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4)
을 위한 세계는 없다-4화(4/817)
〈 4화 〉 재수 없는 하루 (4)
* * *
***
누구도 한국 환경 미화 연합이란 본래 이름으로 부르지 않기에 그저 청소부 길드라고 불리는 곳.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적막한 사무실에서 조촐한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파티의 참가자는 단 한 명. 마찬가지로 이름보다는 관리소장이라고 불리는 중년인은 특별한 날에 마시기 위해 준비해 둔 위스키를 땄다.
뽁!
소장은 잠시 위스키의 향기를 음미하다가, 그대로 병나발을 불었다. 30도가 넘는 술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감각은 환상적이었다.
부하들이 눈치를 줘도 따지 않고 고이 모셔 놨던 보람이 있는 맛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위스키로 속을 씻은 소장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묻었다.
모든 게 완벽한 밤이었다.
오랜 고민거리를 치워버렸고, 그 대가로 책상 위에 탑을 쌓을 만큼 돈다발을 챙겼다. 그것도 이승백 대통령이 새겨진 한국 원화가 아니라, 벤저민 프랭클린이 새겨진 미국 100달러를 묶은 돈다발.
소장은 돈다발 하나를 들고 냄새를 맡았다. 텁텁한 현금의 향기,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감미로운 안주.
“좋군, 아주 좋아.”
이 모든 게 최근 주변에서 이름을 날리는 살인마 덕분이었다.
3일 전, 살인마는 앞뒤 내용도 없이 딱 10명만 죽일 놈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미친 살인마다운 요구였다. 문제는, 소장에게 죽일 놈을 내놓을 능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청소부 길드 소장이지 인신매매범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못하겠다고 하기엔 녀석이 시체로 만든 사람이 너무 많았다.
결국, 그는 윗선에 도움을 요청했다. 미친 살인마 녀석을 막아 달란 뜻으로 꺼낸 요청이었지만, 윗선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직원 10명? 주면 되지. 마침, 죽여도 되는 놈들도 있군.
소장은 ‘죽여도 되는 놈들’ 이 누군지 깨달았다.
감히 윗선에게 대든 간 큰 작업반장, 그리고 뭣도 모르고 반장에게 동조하던 멍청한 청소부 놈들. 윗선은 이참에 작업반장을 치워버리자고 제의한 것이다. 마침 숫자도 딱 10명이었다.
소장은 겁을 먹거나 죄책감을 느끼는 대신, 윗선의 명령을 충실히 따랐다. 감사하게도, 윗선은 일을 처리하며 떨어질 뒷돈에 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은 금이라고 했던가? 그는 윗선의 침묵을 이렇게 해석했다.
‘네가 알아서 챙겨 먹어라’.
소장은 기꺼이 그렇게 했다.
청소부들에게 지급될 월급과 살인마가 챙겨 준 소소한 목숨값… 그리고 작업반장이 모아놓은 재산까지. 하룻밤 만에 벌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돈이 그의 수중에 떨어졌다.
그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역시 작업반장의 재산이었다. 알부자란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하긴, 그런 돈이 있었으니 감히 윗선에 덤빌 용기가 생긴 거겠지.’
하지만…
‘주제를 알았어야지. 주제를 모르고 날뛰니 남 좋은 일만 하다가 죽은 것 아닌가.’
소장은 애도와 감사의 뜻을 담아 위스키를 한 번 더 들이켰다. 알싸한 취기가 기분 좋게 몸을 덥혔다.
그는 취기에 저항하지 않고 이 순간을 음미했다.
한 10분쯤 지났을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커다란 가방 하나와 작은 가방 뭉치를 책상 아래에서 꺼냈다. 어떠한 장식도, 메이커도 없는 시장 바닥 싸구려 가방이었다.
하지만 가방의 가치는 그 속에 담긴 것으로 평가되는 법.
그는 곧바로 돈다발을 가방에 나눠 담았다. 멀쩡한 금고 대신 가방에 돈을 담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렇게 큰돈은 혼자 먹으면 탈이 난다.’
피 같은 돈이었지만, 진짜 피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돈이 생겼을 때 미리미리 뿌려 놔야, 나중에 피 볼 일이 없는 법이다.
