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419)
을 위한 세계는 없다-419화(419/817)
***
“또라이와 천재는 한 끗 차이다.”
희생양 자매의 막내, 이시스는 현 상황을 한 줄로 정리했다.
“목숨 아까운 줄 모른다는 점에서 둘이 비슷하긴 하지.”
바로 옆에서 듣고 있던 카자 감자토프는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으나, 그녀의 언니는 달랐다.
“이게 형부한테 못 하는 말이 없어.”
“난 형부라고 한 적 없는데?”
네티가 당돌한 막내의 귀를 잡고 흔드는 사이, 알파 원이 적당한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미사일이라도 떨어진 듯, 땅과 콘크리트가 깔끔하게 날아가 있는 폭심지.
여명 또한 알파 원의 가까운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넌 내 피부에 흠집 하나 못 낼 거다.]알파 원은 네티가 있는 자리에서 들릴 정도로 큰 목소리로 말하고는, 남은 위스키를 입에 다 털어 넣었다.
그에 비해 여명은 어떠한 말도 없이 천천히 검을 뽑았다.
아름다운 검이었다. 폐허를 비추는 전등을 따라 은은한 붉은빛이 감도는 게, 여간 고급스러운 게 아니었다.
“저 검이 시리인가. 생각보다 더 이쁘네.”
“…시리랑 안 닮았는데.”
애써 부러움을 숨긴 말투. 막내는 킥킥거리며 말을 받았다.
“형부가 받은 예물이 저거 하나도 아닌데 왜 심술부려.”
“…예물은 뭔, 칼이 예물이냐?”
“딸 좀 잘 봐달라고 주는 선물이 다 예물이지 뭐.”
“….”
이년이 뭐라는 거야. 네티의 눈썹이 휘어지기 무섭게, 막내가 덧붙였다.
“엘프 아빠는 싸우는 법을, 성물지기는 칼을… 형부는 유독 저런 예물만 받는 것 같기도 하고.”
“….”
그러면 세티 언니는? 무슨 예물을 줬더라?
네티의 머리로 그런 질문이 떠오른 순간, 막내가 선수를 쳤다.
“그래도 우리 언니가 가장 낫다. 장인어른이랑 원수의 모가지를 예물로 줄 거잖아?”
“…그렇게 말하면 우리 언니가 또라이 같잖아.”
“또라이와 천재는 한 끗….”
그때, 형부가 알파 원을 향해 뛰어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검과 위스키병이 충돌했다.
!!!
첫수부터 어마어마한 충격이 주변을 강타했다. 바닥에 굴러다니던 돌조각이 잠깐 떠오를 정도.
‘처음부터 전력?’
네티는 오랜만에 보는 형부의 실전을 보며 숨을 삼켰다. 막내와 카자, 그리고 멀찍이 떨어진 전윤성 마찬가지였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린 순간.
여명의 검에서 번쩍-! 별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혜성검. 눈이 아플 정도로 번쩍이는 검기가 위스키병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그러나 알파 원은 느긋했다. 혜성검만큼 강력한 무술을 펼치려고? 아니, 그는 맨손으로 혜성검을 붙잡았다.
“…검기를 맨손으로?”
네티가 기겁은 했으나, 알파 원의 기행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아예 검기가 쏟아지는 검을 맨손으로 붙잡더니, 그대로 바닥에 내던졌다.
여명은 놀라지 않고 공중에서 자세를 다잡았다.
혜성검 사이로 다른 검기가 피어오르는 걸 보니 위력을 늘리려는 생각으로 보였지만, 알파 원은 한 번 얻은 주도권을 내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거의 날아가듯 여명에게 달려들었다. 붉은 검과 알파 원의 맨손이 빠르게 충돌했다.
검과 맨손이 부딪힐 때마다 충격과 함께 번쩍번쩍 불씨가 튀었다. 누가 봐도 여명이 밀리는 모습.
그걸 본 네티는 불현듯 알파 원의 별명 중 하나가 무적의 남자라는 걸 떠올렸다.
한 번도 상처를 입은 적이 없어서 지어진 별명이었는데, 그게 설마 맨손으로 검기를 받아치는 수준일 줄이야.
