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414)
을 위한 세계는 없다-414화(414/817)
***
사람 죽이는데 총만 한 게 없다.
변경백령 전쟁을 뒤에서 지원하며 신세계의 전력을 살핀 미국이 내린 결론은 그것이었다.
덕분에 미국의 첫 무술 개발은 사격술의 연장선이나 다름없었다.
초인의 육체는 더 큰 반동을 견딜 수 있으니 정신 나간 대구경 총을 만들거나, 혹은 마법으로 여러 방아쇠를 동시에 당길 수 있게 되었으니 수십 개의 총을 혼자서 쏘는 건 마스터를 키운다든가…
무기 개발 역사의 한 페이지를 비극과 창의력으로 장식했던 그 아름다운(?) 시절은 소련이 본격으로 기술 개발에 뛰어들며 끝났다.
소련은 미국과 달랐다.
그들은 ‘총은 이미 충분하니, 총으로 할 수 없는 것을 만들자’ 는 마인드로 무술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첫 무술… 현장 요원들은 ‘니미 씨발’이라고 부르고, 서류 쟁이들은 ‘광폭화’라고 부른 무술의 등장은 미군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총에 맞아 죽어가던 녀석이 갑자기 몸을 시뻘겋게 물들이고는, 미친놈처럼 날뛰는 무술이라니.
니미 씨… 아니, 광폭화 때문에 여러 이권을 잃은 미군은 부랴부랴 대응법을 고민했다.
핵무기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무술을 훔치자는 녀석들부터, 아예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급진파까지.
하지만 어떠한 의견도 현실을 넘지는 못했다. ‘예산 부족’이라는 현실을.
그놈의 우주 경쟁이 뭐라고.
아무튼, 예산의 한계를 마주한 미군은 울며 겨자 먹기로 기존 사격 무술을 개량할 수밖에 없었다.
샤프슈터는 그런 현실적인 노력의 결정체라 할 수 있었…
“어… 그래서 공간 감지는 대체 언제 배웁니까?”
듀크 중령의 설명이 밑도 끝도 없이 길어지려는 찰나, 여명이 그의 말을 끊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할 생각이었다. 잘 들어봐. 군은 예산이 부족했고, 기술도 부족했지. 그러면… 공간 감지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그의 질문에 대답한 건 옆에서 듣고 있던 네티였다.
“애국심으로 만들었나요?”
-워, 아가씨. 미안하지만 애국심은 보상을 주지 않아요. 국민의 젊음과 열정을 빨아 먹기만 하지.
“….”
시니컬하게 말한 듀크는 어디 정답을 말해보라는 듯 주변을 훑었다. 어느 정도 역사를 알고 있던 여명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대답했다.
“설마, 다른 사람에게 훔친 겁니까?”
-훔치다니. 미군을 뭐로 보고… 비슷하긴 하지만, 훔친 건 아니야. 정확히는 도굴했지.
“….”
도굴? 의외의 답을 들은 자매들의 눈썹이 크게 휘어지자, 듀크가 껄껄 웃으며 덧붙였다.
-주인 없는 무덤과 탐욕에 눈이 먼 외부인들… 나 때만 해도 흔한 일이었어.
여명은 반박하지 않았다. 그의 말마따나, 담백한 사실이었으니까.
당장 일제시대 조선총독부가 신라와 고려의 무덤들을 도굴해 유물을 빼돌리지 않았던가?
아무튼, 듀크는 의미심장하게 말을 이었다.
-공간 감지 무술은 엘프 숲 외곽에 있는 오래된 무덤에서 발견됐다. 주변 원주민들이 용사의 무덤이라고 주장하던 곳이었지.
나름 목소리를 깔고 꺼낸 말이었음에도, 일행의 반응은 기대만 못 했다.
-하, 이건 또 안 놀라는군?
네티가 총을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용사의 무덤이라고 주장하는 곳이 어디 한 두곳이 어야죠. 히라리아에도 제국에도 있고…”
-그렇게나 많이? 하, 낭만이 없는 시대로군.
“도굴에 낭만은 무슨. 어차피 거기도 가짜였죠?”
-그래. 보물은 있었지만, 용사는 없었다. 같이 갔던 연구원 말로는 용사의 아들이 잠든 무덤일 거라고 했는데… 뭐, 중요한 건 아니고.
듀크 중령은 크흠, 헛기침한 뒤 여명을 똑바로 바라봤다.
-지금부터 알려줄 공간 감지는 미군이 재해석한 물건이다. 그러니까… 미국에 애국하란 소리는 안 할 테니, 혹시라도 미국과 싸울 때 사정을 좀 봐주면 좋겠구나.
“미국이랑 싸워요? 제가요?”
-뭐,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이 어르신이 또 무슨 소리를. 여명이 애써 불길함을 떨쳐내는 사이, 듀크가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자, 이제 공간 감지를 알려줄 테니, 나한테 등을 보이는 자세로 앉아 봐라.
“등이요?”
