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394)
을 위한 세계는 없다-394화(394/817)
…루마니아의 친구들은 스스로 좋은 흡혈귀가 존재할 수 없다는 걸 증명했습니다.
(중략)
…당은 인민의 고혈을 빠는 모든 부르주아의 적이며, 그것이 비유가 아닌 직접적인 사실일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중략)
…인민을 대표하는 자로서 이 땅의 모든 흡혈귀에게 고합니다.
삼 일을 주겠다.
삼 일 내로 고향으로 돌아가 목숨을 부지하거나, 이 땅에서 죽어라.
『빈대 사냥 작전 15분 전, 스탈린의 라디오 연설 중 발췌.』
***
여명의 손이 흐릿해지며 붉은 아지랑이 사이로 무언가 번뜩였다. 검으로 변한 무장 혈청.
경고도 없이 쏟아진 검은 그대로 의사의 목을 쳤다. 잘린 머리가 잘린 머리가 허공으로 떠오르고, 목에서 피가 울컥 흘러나왔다.
일반인이라면 골백번 죽었을 일격이었다. 의사는 죽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명의 예상대로 반격해왔느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녀석의 잘린 머리는 바닥에 추락한 채로 입을 나불거렸다.
“내 정체도 묻지 않고 칼질부터 하는군. 과감한 거냐, 아니면 이미 알고 있는 거냐?”
여명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잠시 잘린 머리통을 바라보다가, 화재경보기에 화염 마법을 일으키며 대답했다.
“종말 교단. 너희는 언제나 정체를 숨기는 걸 자랑으로 여기더군. 벌레의 특징 같은 거냐?”
“….”
그가 똑같은 어투로 비꼬자, 의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여명은 주가시빌리의 아지랑이를 넓게 펼쳐 영안실 내부를 탐색하며 말했다.
“너는 교단 내부에서 어느 정도 되는 놈이냐. 사제? 아야톨라? 부디 아야톨라면 좋겠군. 시카고에 이어서 한 놈 더 죽으면 재밌을 거 같거든.”
삐이이- 삐이- 화재경보기 소리가 병원 전체로 퍼지는 가운데, 머리만 남은 녀석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평범한 빨갱이가 아니었군.”
“그건 내 질문의 답이 아니다.”
그렇게 말한 여명은 곧바로 머리를 차버렸다. 퍽! 영안실 벽과 충돌한 머리에서 피가 튀었다. 그러나 딱히 고통을 느끼는 것 같지는 않았다.
‘본체가 아니라 인형인가.’
더는 상대할 가치를 못 느낀 여명은 타락석의 마나가 느껴지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다음 순간, 머리통의 목소리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여기서 시간을 낭비하는 동안 모스크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나? 너는 잘못된 선택을 하는 거다.”
“…모스크바?”
“그래. 비록 연방은 해체됐을지언정, 스탈린의 유산이 남아있는 땅… 그 땅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나?”
녀석이 의미심장하게 지껄였지만, 여명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노골적인 무시.
그것을 본 녀석은 더 크게 소리쳤다.
“모스크바가 잿더미가 될 거다! 크렘린도, 소비에트 궁전도 모두 불타 사라질 테지! 붉은 별! 너도 빨갱이라면 알고 있겠지? 그것들이 얼마나 귀중한 유산인지!”
“….”
“나는 지금 너한테 기회를 주는 거다. 모스크바를 구할 기회! 네가 공산주의자라면 레닌의 영묘가 불타는 걸 보고 싶지는 않겠지? 지금 당장 이곳을 떠나 모스크바로 가라!”
여명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머리통을 바라봤다. 내가 그딴 말을 믿겠냐는 듯 담담한 눈빛.
머리통은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내가 믿는 모든 신께 걸고 맹세하마. 모두 사실이다.”
“…어이가 없군. 공산주의자 앞에서 신을 운운하는 거냐?”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인 붉은 별은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무엇보다, 공산주의는 물건이나 공간이 아닌 인민을 위한 것이다. 모스크바가 불타? 그러라지.”
“뭐, 뭣?”
당황하는 머리를 향해 여명이 손을 뻗었다. 염동력에 붙잡힌 머리가 허공으로 두둥실 떠오르고, 반쯤 손을 쥔 여명이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타락석은 내가 좋은 곳에 쓰마.”
콱-! 그가 주먹을 쥐는 것을 마지막으로, 머리통이 한 줌 핏물로 돌아갔다.
***
바로 다음 순간, 시드니 어딘가의 낡은 정육점.
눈을 감고 있던 여우 수인이 눈을 부릅떴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캬악- 퉤, 피가 섞인 침을 뱉었다.