‘저게 사람이야?’
네티가 주먹을 꽉 쥐는 순간, 알파 원이 검을 피해 형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저 뚱뚱한 몸으로 저럴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교한 몸놀림.
알파 원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형부의 허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들어 올려…
땅에 메다꽂았다.
신묘한 무술도 뭣도 아닌 전통적인 레슬링의 메치기. 하지만 이어지는 충격은 상식 밖이었다.
쾅 – !
여명의 머리가 충돌한 땅이 비명을 질렀다.
초인이라도 머리가 통째로 으스러질 충격이었으나, 알파 원은 멈추지 않고 여명의 다리를 잡아 반쯤 무너진 빌딩을 향해 집어 던졌다.
콘크리트 벽이 움푹 파이며 먼지가 터져 나왔다. 막내가 무의식적으로 비명을 삼키는 가운데, 네티는 다른 의미에서 긴장했다.
‘여기서 주가시빌리를 쓰시면 안 되는데.’
주가시빌리를 쓰면 저런 충격이야 가볍게 넘길 수 있겠지만, 빨갱이로 몰리는 건 필연이었다.
다행히 콘크리트 먼지에서 모습을 드러낸 형부는 주가시빌리를 두르고 있지 않았다.
찢어진 이마와 입술 사이에서 피가 흐르고, 옷이 너덜너덜해지긴 했지만, 그 정도는 기본 재생력으로도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수준.
어떻게? 질문을 떠올리던 네티는 금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형부의 몸 주변에서 흩날리는 깃털과 움푹 파인 콘크리트 벽.
그 짧은 순간, 형부는 흑익류와 염동력을 펼쳐 몸을 보호한 것이다. 충격을 다 줄이진 못했으나 임기응변으로는 차고 넘쳤다.
마법까지 쓰시는 걸 보면, 그래도 그냥 지지는 않으시겠구나.
네티가 안도의 한숨을 쉬건 말건, 형부는 갑자기 손가락을 들어 알파 원에게 무어라 말했다.
귀에 마나를 모아봤지만, 너무 먼 탓인지 무슨 내용인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알파 원의 표정이 당황, 분노, 그리고 미소로 이어지는 걸 보니 그다지 재밌는 말은 아닌 게 확실했다.
그 이후로도 짧은 대화가 이어졌다. 그리고 대화에 비례해, 알파 원의 마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대체 무슨 말을 했길래 저런 반응을….”
궁금증을 참지 못한 막내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순간.
알파 원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
시간을 조금 돌려, 여명이 콘크리트 벽에서 걸어 나온 직후.
“목에.”
먼지를 턴 여명은 알파 원을 가리키며 말했다.
“상처가 나셨습니다.”
알파 원은 반사적으로 목에 손을 가져갔다. 그의 손가락 끝이 선명한 붉은 색으로 물들었다.
“….”
대단한 상처는 아니었다. 초인이라면 채 1분이 되기도 전에 아물어버릴, 그런 상처.
하지만 피부에 흠집 하나 내지 못할 거라는 말에 반박하기엔 충분한 상처이기도 했다.
“어이가 없네.”
알파 원은 아주 오랜만에 당황이란 감정을 느꼈다. 당황의 뒤를 따라 익숙한 분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이없는 미소가 따라왔다.
“어이가 없어. 사람 보는 눈이 이래서야. 정말로 주정뱅이가 다 됐군.”
무적의 남자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부터 제대로 해주마.”
그의 목에 상처를 낸 애송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언의 긍정.
알파 원은 사납게 웃으며 마나를 끌어모았다.
그리고… 번쩍!
어마어마한 빛과 함께 그의 외모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수염이 가득한 얼굴이 얇아지고, 몸 곳곳에 근육들이 맥동하며 술배가 선명한 복근이 되었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너저분한 옷이었다. 청바지는 푸른 전신 전투복으로, 체크무늬 셔츠는 붉은 망토가 되어 그의 어깨에 매달렸다.
