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449)
을 위한 세계는 없다-449화(449/817)
EP.449 참을 수 없는 (7)
* * *
***
[죽]“어라!”양손에 지팡이를 든 노마법사, 4원로는 달려드는 세티를 향해 노성을 터트렸다.
직후, 두 개의 지팡이에서 굵은 화염 다발이 터져 나오며 그녀를 뒤덮었다.
대인용 지뢰 클레이모어를 따라 한 것이 분명한 공격 마법. 세티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망치를 횡으로 휘둘렀다.
화아악 – !
망치는 그대로 공기와 화염이 반으로 갈랐다. 세티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허리에 힘을 실은 뒤, 한 번 더 회전했다.
원심력을 이용해 허공에서 방향을 틀고, 그대로 착지.
그렇게 원로들 코앞에 떨어진 세티는 곧바로 비각술을 펼쳤다. 마법사와의 싸움은 결국 거리 싸움인 법.
그녀가 가속하자, 4원로 또한 곧바로 지팡이를 돌렸다.
번뜩이는 눈빛, 좁혀지는 거리, 그녀를 똑바로 겨누는 두 개의 지팡이.
두두두두두 -!
두 지팡이는 동시에 불씨를 토해냈다. 이번에는 기관총과 유사한 마법이었고, 실제 위력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탑 원로란 인간이 현대 무기를 표절하다니. 부끄럽지 않으신가?”
불씨를 피해 콘크리트 파편 뒤로 숨은 세티가 도발했으나, 4원로는 코웃음 쳤다.
“무기의 미덕은,”[얼마나 잘 죽이느냐뿐.]“원본이 뭐가 중요하느냐?”
그건 그랬다. 싸움이란 결국 이긴 놈이 장땡인 법이니까. 세티는 수류탄 두 개를 동시에 까면서 동의했다.
1초 간격으로 핀을 뽑고, 그대로… 투척.
“이”[런!]
그렇게 4원로가 급히 보호막을 펼쳐 수류탄을 막아내는 사이.
2원로와 그릇은 바로 옆 싸움과 무관한 것처럼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단순한 눈 싸움은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의 주문을 방해하고, 수식을 망치고, 마나를 선점하는 고차원적인 마법 간섭의 연장.
그것은 두 사람이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벌일 수 있는 기행이었다.
“못 본” [사이에] “실력이 많이” [늘었구나.]
먼저 입을 연 것은 2원로였다. 그녀는 서서히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데스나이트를 힐끗거리며 말했다.
[마하간의] “가르침이” [좋긴 좋았나 보군.]마하간의 이름이 언급됐음에도, 그릇은 놀라지 않았다.
발막에게 그녀가 마하간의 미라화된 머리를 가지고 있다는 걸 전해 들어서?
아니, 그녀가 뭔가 숨겨 놨다는 확신 때문에.
“대답할 여유도” [없느냐?] “타고난 재능이 아깝구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2원로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상황이 좋지 않은 까닭이었다.
바로 옆에서 세티와 근접전을 벌이는 4원로, 예상보다 강한 그릇의 실력, 다가오는 데스나이트, 그리고 자칭 소련의 계승자라는 용사에게 발이 묶인 나머지 원로들까지.
하필 준비가 끝난 날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데스나이트들이 그녀를 향해 훌쩍 뛰어오르는 가운데, 그녀의 머릿속으로 나치가 속삭였다.
[사용해라.]하인리히 힘러. 히틀러를 제외하고 가장 등급이 높은 나치의 목소리는 어떤 선언처럼 그녀의 머리를 울렸다.
2원로는 기꺼이 그렇게 했다.
그녀는 아공간에서 두 개의 마른 심장을 꺼낸 뒤, 각각 자신의 입과 힘러의 입에 욱여넣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데스나이트의 창과 주먹이 그녀의 머리를 노리고 떨어져 내렸다.
2원로는 피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녀의 복부에 달린 힘러의 얼굴이 입을 쩍-벌리더니…
콰아아아 – !
검은 광선을 토해냈다. 광선 속에 담긴 뒤틀린 마나가 주변 공기를 일그러트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광선.
-이런!
데스나이트들은 순식간에 방향을 틀어 공격을 피했으나, 광선은 멈추지 않고 그릇을 노렸다.
예전의 그녀였다면 꼼짝없이 당했을 테지만, 계단의 시련에서 쌓아온 경험이 그녀를 살렸다.
그릇은 곧바로 바닥을 굴러 광선을 피하고, 전격 마법으로 응수했다.
