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390)
을 위한 세계는 없다-390화(390/817)
***
“이건 내 경험인데.”
구더기 공주가 그렇게 입을 열었을 때, 여명과 세티는 카페에 앉아 커피 향에 젖은 유리창 너머 거리를 보고 있었다.
수업이 끝난 거리에는 젊음을 만끽하는 학생들로 가득했다. 여명이 사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적어도 카페 구석에서 피 냄새를 지우고 있는 이 순간만큼은 그랬다.
거기까지 생각한 여명은 시선을 돌렸다. 잔을 비운 구더기 공주가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거친 일을 저지른 뒤에는, 일상적인 일을 하는 편이 좋아.”
지나가듯 가벼운 목소리였으나, 그녀가 말한 ‘거친 일’이란 살인을 뜻했다. 여명은 무성의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야,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저도 진지하게 듣고 있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여명의 감각은 밖을 향하고 있었다. 성녀님의 기도회 어쩌고 하는 소리가 계속 귀에 밟힌 까닭이었…
“경험자의 조언이야.”
경험자라. 그녀가 터스키기 연구소에서 실험체 겸 암살자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여명은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일상적인 일? 그게 왜 좋은데요?”
“멘탈적인 문제지. 사람의 정신은 피를 보면 알게 모르게 엿 같아지거든. 피를 보는 걸 좋아하는 사이코패스… 라면 또 모를까.”
사이코패스를 운운할 때 슬쩍 그의 얼굴을 흘겨본 건 기분 탓일까? 여명은 피식 웃으며 잔을 비웠다.
“예, 뭐, 그럼 저는 뭘 하면 좋을까요?”
“그거야… 책을 읽거나, TV를 보거나 뭐 그런 취미 생활? 아, 너는 요리 잘하니까 요리하면 되겠네.”
조언의 주체가 암살자라서 그런가, 나쁘지 않은 조언이었다. 요리, 요리라…
여명은 바로 옆자리에서 커피를 홀짝이고 있는 세티를 불렀다.
“세티.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갑작스러운 질문의 대답은 세티가 아닌 구더기 공주에게서 나왔다.
“이런 염병. 조언 끝나자마자 연애질이야?”
여명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게 누가 커플 따라 오래요? 누님.”
“으엑, 누님?”
상상도 못 한 반격에 구더기 공주가 질색했다. 그녀는 요즘 것들은 어쩌고 너랑 나이 차이 얼마 안 나고 저쩌고 하며 투덜거렸다.
여명이 예, 예 하며 말을 받아주길 잠시.
금세 잔을 비운 세티가 입을 열었다.
“요리라. 으음, 나쁘지 않네.”
“그래? 그럼 뭐 해줄까? 나 한식은 자신 있어.”
“어디 보자… 성녀는 식감이 단단한 걸 좋아하고, 미리는 국물 많은 걸 좋아하니까….”
그때, 여명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다른 애들 취향 말고, 네가 먹고 싶은 거.”
“…응?”
“오늘은 네 입맛에 맞출게. 응? 뭐 먹을래? 기왕이면 장부터 같이 볼까?”
여명이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얼굴이 가까워지자 세티는 시선을 피했다.
“아니, 나는… 뭘 해줘도 상관없는데….”
슬며시 말끝을 흐리는 세티와 은근슬쩍 어깨에 손을 올리는 여명.
그걸 지켜보던 구더기 공주는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가 이런 꼴 보자고 조언했나.
“벌써 가시려고요?”
여명은 그녀를 보지도 않고 물었다. 구더기 공주는 커피값을 내려놓으며 버럭 소리 질렀다.
“나도 눈치 있어 임마!”
***
눈치 있는 라쉬크 덕분에(?) 여명과 세티는 오랜만에 단둘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평소라면 성녀가 끼어들었겠으나, 다행히 그녀는 기도회에 끌려간 지 오래였다.
방해꾼이라고 해 봤자 눈치 없는 귀신 한 마리가 전부.