그렇게 빛이 사라진 자리에 서 있는 건 금발의 뚱뚱한 레드넥 주정뱅이가 아니라, 아름다운 근육을 자랑하는 흑발의 백인 미남이었다.
그래, 저것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알파 원의 진짜 외모였다.
어느 쪽이 진짜 모습일까? 여명은 가볍게 몸을 푸는 알파 원을 보다가 문뜩 이런 질문을 꺼냈다.
“이제 쫄쫄이는 안 입으세요?”
“뭐…? 미안하지만 난 쫄쫄이 같은 거 안 입는다. 그건 코믹북 작가가 만든 설정이야.”
“아, 그런 설정이군요.”
“….”
그런 설정? 어딘가 중의적인 대답이었으나, 알파 원은 신경 쓰지 않았다. 여명이 무수한 얼음송곳을 만들어낸 까닭이었다.
하나, 둘, 열, 스물, 마흔…
순식간에 허공을 빼곡히 채우는 얼음송곳들. 알파 원은 별다른 감흥 없이 물었다.
“갈림길이라… 너도 한국에서 만든 혼혈 괴물 같은 거냐?”
너도? 여명은 허공에 띄운 얼음송곳을 일제히 그에게 겨누며 대답했다.
“아닐… 겁니다. 아마도.”
“그래? 너도 확신은 못 하나 보군.”
“….”
“뭐, 네가 미국 출신도 아니고, 이 상황에서 중요한 건 아니니… 다시 시작해볼까?”
여명은 대답 대신 얼음송곳을 날렸다. 일제 공격이 아닌 시차를 두고 급소를 노리는 공격.
이번에도 몸으로 때울까? 아니면 무술을 꺼낼까.
안타깝게도, 여명의 예상은 모두 틀렸다. 알파 원은 그를 향해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다음 순간, 그를 향해 날아가던 수십 개의 얼음송곳이 터졌다. 그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백 개의 얼음송곳 또한 마찬가지였다.
!
얼음송곳을 버리고 몸을 날린 여명은 아슬아슬하게 보이지 않는 폭발을 피했다.
시드니의 첩보원들을 죽이던 기술. 여명은 그 기술의 정체를 깨닫고 눈을 크게 떴다. 저건 무술이 아니었으니까.
‘마법?’
깨달음은 짧았고, 행동은 빨랐다. 알파 원이 연달아 그를 향해 손가락을 튕긴 까닭이었다.
딱, 딱, 딱!
보이지 않는 폭발은 계속 그를 쫓아왔다.
공중에서 얼음송곳과 비각술을 이용해 아슬아슬하게 폭발을 피하던 여명은 자세를 바꿔 알파 원을 향해 내달렸다.
이대로 방어만 하면서 끝낼 수는 없지.
그런 여명의 생각을 증명하듯, 그의 검에는 적어도 네 개의 다른 검기가 서려 있었다.
혜성검과 구궁검의 검기를 겹쳐 목에 상처를 입혔으니, 네 개라면 피부를 찢어발기기에 충분하리라.
알파 원 또한 그것을 눈치챘는지, 손가락을 튕기는 걸 멈췄다. 바로 다음 순간, 그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삐이이 – !
붉은 광선과 검기가 충돌하며 고주파 같은 굉음이 터져 나왔다. 검을 든 여명의 손이 익어버릴 정도로 가공할 열은 덤이었다.
그나마 이건 무술이었다. 훔칠 수 있을까? 여명은 그의 마나 운용을 느끼기 위해 더 접근했다.
시선만 피하면 그만인 광선이라, 피하는 건 어렵지 않-
여명이 그런 생각과 함께 광선을 쳐낸 순간, 그의 뒤로 날아간 광선이 갑작스레 궤도를 바꿨다.
그것도 넓은 포물선이 아니라, 마치 샤프슈터의 총알처럼 지그재그, 칼 같은 각도로.
‘샤프슈터의 응용 무술이었어?’
여명은 기겁하며 공세를 멈추고 뒤에서 날아오는 광선을 막았다.
아슬아슬하게 몸이 꿰뚫리는 건 면했지만 충격에 균형을 잃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짧은 빈틈은 치명적이었다.
따악.