여명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순순히 자세를 잡았다. 여명이 등을 보이자, 듀크가 그의 척추, 정확히는 신경이 이어지는 맨 아래 목뼈에 손을 올렸다.
마나를 직접 불어넣어서 운용법을 알려줄 생각인가?
“진의만 알려주셔도 되는데.”
듀크는 고개를 저었다
-진의? 아… 진의는 샤프슈터에 있지, 공간 감지에는 없어서 그래. 말했잖아. 도굴한 무술이라고.
“네? 그럼 어떻게….”
익힙니까? 여명이 되묻기도 전에 대답이 돌아왔다.
-미필이라 모르나 본데, 원래 군대는 까라면 까는 곳이야.
“???”
그게 무슨 개소리냐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바로 다음 순간, 듀크가 뒤틀린 마나를 그의 몸속에 그대로 주입한 까닭이었다.
목뼈 주변 혈관과 신경을 파고드는 마나.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이를 꽉 깨무는 여명의 귓가로, 듀크의 목소리가 울렸다.
-기절하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니, 어금니 꽉 깨물어라.
***
신경이 비명을 지르는 고통 속에서, 여명은 어째서 샤프슈터를 보고도 익히지 못했는지 이해했다.
다른 무술들처럼 눈에 보이는 게 확실하지 않아서? 아니, 아니었다.
애초에 제대로 된 무술이 아닌 까닭이었다.
사격술과 도굴한 공간 감지, 그 외에 총알을 휘게 하는 기교를 뒤섞어 만든 개 잡탕밥.
그놈의 진의라는 것도 까보면 ‘아무튼 잘 맞추면 장땡’이 아닐까?
진실이 무엇이건 간에, 여명은 듀크가 꾸역꾸역 밀어 넣는 마나의 흐름을 기억했다.
그건 여명의 재능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듀크의 마나는 어떨 때는 고도 훈련된 의사의 메스처럼 날카롭기도 했고, 또 어떨 때는 술에 취한 취객의 걸음만큼이나 난잡하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효과만큼은 확실했다.
그의 마나가 지나간 자리로 여명의 마나가 들어차자, 주변의 모든 것들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느껴졌다.
단순히 감각을 강화하는 것을 뛰어넘어, 공간 자체가 손에 잡힐 듯한 기분.
‘샤프슈터보다도 이게 더 쓸모 있는 거 아닌가?’
여명이 그렇게 감탄과 고통이 섞인 깨달음을 떠올릴 때쯤.
한참이나 마나를 운용하던 듀크가 그의 목에서 손을 뗐다. 여명은 그제야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괜찮나? 오랜만에 하니 더럽게 힘들군.
“예, 그럭저럭 버틸 만합니다. 근데… 원래 이렇게 익히는 겁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옆에서 구경하던 두 자매가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로 갑작스러운 질문.
그러나 듀크는 그 질문에 담긴 뜻을 읽어냈다.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그때는 다들 이렇게 익혔지.
“그럼….”
-맞아. 이 단계에서 병신 된 놈이 한 트럭이고, 죽는 놈도 종종 있었지. 내 등신 같은 전우들은 너랑 다르게 재생력이 좋지도, 주가시빌리를 익히고 있지도 않았으니까.
“….”
-그래도 주가시빌리를 익히는 소련보다는 나았다. 거기는 문자 그대로 사람을 갈아 넣었거든.
이게 냉전의 광기인가? 체제 경쟁이란 이름 하에 국가가 국민을 소모품으로 써먹던 시절. 그 광기의 일면을 맛본 여명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듀크는 별일 아니라는 듯 미소를 유지한 채 그를 자리에서 일으켰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내기… 아니, 훈련을 시작하지. 아가씨들? 준비됐나?
달칵, 그의 말에 호응하듯 자매들이 장난감 총을 들어 올렸다. 네티의 눈에 독기가 서려 있는 게, 가짜 총에서 어렴풋 살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자네는 저기 나무 가운데 가서 서게.
그렇게 말한 듀크는 여명의 등을 짝- 때렸다. 소리는 컸지만, 등에서 느껴진 충격은 별 볼 일 없었다.
마나를 불어넣는 게 그에게도 꽤나 부담이 된 모양.
여명은 애써 멀쩡한 척하는 듀크에게 꾸벅 고개를 숙인 뒤, 나무 사이에 섰다.
그리고 조금 전 그가 알려준 대로 마나를 운용하며 공간 감지를 활성화했는데… 듀크가 대뜸 자매들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아, 맞아. 급소를 맞추면 추가 득점이다.
“급소요?”
네티가 관심을 보이자, 듀크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와… 고환을 번갈아 가리키며 말했다.
-인간이라면 본능적으로 방어하려는 두 곳.
“….”
-워낙 맞추기 어려워서 추가 득점을 주는 거야. 혹시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죽어서 주책이시네요!”
네티는 질색하며 자리로 돌아갔다. 다른 룰은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기본적인 룰은 이미 설명이 끝난 뒤였으니까.
사격 거리는 최소한 20m 이상, 여명을 맞추면 1점. 많이 맞추는 쪽이 승리.
