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440)
을 위한 세계는 없다-440화(440/817)
EP.440 조연의 계보 (6)
* * *
“다 늙어서 뭐 하는 짓인지.”
한참 동안 카레닌과 드잡이질을 벌인 끝에 승리한 마탑주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여명은 지팡이에 머리를 맞은 괴수와 그를 번갈아 보며 어이없는 기분을 느꼈다.
조금 전까지 그를 몰아붙였던 마법사가 저따위로 행동해서? 아니, 마탑주의 상처가 그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재생된 까닭이었다.
그처럼 타고난 재생력이 뛰어난 케이스일까? 아니면 괴수의 재생력을 옮겨 받은 덕분일까.
어느 쪽이건 여명의 틈을 노리기에 충분한 수였으나, 그는 허무할 정도로 패를 내보였다.
가장 허무한 건, 그가 숨겨둔 패를 꺼내놨다는 의식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마탑주는 발버둥 치는 카레닌을 깔아뭉갠 채로 말했다.
“아무튼, 우리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소소하게 이런저런 이야기가 더 있긴 하지만, 긴 이야기를 싫어한다니 넘어가고….”
“….”
“이제 네 차례구나. 대답해다오. 플레이어를 죽이고, 용사의 무술을 익힌 넌 대체 누구냐?”
여명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총구를 겨눈 채 고민했다.
그냥 다 죽일까? 아니면 조금 더 대화해볼까.
둘 다 나름의 장점이 있었다. 마탑에서 마탑주를 죽이는 건 여러 골치 아픈 문제로 이어지겠지만, 죽음은 그 자체로 많은 문제를 예방하는 법이었으므로.
하지만 전 씨 부자의 예처럼, 그는 많은 상황에서 살인보다는 살리는 쪽을 택해왔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었지만, 굳이 지금 이 노인네를 죽일 이유가 있을까?
짧은 고민, 그보다 짧은 해답, 무거워지는 손가락.
여명이 설명을 위해 입을 열기 전에, 세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여명에 관한 이야기는 못 해드려요.”
“그런가?”
마탑주는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살짝 기대하는 얼굴로 덧붙였다.
“그러면 부디, 총이 아니라 용사의 무술로 끝내주게.”
“….”
“왜 그런 눈으로 보나? 기왕이면 멋진 걸로 죽는 게 낫지.”
그에게 깔린 카레닌이 ‘제발 좀 닥쳐’ 라고 중얼거리며 발버둥 쳤으나, 마탑주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는 여명의 총구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협상할 의사가 없는 건 아니네만, 솔직히 자네가 누군지, 그리고 뭘 원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 이상 정보를 주는 건… 멍청한 짓이지. 누가 알겠나? 자네가 사실 우리가 막으려는 에케모보다도 더 한 거악일지.”
“…쟤는 용사야! 이 등신아!”
카레닌이 버럭 고함쳤으나, 마탑주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주인공은 아니지. 게다가 한국인이고… 뭐, 좋게 좋게 생각해. 좋은 사람이라면 우리를 죽이고 알아서 에케모의 지랄을 수습할 테고, 나쁜 새끼라면 우리가 여기서 입 다물고 죽는 게 나을 테니까.”
“너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그리고 그걸 다 말하면 무슨 의미가 있어?!”
마탑주는 대답하지 않고 여명을 빤히 바라봤다. 여명은 어이가 없다는 듯 총을 내렸다.
“…마법사들의 혓바닥이란. 발막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따로 논변이라도 배우시는 겁니까?”
“가기 전에 얼굴에 금칠 해줄 필요 없네. 발막과 아는 사이냐고 떠볼 필요도 없고.”
그렇게 말한 마탑주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목을 겨눴다.
“총 말고, 검으로.”
아니, 왜 내가 끌려 다니는 거 같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여명은 총을 회수하고 팔짱을 꼈다.
“음? 안 할 건가?”
마탑주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여명이 아닌 세티에게 나왔다. 내키지 않는 여명의 표정을 본 까닭이었다.
짧은 눈 맞춤. 그녀는 여명을 향해 무언의 허락을 구했다. 여명은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르신들, 그러면 여명 말고, 제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아가씨 이야기를?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다 들으시면 자연히 알게 되실 거예요. 저희에게 부탁하려면 뭘 제안해야 할지, 그리고… 겸사겸사 한국 편이 아니란 것도.”
세티는 마지막 확인을 하듯 슬쩍 여명을 바라봤다. 그는 그대로 검을 집어넣고 물러났다. 어떤 대답보다도 확고한 행동.