알파 원이 손가락을 튕겼고, 보이지 않는 폭발이 그대로 여명을 직격했다.
옷이 찢어지는 것과 동시에 우웩- 속이 통째로 뒤집어지며 피가 역류했다. 혈관이 비명을 지르고, 치솟는 고통에 정신이 아찔할 정도였다.
‘뭐 이딴 마법이 다 있어.’
맞아보니 알 수 있었다. 이건 얼음이나 불덩이를 만드는 전통 마법과는 근본부터가 다른, 문자 그대로 살인을 위한 마법이었다.
그나마 그의 몸뚱이가 단단한 덕분에 폭발을 면했을 뿐. 여명은 이를 악물고 땅에 착지한 뒤,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딱, 딱, 딱.
여명은 그대로 알파 원의 마법과 광선을 피해 그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간격이 검의 간격보다 가까워진 시점에, 검기를 폭발시켰다.
쩌엉 – !
알파 원은 이번에도 맨손으로 검기를 막아냈다. 마나가 듬뿍 담긴 주먹과 검이 춤을 추고, 서로 손뼉을 치듯 충격파를 뿜어냈다.
손을 타고 올라오는 찌르르한 충격. 여명은 주가시빌리를 쓰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눌렀다.
알파 원에게서는 살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애초에 그도 진심이 아니라는 뜻.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런 기회를 그냥 놓칠 생각은 없었다.
여명은 단 한 번의 칼질로 주먹과 초 근거리 광선을 쳐낸 뒤, 비각술을 휘둘러 알파 원의 가슴을 후려쳤다.
!
발 끝에서 느껴지는 건 뼈와 살을 차는 감각이 아니었다. 마치 탱크를 두들기는 듯한 감각.
그건 파순의 마리지천신공처럼 마나로 갑옷을 입는 무술과 달랐다. 아니, 애초에 무술은 맞나?
이게 대체 뭐야? 변신 덕분인가??
의문과 함께 이어진 공방은 길지 않았다. 알파 원이 갑자기 하늘로 날아올랐으므로.
점프? 아니, 그는 문자 그대로 날았다.
“….”
망토를 휘날리며 내려다보는 얼굴을 마주하고 나서야, 여명은 알 수 있었다. 저건 무술도 마법도 아니라는 걸.
‘신성….’
성녀가 축복으로 육체를 강화하는 것과 똑같은 방법. 문제는, 그에게 힘을 내어주는 존재가 무엇이냐는 점이었다.
다섯 신의 축복을 상회하는 힘을 내어줄 수 있는 고차원적 존재라니, 대체 뭐 하는 놈이야?
여명은 굳이 질문하지 않았다. 아마 알파 원도 대답하지 않으리라. 지금 중요한 건 두 사람의 대련뿐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여명이 검을 강하게 쥐는 순간, 알파 원이 강하했다.
쉬이익-! 가속도와 낙하 에너지, 그리고 어마어마한 축복이 뒤섞인 주먹이 다가왔다.
대응법을 고민할 시간도, 피할 속도도 없었다. 여명은 반사적으로 주와이외즈를 뽑아내 주먹과 맞부딪혔다.
!!!
주먹을 막아낸 여명의 다리가 움푹, 바닥에 처박혔다. 주와이외즈를 보고 놀랄 만도 하건만, 알파 원은 멈추지 않고 주먹을 연타했다.
식은땀조차 기화시키는 불길과 그런 불길조차 가르는 주먹.
쾅, 쾅! 한참을 두들긴 알파 원은 방법을 바꿨다.
마치 망치처럼 하늘로 솟구치더니, 또다시 낙하하며 주먹을 내려찍었다.
그리고 그 주먹을 막는 여명은 나무판 위의 못처럼 점점 더 땅에 처박혔다. 발을 뽑아 자세를 바꾸려 했으나, 그때마다 눈깔 광선이 그의 몸을 막아섰다.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계단에서 마주한 가짜 변경백이 순수한 무술 하나로 정점에 이른 자였다면, 눈앞의 알파 원은 인간에게 허락된 모든 능력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괴물이었다.
