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461)
을 위한 세계는 없다-461화(461/817)
EP.461 Sonnenaufgang (2)
* * *
***
시간을 조금 뒤로 돌려, 히라리아 서부.
-이야, 성공했나 본데?
손도끼를 던져 괴수를 토막 낸 벨라디바가 여명이 날아간 방향을 보며 말했다.
데스나이트들이 차례대로 고개를 돌려보니 과연, 차원문에서는 더 이상 괴수가 튀어나오지 않고 있었다.
-또 무슨 재주를 부린 건지.
-다섯 빛이 보우하심이니….
탄창을 갈고 있던 듀크가 휘파람을 불고, 이어서 바라나가 신을 찾길 잠시.
감탄하는 일행들을 대신해 괴수의 몸에 칼을 쑤신 두메아 가주가 버럭 소리 질렀다.
-거, 농땡이 부리지 말고! 제일 어린 두하칸이 저리 열심히 싸우는 거 안 보이오? 다들 이미 죽은 몸이라고 정신줄까지 놓으면 안 되지!
그의 말마따나, 두칸 용병단의 창쟁이는 골목 하나를 통째로 틀어막고 있었다.
섬뜩하게 빛나는 창을 따라 실시간으로 괴수들을 토막 내고 있었지만, 한 손으로 열 손을 막을 수는 없는 법.
두메아 가주는 슬금슬금 뒤로 밀리는 두하칸에게 가세하며 한 번 더 소리쳤다.
-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명예의 영광을 위하여!
-노인네, 또 염병하네. 고향 지키는 게 그리 좋소?
벨라디바가 혀를 차자, 가주가 화답했다.
-좋고말고! 고향과 무고한 이들을 지키는 것, 이거야말로 모든 기사의 꿈 아닌가?
-거, 유치하기는.
틱틱거리면서도 벨라디바는 다시 손도끼를 꺼내 던졌다. 바라나 또한 흠흠, 헛기침과 함께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다섯 데스나이트가 다시 괴수의 파도를 막아내려는 찰나.
저 멀리 차원문에서 여명과 해골용이 튀어나오는 게 보였다.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로 말끔한 모습이었다.
-하, 저쪽도 무사하군. 이거 일이 너무 쉽게 풀리는걸?
가주를 따라 껄껄 웃은 데스나이트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다시 괴수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쏘고, 던지고, 패고, 베고, 찌르고…
땀을 흘리지 못하는 데스나이트들이 괴수 피로 땀을 대신하는 가운데, 두메아 가주는 이 순간에 열중했다.
무기에 들러붙는 피와 기름, 귀를 파고드는 괴성과 총소리, 적의로 가득한 괴수의 눈동자까지.
목숨을 위협하는 그 모든 것들 앞에서, 가주는 자긍심을 느꼈다.
우스운 감상이었다. 살아생전에는 패배한 장수요, 죽어서는 네크로맨서의 노예였던 그가 자긍심이라니.
뭐, 생각해보면,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전장에서 죽은 날에도 그는 이런 감정을 느꼈으니까.
데스나이트로 되살려진 뒤로 다시는 느낄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라니까.
두메아 가주는 웃었다. 손에 들린 가문의 보검도 그에 호응하듯 우웅-떨리며 괴수의 멱을 땄다.
푸확! 쏟아지는 피와 함께 쓰러지는 괴수를 밀어내고, 다음 녀석을 상대하려는 그 순간.
여명이 있는 방향에서 무언가가 폭발했다.
!!!!!!
망막에 새겨지는 두 개의 커다란 빛의 뒤로 후욱-! 대기가 출렁거리며 큰 후폭풍이 몰려왔다.
계속 몰려들던 괴수들은 물론이고, 데스나이트들조차 굳어버릴 만한 폭발.
잠깐의 정적 끝에 괴수들이 다시 달려드는 가운데, 벨라디바가 중얼거렸다.
-이런 씨, 또 뭔 일이야?
그러자 아래에서 괴수의 목을 꺾어버린 바라나가 대답했다.
-대규모 융해 마법의 후폭풍… 여명이 마법사들과 싸우고 있나 보군.
-위험한 거요?
-개새끼도 제집에서는 먹고 들어가는데, 더군다나 적은 마법사다.
-거, 위험하단 소리를 뭐 그리 어렵게 합니까?
-애초에 이 싸움 자체가 위험 속으로 뛰어든 걸세. 일단 당황하지 말고 각자 자리를 지…
그때, 두메아 가주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르신, 제가 가봐야겠습니다.
그는 하늘에서 춤추는 용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말이 끊긴 바라나는 불쾌함이 아닌 놀라움으로 대답했다.
-자네, 혹시 뭔가 느꼈나?
-아뇨, 그냥 감입니다. 어른의 감.
바라나는 그게 무슨 미친 소리냐고 되묻지 않았다.
두메아 가주야말로 이 상황에서 전력을 빼면 괴수를 막기가 어려워진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사람이 이렇게 강하게 주장한다면, 뭔가 이유가 있는 것이리라.