파지직 -! 전격은 그대로 2원로의 얼굴을 강타했다.
2원로의 왼쪽 눈이 연기를 내뿜으며 타버렸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팡이를 휘저었다.
마법 간섭에서 풀려난 그녀의 지팡이는 순식간에 대여섯 마법을 자아냈다. 물론, 검은 광선도 멈추지 않았다.
!!!!
그릇과 두 데스나이트를 동시에 밀어내는 그녀를 보며 4원로가 다급하게 외쳤다.
“2원로!”[벌써]“조각을 사용하다니!”[대체 무슨 생각-]
하지만 그의 외침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세티가 휘두른 망치 때문에?
아니, 힘러의 입에서 발사된 광선이 4원로와 세티가 서 있는 바닥을 박살 냈으므로.
“이 빌어먹을” [년!] “나를 미끼로-”
광선이 바닥을 박살 내자마자, 4원로와 세티는 동시에 창밖으로 추락했다.
“세티!”
그릇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두 사람은 이미 너무 멀어져 있었다.
“이걸로” [한 년은] “재꼈고.”
동료를 날려버렸음에도, 2원로는 웃으며 추가로 심장 조각을 씹었다. 배에 달린 힘러의 얼굴과 동시에 입을 우물거리는 꼴이 역겹기 그지없었다.
데스나이트들은 그 꼴을 내버려 두지 않고 곧장 공격을 개시했다.
신성력이 가득 담긴 바라나의 주먹과 마나가 투명하게 맺힌 창끝이 아른거렸다.
서로의 거리를 완벽하게 보완하는 연계 공격. 보호막으로도 막을 수 없는 살벌한 살기가 뒤를 따른다.
이윽고, 2원로의 머리에 주먹과 창이 닿는 순간.
[감히 언데드 따위가!]힘러의 얼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추악한 웃음을 따라, 공격을 가하던 두 데스나이트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딱 한치만 더 가면 2원로의 머리를 날려버릴 수 있건만, 그들의 손발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실에 걸린 인형처럼.
고고한 바라나의 표정은 물론이고, 무표정했던 두칸의 얼굴조차 경악으로 물들었다.
[언데드]“의” [근본은] “결국, 뒤틀린 마나.” [마왕을 만든] “우리가” [네깟 놈들 하나 조종하지] “못할 것 같으… 커헉!”전격을 머금은 화염 화살이 그녀의 개소리를 멈췄다. 가슴을 꿰뚫은 화상과 감전이 어지간히도 고통스러운지, 그녀의 자랑스러운 미소가 부서졌다.
[주제를 모르는] “년이 감히…!”2원로는 마법을 쏘아낸 그릇을 노려봤다. 뚫린 가슴이 실시간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마하간에게” [배웠다고.] “네년 따위가” [뭐라도 된 것.] “같으냐?”
얼굴에 힘줄이 돋아나고, 눈이 검게 물드는 2원로.
실시간으로 뒤틀리는 그녀를 보며 그릇은 지팡이를 꽉 쥐었다.
***
끝없이 추락하는 와중에도, 세티는 팔을 멈추지 않았다.
허공에서 흩뿌려지는 마나 가루 사이에서 그녀의 망치와 보호막 마법이 끝없이 충돌해댔다. 추락은 이제 코 앞이었다.
“이 미친”[년아!]“이러다”[우리 둘 다 죽는다!]
4원로는 추락 속도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말했다. 세티는 방심하지 않고 비각술로 보호막을 후려쳤다.
상대는 마탑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인물이었다. 세월과 욕망으로 영락했다 해도 일개 학생 정도는 순식간에 태워버릴 실력자란 뜻.
기세가 넘어왔을 때, 완벽하게 처리해야 했다.
쩌엉 – !
보호막을 후려친 발끝에서 찌르르-충격이 올라왔다. 신음은 나오지 않았다.
4원로가 코앞에서 터트린 화염 폭탄 덕분이었다.
콰앙!!!
이번에는 군용 폭탄을 따라한 마법인가. 아슬아슬하게 화염을 피한 세티는 이를 악물었다.
현대 무기를 마법으로 구현한 4원로의 마법은 현대 무기와 마법의 장점만을 끌어온 걸작이라 할만했다.
마법의 자유로움, 현대 무기의 화력.
물론, 어마어마한 수련을 요구하는 만큼 현대 무기를 대체하는 건 어림도 없겠지만, 당하는 입장에선 이만큼 개같은 마법도 없었다.
후퇴해서 여명을 기다려야 하나? 아니.
