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408)
을 위한 세계는 없다-408화(408/817)
***
여명이 떠난 직후, 용 둥지의 분위기는 개판이었다.
오르세 라날의 귀여운(?) 주접 덕분에 최악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불편한 분위기가 다 가신 건 아니었으니까.
뭔가를 고민하는 엘프, 기도하는 성녀, 그리고 좌절하는 그릇까지.
일행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르는… 아니, 까놓고 말해서 이런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았던 구더기 공주는 그냥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
“여명 이 나쁜 새끼, 그렇게 꼽주는데 어떻게 옆에서 한마디도 안 하냐?”
“그럴 수도 있죠.”
그녀의 말에 대답한 건 세티였다. 베이스캠프 식탁에 앉은 그녀는 스위스 은행에 보낼 항의문을 쓰고 있었다.
마하간의 지적에 마음을 쓰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이 자리에서 가장 좌절한 건 그녀였다. 적어도 라쉬크가 보기엔 그랬다.
세티는 펜을 끄적이며 계속 말했다.
“그리고 뭐, 딱히 틀린 말도 아니잖아요. 우리가 여명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것도 사실이고… 어쩌면 이게 좋은 기회일 수도 있어요. 전대 용사 파티와 싸울 수 있는 시련과 바로 옆에서 조언해줄 대마법사. 이 기회를 잘 살리면 단번에 강해질 수 있을 거예요.”
“…세티.”
“아, 그리고 돌뿌리 심장, 별부리미 열매, 케네디 수염뿌리, 알드레이크 척수액… 우선적으로 쓸 수 있는 영약 재료들 목록이에요. 아카데미에서 구한 영약과 이번에 드워프가 보낸 선물 목록을 모두 고려하면 일행이 매일 한 병씩 영약을 마실 수 있겠죠. 문제는 제작인데, 라쉬크가 조금만 도와주시면….”
“세티.”
탁. 펜이 멈추는 소리가 울렸다. 그제야 펜을 내려놓은 세티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 빛깔만큼이나 싸늘한 푸른 눈동자가 구더기 공주의 눈과 마주쳤다.
라쉬크는 뒤통수를 긁었다.
“영약 제조쯤이야 해줄 수 있는데… 그 뭐냐, 알렉산더 대왕 따라 하다가 망한 왕이 한둘이 아닌 건 알고 있지?”
“…뱁새가 황새 따라 하다가 가랑이 찢어진다고요?”
“한국 쪽 속담이야 모르겠지만, 뜻은 통하는 거 같네. 응, 내 말이 그 말이야. 상식적으로 너희가 단기간에 지금 여명 수준으로 강해지는 건… 어렵지 않을까?”
“…그래도 해보긴 해야죠.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
그렇게 말한 세티는 스윽 다른 일행을 훑다가, 그릇에서 확 시선을 멈췄다. 여러모로 복잡한 눈동자였다. 계륵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안타까워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뒤늦게 그 시선을 느낀 그릇이 고개를 들었다.
짧은 순간, 그녀의 머리로 수많은 생각을 떠올렸다. 나도 잘 할 수 있다느니, 발목 잡지 않겠느니 하는 생각들.
하지만 정작 입에서 나오는 건 말이 되지 못한 오물거림 뿐이었다.
“어… 그게… 저, 나는….”
세티는 그 이상 기다려주지 않았다.
“살로메. 원한다면 떠나도 돼.”
“….”
“여기서 보고 들은 걸 비밀로 한다는 가정하에, 함께 얻은 영약은 약속대로 나눠줄 거야. 너희 오빠 분량도 착실히 챙겨줄 거고.”
“어….”
“사실, 넌 여명과 아무 상관도 없잖아. 용사 파티라는 이름도 마하간의 고집일 뿐이고… 그러니 굳이 힘든 길로 갈 필요 없어.”
그릇은 그게 세티 나름의 배려가 담긴 말임을, 그리고 동시에 그녀를 진짜 동료로 생각하지 않기에 꺼낼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성녀나 엘프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게,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는 모양.
저 셋과 여명 사이에는 그녀가 모르는 어떤 일이 있는 걸까? 아니, 분명 그럴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그녀를 배려해줄 수 있는 거겠지.
다음 순간, 외로움이 그녀의 목을 타고 흘렀다. 그래, 물론 그녀가 개인적인 이익으로 이 파티에 들어온 건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정이 쌓였다고 생각했는데…
눈물을 찔끔 삼킨 그릇은 더 노력하겠다고, 나도 억압에서 벗어나 너희처럼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타인과 담을 쌓아온 그녀의 소통 장애와 한동안 억눌려 있던 오만함, 그리고 당황은 전혀 다른 말이 되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조, 존나 말 많네. 한 판 뜰까?”