“조, 좆- 같은 빨갱, 이- 새끼.”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던 인간들이 재빨리 그녀에게 다가왔다.
“아야톨라시여, 무슨 일로 깨어 나셨-”
퍽! 손을 휘둘러 입을 놀리던 교단원의 머리를 뜯어낸 여우 수인은 그대로 피를 받아 마셨다.
아직 열기가 식지 않은 피가 그녀의 주둥이를 적시길 잠시.
그녀는 비쩍 말라버린 머리를 집어 던지고 겁에 질린 다른 교단원들을 향해 말했다.
“대업을- 시, 시작해라. 일이- 꼬였다.”
감히 그녀의 말에 딴지를 거는 멍청한 교단원은 없었다. 모두가 일제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명대로 하겠나이다. 아야톨라시여, 그러면 모스크바에는 뭐라고….”
“모두- 전-부! 태, 태워버리라-고 해! 그리고- 시, 베리아- 에 있는, 성검도- 자, 잘 잡아둬-”
명령은 거기까지였다. 여우 수인은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더니, 먼 곳을 바라보며 욕설을 내뱉은 까닭이었다.
“이, 이 씨발- 도둑- 빨, 갱이- 새끼! 내, 내 타락- 석-!!”
그녀는 곧바로 정육점 천장을 뚫고 뛰어올랐다.
박살 난 콘크리트 잔해와 분진이 교단원들의 머리 위로 내려앉는 가운데, 증오로 가득 찬 아야톨라가 시드니에 풀려났다.
***
영안실 내부에는 피처럼 붉은 결계가 펼쳐져 있었다.
플레이어나, 꿈을 흘리는 자가 펼친 것과 비교하면 종이 쪼가리나 다름없었지만, 타락석의 마나가 외부로 흘러 나가는 걸 막기엔 충분한 결계.
타락석의 마나에 익숙한 여명조차 영안실에 들어오고 나서야 느낄 수 있었으니, 더 말해 무엇할까.
아무튼, 여명은 결계를 향해 손을 뻗었다.
파직! 결계가 거칠게 마나를 토해내며 그의 피부를 태워버렸지만, 조금 전에 몸에 두른 주가시빌리의 재생력을 뚫지는 못했다.
여명은 재생을 반복하는 손을 결계 속에 집어넣은 뒤, 속을 억지로 벌렸다. 캬아악-! 짐승의 비명 같은 소리가 울리며 반항했으나, 그뿐이었다.
조금 더 힘을 주자 결계는 그대로 반으로 쪼개졌다. 파스스- 찢어진 결계가 흩어지며 마나 가루를 토해냈다.
“이건….”
가루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영안실의 관을 가득 채울 정도로 쌓인 검은 타락석들이었다.
하나하나가 주먹만 한 게,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을지 예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전부 박살 내야 하나? 타락석 하나를 주워 든 여명은 무의식적으로 마나를 불어넣어 봤다. 직후, 타락석 내부의 뒤틀린 마나가 반항하며 그의 손을 밀어냈다.
‘…인벤토리에 넣는 건 무리인가.’
그렇다면 전부 부숴버릴 뿐. 강도가 어마어마하긴 했지만, 시간을 들인다면 못 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가 무장 혈청을 망치 모양으로 변형시킨 그때, 문뜩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일반적인 마나가 아니라, 뒤틀린 마나라면?
생각은 짧았고, 행동은 빨랐다. 여명은 곧바로 위장에 자리한 타락한 용의 심장을 쥐어짜, 타락석에 불어넣어 봤다.
그의 생각대로였다. 조금 저항이 있긴 했지만, 일반적인 마나와 비교하면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손 쉽게 타락석의 점유권을 빼앗을 수 있었다.
아무튼, 점유권을 빼앗은 첫 타락석을 인벤토리에 넣는 것을 시작으로 여명은 차례차례 타락석들의 점유권을 빼앗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익숙해지니 금세 속도가 붙었다. 직접 때려 부수는 것보다 몇 배는 빠를 정도.
그리고 그렇게 얼마나 타락석을 챙겼을까?
관 속에 쌓여있던 타락석의 절반 정도가 사라졌을 때쯤, 영안실의 천장이 울렸다.
쿠구궁…!
빨리도 왔네.
여명이 피식 웃으며 타락석을 하나 더 챙긴 바로 그 순간, 영안실의 벽이 부서지며 기다리던 녀석이 안으로 들어섰다.
“이, 좆- 같, 은- 빠, 빨갱이- 새끼!”
콘크리트 먼지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피와 골수 냄새를 풍기는 여우 수인이었다.
