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418)
을 위한 세계는 없다-418화(418/817)
***
“김 장관…? 김관형 장관?”
전윤성이 반사적으로 장관의 이름을 중얼거리자, 교단원들의 눈빛이 변했다.
곧, 녀석들 중 가장 앞에 있던 놈이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으며 소리쳤다.
“다 알고 온 놈들이야! 죽여!”
여명은 곧바로 칼을 던졌다. 샤프슈터의 묘리가 섞인 칼은 천장에 걸린 고깃덩어리들을 피해 정확히 녀석의 손목에 명중했다.
“아악!”
차가운 불빛 아래, 잘린 팔목이 솟구친다.
비명을 신호 삼아 전윤성이 내달리고, 교단원들이 무기를 꺼내는 건 거의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죽어!!!”
“전능한 살점이시여!”
“종말을 막을 수 없… 커억!”
그리고 녀석들이 소총과 칼을 꺼내는 것보다 전윤성이 주먹을 휘두르는 게 조금 더 빨랐다.
그는 가장 앞에 있는 교단원의 턱주가리를 후려친 뒤, 녀석들이 휘두르는 칼을 피했다.
전윤성은 그대로 난전으로 몰고 갈 생각이었겠지만, 놈들은 의외로 연계가 좋았다.
두어 놈이 전윤성을 쫓는 사이, 다른 녀석들이 총을 조준했다. 두두두-! 좁은 냉장실에서 총구가 불을 뿜었다.
좁디 좁은 창고를 뒤덮는 십자포화. 초인을 상대하는 법을 아는 놈들이었다.
전윤성은 천장에 걸린 고깃덩이들 사이로 도망치며 사격 범위에서 벗어나려 했으나, 공간이 너무 좁았다.
그렇게 그의 머리 위로 총알이 쏟아지려는 순간, 여명은 인벤토리에서 꺼낸 쇳조각을 던졌다.
목표는 소총을 든 교단원 넷.
쇳조각들은 긴 포물선, 혹은 직각에 가까운 궤도를 그리며 녀석들의 면상에 꽂혔다.
“아악!”
두개골이 뚫린 녀석들은 더는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 채 쓰러졌다. 그제야 교단원들은 이 방에서 가장 위험한 게 누군지 깨달았다.
“저 새끼! 뒤에 있는 놈부터 잡아!”
남은 교단원들은 괴성을 질러대며 여명에게 달려들었다.
소총도 없이 무슨 짓인가 싶었지만, 이런 종류의 꼴통들을 자주 상대해본 여명은 단번에 녀석들의 의도를 파악했다.
이 새끼들, 자폭하려는 거구나.
그는 피하는 대신 먼저 녀석들에게 달려들었다. 녀석들은 기다렸다는 듯 품에서 수류탄을 꺼냈다.
소총에 수류탄에… 호주도 개판이구만.
여명은 손날로 가장 가까운 놈의 목을 날리며 생각했다.
물론, 그런 생각과 상관없이 그의 손은 이미 다른 교단원을 향하고 있었다. 수류탄 핀을 뽑던 녀석의 손을 자르고, 몸을 발로 차 쓰러트렸다.
그리고 그 반동을 이용해 한 놈 더.
세 명을 연달아 쓰러트린 여명은 전윤성을 확인했다. 그리고 눈살을 찌푸렸다.
전윤성은 자폭하려는 교단원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건 살인이 아닌 제압을 위한 공격이었다. 이미 죽음을 각오한 미친놈을 막기엔 턱없이 부족한 공격.
빠각- 전윤성의 주먹이 교단원의 턱주가리를 강타한 순간, 녀석은 기절하는 대신 사력을 다해 수류탄 핀을 뽑았다.
팅.
여명은 순식간에 마나를 끌어 올렸다. 혈관이 맥동하며 그의 육체가 가속했다.
숨을 들이켜며 염동력, 전윤성의 뒷골을 잡아 냉동실 바깥으로 내던진다.
숨을 내뱉으며 전력 질주, 김 장관의 이름을 중얼거린 피해자를 몸으로 가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폭발.
콰앙! 수류탄 파편이 그의 등을 후려쳤다. 피부가 익고 살에 파편이 박히는 고통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이런 씁, 꽉 깨문 이빨 사이로 욕지거리가 흘러나왔다.
“장관… 님… 살려… 주세….”
그나마 피해자는 파편을 맞지 않았다. 여명은 남은 놈이 있나 고개를 돌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수류탄에 휘말린 교단원들은 전부 시체가 되어 있었다.