윗선과 뒤를 봐주는 공무원, 그리고 경찰을 위한 돈이 가방에 착착 담겼다. 술기운 탓인가, 겨우 돈다발을 옮겨 담았는데도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소장은 돈다발의 절반 정도를 옮겨 담은 뒤, 허리를 펴고 기분 좋게 땀을 닦았다. 그는 정직한 노동으로 결실을 얻은 농부처럼, 뿌듯한 얼굴로 돈 가방들을 바라봤다. 저것들이 전부 자신의 구명줄이라고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제 가장 큰 가방에 자신의 몫을 담을 생각으로 손을 뻗은 그 순간.
쨍그랑 등 뒤에서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장이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무언가 창문을 넘어오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이런 미친, 여긴 4층인데?’
살인마 녀석이 기어코 나까지 죽이려고 온 건가?
소장은 다급한 마음에 책상 서랍에서 권총을 꺼냈다. 그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서, 창문을 넘어온 녀석을 겨눴다.
헌데… 녀석의 인상착의가 너무 익숙했다. 피와 오물에 젖어있긴 했지만, 녀석이 입고 있는 건 청소부 길드의 작업복과 방독면이었다.
“소장님.”
“너, 너 뭐야?”
“왜 그랬어요.”
창문을 깨고 들어온 청소부는 대뜸 영문 모를 소리를 지껄였다. 소장은 도망칠까 고민했지만, 책상에 가득 쌓인 돈 가방이 눈에 걸렸다.
돈은 없던 용기도 만들어줬다. 그는 총을 양손으로 쥐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청소부를 향해 소리쳤다.
“너 누구냐고, 이 새끼야!”
“왜 그놈한테우리를팔았어요.”
팔았다고? 소장은 그 말속에 숨겨진 뜻을 깨닫고 얼굴을 눈썹을 좁혔다.
“…작업반장?”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소장은 나름대로 머리를 굴렸다.
설마, 오늘 살인마에게 넘긴 청소부 중 누군가 살아남은 건가?
아니, 분명 살아남았으니 저런 소리를 하는 게 분명했다.
‘등신 같은 살인마 새끼. 청소부 하나 제대로 못 죽여서 이 사달을 일으켜?’
그는 오늘 팔려 간 청소부 중 이렇게 과감한 짓거리를 할 수 있는 게 누구인지 가늠해봤다.
작업반장은 너무 늙었고, 덕배 나잇대의 녀석들은 이런 짓을 벌일 깡이 없었다.
남는 건 젊은 놈들인데… 제임스는 외국인이라 발음이 특이했고, 막내인 쇠똥구리는 워낙 조용한 놈이라 사고를 칠 깜냥이 아니었다.
자연스레 남는 건 춘식이 녀석뿐.
나름대로 결론을 낸 소장은 바싹 마른 입술을 핥은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춘식아, 산 사람은 살 궁리를 해야지. 하, 여기가 어디라고 돌아와?”
총을 쥐고 있는 손바닥에 땀이 찼다. 젠장, 소장은 녀석이 언제 달려들지 몰라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녀석은 바로 달려들지 않았다. 무언가에 잠긴 목소리로, 계속 말을 걸었다.
“질문에 대답이나 해. 왜 우리를 판 거야.”
“왜 팔긴 새끼야, 느그 작업반장이 윗선에 개긴 것도 기억 안 나냐? 시체 치우는 구더기면 구더기답게 시체나 옮길 것이지. 정말로 이렇게 될 줄 몰랐어?”
“겨우 그딴 이유로…?”
“그딴 이유? 니들이 시체 안 털고 그대로 시청에 넘긴 탓에 우리가 손해 본 게 얼만 줄 알아?”
탕! 소장은 겨누고 있던 권총을 그대로 쏴버렸다. 청소부는 허벅지에 총을 맞고 바닥에 고꾸라졌다.
“내, 내가 이 새끼야! 군대에 있을 땐 특등사수였어. 알아?”
머리를 노리고 쏜 총알이 허벅지를 맞췄다는 사실은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하아 젠장. 여유를 되찾은 소장은 떨리는 숨을 진정시키고, 위스키병을 들었다.
“멍청한 새끼. 돈이 우스워? 지금도 돈 때문에 죽는 사람이 아프리카랑 차원문 너머에선 수두룩 빽빽해 이 새끼야.”