꿈을 흘리는 자와 비슷한 옷을 걸친 녀석은 핏발 선 눈으로 영안실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반도 남지 않은 타락석을 발견한 순간, 온몸을 부르르 떨며 이를 드러냈다.
“내, 내 타락-석! 나, 나머지 반은- 어, 어디 있지?”
“아까 말하지 않았나? 좋은 곳에 쓰겠다고.”
여명이 이죽거리자, 녀석이 캬아아악-! 고함을 내지르며 손을 뻗었다.
반쯤 쥐어 쥔 손, 일렁거리는 마나.
꿈을 흘리는 자와 똑같은 기술인가? 여명이 반사적으로 자리를 피한 순간, 녀석이 주먹을 꽉 쥐었다.
곧이어, 녀석이 손바닥을 겨눈 범위에 있던 모든 것이 울컥- 피를 토해냈다.
그건 단순히 비유가 아니었다. 스테인리스 관도, 콘크리트 벽도, 유리로 만들어진 전구도 전부 역겨운 살덩이로 변해버렸으니까.
무생물을 살덩이로 바꾸는 능력이라니.
범위에 있던 모든 걸 뒤틀던 꿈을 흘리는 자와 비교하면 여러모로 더러운 능력이었다.
여명은 타락석이 담긴 관이 괴물의 입처럼 뒤틀리며 남은 타락석을 집어삼키는 것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런 반응과 상관없이, 여우 수인은 비명 섞인 목소리를 내질렀다.
“피했다-! 처, 천벌-! 너, 알고 있다- 아야톨라! 처음, 본- 게 아니다-! 꿈을 흘리는 자, 만-났나-?”
“…더럽게 시끄러운 걸 보니 넌 소음을 흘리는 자냐?”
“아, 아니-! 나는-”
녀석은 다시 한번 손을 움직였다. 또 다시 천벌을 사용하려고? 아니, 아니었다. 녀석은 살덩이로 변한 바닥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피를 흘리는 자다-!”
다음 순간, 영안실의 모든 살덩이가 꿈틀거리며 여명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피와 살로 이루어진 파도.
콰아아아-!
여명이 몸을 날리기 무섭게, 살의 파도가 자리를 덮쳤다. 파도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영안실 전체를 박살 내며 그의 뒤를 쫓았다.
“어, 어딜- 도망- 가!!!”
피를 흘리는 자가 발작적으로 소리치는 사이, 여명은 계단을 타고 1층으로 올라섰다.
아까 전에 울린 화재 경보 덕분인지, 1층에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병원 밖으로 구경꾼들이 서 있고, 소방차가 몰려오는 게 보이긴 했지만…
“도, 도망- 못- 간, 다!”
계단과 바닥을 뚫고 솟구친 거대한 살덩이를 보자마자, 모두 혼비백산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쯤이면 구더기 공주가 도망칠 시간도 벌었고, 나름 인명피해도 줄였겠지.
거기까지 생각한 여명은 고개를 돌려 살덩이 위에 앉은 여우 수인을 똑바로 바라봤다.
“도망이라니. 내가 왜 도망가겠나? 아직 챙길 타락석이 많은데.”
비꼬는 실력이 늘어난 걸까. 그의 말을 들은 아야톨라의 눈에 핏발이 섰다.
“너- 너! 이, 레, 레닌의- 좆, 같은- 새, 끼!”
녀석은 말이 되지 못한 언어를 쏟아내더니, 또다시 손을 뻗었다. 이번에는 조금 전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였다.
콱! 아야톨라가 주먹을 쥐자 주차장 바닥에 토사물이 쏟아진 것처럼 고깃덩이가 만들어졌다.
주차된 자동차들은 암에 걸린 것처럼 울컥- 뒤틀린 살덩이들을 토해냈으며, 여명은…
아무렇지 않았다.
정확히는, 뒤틀리던 살덩이가 순식간에 재생되어 버렸다. 주가시빌리의 힘이 녀석의 천벌을 이겨냈다는 증거였다.
“어- 어떻, 게? 천벌을- 이, 이겨냈지-?”
“너희 신보다 인민의 무술이 더 강한가 보지.”
“미친- 소리-!”
본인도 안 믿을 소리를 천연덕스럽게 내뱉은 여명을 향해 아야톨라가 분노 섞인 반박을 내지르는 바로 그 순간.
여명의 무장 혈청에서 불길이 크게 피어올랐다.
주변의 모든 살덩이를 태워버릴 만큼 무시무시한 열기를 본 아야톨라가 뒤늦게 살덩이를 조작했지만, 여명의 검은 이미 그를 향해 반월을 그리고 있었다.
아야톨라와 붉은 별.
누가 이기던, 시드니를 경악시킬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