-어른의 감이라… 꼭 가야 하겠나?
-예, 아무리 잘났어도 여명은 아직 어린아이 아닙니까. 이 상황에서 적어도 한 명은 뒤를 봐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라나는 아주 짧게 여명이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가, 이내 피 묻은 손으로 두메아 가주의 등을 밀었다.
-가게, 당장.
두메아 가주는 기꺼이 그렇게 했다. 가장 가까운 괴수를 베어 넘긴 그는, 시체를 발판 삼아 괴수들의 머리 위로 뛰어올랐다.
***
몸이 붕괴한다.
여명은 그보다 더 나은 표현을 떠올릴 수 없었다. 뼈, 근육, 혈관… 인간의 육체를 유지하는 모든 부위가 실시간으로 망가지고 있었으므로.
뼈는 부러지고, 근육은 파열되며, 혈관은 끊어진다.
주가시빌리의 재생력으로 어떻게든 몸을 붙잡고 있었지만, 서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뚜둑. 결국 종아리뼈 언저리가 망가지며 몸의 균형을 잃고 쓰러지자, 진실을 흘리는 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벼락을 맞은 나무는 가장 높은 자란 나무고, 말에서 떨어진 사람은 조금 전까지 말에 타고 있던 사람인 법… 멋지군요. 그 말의 예제를 직접 볼 수 있다니.”
“…쿨럭.”
녀석이 뭐라고 감탄하건 간에, 여명은 땅을 짚으며 다음 수를 떠올리고 있었다.
비각술? 다리가 움직이질 않는다.
용의 뼈를 다시 꺼낸다? 아니, 위장의 마나는커녕, 일반적인 마나조차 움직이질 않았다.
헬기? 총? 수류탄? 포션? 아니면… 핵?
인벤토리에 들어있는 오만가지를 떠올려봤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앞으로는 아야톨라, 뒤로는 거대화한 에케모가 있는 상황.
몸이 멀쩡해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데, 두 다리로 서지도 못해서야.
“….”
조금 전까지 튀어나오던 기침조차 끊겼다. 여명은 옅은 심호흡과 함께 간신히 땅을 짚었다.
붉게 물드는 시야 너머로, 아야톨라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고생하셨습니다. 용사님.”
도망갈 수도, 맞서 싸울 수도 없다. 여명은 쿵, 쿵 땅을 울리는 에케모의 발걸음을 느끼며 한가지 결론을 떠올렸다.
이게, 끝이구나.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아쉬움이었다.
복수를 이루지 못했다는 아쉬움, 남겨둔 연인을 향한 아쉬움, 그리고 전대 성녀와 관련된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죽는다는 아쉬움.
“남을 위해 싸우다가, 아무도 모르게 죽는군요. 이름을 남기지 못한 무수한 용사의 후예들과 마찬가지로… 후회는 없으십니까?”
저벅, 이윽고 그의 앞에 도달한 아야톨라가 물었다. 여명은 폐를 쥐어짜 대답했다.
“…없, 다.”
그래, 후회는 없었다. 청소부 형제들을 무덤에 묻은 뒤로, 그는 후회 없이 살고자 했다.
진의가 그러했고, 의지가 그러했다. 그런데 이제와서 히라리아를 구하기 위해 움직이고, 에케모와 싸운 걸 후회하겠는가?
이 모든 욕심의 대가가 죽음이라면, 그는 기꺼이….
여명의 생각이 흐려지는 가운데, 아야톨라가 그의 머리를 붙잡고 목에 작은 단검을 들이밀었다.
목에 닿는 차가운 감촉을 마지막으로, 여명은 눈을 감았다.
“잘 가십시오. 이름 모를 용사님, 종말의 끝에서 다시 만납시… 응?”
***
-여명? 여명!
여명은 가까스로 눈을 떴다. 뇌에 산소가 부족한 건지, 눈앞이 뿌옇고 머리가 무거웠다.
그나마 몸의 감각 덕분에 무언가에 업혀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지만… 누구지?
“으… 이게….”
간신히 입을 열자, 그를 업고 있던 자가 웃었다.
-아, 드디어 일어났군. 계속 깨어나질 못해서 이대로 죽는 줄 알았다네.
익숙한 능청맞은 노인의 목소리. 여명은 그제야 자신을 업고 있는 게 누군지 깨달았다.
“두메아… 가주님…?”
-그래 나일세. 몸은 좀 어떤가?
“저는….”
균형을 잡지 못한 여명은 본능적으로 그의 팔을 잡으려다가, 문뜩 그의 왼손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가주님… 팔이…?”
-거대한 놈과 웬 애새끼에게 주고 왔네. 뭐, 사람 하나 구하는 대가로 언데드 팔 한 짝이면 싸게 먹힌 거지.
“….”
아, 여명은 억지로 눈을 깜빡여 그의 상태를 살폈다. 팔이 잘리고, 가슴이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는 모습.
에케모와 아야톨라와 싸우며 입은 상처가 틀림없었다.