‘언제까지 그에게 의지해선 안 돼.’
전신이 화끈거리고 통증이 서늘하게 몸을 쓸었지만, 그녀는 집중력을 놓지 않았다.
추락 5초 전.
상대는 고작 한 명이었다. 여명은 혼자서 셋을 상대하고 있는데, 자신은 고작 하나.
이것조차 이겨내지 못한다면 용사 파티라는 허명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동안의 수련은 또 무슨 소용이고?
추락 4초 전.
나의 여명.
그와 나란히 서기 위해서는, 아니, 하다못해 뒤를 따르기 위해서는 이 정도 시련은 가뿐히 넘어야 했다.
솔직한 열망을 따라, 생각이 선명해졌다. 이토록 짧은 추락 속에서 신경이 가속하고,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추락 3초 전.
그녀는 곧바로 앞서 추락하는 4원로를 향해 망치를 집어 던졌다.
까앙 – !
추락하는 위치가 틀어지긴 했지만, 보호막을 깨트리기엔 턱없이 부족한 위력.
4원로는 무기를 잃은 그녀를 비웃으려는 듯 입가를 비틀었다.
2초 전.
그리고 뒤늦게, 그녀의 손에 묶인 줄과 망치 손잡이가 연결되어 있다는 걸 발견했다.
1초 전.
세티와 4원로 사이의 거리가 급격하게 좁혀졌다. 발을 뻗으면 그대로 보호막에 닿을 거리.
사뿐히 보호막을 밟은 그녀의 발끝에는 한 가지 무술이 담겨 있었다.
비각술의 오의, 진각.
툭.
그리고 동시에, 이어지는 추락.
!!!!!!
4원로를 감싼 보호막이 아래로는 땅과 충돌하고, 위로는 비각술 진각에 짓밟히며 산산이 깨져나갔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파스스 마나 분진이 피어오르고, 충격에 주변 가로수들이 파르르 흔들렸다.
“커헉!”
4원로는 피를 토하며 바닥을 굴렀다. 물론, 똑같이 추락한 세티의 몸도 멀쩡하진 않았다. 충격에 튕겨 나간 그녀는 주변 가로수에 처박혔다.
무거운 정적.
그 살벌한 정적은 오래가지 않았다. 4원로가 쿨럭, 쿨럭 피를 토하며 자리에서 일어났으므로.
“이런, 제기랄.” [독한 년….] “죽을 뻔했군.”
그는 하나만 남은 지팡이를 붙잡고 꾸역꾸역 일어섰다. 잠시 충격을 다스린 그는 아공간을 열어 마른 심장을 꺼냈다.
[아슬아슬한] “승부였다.” [경의를 표하마. 그럼 이제…] “힘러, 그 변태 새끼를 때려 죽이러 가야겠군.”그렇게 그가 마른 심장을 입에 넣고 씹는 순간.
!!!
기다란 검은 막대기가 4원로의 가슴을 푹-뚫고 나왔다.
입술 사이로 아직 씹지 못한 조각이 흘러내리는 가운데, 4원로는 고개를 돌려 세티를 바라봤다.
“이 막대기… 설마?” [여기에 떨어졌을 걸,] “미리 계산한 거냐?”
세티는 고개를 끄덕였다.
4원로는 자신의 가슴을 꿰뚫은 막대기-그러니까 그녀가 처음에 투척한 바이콘의 뿔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이거, 멋지군.” [안 돼!] “쿨럭….”
털석. 4원로는 무릎을 꿇었다.
[이대로 죽을 수 없어! 퓌러! 힘러! 살려줘!]가슴에 달린 머리가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그는 다가오는 세티를 보며 말했다.
“…날, 쿨럭, 쓰러트린 자의 이름은?”
“홍세티.”
대답한 세티는 그의 가슴에서 우라간의 몸을 뽑았다. 푸확! 4원로의 가슴과 입에서 피가 쏟아졌다.
“이상한… 이름… 이군. 너도… 용사, 파티… 인가?”
“응, 그의 연인이야.”
“연인….”
4원로의 눈에서 빛이 흐려졌다. 세티는 무심하게 물었다.
“원로 중 마왕의 심장을 가지고 있는 건 누구지? 당신이야?”
“아, 거기까지…” [살려줘!] “알고 왔나.”
원로는 잠시 숨을 헐떡거리다가, 마지막 힘을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완성, 된, 쿨럭, 마왕의… 심장은, 두, 개다… 하나는, 연구실… 깊숙한… 곳에, 있다….”
“….”
