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447)
을 위한 세계는 없다-447화(447/817)
EP.447 참을 수 없는 (5)
* * *
***
“…내가 말했지? 웃긴놈들이라고.”
심각해진 분위기를 풀려는 듯, 발막이 가볍게 농을 던졌다.
하지만 여명이 강제로 상자 뚜껑을 열자, 그도 웃음을 유지할 수 없었다.
오랫동안 닫혀있던 상자 안에는 온몸의 피가 다 빨린 듯 바짝 마른 사람의 시체가 들어있었으므로.
“이건 또 무슨…?”
자세히 보니, 시체에는 또 다른 특징이 있었다. 심장이 있어야 할 자리가 뻥 뚫려있다는 것.
왜 이렇게 불길한 시체를 보관하고 있는 거지? 그것도 나치 심볼이 선명한 상자에 담아서.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발막이 의문을 삼키는 사이, 여명과 세티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상자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전대 용사 파티가 쓰러트린 나치 잔당의 상징, 마왕이 된 히틀러, 그리고 심장이 사라진 시체.
그 모든 것들이 하나의 가설로 이어지는 까닭이었다.
혹시나, 설마, 아무리 그래도 아니겠지-라는 생각으로 수십 개가 넘는 상자를 확인하던 그때.
“여명, 여기.”
세티가 다른 상자와 전혀 다른 상자 하나를 찾아냈다.
하켄크로이츠는커녕, 아무런 상징도 그려져 있지 않은 상자.
그 상자는 유독 가벼웠다. 세티가 한 손으로 바닥에 내려놓을 수 있을 정도였다.
“뭔가 찾았나?”
시간을 재던 발막과 그릇이 다가오기 무섭게, 여명은 상자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제기랄.”
현실이 된 불길함을 마주했다. 여명과 세티가 동시에 정색하는 걸 본 그릇이 물었다.
“이게 뭔데 그래? 그냥… 그림 아니야?”
그녀의 말마따나, 상자에 들어있던 것은 그림이었다.
누렇게 낡아버린 종이 위에 그려진 심장 그림.
힘줄까지 정교하게 그려지긴 했으나, 해부학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그림이었다. 딱히 특별한 점은 없었다.
뭔가 대단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 같지도 않고, 마나는 더더욱 느껴지지 않았는데…
여명은 심각한 얼굴로 대답했다.
“이건 그냥 심장을 그린 게 아니야.”
“…그럼?”
“마왕의 심장.”
여명은 그대로 그림을 꺼내 전등 아래 비췄다.
전등의 빛을 투과시키자, 종이 아래 숨겨져 있던 복잡한 마법진과 핏자국, 그리고 검은 얼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심장 설계도일까?”
세티가 희망을 담아 물었으나, 여명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거… 아무리 봐도 이미 있는 물건을 기록해 놓은 거야.”
“….”
이미 심장을 완성했다는 뜻.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히틀러가 먹은 심장을 보고 관찰한 기록이겠지만, 아니라면…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일인가?”
분위기를 참지 못한 발막이 묻자, 종이를 인벤토리에 쑤셔 넣은 여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일이 훨씬 커진 것 같습니다.”
“정확히 어떤 식으로?”
“원로원이 아니라, 마왕과 싸워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
농담기 하나 없는 담백한 진실. 발막은 황당함을 감추기 위해 팔짱을 꼈다.
짧은 침묵.
침묵 속에서 여명과 세티를 번갈아 바라보던 발막이 물었다.
“…후퇴하는 게 낫다고 보나?”
“아뇨. 상대가 정말로 마왕의 심장을 가지고 있다면… 아직 사용하지 않았다는 소리겠죠. 가능하면 기습의 이점을 최대한 살려야 합니다.”
그렇게 말한 여명은 바닥을, 정확히는 머리가 전격에 맞아 머리가 사라진 노인의 시체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문제는 이 노인이군요. 우리가 온 걸 원로들에게 알렸을까요?”