만약 주가시빌리를 비롯한 모든 능력을 사용한다면…
마지막까지 주가시빌리를 참아낸 여명의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쾅! 마침내 그의 허리까지 땅에 처박히고 말았으니까.
허리를 틀 수 없으니 검을 휘두르는 것도 무리였다.
알 파원은 땅에 반쯤 파묻힌 여명을 향해 천천히 내려오더니, 팔짱을 끼고 물었다.
“뭔가 배운 게 있나? 있으면 좋겠군.”
여명은 대답하지 않고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알파 원이 뭐라 입을 꺼내려는 찰나.
그의 오른쪽 눈동자가 붉게 물들며 얇은 광선을 발사했다. 어찌나 발동이 빠른지, 알파 원이 다 피하지 못하고 볼에 화상을 입을 정도였다.
물론, 다르게 말하면 얼굴을 꿰뚫는 데 실패했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윤성이와 비슷한 과였나.”
알파 원은 볼의 상처를 재생시키며 말했다. 무술을 도둑질당했다는 분노는 없었다. 그는 오히려 먹이를 찾은 맹수마냥 눈썹을 모았다.
“진의를 모르는 이상, 양쪽 눈에서 동시에 쏘는 건 어려울 거다.”
“예, 그렇더군요.”
사실은 두 눈에서 쏘려고 했다는 뜻이 담긴 말. 알파 원은 피식 웃으며 여명의 모가지를 잡아 땅에서 뽑아냈다.
후두둑- 흙먼지와 함께 당근처럼 뽑혀 나온 여명은 그대로 바닥에 대자로 뻗었다.
체력도 체력이었지만, 땅에 처박히는 과정에서 으깨진 다리뼈가 아직도 재생되지 않은 까닭이었다.
여명은 헐떡이며 말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래, 뭐. 고생했다.”
그렇게 말한 알파 원은 그대로 고개를 돌려 폐허 저편을 바라봤다.
얼굴을 일그러트린 채 구경하는 군인들과 성검, 그리고 달려오는 희생양 자매와 전윤성이 보였다.
재밌는 광경이었다. 적어도 그가 보기엔.
“임무도 끝났고… 오랜만에 재밌었다. 네가 멍청한 질문을 해도 하나 쯤은 들어줄 수 있을 정도로 재밌어. 애송아, 뭐 질문할 거 있나?”
그러자 여명이 숨을 헐떡이며 대답했다.
“뭐… 조언해주실 거 없습니까?”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라고 부모님께서 가르치시디?”
“…제가 고아라서요.”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는지, 알파 원은 망토를 휘날리며 껄껄 웃었다. 그리고 저 멀리서 희생양 자매의 발소리가 들릴 때쯤.
그가 가볍게 말했다.
“몸에 익은 기술들은 종종 생각보다 앞서서 튀어나오지. 본능의 영역이라서? 아니, 그냥 그게 편해서 그래.”
“….”
“너는 너무 편하게 쓴다. 무술이건, 마법이건. 가진 것도 많은 놈이… 앞으로는 좀 불편하게 써라.”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알파 원 또한 대답을 바라지 않았다.
그렇게 그가 뒷짐을 지고 밤하늘을 바라보는 사이, 다가온 전윤성이 말했다.
“저기, 여명은….”
알파 원은 보란 듯 여명을 바라봤다. 그는 잠든 것처럼 편안히 눈을 감고 있었다.
“깨어날 때까지 건드리지 말고, 내버려 둬.”
“….”
그제야 여명이 무슨 상태인지 직감한 전윤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파 원은 그대로 허공으로 떠오르다가, 불현듯 입을 열었다.
“윤성아, 근데, 혹시… 이 새끼 게이냐?”
갑작스러운 질문이어서 그랬을까, 전윤성은 잠시 뜸을 들인 뒤 대답했다.
“아뇨. 제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난봉꾼입니다.”
“그래? 죽이지 않길 잘했군.”
“…?”
“윤성아, 이 녀석과 친하게 지낼 필요는 없지만, 인연 정도는 유지해 둬라, 언젠가 네게 쓸모가 있을 거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기도 전에, 알파 원은 호주군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