그제야 세티는 조금 풀어진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제 이야기는… 한국이 철혈의 아이들 프로젝트 정보를 손에 넣으면서 시작됐습니다.”
***
마탑의 처형관, 발막은 조용히 히라리아의 하늘을 바라봤다.
드높은 하늘은 지구의 그것과 달리 쾌청하고 아름다웠다.
공장의 매연도, 하다못해 자동차 배기 가스조차 겪어보지 못한 하늘.
그러나 저 하늘이 이 땅의 순수함을 증명하지는 못했다. 약함이라면 또 모를까.
근대 이후 더러운 하늘은 강대국의 상징이었으며, 승자의 상징이었다.
미국, 소련, 한국, 하다못해 일본까지… 오랫동안 지구를 돌아다닌 그가 보기에, 저 맑은 하늘은 근대화에 실패한 결과물일 뿐.
…의미 없는 생각이 이어지던 그때, 기다리던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마스터 발막. 기다리게해서 미안하다.”
그를 부른 건 거대한 철문 너머에서 다가오는 노인이었다.
마탑주만큼이나 나이 많은 노인. 안내원을 하기에는 너무나 늙은 자였지만, 그는 꾸역꾸역 철문을 열었다.
“따라오렴.”
노인은 앞장서서 발막을 이끌었다. 철문 너머에는 마탑과 달리 드높게 솟은 빌딩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구인들은 초고층 주상 복합이라고 부를 건물.
올 때마다 화려한 장식들이 추가되는 빌딩 입구로 다가가자, 복잡한 보안 체계가 그를 빤히 바라봤다.
살아있는 갑주와 움직이는 동상, 그리고 지구에서나 볼법한 무장 감시 카메라까지.
발막이 총기와 연결된 카메라를 빤히 바라보자, 앞서가던 노인이 말했다.
“한국에서 보내준 물건이야. 어르신들께서 마음에 들어 하시더군.”
“…총기를 무서워하시는 줄 알았는데요.”
“그런 시절도 있었지.”
지금은 아니란 건가? 하긴, 수십 년은 공포를 잊기에는 충분히 긴 시간이었다. 하물며 이제는 총을 쥔 녀석들과 같은 편이 되지 않았나.
비웃음 섞인 생각을 속으로 삼키길 잠시.
노인과 발막은 주상 복합 내부, 비단 카펫이 매끄럽게 깔린 복도를 가로질렀다. 복도는 양쪽 벽면은 물론이고 천장조차 화려한 벽화와 그림들로 빼곡했다.
하나하나가 값비싼 물건들이었다. 개중에는 모나리자나 고흐의 해바라기 같은 지구 거장들의 그림들도 있었다.
아마 대부분은 모조품이겠지만, 발막은 저것들 중 일부는 진품이라고 확신했다.
늙은이들의 탐욕은 상상을 초월하는 법이었으니.
“어르신들께서 화가 많이 나셨단다.”
그림을 살피던 발막을 향해, 앞서가는 노인이 말을 걸었다. 발막은 그를 바라보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
“왜요, 제가 일본에 가지 않아서요?”
“잘 아는구나. 네가 그릇, 그 아이를 아끼는 건 알지만… 이번에 스미토모 그룹과 걸린 거래가 얼마인지 알고 있니?”
“아뇨, 사업 부분은 제가 잘 몰라서요.”
“계약금만 수천만 달러란다. 어르신들이 이 거래를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데… 하필 이런 때 멋대로 히라리아 바깥으로 나가다니. 자칫하면 항명으로 보일 수도 있는 행동이었어.”
항명이라. 발막은 그제야 노인의 등을 바라봤다. 마음만 먹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머리통을 터트려버릴 수 있는 거리.
그는 손바닥을 쥐락펴락하며 생각해봤다. 이 노인네를 죽이면 어르신들이 어떻게 나올까.
상상만으로도 재밌었지만, 그는 굳이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 사건을 일으키는 건 굳이 지금 그가 아니라도 충분했으니까.
그렇게 인내심을 삼키며 얼마나 걸었을까?
두 사람은 화려한 황금빛 문 앞에 서게 되었다. 노인이 과장된 자세로 문 앞에 서자 문이 드드륵-소리와 함께 열렸다.
내부는 문 만큼이나 화려했다.
번쩍이는 보석과 상아로 치장된 벽과 천장은 눈이 아플 정도였고, 방 한가운데 놓인 황금 원탁은 실제로 눈이 아팠다.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건 따로 있었는데, 원탁 뒤편 벽면에 주욱 늘어선 초상화들이었다.