자기도 모르게 지껄인 바로 다음 순간, 살로메는 자신의 입과 성격을 저주했다.
“아, 아니… 나는 그게….”
“….”
라쉬크는 물론이고, 용조차 영화를 끄고 그녀에게 시선을 쏟았다. 그릇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푹 숙였다.
뭐라고 할까? 설마 이대로 쫓아 내려나? 아니, 분명 쫓아낼 거야. 나라도 그렇게 할 테니.
하지만 그녀의 생각과 달리, 이어진 세티의 말은 조금 더 심각했다.
“그래, 한판 붙자.”
“으, 응?”
“사실, 서로 진짜 실력은 모르잖아? 입학 성적 1등이니 4등이니… 다 시험 성적 이야기고. 이참에 서로 진짜 실력 좀 보자.”
“….”
자리에서 일어나 우라간의 몸통을 붙잡는 세티. 그릇은 놀란 눈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성녀는 기다렸다는 듯 리볼버를 뽑았다.
“난 찬성. 룰은 어떻게 할래? 올림피아식으로?”
“아니, 무제한으로.”
“좋아, 한쪽이 항복할 때까지 계속하기.”
빙그르르- 탁! 멋들어지게 리볼버의 총알을 장전한 성녀는 그대로 그릇을 바라봤다.
“나랑 세티, 둘 중 누구랑 먼저 할래?”
“….”
뭔가 잘못 돌아가는 거 같은데. 잠시 눈을 굴리던 그릇은 동아줄을 잡는 심정으로 엘프를 가리켰다.
“쇠, 쇠미리랑 할게.”
쇠미리는 왜 자신을 선택했냐고 묻지 않았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판초우의를 걸치더니, 평소에는 숨기고 다니던 지팡이를 꺼냈다.
끝에 커다란 세계수의 결정이 박혀 있는 무시무시한 지팡이.
탁! 지팡이 끝으로 땅을 찍은 쇠미리는 작게 미소 지었다.
“…제가 만만해서 고른 건 아닐 거라고 믿어요.”
다음날, 그릇은 다발성 골절과 총상, 그리고 컨디션 난조로 결석했다.
***
시드니 테러로 인해 아카데미 항구와 공항이 봉쇄된 와중에도, 아카데미에는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흥분과 기대감.
코앞으로 다가온 올림피아 이야기는 아카데미 어디에서나 들리고 있었다. 교실, 식당, 심지어 번화가의 카페에서조차.
-신청서 제출은 언제부터래? 너희는 어디로 넣을 거야?
-나는 마법 재현 쪽으로 넣으려고. 결투는 예선전도 뚫기 어려워 보이더라.
-그렇지. 당장 중등부 우승자가 학년 1위를 못 하는 판이니….
-아! 하늘은 어째서 저를 낳고 천여명, 전윤성, 웨슬리, 홍세티를…
-닥쳐.
카페에서는 조용히 하란 말도 잊었는지, 기대감과 즐거움이 뒤섞인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학창 시절이라는 걸 경험해본 적 없는 네크로맨서, 딜라 카탁포이어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올림피아는 무슨.’
얼마 없는 냉전의 유산이 그렇게나 기대되는 일인가?
아무튼, 그녀가 속으로 애꿎은 학생들을 씹으며 설탕 탄 커피를 홀짝거리길 잠시.
카페 문이 열리며 기다리던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배불뚝이 아저씨… 로 변장한 천여명.
딜라는 맞은편에 앉은 그를 보며 한마디 했다.
“그런 얼굴 말고… 꽃미남으로 변장하는 건 안 되나요?”
아니면 하다 못해 원래 얼굴이라도. 여명은 고개를 저었다.
“…꽃미남은 너무 눈에 띄잖아. 너도 숨어 사느라 힘들 텐데, 괜히 시선 끌 필요 없지.”
“아, 예, 그렇죠….”
여명은 아쉬워하는 딜라를 무시하고 커피를 추가했다. 하나도 아니고 무려 세 잔이나.
“…사람이 더 오시나요?”
“응, 오늘 널 부른 건 그분들을 소개하기 위해서야.”
상으로 샌드위치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었구나. 딜라는 애써 아쉬움을 감췄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변장한 여명은 대뜸 주머니에서 천천히 무언가를 꺼냈다.
“아, 그리고 이것 좀 봐줄래?”