“아니, 아닐 거야. 이 노인네는 원로들 몰래 안내하는 사람을 끌고 다니면서 모욕하는 게 취미였거든. 게다가 이번에는 모욕이 아니라 죽일 생각까지 했으니….”
“….”
아직 시간이 있다는 소리군. 고개를 끄덕인 여명은 나치의 상징이 새겨진 방을 쑥 훑었다.
어떻게 기습할까.
올 때 보니 스프링클러가 없던데, 불을 지르고 뒤를 노릴까? 아니면 투명 망토를 걸치고 쫓아가 볼까?
그런 계획들을 떠올리던 여명의 머리로 문뜩, 죽은 노인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시체는 알아서 처리할 테니 일단 죽이라는 말.
그 말을 떠올리자마자, 청소부로서 살아온 그의 경험이 의문을 내놨다.
시체가 얼마나 더러운데, 이런 곳에서 처리한다고 한 거지?
상자에 시체를 넣는 건 말이 안 됐다.
시체가 썩으면서 생기는 악취와 가스가 방을 엉망으로 만들 테니까.
그냥 사람을 부른다는 말이었을까? 아니면 혹시…
여명은 자신을 바라보는 일행들 너머로 공간 감지를 펼쳤다.
화악-! 넓게 퍼지는 마나와 함께 주변의 공간이 손에 잡힐 듯 느껴졌다.
시체가 든 상자들과 그 위에 쌓인 먼지, 그리고… 그 너머의 작은 틈새까지.
“…역시, 비밀 통로가 있었네.”
“응?”
심각한 분위기에 질려 있던 그릇이 고개를 드는 사이, 여명은 반대편 벽 앞에 섰다.
아주 잠시 벽을 살핀 그는 곧 먼지가 비교적 덜 쌓인 부분을 찾아낼 수 있었다. 곧바로 꾹-그 부분을 누르자…
덜컹! 소리와 함께 상자들이 밀려나며 숨겨진 문이 드러났다.
손잡이가 없는 문 옆에는 위아래로 향하는 버튼이 있었는데, 누가 봐도 엘리베이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것도 환자용 침대가 두 개는 들어갈 수 있을 법한 대형 엘리베이터.
“…그런 건 대체 어떻게 찾는 거야? 용사의 감?”
발막이 감탄 아닌 감탄을 내뱉었다. 여명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대답했다.
“아뇨, 청소부의 감입니다.”
***
-띵동.
비밀 엘리베이터는 귀여운 소리와 함께 열렸다.
혹시라도 함정이 있을까, 여명이 앞서 들어가 봤으나 딱히 위험한 건 찾을 수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정상적인 엘리베이터였느냐면, 그건 아니었다.
수십 층에 달하는 건물과 달리 엘리베이터 버튼은 고작 세 개뿐이었으니까.
창고, 연구실, 그리고 본관이라 적힌 세 개의 버튼.
“창고는 아마 여기일 테고… 본관은 어딜까?”
어느새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그릇이 물었다. 여명은 그녀가 의도적으로 연구실을 무시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여명은 모른 척, 그녀를 배려하며 대답했다.
“운이 좋다면 원로들이 있겠지. 운이 나쁘다면 나치 잔당들이 모여있을 거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둘이 같이 모여있을 거 같네. 아니면 아예 둘이 같은 조직이거나.”
“….”
세티의 음울한 예상을 끝으로 일행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여명이 말했다.
“같이 있으면 좋지. 동시에 쓸어버리면 그만이니까. 우선 본관부터 가보자.”
직후, 아직 엘리베이터에 발을 들이지 않은 발막이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젊은 친구들? 미안하지만 난 이 엘리베이터 타는 거 반대야. 원래 계획대로 가는 쪽이-”
“원로원들이 나치 잔당과 손잡았다는 사실도, 마왕의 심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모를 때 세운 계획이죠.”
세티가 반론하자, 발막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게 어디로 가는지도 모를 이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는 뜻은 아니야.”
타당한 말이었다. 하지만 여명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그가 생각하기에, 타당함보다는 다가온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게 중요했으니까.