소장의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궤변이었다. 소장 본인부터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데 말해 무엇하랴.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중요한 건, 녀석은 총을 맞아서 바닥을 기고 있고, 소장은 멀쩡히 서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적어도, 한 가지는 동의할 수 있겠네.”
바닥에 쓰러진 청소부는 그 궤변에 반박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깊은 한숨 한 번, 그리고 방독면을 뚫고 나올 정도로 살벌한 눈빛 한 번.
“뭐, 넌 이제 뒤졌다는 거?”
총과 술은 소장에게 용기를 줬다. 소장은 위스키를 한 모금 들이킨 뒤, 자신만만하게 녀석에게 다가갔다.
“어떤 사람들은 돈 때문에 죽는다는 거.”
“이 새끼가… 하, 상황 파악이 안 되냐? 저승 문턱 밟고 오더니, 눈에 뵈는 게 없어?”
소장은 절대로 빗나가지 않으리라 확신이 서는 거리까지 다가가 녀석의 머리를 조준했다. 녀석을 죽이고 시체를 어떻게 치워야 할지, 총소리를 듣고 출동한 경찰에게 얼마나 뇌물을 줘야 하는지 같은 사소한 것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았다.
“뒤져.”
그가 총을 발사하기 위해 손가락에 힘을 준 그 순간.
녀석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으극?!”
소장은 예상치 못한 기습에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탕! 기껏 발사한 총알이 허공을 갈랐고, 청소부는 그대로 소장의 턱에 머리를 들이박았다.
까드득! 턱뼈와 이빨이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소장의 머리가 핑 돌았다.
‘아, 안 돼. 이대로 정신을 잃으면…’
소장의 생각은 그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빠악!
뭔가가 그의 머리통을 한 번 더 후려쳤고, 끔찍한 고통이 그의 머리를 덮쳤다.
그의 정신은 깊은 어둠 속으로 추락했다.
***
“끄으, 끙…”
소장은 비에 젖은 개새끼처럼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깨어났다. 맞은 부위가 어지간히도 고통스러웠는지, 한참 동안 눈을 뜨지 못하고 몸을 뒤척거렸다.
“좀 도와… 도와줘.”
그의 안타까운 목소리에 반응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소장은 손을 들어 눈을 비비려 했지만, 팔다리가 모두 묶여있는 탓에 고개를 까딱이는 것조차 힘들었다.
결국, 소장이 눈을 뜬 건 정신을 차리고 몇 분이 지난 뒤였다.
“일어나셨습니까?”
흐릿한 시야로 가장 먼저 보인 건, 청소부들이 쓰는 검은 방독면이었다.
“너, 너… 누구야.”
“왜, 춘식이가 아니라 당황했습니까?”
“더, 덕배냐? 덕배야, 이건 다 오해다. 내가 다 설명할 수 있어.”
“덕배 아저씨… 잘도 그 이름을 입에 올리는군요.”
녀석은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방독면을 벗었다.
가장 먼저 드러난 건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청년의 턱선이었다. 그 위로 피와 땀에 젖은 검은 머리카락이 흘러내렸고, 마지막으로 머리카락 사이에 숨겨져 있던 눈동자가 드러났다.
“금안…?”
녹아내린 황금처럼 섬뜩한 금색으로 번들거리는 눈동자. 저런 눈동자를 가진 그가 아는 한 청소부는 단 한 명뿐.
“쇠똥구리, 니가… 어떻게?”
“왜, 난 살아있으면 안 되는 사람입니까?”
“….”
소장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해야 살 수 있을까. 감정에 호소할까? 그것도 아니면 협박?
“이, 이 미친놈아!”
그는 후자를 선택했다.
“니가 무슨 짓을 벌인 줄 알아? 니가 지금 뭘 망치고 있는 줄 아느냔 말이다!”
소장의 기억 속 쇠똥구리는 시키기만 하면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 마당쇠 기질을 타고난 녀석이었다. 지금이야 머리가 회까닥했을지 몰라도, 소리 몇 번만 질러주면…
“자, 잠깐. 너 이 새끼, 지금 뭐 하는 거야?”
소장의 예상과 달리, 쇠똥구리는 움츠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누구보다 무시무시한 짓을 벌였다. 등 뒤에서 커다란 휘발유 통을 꺼내 들고, 성큼성큼 소장의 앞으로 다가왔다.
“잠깐! 잠깐만!”