묘하게 시선을 끌어모으는 붉은 보석.
네크로맨서라는 직업상 다른 사람보다 뒤틀린 마나에 민감한 딜라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이거… 어디서 구하셨어요?”
“아야톨라의 본진.”
“….”
이런 맙소사. 의심이 확신으로 변한 순간, 딜라는 재빨리 손수건을 꺼내 보석을 덮었다.
그걸 본 여명이 물었다.
“뭔지 알겠어?”
“알다마다요. 이건… 인신 공양을 위해 뭉쳐둔 인간의 정수에요.”
한 명 한 명 제단에서 심장을 뽑아내기 어려울 때, 미리 수백, 수천 명 분량의 심장에서 정수를 뽑아 뭉친 게 바로 이 구슬이다… 딜라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여명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이 정도 크기면 몇 명 정도 들어갔을까?”
“그건 저도 몰라요. 그건 응축하는 사람 실력에 달린 거라서….”
수백, 어쩌면 수만 명이 이 보석을 위해 희생됐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여명은 보석을 챙기며 물었다.
“딜라, 너도 이거 만들어본 적 있어?”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건 산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는 거라… 아시잖아요? 네크로맨서는 시체 전문인 거.”
“….”
여명이 못 미더운 눈빛으로 그녀를 훑었다. 어째서 일까, 딜라는 그 눈빛이 너무 아프다고 생각했다.
뭐, 이유야 어찌 되었건 여명은 그녀에게 알려줘서 고맙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칭찬을 들은 딜라가 작게 웃으며 천만에요- 겸양을 떠는 사이.
카페의 문이 열리며 두 노인네가 안으로 들어왔다. 카페 주인과 학생들이 그들을 알아보고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학부장님.”
“안녕하세요! 호아나!”
인사를 받은 노인, 마법학부장 가단과 호아나 툴레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카페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여명과 딜라를 발견한 직후, 둘이 있는 테이블로 다가와 앉았다. 아마 커피를 미리 시켜놓는 게 암구호인 듯했다.
늙은이들의 깊은 시선과 커피 향기가 뒤섞이는 가운데, 자리에 앉은 가단은 변장한 여명과 딜라를 번갈아 봤다.
“아카데미 한가운데에서 네크로맨서를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만나다니. 한 달 전이었으면 절대로 못 믿을 일이군.”
“….”
대마법사의 싸늘한 눈빛을 마주한 딜라는 커피를 마시는 척,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녀가 진짜 두려워해야 할 노인은 그가 아니었다.
“그 외모… 저주받을 카탁포이어 가문의 마지막 혈통인가? 내가 알기로 마지막 카탁포이어는 불사의 왕이 이 땅에 내린 새끼 손가락이었는데. 맞나?”
호아나가 그리 말하자, 딜라가 눈에 띄게 겁을 먹었다.
그녀의 몸에서 느껴지는 흐릿한 다섯 신의 축복 때문인지, 아니면 신원을 들켜서 인지는 알 수 없었다.
“두 분 모두, 너무 그러지 마세요. 딜라가 네크로맨서인건 사실이지만, 지금은 우리 편입니다.”
“허허, 여명아. 혹시 네크로맨서가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 거라면 그러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구나. 네크로맨서라는 족속들은…”
가단이 지적하는 찰나, 여명이 그의 말을 끊었다.
“절대 배신할 일 없을 겁니다. 제 이름을 걸고 약속드리겠습니다.”
“…흐음, 그래?”
여전히 의심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가단과 달리, 호아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어차피 배신하면 죽이면 그만이라는 듯이.
물론, 딜라 입장에서는 그놈이 그놈이었다. 그녀는 여명의 옆에 딱 붙어 숨을 죽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명은 바로 본론부터 꺼냈다.
“두 분께 이 네크로맨서를 소개해 드리는 이유는….”
“신명 때문이겠지. 왜, 번역 작업이 늦어지는 것 같아 애가 타느냐?”
“….”
여명은 부정하지 않았다. 가단은 여명이 미리 시킨 커피를 홀짝이며 말을 이었다.
“번역 자체는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름만 번역해서는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왜 떨어졌는지, 언제 떨어졌는지… 게다가 이름이 중복되는 신도 있더군.”
“중복이요?”
“그래, 예를 들어… 케프리같은 신 말이다. 그 얼굴에 벌레를 달고 있는 이집트 신. 신화에 나름대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너도 나도 다 아는 신인데… 떨어진 별이라면 아무도 몰라야 하지 않느냐. 그런데 불사의 왕이 적은 명부에 떡하니 적혀있더구나.”