안타까움과 고마움에 입이 열리지 않는 사이, 그의 시야로 주변 풍경이 들어왔다. 텅 빈 히라리아의 도심과 가주를 호위하듯 둘러싼 채로 달리고 있는 데스나이트들.
“가주님, 설마….”
-그래, 방어 라인은 뚫렸네.
“저… 때문….”
-아니, 누구의 탓도 아닐세. 엄밀히 말하자면, 전략적 후퇴라고 봐야지. 수십 미터짜리 마법사랑 같이 몰려오는 괴수를 그곳에서 막을 순 없으니 말일세. 일단 마탑으로 가면 어떻게 수가 나올 걸세.
여명은 그게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한 말이라는 걸 눈치챘다. 하지만 상황은 실시간으로 나빠지고 있었다.
-아아아아아!
도망치는 골목 바로 저편에서 들려오는 괴수의 노성.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여명은 일행들이 포위당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유야 뻔했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자신 때문에 충분히 속도를 높이지 못하는 거겠지.
“저는… 내버려… 두고….”
여명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으나, 두메아 가주는 바로 그의 말을 끊었다.
-여명, 내가 오늘 싸우기 전에 했던 말 기억 하느냐?
죽음이 두렵지 않은 날이군. 여명이 정답을 떠올리기 무섭게, 가주가 덧붙였다.
-혹시 너는 죽음이 두렵더냐?
여명은 대답할 수 없었다. 가주 또한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나는 두려웠다. 항상 두려웠지. 처음 검을 배울 때도, 전장터에 나갈 때도… 언제나. 하지만 죽고 보니 알겠더구나. 때때로, 죽음보다도 삶이 더 두려울 수 있다는걸.
“….”
-네크로맨서들에게 되살려진 채, 골방에 처박혀 기나긴 세월을 보내면서… 매일 두려움에 떨었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죽고, 나 홀로 이 역겨운 삶을 이어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었지.
진심은 때때로 무엇보다도 무거운 법. 가주의 진심을 따라 여명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가주, 님….”
-근데, 네가 나의 두려움을 없애주었다. 보거라. 살아서 딸을 만나고, 거기다 증손녀까지 만나지 않았느냐?
…쿨럭, 여명은 대답 대신 피를 토했다. 두메아 가주는 등허리에서 느껴지는 그의 피를 느끼며 말을 이었다.
-뭐, 비록 손녀 부부의 얼굴은 초상화로만 봤지만… 이제 곧 만날 수 있겠지.
거기까지 말한 두메아 가주는 걸음을 멈췄다. 괴수들의 고성이 점점 더 가까워지는 가운데, 그가 여명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여명아, 아니, 쇠똥구리야.
“….”
-울 필요 없다.
그는 하나 남은 손으로 검을 뽑은 뒤, 둘러싼 데스나이트들을 전부 훑었다.
-멋진 삶이었다. 적과 친구가 되었고, 중요한 순간에 딸아이의 힘이 되는 아버지였으며, 은인을 위해 죽는다. 이보다 더 명예롭고, 기사다운 삶이 또 어디 있겠느냐?
그건 유언이었다. 여명이 결코 듣고 싶지 않았던 유언.
-내가 꿈꾸던 삶을 살게 해주어 고맙다. 자, 이제 나는 할멈을 만나러 가마.
두메아 가주는 그대로 등을 돌렸다. 여명은 온 힘을 다해 그의 발목을 잡으려 했지만, 붕괴하는 몸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멀어지는 등, 치솟는 눈물, 치미는 고통.
-오래오래 살거라. 죽음이 우리에게 또다시 인연을 허락한다면, 못다 한 이야기로 밤을 지새울 수 있을 만큼 오래.
그 말을 끝으로, 가주는 달렸다. 저 멀리서 바람 부는 소리가 들려오고, 곧 괴수의 괴성이 모든 소리를 집어삼켰다.
여명은 이를 악물었다. 붕괴하는 몸의 통증보다 더한 고통이 척추를 타고 치밀어 올랐다.
“어르신, 가주, 님을… 구해….”
그에게 다가오는 데스나이트들을 보며 가까스로 입을 열었지만, 데스나이트들은 누구 하나 대답하지 않았다.
짧고, 무거운 침묵.
곧, 벨라디바가 그를 훌쩍 업으며 말했다.
-애송아, 난 가능성 없는 일에 매달려서 전우의 희생을 헛되게 할 생각 없다.
“….”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일이다. 그 중 만족스러운 죽음은 극히 일부에 불과해. 영감은 만족스럽게 떠났으니, 너는 영감 살릴 생각하지 말고 살기 위해 발버둥이나 쳐라. 알겠냐?
부정할 수 없었다. 부정해서도 안 됐고.
그렇게 여명이 참았던 눈물을 왈칵 터트리고, 벨라디바가 입술을 꾹 다문 채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려는 순간.
갑자기 누군가 여명의 손을 꽉 붙잡으며 물었다.
“젊은 기사여, 마지막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