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39)
을 위한 세계는 없다-39화(39/817)
〈 39화 〉 프롤로그 이후의 세계 (4)
* * *
***
해골 용과 눈을 마주한 순간, 여명은 눈을 가늘게 떴다.
용의 가슴 속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마나 때문이었다. 마치 용광로를 코앞에서 마주한 것처럼 눈이 후끈거렸다.
그는 해골 용에게 눈을 떼지 않고, 김만수에게 물었다.
“…부단장님, 저놈의 정체가 뭡니까?”
용을 보며 몸을 벌벌 떨고 있던 김만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는 흐르는 식은땀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카할 마그두… 테러리스트와 손을 잡은 언데드 드래곤. 남미에 있어야 할 괴물이 왜 만주에…?”
김만수의 설명이 끝나기가 무섭게, 용이 입을 열었다.
오, 내 이름을 알고 있군? 이 땅에선 나를 아는 자가 없었건만, 평범한 용병은 아니었군.
자신의 이름을 아는 게 그렇게나 신기했던 걸까, 용의 눈구멍 속 불꽃이 초승달처럼 부드럽게 휘어졌다.
잠시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지만… 업무 중에 잡담은 지양하는 편이라서.
‘….’
안타깝지만, 임무는 임무지. 너희는 이곳에서 죽어야겠다.
해골 용은 위로하듯 말하곤, 뼈만 남은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러자 침엽수림 너머에서 무수한 발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불규칙하고, 비정상적인 발소리를 들은 여명이 눈살을 찌푸렸다.
으어어…
곧이어 숲의 어둠 너머에서 어마어마한 숫자의 좀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시발…”
좀비들의 면면을 확인하자마자, 김만수가 욕을 내뱉었다.
녀석들의 복장이 너무나 익숙한 탓이었다. 군복과 전투복, 그리고 다른 용병단의 유니폼까지…
“북만주는 이미… 끝장났군.”
로켓포를 사용하는 괴인들과 마주했을 때까지는 혹시나 하는 희망이 있었다.
그깟 테러리스트에 무너질 북만주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부정할 수 없는 증거를 마주한 김만수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부단장님.”
상황을 관조하고 있던 여명이 그의 감상을 끊었다. 그는 다가오는 좀비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어쩌실 겁니까?”
김만수는 짧은 질문 속에 담긴 뜻을 읽고 입술을 씹었다.
싸울 것이냐, 도망칠 것이냐.
둘 중 어느 쪽도 쉽지 않았다. 저 거대한 해골 용을 상대로는 승리도, 도주도 장담할 수 없었으니까.
“우선은… 도망친다.”
판단은 빨랐고, 발걸음은 조금 더 빨랐다.
둘은 거의 동시에 땅을 박차고 용의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좀비들 또한 망가진 몸을 질질 끌며 따라왔지만, 초인의 발걸음을 쫓지는 못했다.
작전 중 도주라, 용병답군.
용은 뼈만 남은 다리를 움직여 두 사람을 쫓았다. 양반이라도 되는 양, 여유롭기 그지없는 발걸음이었다.
쿵, 쿵, 쿵!
뒤를 따르는 거대한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지만, 여명은 안심할 수 없었다.
뭔가 잘못된 거 같은, 불길한 예감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뭐지?
그가 눈썹을 찌푸린 순간, 앞쪽에서 무언가 움직이고 있는 게 느껴졌다.
느릿한 발걸음을 보아하니 좀비가 틀림없었다. 벌써 포위된 건가? 여명은 반사적으로 방향을 돌렸다. 아니, 돌리려고 했다.
여명보다 먼저, 김만수가 걸음을 멈췄다. 두 사람은 굳은 표정으로 앞을 포위한 좀비들을 바라봤다.
“…시발.”
아까 전 교전으로 사망한 선죽 용병단 3팀이 그곳에 있었다.
“이 개 좆같은, 새끼가…!”
좀비가 된 동료들을 본 김만수는 손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강하게 주먹을 쥐었다.