“….”
케프리. 여명은 묘한 기시감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직후, 그는 문뜩 뭔가를 떠올렸다.
“아, 혹시… 삼지창을 쓰는 물의 신 같은 건 없었나요?”
“…물의 신?”
“예, 수염이 난 거인의 형상을 하고, 파도로 된 옷을 입은….”
“흠… 포세이돈이란 이름의 신이 비슷한 거 같구나. 삼지창을 쓰는 그리스 신화 쪽 신이었지. 무슨 신인지는 ‘누구나 다 안다’는 식으로 적혀 있었다만, 아마 맞을 게다.”
“…포세이돈, 포세이돈이라.”
여명은 자신에게 주사위를 준 떨어진 별의 이름일지도 모르는 단어를 기억했다.
곧 가단이 말했다.
“그렇게 신의 인상착의가 있다면 조금 더 쉽게 찾을 수 있을 게다. 아무래도 불사의 왕이 남긴 기록이 피상적이다 보니, 그냥 이름만 번역해서는 쉽지 않아.”
여명은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예, 그래서 오늘 딜라를 학부장님께 소개하는 겁니다.”
“…흐음?”
“앞으로 그릇이 조수로 활동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요. 딜라를 임시 대학원생… 아니, 조수로 쓰시면서 번역 작업에도 참여시켜주세요. 아무래도 불사의 왕의 여러 기록을 읽어본 경험자이니, 쓸모가 있을 겁니다.”
“…네크로맨서를 조수로?”
가단은 기가 찬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딱히 거절하는 눈치는 아니였다. 그는 겁먹은 딜라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뭐, 대학원생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만… 그릇은 어디다 쓰려고? 오늘 보니 아예 곤죽이 되었던데.”
“…곤죽이요?”
“성녀님한테 치유 받고도 겨우 걸어 다니는 게 고작이더군. 수련도 좋지만, 건강 조심하게. 그러다 크게 다치면 괜히 마탑이 지랄할 빌미만 줄 테니.”
“….”
마하간이 벌써 단련을 시작했나? 여명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대학원생이 확정된 딜라가 겁을 먹는 사이, 호아나도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릇이 걷지도 못해? 이상하군. 성녀님도 코뼈가 부러지셨던데… 여명, 너 설마…?”
“…설마라니, 뭐가요?”
“아니, 아니, 됐다. 설마 아니겠지.”
그러니까 설마가 대체 뭔데요? 여명은 차마 물을 수 없었다.
***
방과 후, 하루 종일 일행과 대화를 나누지 못한 여명은 묘한 쓸쓸함을 느끼며 직원용 휴게실로 향했다.
마음 같아서는 용의 둥지로 가서 마하간과 수련하는 일행들을 지켜 보고 싶었으나, ‘따로 부를 때까지 절대로 오지 마’라는 세티의 말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부디 큰 문제는 없기를 바라며 조용한 아카데미의 숲길을 걷길 잠시.
그는 텅 빈 직원용 휴게실에 도착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아, 드디어 오셨구려.”
커다란 까마귀가 저번에 시리가 깔아놨던 이부자리 위에서 그를 반겼다. 왜 하필이면 저곳에 계신담.
여명은 쓴웃음과 함께 인사했다.
“죄송합니다. 코르부스, 일이 있어서.”
“괜찮소. 어차피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마음이 중요한 일이니.”
코르부스는 그리 말하고는 변신을 시작했다. 우드득-! 뼈와 살이 늘어나는 소리와 함께 2미터가 넘는 크기의 수인으로 변신한 그녀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자, 어서 오시오.”
여명은 말없이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마찬가지로 무릎을 꿇은 상태였다.
“책은 많이 읽으셨소?”
“예, 시간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읽고 있습니다.”
“오늘은 어떤 것을 읽으셨소?”
“프로타고라스를 절반 정도 읽었습니다.”
“맹자로 시작해서 프로타고라스라. 참으로 잡스럽게도 읽으셨구려.”
여명은 스승의 농담을 따라 웃었다. 두 사람의 분위기가 조금 풀림과 동시에, 코르부스가 수련 내용을 읊었다.
“오늘 할 것은 철학 논변이오. 본인이 질문하고, 제자는 읽고 느낀 것을 답하시오. 무의식적인 생각을 따라 마나가 움직이면 성공, 실패하면….”
그녀가 부리를 딱- 부딪쳐 소리를 낸 뒤 덧붙였다.
“될 때까지 할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