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407)
을 위한 세계는 없다-407화(407/817)
***
‘흠집이 난 진주에 너의 마나를 담아줘.’
짧게 요약한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오르세 라날의 기세가 달라졌다.
그녀는 허리를 쭉 펴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용다운 위엄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나, 오르세 라날. 그대들과의 우정을 생각해 내 기꺼이 그 부탁을 들어 주겠노라.]이렇게나 쉽게? 코르부스를 제외한 일행들 모두가 놀라워하길 잠시.
녀석은 밑도 끝도 없이 조건을 내걸기 시작했다.
[우선, 대가로 하루 두 끼 이상 양질의 요리를 요구하는 바이다. 메뉴는 가리지 않으나 연속으로 같은 메뉴가 나오지 말아야 하며, 후식은 자유롭게 가져오는 대신 매일 콜라 40리터 정량을 지키고….]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세티가 한숨을 쉬고 코르부스가 고개를 내젓는 가운데, 녀석은 이런 말도 서슴지 않았다.
[싫어? 꼬우면 죽여.]캬캬캬- 상스러운 웃음을 내뱉는 꼬락서니가 얼마나 얄미운지, 성녀가 ‘저번처럼 고문과 치료를 동시에 하면 되지 않을까’ 같은 살벌한 소리를 꺼낼 정도였다.
진주를 수리한 뒤에 어쩌려고 저러는 걸까…
여명은 성녀를 말리며 고민했다.
저 당당한 태도를 보아하니, 아마 진주가 수리될 때까지만 얻어먹어도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어 보였다.
자살 지망 용에게 뭔가를 요구하는 일이 쉽지 않을 거라는 건 예상했지만, 이렇게까지 뻔뻔하게 나올 줄 몰랐던 여명은 마음속으로 퀴니 코완을 찾았다.
‘하필 용을 데려다 놔도 저런 녀석을.’
뭐, 아무튼.
여명이 녀석의 엉덩이를 차버리기 위해 일어서는 사이, 여태껏 조용히 있던 쇠미리가 손을 번쩍 들어 용의 시선을 끌었다.
[뭐냐, 귀쟁이.]그러자 그녀는 여명과 처음 인천에서 만났을 때처럼 냉혹한 눈빛으로 말했다.
“데메론드 입 맑스의 딸로서 요구한다.”
[….]“시키는 대로 해.”
당연히 ‘어쩌라고’ 라는 대답이 튀어나올 줄 알았던 여명의 예상과 달리, 데메론드의 이름을 들은 용은 주둥이를 오물거리며 뭔가를 고민했다.
그리고 잠시 후, 여명과 쇠미리의 눈치를 보던 녀석이 슬그머니 제자리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얼씨구? 이게 통해?
어처구니가 없어진 여명이 팔짱을 낀 바로 다음 순간, 라날이 그를 보며 말했다.
[자, 자, 농담은 여기까지 하겠다. 인간 천여명, 친애하는 콜라 운반자여. 나는 은혜를 아는 용이니, 기꺼이 그대의 부탁을 들어주겠노라.]“….”
조금 전과는 다른 의미에서 뻔뻔한 태도였다. 그 주접을 전부 농담으로 퉁치고 넘어가겠다고?
그릇을 비롯한 모두가 황당함에 말을 잃건 말건, 오르세 라날은 조용히 과자 상자를 챙겨 구석으로 도망쳤다.
“….”
그렇게 다시 과자를 우걱거리는 소리가 둥지를 채우고, 쇠미리가 손가락으로 승리의 V를 날리길 잠시.
여명은 기어코 용의 엉덩이를 차버렸다.
***
“흠흠.”
사소한 용의 주접이 끝난 직후, 여명은 엉덩이를 문지르는 라날의 꼬리 위에 앉아 헛기침했다.
“크흠!”
여명이 한 번 더 헛기침하고 나서야, 라날은 꼬리를 들어 올렸다. 주둥이를 삐쭉거리는 게, 어지간히도 마음에 안 드는 모양.
정신 나간 용의 기분이 어떻건 간에, 높은 자리에 앉은 여명을 향해 자연스레 일행들의 시선이 모였다.
“진주 이야기도 끝났으니까, 내가 말해도 될까? 다들 괜찮지?”
일행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순간, 바닥에 앉아있던 마하간의 유령이 하늘로 떠올랐다.
뭘 하려는 거지? 마하간을 볼 수 있는 일행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여명이 입을 열었다.
“음, 사실 정확히 내 이야기는 아니고 마하간이 내 입을 빌려서 이야기할 거야. 지금 옆에 계시는데… 라쉬크나 리메는 안 보이죠?”
“으, 응? 뭐가? 거기 뭐 있어?”