그러면 남은 문제는 이 한국인 피해자… 아니, 생존자를 어떻게 하느냐는 것인데.
‘죽여서 인벤토리에 넣을까.’
이쪽에는 딜라가 있으니, 언데드로 되살리면 쓸만한 정보를 뽑아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문제는, 전윤성이 이 녀석을 봤다는 것.
장관을 운운하던 시체가 없어지면 아무리 눈치 없는 놈이라도 이상하게 생각하리라….
거기까지 생각이 이어지는 찰나, 냉장실의 문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내동댕이쳐진 전윤성의 발소리가 아니라, 묵직한 알파 원의 발소리였다.
“이놈들은 자폭을 너무 좋아한단 말이야. 정작 일본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흠, 그거 생존자냐?”
“…예.”
운명의 장난일까, 때마침 생존자가 ‘김 장관님…’이란 말을 중얼거렸다. 눈치 더럽게 없네.
“한국인이군?”
“….”
알파 원은 주류 코너에서 훔쳐 온 위스키를 마시며 덧붙였다.
“미안하지만 그놈은 내가 챙겨가야겠다. 끄나풀.”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명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놈을 챙겨가서 정보를 뽑아내는 게 이득일까, 아니면 미국이 한국과 종말 교단이 손잡았다는 증거를 손에 넣는 게 이득일까?
답은 명백히 후자였다.
물론, 그냥 넘겨줄 생각은 없었다.
의심 받을 가능성도 가능성이었지만, 무엇보다 수류탄을 맞았는데 이쪽도 뭔가 얻는 게 있어야지.
생각을 끝낸 여명이 말했다.
“맨입으로요?”
알파 원의 눈썹이 휘어졌다.
“…그럼 맨입으로 내놔야지. 뭐, 위스키라도 한 병 주리?”
“그것도 좋죠.”
“….”
“근데, 이거… 눈치 없는 제가 봐도 꽤 가치 있는 증인인 것 같은데. 값 좀 더 쳐주시죠?”
“…하! 값? 이거 끄나풀이 아니라 상인이었네.”
딱히 불쾌하지는 않은지, 알파 원이 히죽 웃었다.
“그래, 뭘 주면 되냐? 참고로 물질적인 건 안 된다.”
“돈이나 영약은 필요 없습니다. 저는… 한 수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가르침? 뭔 가르침? 감히 나보고 교사를 해달라는 건 아닐 테고.”
여명은 웃으며 대답했다.
“저도 그런 건 바라지 않습니다. 그냥, 후배랑 대련 한 판 하시죠.”
“하!”
통했나? 여명이 알파 원의 무술을 훔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이, 갑자기 그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화산쇄설에 맞먹는 강렬한 마나를 느낀 여명의 몸이 저절로 긴장한 바로 다음 순간, 알파 원의 눈에서 붉은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여명을 향해서? 아니, 시체 사이에서 몰래 폭탄을 꺼내던 교단원을 향해서.
치이익!
안광에 맞은 교단원은 그대로 까맣게 타버렸다. 죽은 척해가며 버틴 것치고는 허무한 최후였다.
“대련 좋지.”
그렇게 말하는 알파 원의 눈에서는 아직도 안광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저것도 무술인가?
여명은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언제 하시겠습니까? 원하시는 날에 제가 맞추겠습니다.”
“위스키를 따랐으면 바로 마셔야지. 기자들 인터뷰 끝나면 윤성이랑 처음 만났던 가게로 와라.”
알파 원은 그런 말을 남기고 생존자를 챙겨 냉동실을 떠났다.
멀어지는 그의 등을 보던 여명의 귓가로 뒤늦은 경찰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
푸른 쥐 시드니 지부의 정보원, 카자 감자토프는 덜덜 떨며 술을 따랐다.
값비싼 18년 숙성 테네시 위스키가 출렁이며 잔을 채우길 잠시.
테이블에 앉은 뚱뚱한 백인 남자가 한마디 했다.
“쫄지 마쇼. 쥐새끼 양반.”
“….”
“푸른 쥐는 돈만 주면 제대로 협조하지 않나. 안 죽일 테니까, 아까운 술 흘리지 마.”
카자가 푸른 쥐 요원이라는 걸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말투. 카자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무, 물론입니다. 저희는 언제나 미국과 바람직한 협력 관계를….”
“그렇다고 아부는 하지 말고, 씨발. 위스키 맛 떨어지니까.”
“옙.”
카자는 즉시 입을 다물었다.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렀지만, 감히 티를 낼 수 없었다.
그는 알파 원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존재인지 알고 있었으니까.