두 사람은 평범한 커플처럼 두런두런 저녁 메뉴를 정하고, 장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아무튼, 그렇게 정해진 메뉴는 육개장.
그저 ‘맛 상관없이 양만 많으면 된다’ 라는 세티를 위해 여명이 특별히 선택한 메뉴였다. 어쩐지 만날 때마다 편의점 음식을 산처럼 쌓아 놓고 먹더라니.
청소부 시절, 함바집 아줌마에게 직접 배운 비장의 레시피를 사용할 때가 온 것이다…
뭐, 아무튼, 용까지 배불리 먹일 수 있을 양의 재료를 구입한 두 사람이 하수도로 내려가는 와중에, 여명이 조심스레 물었다.
“저기, 세티?”
“응?”
“그, 음, 물어볼 게 있는데, 그게… 어….”
여명이 바로 말을 꺼내지 못하고 말꼬리를 흐리자, 세티는 눈을 가늘게 떴다.
“뭔데? 나에게 숨겨온 비밀? 아니면 우리 자매에 대한 거? 그것도 아니면 야한 거?”
“….”
순식간에 질문 범위를 압축해 버리는 세티. 여명은 딴 곳을 보며 대답했다.
“마지막 거.”
“….”
묘한 눈초리가 그의 목덜미를 찔렀다. 여명은 변명처럼 덧붙였다.
“아니, 아니, 그런 종류의 야한 거 말고. 뒤에 귀신도 붙어 있는데, 내가 그런 질문 하겠어?”
“…그래 뭐, 들어나 보자.”
찰박, 찰박. 세티의 발소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여명이 물었다.
“저번에, 그… 성녀하고 셋이서 하자고 할 때, 왜 흔쾌히 허락했어?”
“….”
“아니, 난 당연히 거절할 줄 알았거든.”
“그런 야한 거 아니라며.”
세티가 푹,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여명은 어깨를 움츠리는 와중에도 눈빛으로 대답을 요구했다.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별 이유 아니야. 어차피 못할 게 뻔하니까 그랬어.”
“…못할 게 뻔하다?”
여명은 마하간이 숨어 있을 허공을 바라봤다. 귀신은 자신에게 눈치가 쏠리는 게 영 불편한지 고개를 저었다.
곧이어 세티가 말했다.
“여명, 너는 셋이서 하는 법 알아? 모르지? 그럼 성녀는 알까? 당연히 모르겠지?”
“….”
“장담하는데, 그날 분위기 다 깨지고 어색해져서 흐지부지 끝났을걸.”
지극히 현실적인 지적이었다. 여명은 물론이고, 몰래 듣고 있던 마하간조차 그런가? 싶은 표정으로 그녀의 말을 곱씹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베이스캠프 입구에 도착할 때쯤, 여명은 불현듯 뭔가를 깨달았다.
“세티, 오해하지 말고 들어, 네가 그때 이미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건, 혹시….”
“미리 셋이서 하는 걸 생각해본 적 있냐고?”
“…그렇게 대놓고 물을 생각은 없었는데.”
세티는 피식 웃으며 여명의 목덜미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그를 끌어당겼다. 가까워지는 눈동자가 겹치고, 그녀의 작은 입술이 벌어졌다.
다음 순간, 세티는 꾸욱- 여명의 목덜미를 물었다. 이빨 자국이 남을 정도로 선명하게.
“이게 내 대답이야.”
세티의 손아귀에서 풀려난 여명은 그녀의 얼굴과 자신의 목덜미를 번갈아 바라봤다. 많은 뜻이 담긴 이빨 자국.
그는 일부러 상처를 재생하지 않고 옷깃을 끌어올려 자국을 숨겼다.
“…성녀가 보면 큰일 나겠네.”
“뭐래.”
세티는 마지막까지 웃으며 용의 둥지로 이어지는 물길로 뛰어들었다. 첨벙! 홀로 남은 여명이 물길 속으로 사라지는 그녀를 바라보길 잠시.
여태껏 입을 다물고 있던 마하간이 툭 한마디를 던졌다.