갑자기 지적 당한 구더기 공주가 눈을 깜빡였다. 그녀를 말고도 미리의 호위인 리메나 둥지를 수호하는 데스나이트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그걸 본 여명이 덧붙였다.
“마하간께서는 전전대 마탑주이자, 전 용사 파티의 마법사세요. 지금은 귀신 상태로 저한테 달라붙어 계시는데… 여기 있는 모두가 자기가 하는 말을 듣길 바라셔서요. 그러니까, 잠깐 동안 제가 그분의 입이 될 겁니다. 아시겠죠?”
그러자 마하간이 보이는 사람이건, 보이지 않는 사람이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잠시 빌리겠네.]곧이어 마하간이 여명의 곁으로 날아오더니, 반투명한 손을 그의 어깨에 올렸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여명의 입에서 늙은이 특유의 어투가 흘러나왔다.
“흠,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저 해저 터널이 퀴니 코완이 만든 시련이라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그의 말이 시작되기 무섭게, 일행들은 용의 주접을 잊고 그의 말에 집중했다.
조금 전부터 억지로 분위기를 풀려는 여명의 태도도 태도였지만, 곧이어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 결정적이었다.
“하지만 퀴니 코완이 이곳을 만들기 시작한 진짜 이유까지는 모를 것이다.”
그때, 그릇이 끼어들었다.
“다음 용사 파티를 위한 건 아닌가요?”
마하간은 여명의 목으로 고개를 저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됐지만, 시작은 그렇게 원대하지 않았다. 퀴니는 단순히… 미래에 나타날 주인공과 운명에 엿을 먹이고 싶어 했다.”
그때, 쨍그랑 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그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찻잔 떨어트린 구더기 공주가 놀란 얼굴로 눈동자를 굴렸다.
마하간은 황급히 찻잔을 치우는 구더기 공주를 보며 말을 이었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이곳의 제작을 도운 내가 직접 장담하마. 이건 전부 사실이다.”
“아무리 그래도 엿이라니… 대체 왜요?”
이번에는 성녀가 물었다. 마하간은 차갑게 응수했다.
“그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으니까. 우리가 해온 노력과 업적, 성공, 실패… 삶의 모든 것들이 얼굴도 모르는 미래의 개자식을 위한 배경에 불과하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어찌 참을 수 있을까.”
여명과 미리 이야기된 말이 아닌 걸까. 여명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하간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에 엿을 날리기로 했다. 시작은 단순한 일탈이었지. 하지만 운명이 우리를 압박할 때마다 그 일탈은 점점 더 선을 넘었다. 특히 변경백이 고자가 되고, 성녀가 우리를 도운 뒤로는 걷잡을 수 없어졌다.”
세티는 반사적으로 현재 성녀를 바라보았다. 성녀는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마하간은 그런 두 사람을 눈에 담았다.
“자… 이제와서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지 궁금하겠지?”
거기까지 말한 마하간은 잠시 뜸을 들였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을 때, 그의 목소리에는 귀신답지 않은 기묘한 열정이 깃들어 있었다.
“바로 어제 시드니에서, 나는 운명이 바뀐 걸 보았다. 단순히 길의 방향이 달라진 수준이 아니라, 길 자체가 휘어진 정도로 바뀌었더군.”
마하간은 자신에게 말하듯 한 번 더 되뇌었다.
“그래, 휘어진 길.”
그 단어를 들은 일행들의 반응은 둘로 갈렸다. 운명에 대해 아는 일행들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고, 모르는 사람들은 괜히 눈치를 봤다.
그러나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마하간의 다음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마하간은 기대에 부응했다.
“…아야톨라의 갑작스러운 등장이 부정할 수 없는 증거다. 원래 그들은 지금 이 시점에서 등장하면 안 되는 자들이다. 벌써 죽는 건 더더욱 말이 안 되고.”
마하간의 말 때문일까, 용은 모두의 시선이 여명에게 고정되어 있다는 걸 눈치챘다. 귀신인 마하간조차 여명을 보며 말했다.
“주인공은 나타나지 않았고, 운명은 뒤틀렸다. 앞으로 무엇이 너희를 덮칠지 모르겠으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게 뭐죠?”
세티가 되묻자, 마하간이 귀신 다운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용사를 제외한 너희는 너무 약해.”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갑자기 서늘해진 분위기를 느낀 그릇은 조용히 찻잔을 내려봤다. 여명이 신경 써서 끓인 차는 어느새 차갑게 식어 있었다. 마하간의 목소리가 찻잔 위로 쌓였다.