“적이 상상도 못 한 곳에서 기습할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최악의 함정에 제 발로 걸어가는 걸지도.”
“상관없습니다.”
“….”
여명의 단호한 태도에, 발막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엘리베이터에 탔다.
어째서일까, 그릇도, 그도 의도적으로 연구실 버튼을 외면하는 게 느껴졌다.
인공적으로 탄생한 배경 때문일까? 알 수 없었다. 여명은 개의치 않고 ‘본관’이라 적힌 버튼을 눌렀다.
덜컹.
엘리베이터는 문이 닫히자마자 빠르게 위로 솟구쳤다.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발바닥에서 압박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모두, 전투 준비.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옥상으로 간다는 걸 확신한 여명이 가장 먼저 검을 뽑아 들고, 일행들이 각자 전투 준비를 갖춘 순간.
띵동—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여명은 곧바로 불씨를 일으키며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아무도 없네?”
여명과 동시에 튀어나온 세티가 멍하니 ‘본관’을 바라봤다.
웬만한 VIP룸의 뺨을 칠 정도로 화려한 스카이 라운지.
황금으로 도배를 해놓은 라운지는 천박할 정도로 반짝이고 있었다. 여행하는 사이 여러 고급 호텔에서 묵은 세티와 여명이 보기에도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
“원로들이 사는 곳이 아닌 겁니까?”
여명이 발막을 향해 묻자, 그가 한껏 준비한 전격 마법을 흩트리며 대답했다.
“아니, 스카이 라운지는 제 1 원로가 사용하는 곳이 맞는데….”
설마 기습을 눈치챈 걸까? 라운지를 훑어보던 여명은 문뜩 테이블 위에 있는 시가와 술잔을 발견했다.
아직 연기를 내뿜고 있는 고급 시가와 얼음이 반쯤 녹은 술잔…
“…얼마 전까지 이곳에 있었어요.”
“기습을 눈치채고 떠난 건가?”
“아뇨, 얼음이 녹은 수준을 보면… 우리가 이 건물에 들어오기 전에 떠났어요. 뭔가 일이 있었던 거 같은데….”
거기까지 상황을 추리한 여명은 조금 더 곳곳을 살폈다.
현관에는 신발이 가지런했고, 화장실에는 물기가 남아있었다.
깨끗하게 몸을 씻은 뒤, 현관을 거치지 않고 떠났다는 뜻. 그렇다면 떠올릴 수 있는 가능성은 하나였다.
“원로는 우리가 타고 온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어요.”
“…창고에는 우리가 있었으니, 연구실에 갔겠네. 그사이에 엇갈린 건가.”
세티가 상황을 설명하자마자 일행은 다시 엘리베이터에 타… 지 않았다.
그릇은 바로 타지 않고 깊은 심호흡을 한 뒤에야 엘리베이터에 탔고, 발막은 아예 다른 가설을 내놨다.
“잠깐, 그가 엘리베이터에 탄 게 맞을까? 공중으로 날아갔을 수도 있어. 원로 정도 되면 공중 부양은 기본적으로 할 수 있거든.”
말은 그렇게 했으나, 그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지 않았다. 그의 말에 담긴 건 두려움이었다.
무언가를 향한 두려움.
여명은 어렵지 않게 그 이유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는 발막과 그릇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발막, 연구실에 가는 게 두려우십니까?”
“….”
움찔, 발막이 걸음을 멈췄다. 정답이었다.
“두려운 건 아니야. 꺼림칙한 거지.”
“그게 그거죠.”
“….”
“제가 용사의 이름을 팔면… 어쩔 수 없이 따라오시겠죠. 하지만 전 그럴 생각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습니다. 싸움은 자신의 의지로 해야 합니다.”
“…어른한테 그 정도 배려도 못 해주나?”
“제가 여기 온 것 자체가 배려입니다. 앞서 두메아 가주님이 했던 말처럼, 이건 제 일이 아닙니다. 그릇이 아니었다면 오지도 돕지도 않았을 일이죠. 그릇도 그걸 아니까… 두려움을 이겨내고 엘리베이터에 탄 겁니다.”