마탑 계단에 설치된 초상화와 닮았으되, 훨씬 화려한 테두리와 장신구로 둘러싸인 초상화.
몇 번을 봐도 노골적인 초상화란 말이지.
발막은 구토가 올라오는 걸 참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직후, 그를 이끌고 온 노인이 외쳤다.
“어르신들! 마스터 발막이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말한 노인은 멋들어진 예법으로 인사하더니 그대로 방을 떠났다.
그렇게 홀로 남은 발막이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기를 잠시.
드르르-원탁의 의자가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인기척이 느껴졌다. 발막은 인기척이 다섯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이윽고 다섯 명의 인기척이 원탁에 가득 찼을 무렵, 누군가 발막을 향해 말했다.
[마스터 발막, 청색 처형관이여. 사죄를 위해 돌아왔나? 아니면 보고를 위해서인가?]사죄는 니미 씨발 산송장 새끼가.
발막은 속으로 마음껏 욕을 한 뒤 입을 열었다.
“둘 다입니다.”
냉소적인 그의 목소리에 담긴 내용이 마음에 든 걸까, 원탁 위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나 같이 늙고 탐욕스러운 웃음소리였다.
곧이어, 누가 말한 건지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방을 징징 울렸다.
[좋다. 그대의 사과와 보고, 모두 허락하마. 무엇부터 하겠느냐?]발막은 조금 더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일그러지는 표정을 숨기며 생각했다.
엿 같은 원로 새끼들.
그는 저들을, 특히 저런 태도를 싫어했다. 자신들이 머리 위에서 허락한다는 듯한 귀족적이고 고압적인 태도.
전대 마탑주 사비나는 물론이고, 현 마탑주 토마시와 싸우는 게 두려워 마탑주 자리를 포기하고 이런 곳에 처박힌 쓰레기들 주제에.
발막은 들끓는 살기를 참기 위해 어금니로 볼을 씹었다. 피 맛을 보자 정신이 선명해졌다.
지금은 아니다. 그래, 그들을 죽이는 건 적어도 그가 해선 안 되는 일이었다.
그건 그릇, 그 아이와 두메아 가문의 권리였다. 그에게 허락된 권리는 처형대의 맨 앞자리뿐.
가까스로 자신을 위로한 발막이 말했다.
“사과의 말씀부터 올리겠습니다.”
[허한다.]“저는 스미토모 야타로의 경호가 얼마나 중요한지, 관련된 사업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도 모르고 멋대로 그릇을 마중하러 나갔습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한국 정부와의 트러블을 일으켰으며….”
그의 말이 길어지기 전에, 다른 늙은 목소리가 그를 멈췄다.
[그만.]“하오나….”
[그만하라 했다. 발막. 너의 실수로 인해 얼마나 큰 피해가 일어났는지도 정확히 모르지 않느냐? 그런데 무슨 사과란 말인가?]“….”
[스미토모 야타로에게는 사과의 의미로 이미 적색 처형관을 보냈다. 마음 같아서는 마탑주를 보내고 싶건만… 토마시 그 미친 것은 원로원의 말을 존중하는 법을 모르지.]당연한 소리를. 현 마탑주는 결투… 하다못해 술 대결이라도 하지 않으면 설득할 수 없는 위인이었다.
[크흐음, 어쨌거나. 적색이 올림피아 기간 동안 야타로를 호위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 정부와는 아직 협상 중이지만, 네까짓 게 해결할 수 있는 범위는 아득히 벗어날 터.]발막은 고개를 들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또 다른 원로가 말했다.
[네가 가져온 보고가 그만한 가치가 있기를 바라지. 마스터 발막.]짧은 침묵.
침묵이 화려한 방의 장식들 사이사이로 흘러내릴 때쯤, 발막은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릇이 최근 급격하게 성장한 이유를 알아냈습니다.”
[정말인가?]“예, 함께 오는 열차 안에서 여러 비밀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원탁의 노인네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럴 만도 했다. 그릇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늙은이들이 보기에도 최근 그릇의 성장은 비정상적인 면이 있었으니까.
노인 중 하나가 다급하게 물었다.
[우리의 예상대로 그녀가 아카데미의 기연을 독점한 건가?]당장이라도 빼앗고 싶다는 탐욕이 담긴 목소리. 발막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었습니다. 그릇이 강해진 건, 새로운 스승 때문이었습니다.”
거짓과 진실이 섞인 대답을 듣자마자, 원로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소리쳤다.