“물론, 나이에 비하면 강한 편이지. 아카데미 1학년이 기준이라면 훌륭한 정도고. 하지만… 용사와 함께 걸으려면, 훌륭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입을 빌려주던 여명이 확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뭔가 항의하듯 마하간을 바라봤으나 귀신은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는 아야톨라였지. 다음에 뭐가 올까? 아야톨라 둘? 10강? 그것도 아니면 현대 군? 마왕? 끝끝내 튀어나온 주인공? 어떤 운명이 너희에게 밀려올지 알 수 없지만, 무엇이 오건 너희는 용사의 짐이 될 거다.”
거기까지 말한 마하간은 일행들을 죽 둘러봤다.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고, 숨소리마저 조심하고 있었다.
딱 한 명, 코르부스만은 그를 똑바로 쳐다봤다. 까마귀의 검은 눈동자가 마하간을 비난하듯 번뜩였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
그 침묵이 길어지기 전에, 마하간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런 고로, 너희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개다. 용사와 헤어지던가, 나에게 단련 받던가.”
“그거라면 지금도….”
“아니, 지금과 다르다. 용사가 없는 상태에서. 너희만 단련할 것이다. 당연히, 실패한 자는 낙오될 것이고.”
“….”
성녀는 안대 너머로 보일 정도로 눈살을 찌푸렸다. 우리가 왜 그래야 하냐는 말이 그녀의 혓바닥 위에서 맴돌았으나, 입 밖으로 나오진 못했다.
마하간이 그녀를 콕 집어 꺼낸 말 때문이었다.
“우리 파티원 모두가 변경백만큼 강했더라면, 그가 고자가 되었겠느냐? 전대 성녀가 홀로 독수공방하며 늙어 죽었겠느냐?”
“….”
전쟁에서 패배했다는 이야기도 아니고, 왜 하필 고자 이야기를 꺼내는 건지. 여명이 한숨을 삼키는 사이, 성녀는 휙 고개를 돌려 버렸다.
또다시 침묵.
용의 숨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들리는 가운데, 마하간은 다른 이들을 하나하나 짚으며 말했다.
“홍세티, 용사와 같은 무술을 익히고 있어서 보조하는 것처럼 보일 뿐, 용사에게 있어 너는 보조가 아니라 디딤돌과 걸림돌 사이의 무언가에 불과하다.”
“쇠미리, 세계수 결정 덕분에 마나는 많으나, 그뿐이다. 전투를 유기적으로 연결해줘야 할 마법사로서의 실전 경험이 턱없이 부족해. 데메론드가 물려준 재능 중 절반도 사용하지 못하는 꼴이 안쓰럽기 그지없구나.”
“성녀, 가장 실력이 뛰어나지만, 너 역시 전대와 비교하면 부족하고 또 부족하다. 축복을 아끼는 법도 모르며, 판을 보는 눈은 아예 없다. 신들이 힘을 못 쓸 때, 가장 쓸모없는 게 바로 너다.”
“그릇… 너는 아직도 꿈의 시련을 극복 못 했다지? 평가할 가치도 없구나.”
일행 모두에게 칼날같이 잔인한 평가가 떨어졌고, 마지막으로 남은 구더기 공주는 숨을 죽였다.
시발, 나는 이 파티도 아닌데 왜 쫄고 있지?
문뜩 그런 깨달음이 그녀의 머리를 스치는 가운데, 마하간이 그녀에게 말했다.
“구더기 공주, 그대는 가슴을 펴도 좋다. 실력은 물론이고, 눈치와 대응 능력 또한 뛰어나니. 내가 현역이던 시절에 그대 같은 자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
갑작스러운 칭찬에 무안해진 구더기 공주가 시선을 돌린 순간, 고개 숙인 그릇과 눈을 마주쳤다.
질투로 가득 찬 붉은 눈동자.
라쉬크는 자기도 모르게 ‘뭐 시발’이란 말을 내뿜을 뻔했다. 내가 평가해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왜 나한테 지랄이야?
아무튼, 코르부스와 데스나이트를 제외한 일행을 전부 평가한 마하간이 선언했다.
“다시 말하겠다. 초인 올림피아까지 남은 시간 동안… 아니, 너희가 계단의 시련을 극복할 수 있을 때까지, 내가 너희를 단련 시키겠다.”
“….”
“그때까지, 용사와 함께 수련하는 건 물론이고, 함께 계단에 도전하는 것을 금한다.”
일방적인 선언이었지만, 세티는 반론하지 않았다. 여명 또한 반론하지 않았으므로.
그녀는 그저 피부가 하얗게 변할 정도로 주먹을 움켜쥘 뿐이었다. 그 분위기가 어찌나 가라앉았는지, 여명이 걱정스레 그녀를 지켜볼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이번 모임이 우울하게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조용히 일행들이 혼나는 걸 구경하던 용의 마지막 헛소리 덕분이었다.
[뭐야? 그러면 앞으로 여명은 여기 안 와? 내 밥은 어쩌고?]“….”