“하지만, 우리는… 마왕을… 원하지… 않았… 어…. 마왕을… 꿈, 꾼 건, 마하간의, 제자… 에케모… 다….”
쿨럭! 피를 토하는 4원로를 보며 세티는 이제 그에게 남은 숨이 한 모금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여기서 그를 닦달하면 뭔가를 더 알아낼 수도 있겠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여명이라면, 그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원로의 마지막 한 모금을 유언을 위해 양보했을 테니까.
“오, 마하간, 나는 몰랐….”
그 말을 끝으로, 4원로의 고개가 꺾였다. 그의 가슴에 이식된 나치 또한 우웨엑-검은 액체를 토하며 녹아내렸다.
그것이 나치, 그리고 한 늙은 마법사의 최후였다.
***
-소녀여, 싸울 필요 없네! 여명이 올 때까지 피하시게!
몸이 굳은 바라나가 필사적으로 외쳤으나, 그릇은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지팡이를 쥐고 더욱 강하게 마나를 모았다.
“간이 참,” [커졌구나.] “우리 그릇.”
2원로는 이죽거리며 그릇을 노려보더니, 힘러와 동시에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주제를” [알아야지.]그리고 그녀는 마법을 쏘아내는 대신, 딱딱하게 굳은 데스나이트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직후, 죽은 피부로 뒤틀린 마나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바라나는 그녀가 무슨 짓을 저지르려는 건지 깨닫고 소리쳤다.
-소녀여! 지금 우리를 조종하려 하고 있네! 빨리! 여명에게 가게!
애타는 소리가 이어졌으나, 2원로의 마나는 예상보다 빨리 두 데스나이트를 장악했다.
“끝났다.” [가라, 멍청한] “데스나이트들아.”
멋들어진 2원로의 선언과 동시에, 그릇이 마법을 쏘아냈다. 칼날처럼 얇은 얼음을 넓게 펼친 얼음 원판.
[가서 죽여!] “죽어서도, 살아서도.” [노예로 사는 것들아!]바닥을 굴러 아슬아슬하게 원판을 피한 2원로가 소리쳤다. 딱딱하게 굳은 데스나이트들의 몸이 돌아가고, 그대로 그릇을 향해-달려들지 않았다.
“…?”
-?
움직이기는커녕, 그대로 굳어버린 모습.
대응 마법을 준비하던 그릇도, 눈을 질끈 감던 데스나이트도 영문을 몰라 물음표를 떠올렸다.
“뭐 하는,” [거냐!] “가서 죽여!”
2원로는 다시 뒤틀린 마나를 쏟아내며 소리쳤으나, 두 데스나이트는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그릇은 뒤늦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닫고 웃었다.
“…성녀가 직접 저주를 푼 데스나이트가 그리 쉽게 조종권을 빼앗길 리 없지.”
“뭐?” [성녀?]
데스나이트들이 자신을 공격할 리 없다는 걸 확신한 그릇은 곧바로 얼음 원판을 세 개 더 만들어냈다. 데스나이트가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이상 싸움은 1:1.
원판 두 개를 그대로 2원로에게 집어던지고, 나머지 하나는 자신이 올라탔다.
[이런,] “씹.”2원로는 화염의 검을 휘둘러 원판을 녹여버렸으나, 그것이 그릇이 원하는 바였다.
어느새 원판을 타고 반대편으로 넘어온 그릇은 여명의 그것보다 훨씬 커다란 얼음 창을 수십 개 만들어내며 소리쳤다.
“뒤져!”
사아악 – ! 수십 개의 얼음 창이 동시에 쏟아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바깥으로 뛰어내리지 않는 이상 절대 피할 수 없는 물량.
“감히.”[주인에게] “반기를 들어?”
하지만 2원로는 뛰어내리지도, 그렇다고 보호막을 펼치지도 않았다.
그녀는 혐오를 감추지 않고 입을 쩍 벌렸다. 복부에 붙어있는 힘러 또한 입을 벌렸고 그대로-콰아아아 – !!
쌍으로 광선을 토해냈다. 두 줄기의 광선과 맞붙은 얼음 창들이 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사이, 그릇은 광선을 피해 구르며 바닥을 짚었다.
그리고 손바닥에서 뿜어지는 급속 냉각.
츠츠츠-그녀의 손아귀를 중심으로 시작된 냉각이 넓게 퍼지자, 2원로 또한 광선을 멈추고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뒤로 죽 물러나는 순간, 검은 천 쪼가리가 시야를 가렸다. 그릇의 얼굴을 가리던 베일이었다.