[거참, 죽으니까 별꼴을 다 보게 되는구먼. 살아있을 때는 남의 연애 망하는 것만 봤는데.]“….”
[흠, 그러고 보니… 너는 이런 면에서 전대 성녀를 닮은 걸지도 모르겠구나. 그녀에게 반해서 눈물 콧물 다 흘리던 인간들이 성의 해자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였거든. 심지어 남녀를 가리지도 않았어. 지구 왕족이 성녀를 침실로 끌어 들이려다가 뺨을 맞은…]그런 역사의 비밀은 안 알려주셔도 됩니다. 여명은 고개를 저으며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
냄비에 식용유와 참기름을 7:3의 비율로 부은 뒤 큼직하게 썰어둔 대파를 볶는다.
그리고 살짝 파의 숨이 죽었을 때쯤, 고춧가루를 투하. 약불에서 달달 볶아 기름에 향과 맛을 씌운 뒤 미리 삶아 놓은 고기와 무 육수를 넣는다.
육수와 무가 붉게 물들고 찢어진 고기가 풀어지면 토란대와 고사리, 숙주, 취향에 따라 버섯을 넣고 다시 한번 육수로 물양을 맞춘다. 숙주의 경우 식감을 원한다면 조금 늦게 넣어도 좋다.
그렇게 보글보글 끓기 시작할 때 다진 마늘과 간장을 넣는다. 해장용이라면 마늘을, 대용량이라면 간장의 비율을 높이는 편이 좋다.
이제 마지막으로 뚜껑을 덮고 한소끔 끓이면 함바집 아줌마표 해장 육개장 완성.
따로 뚝배기에 덜어서 순두부나 계란을 넣어 먹으면 술국으로도 제격이었….
“아, 진짜! 누가 얘 좀 말려봐!”
레시피를 읊던 여명의 말을 끊은 건 성녀였다. 그녀는 수저를 들고 쇠미리에게 삿대질하고 있었다.
“왜 그래?”
놀란 여명이 묻자, 성녀가 한 번 더 숟가락을 휘둘렀다.
“저거, 저거! 국에다가 크림을 타 먹잖아!”
그녀의 말마따나, 쇠미리의 육개장 그릇에는 어디서 꺼낸 건지 알 수 없는 새하얀 크림이 한 움큼 올라가 있었다.
“이게 왜요?”
그러나 쇠미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역으로 성녀를 바라봤다. 성녀는 빽 소리 질렀다.
“왜? 왜에에? 여명이 열심히 만들어준 요리에 그따위 사악한 짓을 벌이고도 그런 말이 나와?!”
“…사악한 짓?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둘이 그렇게 투닥거리기 시작하자, 식사하던 나머지 일행들의 시선이 모였다. 여명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물었다.
“미리, 국 위에 뭐 올려 먹는 거야?”
“아니, 맛이 꼭 매운 보르시 같길래… 사워크림 좀 올려봤어요. 이게 그렇게 이상해요?”
“….”
보르시는 동구권에서 주로 먹는 스프의 이름이었다.
고기와 각종 야채가 들어간 국물에 빨간 무의 일종인 비트를 넣어 끓인 국이었는데, 옛 소련에서는 그 위에 시큼한 사워크림을 올려 먹곤 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쇠미리는 빨간 고깃국을 소련식으로 먹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한국인 기준으로는 괴식 중의 괴식이었지만… 뭐 아무튼.
여명이 성녀에게 이유를 설명해주자, 그녀는 안대가 찌그러질 정도로 미간을 구겼다.
“…쉽게 말해서, 빨갱이식으로 먹는다는 거지?”
“….”
무어라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은 여명은 조용히 육개장 그릇을 비웠다.
그렇다고 눈치를 보는 쇠미리를 보고만 있었느냐면, 그건 아니었다.
여명은 새 그릇을 퍼서 그녀에게 사워크림을 조금 달라고 부탁했다.
“나도 한 수저 줄래?”
“…괜찮겠어요?”
“뭐, 음식인데 괜찮고 안 괜찮고가 어딨어?”