쇠똥구리는 뚜껑을 열고 그대로 소장의 머리 위로 휘발유를 쏟아부었다. 소름 끼치는 휘발유의 냄새가 그를 뒤덮었다.
“….”
소장은 그제야 주변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옅은 어둠 속, 시체가 산처럼 쌓여있는 곳.
청소부들이 시체를 빼돌려 보관하는, 거대한 시체 창고.
소장은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허벅지에 총을 맞은 놈이 기절한 성인 남성을 끌고 사무실에서 여기까지 왔다고? 그게 말이 되는 일인가?
그의 머리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쇠똥구리가 입을 열었다.
“소장님, 지금부터 제가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기회? 무슨 기회?”
“타 죽지 않을 기회.”
쇠똥구리는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어려울 거 없습니다. 저는 질문하고, 소장님은 대답만 하시면 됩니다.”
“….”
탁, 탁. 쇠똥구리는 말없이 라이터를 반복해서 켰다 껐다.
겁에 질린 소장이 무언의 동의를 할 때쯤, 쇠똥구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자, 첫 번째 질문. 이번 일, 윗대가리들이 짓입니까?”
“…그, 그래, 살인마가 죽일 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자, 좋은 기회라며 너희 팀… 전부를 그 살인마에게 넘기라고, 그렇게 명령했다. 믿어다오! 나, 난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야.”
“….”
소장은 꿀꺽 침을 삼켰다. 그를 내려다보는 쇠똥구리의 금빛 눈동자가 너무나 살벌한 탓이었다.
“…그럼 두 번째 질문. 이 시체 창고, 정체가 뭡니까?”
소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건 대답해선 안 되는 질문이었다. 대답하면 이 순간 목숨을 건질 수 있을지언정, 반드시 죽는다. 윗선은 진실을 발설한 자신을 결코 살려두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대답하지 않으면 지금 죽겠지.
소장의 눈가 주름 사이로 눈물인지 휘발유인지 모를 액체가 흘러내렸다.
“이 창고는… 청소부 길드의 존재 이유다.”
“존재 이유?”
“청소부 길드에 관한 도시 전설, 너도 들어 봤겠지.”
“인육 공장을 운영한다거나, 네크로맨서에게 시체를 납품한다는 헛소리 말입니까?”
“그래, 그 헛소문. 절반은 진실이다.”
절반의 진실? 쇠똥구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인육 공장은 말할 것도 없이 헛소리였다. 도축이라는 건 의외로 섬세한 작업이다. 대규모 도축 시설은 물론이고 냉장 시설까지 필요하다.
시체를 창고에 쌓아 놓는 판에 무슨 인육을 납품한단 말인가. 썩은 고기나 납품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렇다면 정답은 하나, 네크로맨서에게 시체를 넘긴다는 것인데… 그것도 믿기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지금 그걸 믿으란 겁니까?”
쇠똥구리가 목소리를 깔자, 소장이 그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믿기 힘들겠지. 하지만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이다. 맹세할 수 있어.”
“청소부 길드는 정부 산하 아닙니까? 미국이 지정한 테러리스트들하고 손을 잡았다, 그 소립니까?”
쇠똥구리가 라이터를 들이밀자, 소장은 목을 움츠리며 몸을 뒤로 뺐다.
“귀, 귀큰 빨갱이들도 버젓이 미국 대통령을 만나는 시대다. 한국 정부가 테러조직과 손잡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이냐?”
그는 혹시라도 라이터 불이 옮겨붙을까, 최대한 몸을 빼며 말을 덧붙였다.
“정부 어디까지 선이 닿아있는지 나도 모른다. 난 그냥 납품만 하는 말단일 뿐이니까. 하지만 이건 확실히 말할 수 있어. 청소부 길드는 이 짓거리를 적어도 20년 넘게 해왔다.”
“거짓말. 정부가 네크로맨서 따위한테 얻을 게 뭐가 있다고?”
찰칵, 한 번 더 라이터 불길이 가까워졌다. 소장은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소리쳤다.
“가, 각성의 물약! 정부에서 각성의 물약을 받는다!”
“각성의 물약?”
“그래, 제기랄, 마시면 지구인도 오 분의 일의 확률로 마나 사용자로 바꿔준다는 비약! 네크로맨서들이 그걸 정부에게 납품한다.”
“….”
