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452)
을 위한 세계는 없다-452화(452/817)
EP.452 진실의 무거움 (2)
* * *
***
유사 이래, 인간이 만든 가장 무거운 탈것은 전차도 아니오, 기차도 아니었다.
배.
특히 여명이 인벤토리에서 꺼낸 여객선은 전차보다 수백 배는 무거운 물건이었다.
고오오 –
갑자기 위에서 떨어지는 여객선을 본 히틀러는 노성을 토해냈다.
-@%^&*&%@ !!!
점액질이 파도치며 손처럼 변해 배를 붙잡았으나, 질량은 그 자체로 위력을 보증하는 법.
수만 톤급 여객선의 뾰족한 뱃머리는 그대로 비현실 속 마왕을 꿰뚫고 바닥으로 내리꽂혔다.
쿠구구궁 – !!!
어마어마한 충격과 함께 추락한 여객선이 찌그러지고, 점액질이 폭발하듯 터져 나오며 파도가 되었다.
– – – – !!!
비명인지 괴성인지 알 수 없는 히틀러의 목소리가 뒤섞인 쓰나미가 몰아치는 가운데, 여명은 한 번 더 인벤토리를 열었다.
이번에 꺼낸 건 커다란 철판이었다. 베이스캠프 재료용으로 넣어놨던 건축용 철판.
살로메를 옆구리에 끼운 여명은 그대로 철판에 올라타 점액질의 파도를 탔다.
사실, 제대로 된 서핑보다는 난파에 가까운 모습이었지만, 점액질에 파묻히지 않은 게 어딘가.
여명이 철판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하는 가운데, 그릇이 말했다.
“대, 대체 저런 배는 어디서 구한 거예요?”
“빨갱이들한테 뺏었어.”
“….”
쿨하게 대답한 여명은 철판을 꽉 붙잡은 채 박살 난 배를, 정확히는 그 아래 깔린 히틀러를 바라봤다.
그리고 역시나, 히틀러는 죽지 않았다.
머리가 반으로 잘리고, 그 사이로 피인지 영혼인지 모를 사람들을 질질 흘리고 있긴 했지만, 여전히 살벌한 눈으로 여명을 노려보고 있었다.
“끝내고 올게. 기다리고 있어.”
여명이 그대로 점액질 속으로 뛰어들려는 찰나. 그릇의 손에 들린 마하간의 머리통이 입을 열었다.
-가지 말거라. 저 머리통을 백날 터트려 봤자 소용없을 테니.
“…?”
-경험자로서 조언하마. 저 머리는 그냥 겉모습에 불과해. 진짜로 마왕을 죽이려면 심장을 터트려야 하지.
여명은 점액질에 반쯤 담근 발을 빼며 물었다.
“그러면 심장은 어디 있습니까? 설마, 이 점액질 어딘가에 숨겨놓은 겁니까?”
여명은 주변 점액질을 살피며 물었다. 두려움은 없었다.
만약 이 드넓은 점액질 어딘가에 심장을 숨겨놨다 해도, 그는 찾아서 박살 낼 자신도 수단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머리통이 내놓은 대답은, 인벤토리 속 핵무기로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심장이라면 여기 있잖느냐.
그렇게 말한 머리통은 살로메를 향해 턱짓했다. 그 어떤 말보다 확실한 제스처였다.
“…살로메?”
여명이 그녀를 바라보자, 살로메는 당황한 듯 눈을 굴렸다.
“그, 그게 분명 마지막에 2원로가 제게 심장을 먹이긴 했지만….”
-먹이긴 했지만? 아니, 아니지. 먹인 게 맞단다.
“그, 그럼 어쩌죠? 제 배를 갈라야 하나요? 어떻게 꺼내요?”
머리통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피식 웃었다.
-꺼내는 게 무슨 소용이겠니? 이미 네 심장을 처리하고 그 자리를 대신했을 텐데. 네가 심장 없이 살 수 있다면 또 모를까….
“….”
말끝을 흐린 마하간의 머리통은 처연하게 덧붙였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너는 이미 손질까지 끝난 채로 제단에 올라간 제물이란다. 마왕의 심장을 먹는다는 건 그런 의미지.
살로메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드는 가운데, 여명은 파순을 떠올렸다.
새끼, 이런 걸 나한테 먹이려 했다 이거지.
뭐, 아무튼. 여명은 서서히 재생하는 히틀러의 머리와 마하간의 머리통을 번갈아보며 물었다.
“그러면 뭔가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있기야 있지. 하지만 내가 그걸 왜 알려줘야 하지?
“…?”
-생각해보거라. 너희가 여길 나가건 말건, 나는 얻을 거 하나 없는 기억 쪼가리에 불과 하잖니. 아, 어쩌면 여기가 더 나을 수도 있겠군. 나가면 몸통도 없이 머리만 남은 시체일 테니.
