?”
여명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검을 내려쳤다.
!!!
찰나였다. 불의 파도가 반으로 갈라졌다. 여명과 오귀스트 사이로 기다란 길이 만들어졌다.
한걸음. 여명은 그대로 오귀스트를 향해 내달렸다. 갈라진 불길이 뿜어내는 열기가 무안할 정도로 거침없이.
오귀스트는 손을 쥐었다.
불길이 다시 뭉치며 여명의 앞길을 막았다. 이번에는 좀 전의 불씨 알갱이를 가득 머금은 상태였다.
그것을 본 전신 근육이 응축됐다. 또다시 이어지는 느릿한 검. 두메아 가문의 무술은 마치 형제를 만난 것처럼 불길과 얽혔다.
!
번쩍이는 검, 반으로 갈라지는 알갱이, 이어지는 폭발.
단 한 번의 교환에서 깨닫는다. 저 알갱이를 베어가며 접근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견딜 뿐.
순간 균형을 잃은 여명은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허리에 힘을 주고, 속도를 늦추지 않기 위해 발바닥의 마나를 폭발시켰다.
달리는 몸뚱아리와 알갱이가 충돌하며 몸이 녹아내렸으나, 주가시빌리는 그의 몸이 달릴 수 있도록 유지했다.
피가 타오르는 악취와 함께, 오귀스트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자, 이제 전력을 보여주십쇼.
여명의 생각과 동시에, 오귀스트가 손을 들었다. 이번에도 불길인가? 아니면 알갱이?
둘다였다. 오귀스트는 알갱이라고 생각했던 불씨로 이루어진 불길을 소환했다.
그 불길이 어찌나 밝은지, 이미 반으로 갈린 불길은 저것과 비하면 촛불처럼 보였다.
알갱이는 봐주는 거였나? 그래, 이 정도는 돼야 10강이고, 10강의 주력 기술이지.
여명은 웃음과 동시에 흑익류를 펼쳤다. 내부와 외부의 마나가 공진하며 아지랑이로 핏빛 깃털이 더해졌다.
검을 쥔 손에는 두메아 가문의 비전 무술이, 반대편 손에는 코르부스에게 배운 급속 냉각이.
눈을 깜빡할 사이에 준비된 마법과 무술의 협공이 동시에 너울졌다.
뜨거움과 차가움, 느릿함과 격렬함.
번쩍이는 마나와 함께 두 사람이 충돌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폭풍이 솟구쳤다. 상승기류를 만들어내는 불길 속에서 공기가 비명을 내질렀다.
저 멀리서 지켜보던 쇠미리는 갑작스러운 빛에 눈을 질끈 감았다. 곧이어, 격돌이 만들어낸 진공이 폭발하며 충격파를 토해냈다.
콰아아아- !
두 사람을 중심으로 모인 불길이 일제히 밀려났다. 그리고 그렇게 모든 열기가 사라진 뒤에야, 쇠미리는 폭심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충돌한 두 사람 중, 쓰러진 건 한 명뿐이었다.
***
“왜 마지막에 마법을 거두셨습니까?”
여명은 쓰러진 오귀스트를 보며 물었다. 어깨부터 허리까지 사선으로 몸이 베인 그는 쿨럭 피를 토하며 대답했다.
“…자네가 여기서 죽으면, 꿈에서 깨어날 테니까.”
“….”
여명은 반박하지 않았다. 오귀스트의 말이 단순히 허세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까닭이었다.
그는 오귀스트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테스트는 어떻게 됐습니까? 이 정도면 자격은 충분합니까?”
“그래, 현역 시절 두메아 가주보다 낫군….”
여명은 말을 아꼈다. 짧은 침묵이 두 사람 사이를 채우고 저 멀리서 쇠미리가 뛰어올 때쯤. 오귀스트가 말했다.
“…변경백령에 나치는 없었다.”
현대에 와서는, 이 세상 모두가 아는 이야기.
“히틀러도, 최후의 대대도, 아넨에르베도, 괴벨스도 없었다. 하지만 나의 조국은 이렇게 말했지. 변경백 머리 위로 떨어진 핵이 증거를 불태운 거라고.”
여명은 어떠한 평가도,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자기 고백에는 대답이 필요 없는 법이었으니까.
“진짜 나치 잔당은 아샤 대륙 정 반대편에 있었다. 퀴니 코완… 나치 잔당을 잡은 그녀는 공개적으로 나의 조국을 비난했지.”
“수치스러웠다. 나의 아집과 욕심으로 죽은 자들이 떠올라 얼굴을 들 수 없었다.”
“하지만 가장 절망적인 건… 수치를 느낀 게 나뿐이라는 사실이었다. 우리의 대통령, 국민들… 심지어 전우들마저도 퀴니에게 손가락질했다. 새로 얻은 식민지를 잃을까 두려워서.”
프랑스가 로드 하우 아카데미를 싫어하는 이유가… 설마? 혐오스러운 진실을 마주한 여명이 인상을 찌푸리는 가운데, 오귀스트는 먼 곳을 바라봤다.
“그제야 나는 진실을 볼 수 있었다. 나치는 사라지지 않았다. 독일을 불태우고, 히틀러를 죽여도 없앨 수 없었다. 나치는 게르만 민족도 아니고,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도 아니었으니까.”
무언가를 씹어 뱉듯, 떨리는 목소리.
“우리… 우리가 곧 나치였다.”
진실로 그러했다. 식민지를 놓지 못한 그의 조국이, 모든 유럽이, 그들이 낳은 선민사상과 제국주의, 탐욕과 비인간성이야말로-
나치였다.
우리는 나치를 심연이라고 생각했으나, 우리야말로 심연이었던 것이다. 나치는 우리를 보고 더욱 깊은 심연에 빠진 또 다른 우리에 불과했다.
왜 이렇게 된 걸까? 두 번의 대전에서 수많은 가족을 잃고도 왜 우리는 멈출 수 없었을까?
왜 더 나아질 수 없었을까?
그럴 기회가 있었는데 놓친 것인지, 아니면 기회조차 없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중요하지도 않았다.
아샤를 새로운 식민지로 삼으려던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이미 되돌릴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프레시외즈를 만들었다.”
“나치를 태워버리기 위해서요?”
설마 하는 마음으로 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본 여명은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이유와 목적, 심지어 시대마저 달랐으나 둘의 방식은 비슷한 면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한 가지, 두 사람의 방식을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주와이외즈의 원래 주인은 어떻게 됐습니까?”
“죽었다. 그를 낳은 조국의 전범 교도소에서. 처참하고, 비참하게.”
예상보다 더 끔찍한 최후였다. 무어라 위로의 말을 떠올리지 못한 여명이 눈을 질끈 감은 순간. 오귀스트가 한 번 더 꿈의 풍경을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