쇠미리는 기꺼이 그의 육개장 위에 사워크림 한 덩이를 올려줬다. 새하얀 크림이 들어간 국물은 구더기 공주의 그것처럼 묘한 분홍빛을 띠었다.
한식을 먹고 자라온 입장에서 여러모로 무시무시한 비주얼이었으나, 쇠미리의 기대 어린 눈빛을 보니 무르기도 뭐했다.
여명은 눈을 딱 감고 한 수저 크게 떠서 먹었다. 그리고…
“오.”
의외로 맛이 나쁘지 않았다. 시큼한 크림이 매콤하고 느끼한 육수의 끝을 잡아주는 느낌이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쇠미리가 웃으며 말했다.
“어때요? 괜찮죠?”
“응, 생각보다 훨씬 좋은데? 밥 말아 먹기는 좀 힘들겠지만.”
“소련에서는 보통은 호밀빵이나 돼지 지방을 곁들여요. 둥지가 서늘해서 그런가, 이것도 진짜 소련에서 먹는 느낌이네요.”
대놓고 빨갱이스러운 대화에 성녀의 미간이 좁혀지고, 나머지 일행들이 달그락달그락 그릇을 비우길 한참.
[꺼억-]대형 냄비에 담긴 육개장을 통째로 퍼먹던 오르세 라날의 트림과 함께 식사가 끝났다.
식사 후의 나른함과 풍족함이 용의 둥지를 채우는 시간.
누군가는 후식을 집어 먹고, 누군가는 몸을 푸는 사이 마하간이 여명에게 물었다.
[오늘은 용사의 무술을 볼 자신이 있느냐?]“예.”
단호하지만 확실한 대답이었다. 마하간은 은근한 얼굴로 여명을 바라보다가, 나머지 일행의 면면을 확인했다.
[끌끌, 어디 그 자신감만큼 할 수 있을지 보마.]***
오늘도 꿈의 시련을 극복하지 못한 ‘그릇’을 뒤로한 채, 나머지 일행이 계단 위에 섰다.
주와이외즈와 급속 냉각을 추가로 무장한 여명을 필두로 세티, 쇠미리 성녀 순서로 포지션을 잡았다.
포지션에 대한 논의나 작전 회의 같은 건 없었다.
이심전심이라고 해야 할까. 일행은 모두는 말하지 않아도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철컥.
성녀가 소총의 노리쇠를 확인하는 소리를 신호로, 네 사람은 계단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
시작은 익숙한 제국 기사단.
사격과 쇠미리의 마법이 전열을 망가트린 바로 다음 순간, 여명과 세티가 뛰어들었다.
서로의 검과 망치가 방해되지 않을 가장 적절한 움직임, 마나를 낭비하지 않을 만큼 절제된 공격.
기사단의 환상은 채 2분을 버티지 못하고 몰살당했다. 첫날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발전이었다.
그다음은 퀴니 코완과 다른 기사단.
이번에는 여명이 전면에 나서 퀴니 코완을 마크하는 사이, 나머지 일행이 기사단을 전부 처리했다.
1분 30초. 급속 냉각으로 퀴니 코완의 발을 얼린 여명이 그녀의 몸을 두 동강 내버리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빠르군.]마하간은 감탄하면서도 계속 적을 내보냈다. 종종 마하간 본인의 환상이 나타나 마법을 쏟아내거나, 퀴니와 함께 등장해 기습하기도 했다.
대마법사의 공격 속에 섞인 마총은 위협적이었지만, 일행은 버텨냈다. 이미 몇 번이고 당했던 합공이었으니까. 여명 일행은 능숙하게 가짜 환상들을 처치하며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평소보다 더 깊은 장소에 도착한 순간.
젊은 변경백이 나타났다. 검을 뽑아 든 그는 기사단을 대동한 채 천천히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세티가 망치를 벼락으로 물들이며 말했다.
“여명을 중심으로.”