“흐, 흐흐… 이 코딱지만 한 나라에 마법사가 남미 전체보다 많은 이유가 뭐겠어? 호그와트라도 지었을까?”
그럴싸한 이야기였다. 한국이 특출나게 마법사를 많이 배출하는 나라인 건 사실이었으니까.
정부는 개성에 열린 차원문 때문이라고 했지만… 글쎄, 네크로맨서와 계약했다는 쪽이 조금 더 말이 되긴 했다.
“…증거는? 증거 있습니까?”
“젠장, 이 창고가 증거다! 이곳이 단순한 창고로 보이냐? 시체가 잘 썩지 않는 방부 마법에, 냄새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봉인까지 걸려있는 곳이란 말이다!”
소장이 그렇게 외치자, 쇠똥구리는 새삼스레 창고를 둘러봤다.
확실히, 이렇게 많은 시체가 썩고 있다면 그 악취가 온 사방을 뒤덮어야 정상이었다. 방독면 하나로 막을 수 있는 수준의 악취? 마법이 아니고선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네크로맨서가 아니라면 이런 시설을 만들 이유가 있겠냐? 제발, 제발 믿어다오. 내, 내가 여기까지 와서 왜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
소장은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살고 싶었다. 아직 쓰지 못한 재산이, 누리지 못한 행복이 너무 많은데, 이렇게 죽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쇠똥구리는 완전히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소장을 노려봤다. 그의 말이 거짓인지 진실인지 가늠해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당신 말이 사실이라면, 네크로맨서는 언제 옵니까? 시체를 회수하는 기간이 있을 텐데요.”
“3일 뒤. 3일 뒤가 정기적으로 시체를 회수하러 오는 날이야. 저, 접선 장소는 폐쇄된 인천항 13번 부두고!”
소장은 극비에 속하는 정보도 거침없이 대답했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으면 모르되, 이미 너무 많은 걸 발설한 뒤였다.
“3일….”
쇠똥구리는 그대로 입을 다물어버렸다. 소장은 그의 침묵이 협박만큼이나 두려웠다.
“더, 더 질문할 건 없냐? 내가 아는 건 전부 말할 테니까, 살려만 다오.”
“더 질문할 건 없습니다. 당신이 제대로 알 거 같지도 않고.”
“그, 그럼 살려주는 거지?”
쇠똥구리는 대답하지 않고 그를 내려다봤다. 혐오와 증오가 뒤얽힌 금색 눈동자가 소장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침묵은 소장의 뺨에 흐르던 휘발유가 식은땀과 뒤섞여 흐를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이어졌다. 쇠똥구리는 뭔가를 다짐한 것처럼 주먹을 꽉 쥐더니, 라이터를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약속대로. 살려는 드리겠습니다.”
소장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동시에, 마음속으로 쇠똥구리를 비웃었다. 멍청한 놈, 이걸 살려줘?
“고맙다. 정말 고마워…”
하지만 겉으로는 힘없고 처량한 모습을 연기했다. 괜한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지금만 무사히 넘긴다면, 녀석에게 복수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그보다 소장직을 잃고 한국 정부에게서 도망치는 게 먼저겠지만.
아무튼, 쇠똥구리는 소장을 버려두고 창고의 입구 쪽으로 사라졌다.
소장이 긴장을 푼 건 쇠똥구리의 발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된 후였다. 그는 벌렁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팔다리는 풀어주고 갈 것이지.”
그는 낑낑거리며 묶인 팔다리를 풀었다. 팔 하나를 빼낼 때쯤, 무언가 이상한 냄새가 그의 코를 간질거렸다.
뭔가… 고기가 타는 것 같은…
“이런… 염병…”
냄새는 쇠똥구리가 떠난 방향에서 날아오고 있었다. 소장이 고개를 돌리자마자, 그의 눈에 검은 연기와 피어오르는 불길이 보였다.
“이… 이….”
창고에는 불을 피할 공간도, 도망칠 탈출구도 없었다. 마법적 완성도를 위해 환풍구는커녕 창문조차 만들지 않았으니까.
불길이 크게 타오르기 전에 입구를 뚫고 나가면 빠져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휘발유를 뒤집어쓴 소장에겐 아무 의미도 없는 이야기였다.
“개 같은 새끼야!!!”
소장은 가만히 앉아 타 죽기만을 기다려야 한다는 걸 깨닫고 절망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