그 순간 저 멀리서, 여유롭게 걸어오는 용의 목소리가 들렸다.
용병이라면 너희도 이해할 테지? 임무에 중요한 것은 오직 성공뿐. 오늘 북만주에서 살아나갈 자는 아무도 없다.
여명이 뒤를 돌아보자, 용이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아 두 사람을 겨누고 있었다.
엄지에 중지를 걸고 있는, 사람으로 치면 딱밤을 치려는 듯한 모양새.
딱,용은 그대로 손가락을 튕겼다. 용의 손에서 발사된 무언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둘을 향해 날아왔다.
챙!
여명은 이번에도 검을 휘둘러 그것을 쳐냈다. 그러나 이번에 날아온 건 총알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닿은 곳, 바닥에 떨어진 물건은 군번줄이었다.
북만주 소속 군인, 혹은 용병이 차고 있었을 피 묻은 군번줄.
“…악질이군.”
덩치는 산만 한 녀석이 이딴 걸 챙기고 다니다니. 보물도 아니고, 오직 도발을 위한 물건이나 다름없었다.
두 사람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걸 본 용이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김만수는 이를 갈며 녀석을 노려봤다.
“신입, 너라도 도망쳐라.”
“…부단장님은요?”
“내가 시간을 끄마, 나보단 네가 더 빠르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만주 기지에 이 소식을 전해다오.”
만주 기지? 여명은 의연한 김만수를 보고 고민했다. 설마, 눈치채지 못하신 건가?
그는 김만수의 귓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좀비들 사이에, 톈린 선배가 보이지 않습니다. 도망치는 데 성공하신 것 같습니다.”
“뭐?”
“용이 알면 선배들을 추적할지도 모르니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명은 검은 들고 김만수와 나란히 섰다. 밀려드는 좀비들의 발소리가 시시각각 가까워지고 있었다.
“저도 함께 싸우겠습니다.”
“…너라도 도망가는 게 나을 텐데.”
“이미 포위된 상태에서 전력을 나눠봤자 각개격파 당할 뿐입니다.”
“동시에 죽을 수도 있겠지.”
김만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소총을 장전했다. 이 이상 말릴 생각은 없어 보였다.
여명은 잠시 해골 용과 좀비들을 번갈아 쳐다본 뒤, 입을 열었다.
“부단장님, 제게 작전이 하나 있습니다.”
“…작전? 이 상황에?”
묘한 데자뷰가 느껴지는 문답이었다. 김만수는 슬쩍 고개를 돌려 여명의 얼굴을 확인했다.
“간단한 작전입니다. 제가 용을 처치할 동안, 부단장님께서 좀비를 맡아주시면 됩니다.”
“…그게 전부냐?”
“예, 그리고 가능하다면…죽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딱딱하게 굳었던 김만수의 표정에 헛웃음이 피어올랐다. 그는 소총을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한 번 해보겠… 아니, 반드시 그러마.”
그가 결심을 굳히는 순간, 여명이 땅을 박찼다.
좀비들이 그를 향해 달려왔으나, 여명은 이미 종아리에 마나를 실어 뛰어오른 뒤였다.
그는 허공을 밟았다. 아니, 정확히는 침엽수의 몸통을 발로 차며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침엽수 꼭대기까지 올라가자, 용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었다. 눈구멍 속에서 타오르는 귀기어린 푸른 눈동자가 여명의 금빛 눈동자를 마주했다.
***
오? 맞서 싸우겠다고?
언데드 드래곤, 카할 마그두는 놀라움과 즐거움이 반반 뒤섞인 목소리로 감탄했다.
훌륭하군. 약자의 용기는 찬양받아 마땅하지.
그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었다.
여명이 침엽수 꼭대기를 박차고 용에게 달려드는 것과 용이 손을 휘저어 마나를 일으키는 건 거의 동시였다.
용의 압도적인 마나가 배열되고, 주변 일대의 마나가 그에게 순응하며 날카로운 얼음을 만들어냈다.
인간 마법사들은 얼음송곳이라고 부르는 간단한 공격 마법.