[스승? 스승이라고? 누구? 설마 가단인가?] [가단, 그 반푼이가 무슨 수로? 아직도 지구인 여자 뒤나 따라다니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러면 미켈레겠군. 그자가 아니라면 누가 감히 마탑의 물건을 탐내겠는가?] [어쩌면… 양키일지도 모르지 아니, 분명 양키들이 냄새를 맡은 거야. 분명해! 제기랄,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그릇은 마탑에서 키워야 한다고! 토마시 그 또라이 새끼가 아카데미로 보내자고 우겼을 때 막아야 했다고!]노인네들이 한참 동안 북 치고 장구 치며 언성을 높이는 동안, 발막은 거짓말을 떠올렸다.
그릇이 히라리아에 있는 동안 조금 더 안전하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도와줄 그런 거짓말.
그리고 그가 그런 거짓말을 떠올릴 무렵, 다시 방에 침묵이 돌아왔다.
조용한 긴장이 물결처럼 일렁거리며 발막을 둘러쌌다. 노인들은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마스터 발막. 그릇을 가르친 스승이 누군지 말하라.]“이름은 저도 듣지 못했습니다.”
[이 쓸모없는… 아니, 그러면 다른 건 들었단 이야기겠지?]발막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로들이 그에게 고개를 내미는 게 느껴졌다. 그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전전대 마탑주, 마하간님의 진전을 이은 자입니다.”
[…!]이번에는 충격이 뒤섞인 침묵이 방을 강타했다.
“예, 그릇이 그분의 얼음 학파 마법을 익히고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또다시 침묵. 자신의 거짓말이 잘 먹혔다는 걸 확신한 발막은 웃었다.
웃으려 했다.
하지만 이어진 노인네들의 목소리는 그의 웃음을 싹 거둬가버렸다.
[당장 확인해야겠다. 마하간의 머리를 꺼내!]“…?”
마하간의… 뭐?
발막이 고개를 들자, 황금 원탁에 앉은 노인 중 하나가 아공간을 열고 있었다.
보석이 가득 박힌 화려한 로브를 입은 노인네들은 체통이고 뭐고 잊은 채 아공간 속에서 거무튀튀한 상자를 꺼내더니, 그 속에서 미라화된 머리통을 끄집어냈다.
머리통 달린 수염을 본 발막은 숨을 죽였다. 저건 진짜 마하간의 머리였으니까.
전전대 마탑주의 머리를 미라로 보관하고 있었다고?
아무리 타락했어도 이렇게까지 타락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한 발막이 당황하건 말건, 원로들이 재빨리 주문을 외웠다.
네크로맨서들처럼 뒤틀린 마나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죽은 자의 시체에 질문하는 금지된 마법.
그 마법이 무슨 결과를 불러올지 깨달은 발막이 눈을 굴리는 사이, 주문이 완성되었다.
[마하간! 혁명을 허락하고, 제자에게 살해당한 어리석은 영혼이여! 마탑의 위대한 원로로서 묻겠다! 너의 제자가… 아니, 아니지. 너의 가르침이 그릇에게 이어지고 있느냐?]그건 빠져나갈 여지조차 없는 완벽한 질문이었다.
발막이 슬그머니 마나를 끌어 올리고, 원로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머리통에 집중한 바로 다음 순간.
미라화된 머리통의 입이 쩌적-열리며 대답했다.
[그렇다.]***
세티의 이야기가 끝난 직후, 반응은 셋으로 갈렸다.
“그런 스토리는 없었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는 카레닌.
“너, 너도… 나랑 비슷하게 태어났….”
미처 모르던 비사를 듣고 놀라움을 숨기지 못하는 그릇, 그리고…
“용사, 자네는 그, 뭐냐, 실험실 출신 여자를 좋아하는 건가?”
여명을 향해 헛소리를 내뱉는 마탑주까지.
“괜히 말한 거 같은데?”
벌써부터 피곤을 느낀 여명이 세티를 향해 말하자, 그녀가 피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방아쇠를 당기듯 꿈틀거리는 검지.
너무나 뻔한 제스처였기에, 여명은 곧바로 인벤토리에서 총을 꺼내 그녀의 손에 쥐여 줬다.
기관단총을 받아 든 세티는 철컥-부드럽게 안전장치를 풀고 마탑주와 카레닌을 겨눴다.
“자, 이제 제안해보세요. 마음에 드는 조건이라면 도와드릴게요.”
마탑주는 총구를 보며 물었다.
“…그 총은 뭔가 아가씨?”
“협상 도구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마탑주는 곧바로 카레닌을 바라봤다.
“그렇다는데?”
그러자 카레닌은 괴수답지 않은 애처로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만든 케이크도 협상용이었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