그렇게 2원로가 시야에서 그릇을 놓친 순간, 굵은 지팡이가 그녀의 명치를 찔렀다.
“커!”[억!]
2원로는 반사적으로 염동력을 펼쳐 지팡이를 밀어냈다. 한데, 밀려난 지팡이의 무게가 지나치게 가벼웠다.
‘일부러 지팡이를 놨다고?!’
대체 어디서 이런 페이크를 배워온 거지? 당황하는 2원로의 시야로, 전격과 얼음이 휘감긴 주먹을 휘두르는 그릇의 모습이 비쳤다.
쾅!
대체 얼마나 많은 마법을 주먹에 감싼 건지, 얼굴을 맞은 2원로의 몸이 붕 떠올라 반대편 벽에 처박혔다.
이겼나? 숨을 헐떡이며 지팡이를 줍는 그릇의 붉은 눈동자 위로, 2원로가 꿈틀거리며 일어나는 게 보였다.
배에 나치를 이식하더니 맷집이라도 늘어난 건가.
꿀꺽-그릇이 침을 삼키며 다시 다음 마법을 준비하는 사이, 2원로가 주먹으로 자신이 처박혔던 벽을 후려쳤다.
“이,” [빌어먹을] “년….”
분노한 그녀의 목소리를 따라, 쩌저적-벽이 무너졌다. 단순한 화풀이? 아니었다. 무너진 벽 너머로, 숨겨진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뭐지? 연구실 안에 또 비밀 공간을 만들어둔 건가?
눈을 가늘게 뜬 그릇이 공간을 훑어보는 사이, 2원로는 대뜸 비밀 공간을 향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딜!”
그릇은 곧바로 2원로를 쫓았다. 그녀가 용사파티와 수련하며 배운 게 있다면, 승기를 잡았을 때는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릇이 벽을 넘어간 순간.
그녀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감히 상상도 못 했던 광경과 마주한 까닭이었다.
“이… 이게 뭐야?”
비밀 공간에는 정체 모를 유리관들이 가득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유리관 안에는 검은 점액질과… 기형 생물체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어떤 것은 손발이 없는 고깃덩어리에 눈만 붙어 있었고, 어떤 것은 작은 괴수처럼 생기기도 했다.
어느 것 하나 인간처럼 생긴 존재가 없었건만, 그릇은 그것들의 모습 속에서 자신을 찾아냈다.
이곳에 있는 모든 기형 생물체들은 그녀처럼 검푸른 털에, 붉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
자신도 모르게 손발이 덜덜 떨렸다. 그녀는 유리관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주변 어디를 둘러봐도, 유리관을 피할 수 없었다.
그녀는 유리관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침을 삼켰다.
이것들은, 설마, 아닐 거야, 아니, 하지만, 아무리 봐도-그녀의 두려움이 이어지는 순간, 유리관 너머에서 2원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우리와 손잡은” [나치들 대부분이] “의사와 수용소장인지, 아느냐?”
“….”
[나치가 우리를 선택한 게] “아니야.” [우리가, 살아남은 나치 중] “쓸모 있는 것들을.” [챙긴 거지.]그 쓸모가 무엇인지, 유리관이 대신 알려주고 있었다. 그릇은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2원로는 딱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릇아, 그릇아….” [전대 원로원주가] “왜 너에게.” [그릇이란] “이름을 붙였는지.” [아느냐?]
“…알고 싶지 않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전대 원로원주, 최후의 대마법사라 불리는 자가 그녀가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기에, 그녀는 그릇이라 불렸다.
[외면하지] “말거라.” [너처럼 영특한 아이가] “모를 리 없잖느냐.”“….”
“넌, 우리를” [그리고 새로운 퓌러를,] “담기 위한,” [그릇이란다.]
다음 순간, 유리관 사이로 2원로가 튀어나왔다. 그릇은 재빨리 지팡이를 휘둘러 얼음창을 쏘아냈다.
맞았나? 아니, 맞았지만 저건 2원로가 아니었다.
휘황찬란한 로브를 입은 무언가.
머리가 없어서 처음에는 마네킹인 줄 알았으나, 로브 자락 사이로 드러난 빼빼 마른 손과 발은 다른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목이 잘린 시체.
저 시체의 정체를 떠올리는 건 너무나도 쉬웠다. 이 상황에서 다른 이름은 떠오르지 않았으므로.
“마하간….”
끔찍한 깨달음과 동시에, 전대 용사파티의 시체가 그녀에게 손가락을 겨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