하지만 용이 펼치는 얼음송곳은 인간의 그것과 근본부터가 달랐다.
크기, 강도, 그리고 숫자까지.
쩌저저적!
허공이 얼어붙으며 수십 개의 얼음송곳이 공간을 뒤덮는다. 밤하늘 아래 반짝이는 얼음들은 흉흉하기 그지 없었다.
다음 순간, 용이 손가락을 까딱하자, 모든 얼음송곳이 일제히 움직이며 여명을 덮쳤다.
위아래는 물론이고, 좌우를 모두 점거한 완벽한 포위 공격.
결코 피할 수 없는 공격을 마주한 순간, 여명은 머릿속으로 입단 시험 때 봤던 늑대 괴물을 떠올렸다.
정확히는 그것이 육체를 움직이던 방식을.
괴물은 심장에 마나를 담아 혈관을 쥐어짜고, 그것으로 육체를 강화했다.
인간은 따라 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에서 피를 토하며 죽을 극악한 방식이었지만,여명은 기꺼이 그 방식을 모방했다.
그는 자신의 재생력을 믿었다.초인마저 뛰어넘는 재생력이라면, 괴물의 방식을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은 짧았고, 망설임은 없었다.
‘…혈류가속.’
여명은 그대로 마나를 퍼부어 심장을 펌프질했다.
한계를 초월한 심장이 피와 마나를 토해내고, 혈관이 터질 것처럼 맥동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대동맥부터 미세혈관까지.
모든 곳에 더 많은 마나가, 더 많은 산소가 공급됐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눈앞이 맑아지며 육체가 감각을 앞지른다. 그 뒤로 마나가 차오르자, 세상 모든 것들이 느려졌다.
찰나의 감각 속.
용이 날린 얼음송곳들의 궤도가 선명하게 보였다.여명은 송곳들의 궤도속, 가장 취약한 부분에 검을 휘둘렀다. 새하얀 검광이 번쩍였다.
쩌엉 !
검이 휘두른 자리로, 얼음송곳의 포위가 무너졌다.
여명의 볼에 차가운 얼음 조각이 튀었다.
그리고 그것이 녹아내리기도 전에, 그는 얼음송곳의 포위를 뚫고 용의 머리 바로 위에 도달했다. 가공할 속도였다.
아니, 어떻?
용이 무어라 반응하기도 전에, 여명은 용의 가슴을 향해 검을 내려찍었다.
낙하하는 동안 파양결을 일으켰다.
마음속에서 일어난 마나가 허리, 어깨, 팔꿈치, 손을 따라 쭈욱 뽑혀 나갔다. 그의 검이 한줄기 파도가 되어 용에게 쇄도했다.
목표는 녀석의 갈비뼈 사이에서 느껴지는 용의 심장.
용은 뒤늦게 몸을 비틀어 검을 향해 앞발을 내밀었다. 가슴을 보호하기 위해 역으로 뼈를 내주는 움직임이었다.
다음 순간, 용과 여명의 검이 부딪혔다.
카가각!
뭔가를 베어내는 감각은 없었다. 손아귀로 올라오는 감각이 묵직했다. 여명은 검과 함께 그대로 튕겨 나갔다.
“큭!”
바닥으로 추락한 여명은 바닥을 굴러 자세를 잡았다. 예상대로, 그의 검은 용의 심장에 닿지 못했다.
기껏해야 앞발에서 뼛조각이 몇 개 떨어지는 게 전부.
‘뼈를 베는 건… 불가능한가.’
강도가 상상을 초월했다. 살이 있었다면 과다출혈이라도 노려보겠으나, 상대는 뼈만 남은 언데드였다.심장을 노리는 수밖에 없었다.
여명은 후우 숨을 들이쉰 뒤, 검을 다잡았다.
하하하!내 뼈에 상처를 내다니! 빌어먹을 양키 새끼들에게 밀렵당하던 시절 이후 처음이로군!
용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두 다리로 서서 손을 휘둘렀다. 거대한 발톱이 여명이 있던 자리에 기다란 상처를 남겼다.