[아이 씨, 아무리 그래도 밥은 줘야 할 거 아니야. 쟤들이 약한 게 내 탓도 아니… 악! 아오, 잠깐! 비늘, 비늘 없는 곳 맞았어!]***
잠시 후.
홀로 용의 둥지를 빠져나온 여명이 입을 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하셨습니다.”
그와 나란히 걷던 마하간은 흥,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틀린 말 한 것도 아니잖느냐.]“…같은 말도 ‘어’ 다르고 ‘아’ 다른 법입니다. 좀 더 부드럽게 하실 수도 있었잖습니까.”
[오냐오냐하는 건 제자를 들인 뒤에 하거라, 동료에게 필요한 건 따끔한 충고와 지적이다.]그렇게 마하간이 자신의 성질머리를 드러내자, 갑자기 용의 둥지 방향에서 까마귀가 튀어나왔다.
“제자한테도 오냐오냐한 적 없는 양반이 말은. 죽어서 하는 거짓말이 가장 나쁜 거짓말이란 것도 모르나 보오.”
[….]“…?”
여명은 코르부스도 마하간이 보이냐고 묻지 않았다. 저번에 급속 냉각을 알려줄 때, 그녀가 어렴풋이 마하간의 목소리를 듣는 건 눈치챈 까닭이었다.
뭐, 그건 그거고. 여명은 어깨에 자리를 잡는 코르부스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둘이 무슨 관계냐고 묻고 싶었지만, 차마 질문이 나오지 않았다. 귀신과 까마귀는 서로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었으니까.
마하간은 하던 말을 계속했다.
[아무튼, 내가 단순히 성질이 더러워서 이런 일을 벌인 것은 아니다. 알잖느냐. 네 몸을 회복하기 위해선 환골탈태가 필요한데….]그는 뭔가를 계산하듯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잠시 후, 마하간은 여전히 확신이 없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내 계산에 따르면 마지막 시련을 극복하고 보상을 얻으면 환골탈태도 충분히 가능할 게다. 문제는 저 아해들의 실력이야. 네가 아무리 강해져도, 지금 저 아해들 수준으로는 반년이 걸려도 버겁다.]“…그거야 제가 신명을 찾으면 될 일입니다.”
“….”
[네 몸은 아무리 좋게 말해줘도 시한부다. 망가지는 건 이미 확정이나 다름없지. 그게 언제냐가 문제일 뿐… 그전에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코르부스가 딱-! 부리를 부딪쳤다.
“제자여, 너무 안달하지 마시오.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것이 잘못된 길로 빨리 가는 것보다 낫소. 라날 또한 변신 마법을 거의 다 익혔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본인이 제자를 돕겠소.”
그렇게 말한 코르부스는 날개로 여명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진의를 가다듬고, 본인의 무술을 완성하는 것이오. 여섯 개의 힘이 모여야 몸이 회복된다 했으니, 가진 것을 갈고 닦는 것 또한 미뤄서는 안 되오.”
[쯧, 진짜 중요한 게 뭔지도 모르는 게.]마하간이 혀를 찼으나, 코르부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진의를 세웠으니, 그 끝을 보시오. 귀신이건 스승이건 가리지 않고 도움을 받고, 원하는 것을 쟁취하시오. 후회와 실패를 준비하기에 제자는 너무 젊소.”
“….”
두 사람의 말 모두 일리가 있었다. 초인 올림피아를 앞둔 이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게 하수도를 나서는 발소리를 따라 무거운 고민과 연인들을 향한 걱정이 늘어가는데, 갑자기 그의 휴대폰이 울었다.
발신자 표시 제한… 누구지? 여명이 의아하게 휴대폰을 연 순간.
콰과광-! 뭔가 터지고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휴대폰을 뚫고 나왔다.
-야 가짜 빨갱이! 내가 재밌는 거 알려줄까?!
“…파순?”
-스탈린은 살아있다! 하하하!! 니기미, 빨갱이 대빵이 살아있다고!!
“…?”
뭐 어쩌란 거야. 여명은 황당해하는 코르부스와 마하간의 얼굴을 번갈아 본 뒤 대답했다.
“어… 그래, 나도 알아.”
-뭐? 알아? 어떻게?
“…이런저런 사정으로?”
-이런 염벼… 악! 독화! 뭐 하는 거야, 이 병신아! 천장 뚫렸잖아!
“….”
-아무튼, 너, 나중에 만나면 어떻게 알았는지 설명해라. 지금은 내가 바빠서… 씨발 아줌마! 눈뽕 끄라고! 시체는 눈 없다고!
또 다시 이어지는 폭발음.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정신없는 소음을 듣던 여명은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통화를 끊고 기존에 저장돼있던 녀석의 번호를 차단한 뒤, 휴대폰을 꺼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