머리 없는 시체를 토막 내버린 장본인, 여명은 말없이 마하간의 머리를 빤히 바라봤다.
-왜, 협박이라도 하려고?
“아뇨. 그냥, 제가 알던 마하간과는 다르다 싶어서요.”
-….
협박한다고 통할 것 같지도 않고. 괜히 쓸데없는 정보를 듣느니, 무시하는 게 나았다. 여명은 곧바로 머리통에게 관심을 끊었다.
그리고 곧이어, 그는 인벤토리에서 신호탄과 물약을 꺼내 살로메에게 건넸다.
“일단 저것부터 처리할 테니, 만에 하나 무슨 일 있으면 신호탄을 쏴. 알겠지?”
“하, 하지만 저, 저걸 처리해봤자 소용없다고 마하간이….”
“그거야 죽여보면 알겠지.”
“…..”
그렇게 여명이 점액질로 뛰어들려는 찰나, 갈라진 입술을 재생한 히틀러가 무어라 고성을 내질렀다.
-Die große zeit ist jetzt angebrochen!
아까 전 웅얼거림과 확연히 다른 선명한 독일어.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해석한 살로메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제 위대한 시간이 시작되었다…?”
-Deutschland ist nun erwacht!!
“…독일은 눈을 떴다.”
-Ich weiß es, meine kameraden, es ist euch wohl oft schwergefallen!
“나는 알고 있다, 동지들이여, 그대들에게 고민의 시간이….”
그때, 여명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 이상 해석할 필요 없어. 이미 아는 말이니까.”
“…안다고요? 저게 무슨 소린데요?”
“나치당 총선 승리 연설.”
“….”
그딴 건 또 어떻게 아는 건데요? 살로메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사이, 그녀의 손에 들린 마하간의 머리통이 다시 입을 열었다.
-실시간으로 기억을 되찾고 있군.
“….”
-기억이 선명해질수록 더욱 강해질 거다. 도와줄 성녀도, 동료도 없는 네가 이길 수 있을까?
여명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검을 들고, 첨벙! 점액질 속으로 뛰어들었다.
***
살로메는 멍하니 히틀러와 싸우는 여명을 바라봤다.
한 손에는 드워프제 검을, 또 다른 한 손에는 성물을 쥔 채 마왕과 싸우는 그의 모습은… 동화 속 영웅 같았다.
그래, 점액질 속에서 튀어나오는 무수한 괴수를 향해 박살 난 배를 집어 던지는 것도, 붉은 아지랑이를 휘감은 채 히틀러의 눈을 후벼 파는 것도.
전부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 같지 않았다.
혹시 이 모든 게 꿈은 아닐까?
살로메는 자신도 모르게 볼을 꼬집어봤다. 아팠다.
이제는 확실히 사람처럼 말하는 히틀러의 목소리는 여전히 꿈처럼 느껴졌지만, 이건 현실이었다.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현실.
살로메는 여명이 주고 간 물약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했다. 그리고 그가 무사히 이곳을 벗어날 수 있는, 승리할 방법을 떠올렸다.
뭔가를 다짐한 그녀는 약병을 꽉 쥐며 입을 열었다.
“마하간.”
-왜 그러느냐?
“지금이라도 이길 방법을 알려주실 생각은 없죠?”
-없다. 그리고 너라면 이미 알아들었을 것 아니냐.
알아들었다. 그래, 그랬다. 침을 삼킨 그녀는 약병을 철판 바닥에 내려쳤다.
쨍그랑! 깨진 유리병 끝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직후, 살로메는 깨진 병 위로 비추는 자기 얼굴을 보며 말했다.
“마왕의 심장이 망가진다면… 마왕도 죽겠죠?”
-아직 완전히 부활하지 못했으니, 높은 확률로 죽겠지.
“그럴 줄 알았어요.”
굳이 그녀의 심장이 마왕의 심장으로 대체 되었다는 걸 알려준 이유가 그것이리라.
고민을 멈춘 살로메는 입술을 꽉 물었다. 그리고 깨진 병 조각을 자신의 가슴에 겨누고, 심호흡했다.
머리통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마왕의 육체로 사는 것도 좋은 경험일 텐데.
“좋은 경험은 모르겠지만… 여명이 죽는 것보다는 나을 거 같아요.”
-저 친구는 그걸 원하지 않을걸?
그의 말마따나, 여명은 여전히 히틀러와 싸우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몸이 박살 나고 또 박살 나는 와중에도 계속.
솔직히 말해, 살로메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자기가 애인인 것도 아니고, 본인이 용사 파티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도 않으면서 왜 저렇게까지 싸우는 걸까?
단순히 데스나이트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서? 그렇다면 정말… 용사에 어울리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래, 좋은 사람.
다행이었다. 살고 싶어서 엉엉 눈물을 흘린 그녀가 스스로 희생하며 살릴 사람이 저런 좋은 사람이라.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그대로 심장에 유리 조각을-찌르지 못했다.