침엽수가 부러지고, 흙이 튄다. 여명은 아슬아슬하게 녀석의 범위를 벗어나 다시 마나를 끌어 올렸다.
그 직후, 용의 아래로 발을 굴렀다.
위에서 안 된다면, 아래쪽에서 검을 찔러넣을 생각이었다. 깃걸음이 펼치는 그의 몸이 길게 늘어졌다.
쿵! 쿵!
접근하는 여명을 향해 용이 손을 내려찍었다. 땅이 흔들릴 정도로 강렬한 일격이었으나, 여명은 이미 용의 코앞까지 가속한 뒤였다.
하지만 검을 올려치지 못했다. 다음 순간, 예상치 못한 공격이 그의 몸을 후려쳤다.
터엉!
그를 후려친 건 용의 꼬리였다. 아슬아슬하게 검을 들어 막았으나, 막대한 충격에 몸이 붕 떠올랐다.
여명은 테니스공처럼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큭!”
흘려내지 못한 충격이 근육을 타고 흘렀다. 한계까지 내몰린 미세혈관이 일제히 터져나갔다.
그의 입과 코에서 피가 쏟아졌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눈의 미세혈관이었다. 시야가 빨갛게 물들었다.
이래서 지구인들이란, 다른 종족들도 자기들처럼 팔 두 개로만 싸우는 줄 알지.
용의 비웃음이 들려오고, 여명은 그대로 땅으로 추락했다.
‘젠장.’
온몸이 욱신거렸지만, 쉴 시간은 없었다. 용이 다음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반동을 이용해 즉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아직 시야가 돌아오지 않았지만, 주변에서 일렁거리는 마나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파지지지직!!
이번에는 벼락인가. 전류가 대기를 찢는 소리가 귀를 어지럽혔다. 얼음송곳과 달리 검으로 쳐낼 수도 없는 공격이었다.
뛰어나지만, 아직 미숙해. 몇 년만 더 숙성됐다면… 좋은 소체가 될 수 있었을 텐데. 거듭 안타깝구나.
여명은 눈가에 고인 피를 훔치고, 눈앞을 가득 채운 벼락을 바라봤다.
저 벼락을 전부 피할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피하지 못하면 반드시 죽겠지. 그는 입안에 고인 피를 퉤, 내뱉고 검을 세웠다.
마지막까지 의연한 건 마음에 드는군. 자 그럼, 이제 끝을…
그렇게 벼락과 검이 맞서려는 순간, 용과 인간의 시선이 침엽수림 저편을 향해 돌아갔다.
뭐지?
무언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런 마나도,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배기음처럼 들리는 소리가 둘을 향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
여명이 그것이 진짜 바이크 배기음이라는 걸 깨달았을 땐, 소리의 진원지가 이미 코앞까지 다가온 뒤였다.
부아아아아앙!!
여명의 바로 위, 허공이 갈라지며 바이크 한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차체에 온갖 수류탄과 사제폭탄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최고급 스포츠 바이크.
바이크는 마치 성물이라도 되는 양, 신성한 빛을 내뿜으며 용을 향해 날아갔다.
누가 봐도 현실성이 떨어지는 광경이었다. 용은 멍하니 입을 벌리고 포물선을 그리는 바이크를 쳐다만 봤다.
그가 정신을 차린 건, 오토바이가 가슴팍에 거의 접근한 뒤였다.
이런 미친…!
콰과과광!!
용이 오토바이를 붙잡으려는 순간, 오토바이가 그대로 폭발했다.
가장 먼저눈이 아플 정도로 밝은 빛이 주변을 휘감았다.그다음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고, 마지막으로 용의 비명 소리가 숲을 가득 울렸다.
크롸라라라!!!
날아오는 파편들을 막기 위해 여명은 반사적으로 손을 들었다. 충격이 조금 가신 뒤에야, 그는 오토바이가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자동소총 두 정과 그것을 붙잡은가녀린 손 두 개.
다시는 마주치지 말자던 총잡이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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