그 이상의 명령은 필요 없었다. 쇠미리가 두 빛 덩어리를 키워 시야를 가렸고, 성녀는 수류탄을 꺼내 입으로 핀을 뽑아 던졌다.
또르르- 쾅!
수류탄의 폭발음을 신호 삼아 여명이 돌진했다. 변경백은 섬광도, 수류탄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정확히 그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여명은 이를 악물고 모든 마나를 끌어 올렸다.
오른손에는 산의 눈물, 왼손에는 무장 혈청.
각각 화산쇄설과 주와이외즈를 두른 쌍검의 불길이 계단을 가득 채우고, 그의 몸에서 피어난 주가시빌리가 흑익류의 깃털을 집어삼키며 길게 늘어졌다.
겉치레도, 탐색전도 필요 없었다. 첫 격돌부터 전력.
콰아아앙 – !!!
시작은 화산쇄설의 폭발음. 가짜 변경백은 가전 무술로 폭발을 통째로 무시하고 검을 휘둘렀다.
한 호흡. 주와이외즈를 머금은 무장 혈청이 변경백의 검을 막는다.
한 호흡 반. 오른손의 검으로 약식 화산쇄설. 그러나 이번에도 폭발은 변경백을 뚫고 지나간다.
그렇게 호흡이 넘어간 순간, 변경백의 검이 그의 어깨를 향해 날아왔다.
‘지금.’
여명은 숨을 참은 채 무장 혈청을 빠르게 혈관 속으로 되돌렸다. 방패로 변경백의 검을 막으려고?
아니, 아니었다. 아무리 빨라도 팔이 잘리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그 대신, 여명은 무장 혈청으로 잘려 나간 어깨가 떨어지기 전에 붙잡았다.
잘린 어깨를 곧바로 붙이고, 주가시빌리가 재생한다. 변경백이 자른 팔의 절단면이 너무나 깔끔하기에 할 수 있는 기행.
[이런 미친!]마하간의 비명이 울리는 순간, 여명은 두 번째 호흡과 함께 양손을 동시에 휘둘렀다.
산의 눈물을 든 오른손이 화산쇄설을, 빈 왼손이 주와이외즈의 불의 검을.
처음으로 변경백의 몸이 긴장으로 물들었다. 수축하는 근육, 가속하는 검. 그러나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여명의 손에서 시작된 두 불길은 계단을 통째로 뒤덮었으니까.
!!!!!
주와이외즈의 불길이 화산쇄설을 잡아먹으며 더 큰 폭발을 토해냈다. 불길을 쏟아낸 여명의 팔이 비명을 지를 정도로 무시무시한 폭발.
변경백의 가전 무술이라고 해도 이 모든 폭발을 피하는 건 불가능했다.
‘자, 이제 꺼내라.’
여명은 용사의 무술을 기다리며 다음 수를 준비했다. 주와이외즈와 화산쇄설의 조합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아직 불씨를 사용하지 않-
생각이 이어지던 순간, 여명의 시야로 작은 선 하나가 들어왔다.
황금을 실로 뽑아낸 것처럼 작디작은 선. 그 선은 이상할 정도로 선명하게 불길과 폭발을 가로질렀다.
‘아.’
저거다. 폭발과 불길이 전부 토막나는 가운데, 여명은 선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변경백의 검을, 양손으로 검을 잡아 휘두른 그의 팔을 눈에 담았다.
황금. 지독하게 번쩍이는 금빛 검기가 거기에 있었다.
어떠한 설명도 없었으나, 여명은 직감했다. 그의 몸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소리친 까닭이었다.
저게 용사의 무술이다. 전설의 구현이다. 그리고… 원래 내가 가져야 할 힘이다.
여명은 자신도 모르게 검을 휘둘렀다. 화산쇄설도 잊고, 주와이외즈도 잊었다. 오직 하나, 변경백이 보여준 선을 따라서 검을 그렸다.
그래, 이것이.
그렇게 그의 몸을 내달리던 마나가 불길 대신 황금빛을 토해내려는 순간.
바로 그 순간에, 변경백이 말했다.
나와 같은 길을 갈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