여명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릇은 속내를 들킨 사람 특유의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그 모습이 얼마나 대견한지, 발막은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내 나이 반도 안 되는 녀석들에게 용기를 받을 줄은 몰랐는데.”
“배움에는 나이가 없는 법이니까요.”
“…그건 멋없으니까, 나중에 기록할 때는 용사가 주변의 용기를 북돋웠다고 쓰자고. 어때?”
“….”
가벼운 말과 미소로 분위기를 타개한 발막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뒤, 제 손으로 ‘연구실’ 버튼을 눌렀다.
짧은 심호흡, 빠르게 아래로 엘리베이터의 가속.
일행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조용히 전투를 준비했다.
이윽고,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띵동-소리가 울린 순간.
여명의 검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
“뭐, 뭐야?”
“웬 놈이냐!”
“어? 어?”
“감히 누가?!”
여명이 엘리베이터 바깥으로 튀어나온 순간, 각기 다른 목소리들이 그의 고막을 때렸다.
찰나의 순간 속, 번뜩이는 눈동자 위로 다섯 명의 마법사가 들어왔다.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못해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노인들.
두말할 것도 없이 원로들이었다. 선수필승. 그들을 확인한 여명은 그대로 화산쇄설과 혜성검이 담긴 검을 휘둘렀다.
콰아아아앙 – !!!
빛과 함께 시작된 폭발이 몰아치며 연구실 전체를 휩쓸었다.
원로들은 물론이고, 그들 뒤편에 있는 전자 기판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유리관들이 박살 나며 파바박-파편이 흩날렸다.
웬만한 마법사, 아니 초인이라도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는 일격.
여명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수류탄을 까 던졌다.
핀 뽑힌 수류탄이 폭발의 후폭풍 사이로 파고든 순간, 일행들이 호응했다.
“히라리아의-”
“-낙뢰여!”
발막과 그릇이 동시에 전격을 쏘아냈다.
수류탄 폭발과 뒤섞인 전격은 그대로 연구실 벽을 까맣게 물들였고, 마지막으로 세티가 망치로 연구실 바닥을 내려쳤다.
쿠쿠쿵 – !
충격을 따라 홍단벽력의 마나가 연구실 벽면을 후려쳤다. 발아래가 덜덜 떨릴 정도로 강렬한 일격이었다.
그렇게 박살 난 파편과 콘크리트 먼지가 흩날리는 가운데, 발막이 다음 마법을 준비하며 한마디 했다.
“해치웠냐고 묻지 마. 수백억짜리 보호 마도구를 두르고 있는 노인네들이니까.”
그리고 그의 말에 호응하듯, 먼지 너머에서 대답이 돌아왔다.
“아으, 제기랄!” [아파!] [엿 같은! 지] “퍼스! 치료해줘!”
“닥” [쳐!] “안 죽었으면,” [스스로 치료해.]
한데, 목소리가 하나같이 기괴했다. 마치 한 명이서 두 개의 목소리를 내뱉는 듯한 소리라고 할까.
다음 공격을 위해 마나를 끌어올린 여명이 검을 휘둘러 먼지를 걷어내자, 그 기괴한 목소리의 정체가 드러났다.
기습당하고도 살아남은 원로들, 폭발에 너덜너덜해진 그들의 로브 사이로 드러난 가슴과 복부에는… 얼굴이 박혀 있었다.
마치 얼굴 가죽을 잘라 이식한 것처럼 피부를 대신하고 있는 얼굴들.
그 기괴한 얼굴들은 모두 선명한 서양인 남성의 얼굴이었는데, 면면을 확인한 여명은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원로들은 몰라도 저 남자들의 얼굴은… 2차 대전 다큐멘터리에서 수도 없이 본 얼굴이었으니까.
“하인리히 힘러에… 볼프람 지퍼스?”
히틀러를 따라 차원문 너머로 도망친 나치 전범들.
원로들의 몸 일부를 차지한 그들의 얼굴은 여명을 보자마자 포악하게 일그러졌다.
“황금색” [눈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