똑같이 공간 감지를 쓰는 듀크가 직접 점수를 센다고 했으니, 논쟁의 여지는 없었다.
“전 준비 끝났습니다.”
어쨌거나, 여명이 공간 감지를 사용하기 무섭게 두 자매가 방아쇠에 손을 올렸다.
듀크는 손을 들며 말했다.
-그럼 이제 셋 하면 시작하지, 하나, 둘… 셋!
그의 손이 땅을 향한 직후, 네티와 막내의 총구가 여명을 노렸다. 다행히 둘 다 그의 머리를 겨누고 있었다.
***
진짜 총알만큼은 아니었지만, 작은 장난감 총알은 생각보다 재빨랐다.
첫 타를 피하려다가 어깨에 맞을 정도.
하지만 그래도 연사 속도가 느린 덕분에 여명은 쉽게 총알에 적응했다.
자매들이 탄창을 갈아 끼울 쯤에는 손으로 플라스틱 총알을 잡아낼 수 있을 정도였으니, 더 말해 무엇할까?
그 모습을 본 자매들은 물론이고, 듀크도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워, 이거 조금 더 제대로 된 게 필요하겠군.
듀크는 곧바로 사격을 멈추고 휴게실에서 다른 총을 꺼내왔다.
전기 모터로 작은 납탄을 날리는 조금 더 진짜에 가까운 소총이었다.
아마 서바이벌 연습 때 사용하는 군용 모델 건 같았는데… 소총을 받아 든 네티의 표정이 묘해졌다.
“형부, 미리 사과드릴게요.”
“….”
그렇게까지 같이 시드니에 가고 싶은 걸까, 여명은 귀엽고 살벌한 모습에 미소 지었다. 물론, 그 미소는 오래가지 못했다.
소총을 든 두 자매의 사격 실력은 그의 상상이상이었으니까.
타타타타-!
모터가 움직이며 날아오는 총알은 순식간에 여명의 몸을 난타했다.
아프기보단 따끔한 정도의 위력이었지만, 이번에는 공간 감지로도 막기가 쉽지 않았다. 경쟁의식을 불태우는 자매들 덕분이었다.
“동생아, 사격 실력이 많이 녹슬었구나.”
“급소 점수까지 하면 내가 앞서는데.”
“닥치렴.”
그 와중에도 여명은 거의 춤을 추는 것처럼 총알을 피했다. 순식간에 찢어지고 더러워진 교복이 그의 노력을 증명하고 있었다.
물론, 노력과 결과는 다른 문제였다. 여명은 자매들이 쏘는 납탄의 절반도 피하지 못했다.
공간 감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공간 감지를 유지하면서 급속도로 반응하는 것 자체였다.
‘느려.’
생각과 동시에 움직이지 않으면 총알을 피할 수 없다.
여명은 머리로 날아오는 납탄을 피하며 방법을 떠올렸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예전에 브라우닝의 총알을 피하기 위해 써먹었던 방법이었다.
주가시빌리.
생각은 짧았고, 행동은 빨랐다. 두 자매가 그에게 살기를 품을 리는 없으므로, 그는 곧바로 플레이어와 나아가 한국 정부를 생각했다.
곧바로 작은 살기가 꿈틀거리며 그의 몸 주변에 옅은 붉은 아지랑이를 만들어냈다.
안개로 몸을 가리기 위해서? 아니, 여명은 공간 감지를 주가시빌리의 아지랑이와 동화시켰다.
생각보다도 빠르게, 아지랑이 그 자체가 감지 능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단순히 아지랑이에 마나를 퍼트려 감각을 느낄 때보다도 더욱 선명하고 빠르게 총알이 느껴졌다. 피하는 것뿐만 아니라, 손으로 날아오는 납탄을 쳐낼 수 있을 정도.
탁-!
그는 기회가 될 때마다 손바닥으로 날아오는 총알을 쳐냈다. 진짜 총알이 아닌 연습용 납탄이기에 할 수 있는 기행이었지만…
-그만, 멈춰!
듀크가 정색하며 훈련을 중지했다. 두 자매들 또한 놀란 얼굴로 총구를 내렸다.
의아해진 여명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전 더 할 수 있….”
말이 완성되기도 전에, 듀크가 그의 말을 끊었다.
-너, 무슨 짓을 한 거냐?
“네?”
-왜 주가시빌리를 펼쳤지? 총을 맞다 보니 살기가 일어난 거냐?
“아뇨, 아뇨. 그런 거 아닙니다. 그냥 주가시빌리에 공간 감지를 섞으면 어떨까 해서 시도해 본 겁니다.”
-…?
듀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주가시빌리를 거두는 여명을 빤히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너… 여태껏 다른 무술들을 주가시빌리랑 같이 펼친 거냐?
“예, 그게 그렇게 이상한 일입니까?”
여명이 역으로 되묻자, 듀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당연히 이상하지. 주가시빌리는 그런 식으로 쓸 수 있는 무술이 아니니까. 아니, 잠깐… 너 지금 익히고 있는 게 진짜 주가시빌리는 맞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