선례를 생각해보면, 아마 지금쯤 호주에 있던 스파이나 첩보원들은 거의 다 죽었으리라.
이대로 도망치고 싶다는 욕망과 이런 놈을 끌어들인 여명을 향한 원망이 그의 가슴을 찌르는 사이, 알파 원이 탁! 소리나게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목숨 값으로 뭐 하나 물어 봅시다.”
“무, 무엇을 알려드릴까요?”
알파 원은 가게 구석,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는 네티와 시스를 가리키며 물었다.
“혹시 저 아가씨들 중에 윤성이 애인이 있소?”
“아뇨, 전윤성 학생은….”
알파 원은 그의 말을 끊었다.
“아니면 됐고.”
“….”
카자가 곧바로 입을 다물자 그대로 정적이 찾아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위스키의 향기가 뒤섞인 정적은 오래가지 않았다. 잔을 비운 알파 원이 또 질문을 꺼낸 덕분이었다.
“혹시, 윤성이가 게이인가?”
“…예?”
“뭘 되묻고 있어? 여자 말고 남자 좋아하냐고.”
카자는 농담인가 싶어 눈알을 굴리다가, 알파 원의 표정이 진지하다는 걸 깨닫고 곧바로 입을 열었다.
“그, 그건 아닐 겁니다. 아카데미에서 관심을 보이는 여학생이 있거든요. 그, 쇠미리라고….”
“쇠… 뭐? 이 세상에 쇠 씨가 어딨어? 가명 한번 멍청하게 지었군.”
“…그러게 말입니다.”
카자가 눈치껏 동의하자마자, 알파 원이 팍 눈살을 찌푸렸다.
“근데, 푸른 쥐가 학생들 연애사는 왜 알고 있어?”
“네?”
“시발, 니들은 사생활이란 것도 몰라?”
아니, 니가 물어봤잖… 카자가 속으로 비명을 지르려는 순간.
가게 문이 열리며 그의 구원자이자 원수가 돌아왔다.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은 전윤성과 천여명.
카자에게 심술을 부리던 알파 원은 고개를 돌려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었다.
“어, 늦었구나. 인터뷰는 잘했니?”
전윤성이 뒤통수를 긁으며 대답했다.
“예, 도와주신 덕분에 깔끔하게 끝냈습니다.”
“도움은 뭔, 마음에도 없는 소리 말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알파 원은 웃으며 전윤성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전윤성은 낯선 친척에게 용돈을 받은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당황과 기쁨이 반반 뒤섞인 표정으로 그의 친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렇게 두 사람의 인사가 끝난 직후, 알파 원은 여명을 바라봤다. 그리고 전윤성을 대할 때와는 전혀 다른, 시큰둥한 태도로 말했다.
“진짜로 대련할 거냐?”
“네.”
“팔 하나 날아가도 난 모른다.”
“그 정도는 각오했습니다.”
이번에는 뒤에 있던 희생양 자매가 놀랄 차례였다. 그녀들은 대련이란 단어가 나오자마자 휴대폰을 다다다- 두들겼다.
아마 세티에게 문자를 보내는 것이리라. 내용은 ‘형부가 미쳤어.’ 정도 되지 않을까.
뭐, 아무튼.
여명은 인벤토리에서 미리 꺼내놓은 검, ‘시리’의 손잡이를 만지며 말했다.
“장소는 어디로 하실까요?”
“뭐, 멀리 갈 거 없지.”
그렇게 말한 알파 원은 가게 밖, 아야톨라와 붉은 별이 만든 폐허를 바라봤다. 이제 막 복구 작업을 시작하는 그곳은 죽은 콘크리트의 무덤처럼 보였다.
여명은 조심스레 물었다.
“어… 괜찮을까요? 복구 작업 중인데, 호주 정부가…”
“호주 정부가 안 괜찮으면 어쩔 건데?”
“….”
그러게요. 어쩔까요. 여명이 속으로 뒷말을 삼켰다. 알파 원은 위스키병을 챙기며 히죽 웃었다.
“그리고 너… 이 싸가지 없는 새끼. 나랑 싸우면 주변이 개박살 날 거라고 확신하고 있구나? 아주 자신감이 넘쳐.”
“가진 게 그것뿐이라.”
“아, 그러면 내가 후배의 오만을 박살 내줘야겠군. 따라와라.”
그 말을 끝으로, 알파 원이 먼저 가게 밖으로 나갔다.
휘적휘적 술 취한 주정뱅이처럼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던 여명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시리의 손잡이를 꽉 쥐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만이 가득했으므로.
알파 원의 무술, 훔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