히틀러의 머리를 터트린 폭발에 휘말린 여명이 철판 위에 쾅! 추락했으니까.
철판이 출렁거리며 균형을 잃은 살로메가 넘어지고, 유리 조각은 애꿎은 옷만 찢고 말았다.
“…너 뭐하냐?”
그 사이 자리에서 일어난 여명은 그녀를 보고 물었다. 무안해진 그녀는 유리 조각을 등 뒤로 숨기며 대답했다.
“아, 아무것도?”
“…손에 든 거 내놔봐.”
“….”
살로메는 우물쭈물 깨진 유리병을 내밀었다. 여명은 그 유리병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검면을 휘둘러 툭-철판 밖으로 쳐내버렸다.
직후, 여명은 다시 머리를 재생하는 히틀러를 힐끔거리며 말했다.
“살로메… 난 기다리라고 했지, 자살하라고 한 적 없어.”
“아, 아니… 하지만 나는, 그게….”
“그게?”
“둘 다 죽는 것보다는… 나 하나로 끝나는 게….”
“….”
여명은 푹 한숨을 내쉰 뒤, 폼멜로 그녀의 이마를 내려쳤다. 딱!
“네가 여기서 자살하면 내가 뭐가 되냐? 남들이 다 포기하자는 거 억지로 구하러 온 건데.”
“…그, 그런 거였어? 아니, 그보다 다 포기하자고 했다고?”
“어, 그러니까 이상한 희생정신 같은 거 발휘하지 말고, 아까처럼 질질 짜면서 살고 싶다고 말해.”
“….”
아니, 질질 짜지는 않았는데… 살로메가 입술을 우물거리는 가운데, 머리통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자네의 그 여유가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 지금도 실시간으로 밀리고 있지 않나?
“….”
-주가시빌리를 익힌 자들은 언제나 그렇지. 영원히 싸울 수 있을 거라며, 자신의 한계를 잊고 말아. 하지만 육체는 몰라도, 정신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영원히 싸우는 전사는 세상에 존재할 수 없네.
조롱에 가까운 말이었으나, 여명은 반박하지 않았다. 아니, 반박할 수 없다는 게 더 정확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순수한 전투력으로는 넘을 수 없었다. 이 순간을 타개할 만한 다른 수법들을 떠올려봤지만… 딱히 생각나는 건 없었다.
핵무기? 쓰면 살로메의 목숨을 보장할 수가 없고, 배? 이미 던졌고, 헬기? 아니면…
‘…주사위?’
미국 대행자를 가호하던 떨어진 별에게 빼앗은 주사위.
하지만 그 주사위는 신명을 깨닫기 전에는 사용할 수 없도록 새하얀 조개 속에 봉인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아직 신명을 찾기는커녕, 이곳에서 마왕과 투닥거리고 있었고.
어떻게 할까. 어떻게…
그때, 재생을 끝낸 히틀러가 그에게 소리쳤다.
[드디어 때가 왔다! 야만인들에게 동부를 되찾을 때가! 리투아니아를 정복하고, 라트비아와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그리고 모스크바로 진격하라! 스탈린, 그 돼지의 목을 엮어 레벤스라움의 거름으로 주리라!]다큐멘터리에서 듣고 또 들었던 연설과 같은 톤. 하지만 지금의 여명은 방구석에서 2차 대전 다큐를 보던 그 청소부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가짜 빨갱이 노릇을 해온 그는 히틀러의 말속에서 다른 가능성을 떠올렸다.
스탈린.
아이디어는 번뜩였고, 행동은 빨랐다. 그는 곧바로 인벤토리에서 인공 성물과 황금 옥새를 꺼냈다.
“여명? 옥새는 갑자기 왜?”
옥새를 알아본 살로메가 당황하는 가운데, 여명은 성큼성큼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히틀러를 보며 옥새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살로메.”
“네?”
“지금부터 뭘 봐도, 놀라지 마.”
아니, 여기서 더 놀랄 게 있어? 살로메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하간의 머리가 눈을 가늘게 뜬 순간.
여명은 옥새의 마법진을 발동했다. 거대한 황금빛 마법진이 떠오르며 주변을 밝힘과 동시에, 여명은 그대로 마법진으로 인공 성물을 덮었다.
그러자 인공 성물은 기다렸다는 듯 그의 마나를 쭉-빨아들였다. 그래, LA에서 처음 인공 성물을 시험했을 때와 똑같이.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번쩍! 붉은빛과 함께 성물의 목소리가 어둠으로 가득 찬 세상을 쩌렁쩌렁 울렸다.
[찬양하라! 우리의 자유로운 조국을! 인민들의 영광이 확고한 보루를! 소비에트의 깃발! 인민의 깃발이 승리에서 승리로 이끌어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