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465)
을 위한 세계는 없다-465화(465/817)
EP.465 Sonnenaufgang (6)
* * *
***
전설에 따르면.
초대 용사는 마탑을 거꾸로 땅에 처박았다. 마법사들은 결코 역사의 전면에 설 수 없으리라는 저주와 함께.
그래, 이건 저주였다.
마탑의 심장, 정확히는 지맥의 마나가 모이는 새하얀 공간을 본 여명은 그렇게 확신했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피부가 저릿해질 정도로 막대한 마나라니.
이것은 벌통 속 꿀벌을 위한 설탕이요, 우리에 갇힌 가축을 위한 사료였고, 현명한 자의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그런 여명의 감상에 호응하듯, 케프리께서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현대의 10강에 마탑 출신 마법사가 없는가? 왜 토마시는 안방에서 너에게 패배했으며, 또 어째서 마법사들은 기나긴 세월 동안 마탑을 벗어나지 못했는가… 그 모든 의문의 답이 이것이란다.
“….”
-힘의 저주. 어리석은 자들은 이 힘에 만족해 마탑에 안주했고, 현명한 자들은 이 힘이 악용될까 두려워 꽁꽁 숨기기에 바빴다.
거기까지 설명을 들은 여명은 조용히 방을 둘러봤다. 다시 보니 주변의 마나가 새하얀 도화지 같은 흰색이 아닌, 병자의 창백함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창백함 한 가운데, 황금빛 쇠똥구리가 미소 지으며 덧붙였다.
-대부분의 마탑주들은 현명한 쪽이었단다. 그들은 이 힘을 경계하고, 사랑하고, 숨겼지. 너도 잘 아는 딱 한 사람을 제외하면.
“제가 잘 아는…? 마하간이요?”
-그래, 전 용사 파티의 마법사는 이 힘에 어떠한 감정도 없었다. 사실, 운명을 본 후 그는 세상 모든 것에 무심해졌단다. 너무나 지혜로웠기에, 달리기도 전에 자신이 실패할 걸 알았고… 그는 힘을 빼느니 아예 달리지 않기를 선택했다.
“….”
-제자의 애원을 거부하고, 시대의 흐름을 방조하고… 그러나 그런 그도 성녀의 부탁만큼은 거절하지 못했다.
전대 성녀. 그녀가 언급되자마자 여명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케프리는 새하얀 마나의 흐름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자신의 핏줄에게 마탑주와 같은 권한을 달라… 마하간은 그 모든 것들이 자신의 죄책감을 풀어주기 위한 성녀의 장난이라 여겼지.
여명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을 보며 이상하리만치 기뻐하던 마하간의 유령을 떠올리고 있었으므로.
[이런 니미, 변경백, 고놈이 기어코 불알을 고치고 자식을 낳은 게야?]아니, 그 정도는 아니었나? 여명이 볼을 긁적이는 사이, 케프리께서는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 손을 붙잡았다. 사람의 그것과는 다른 벌레의 손이었음에도, 놀랍도록 익숙하고 따스한 손.
그 손은 여명을 창백한 벽 앞까지 이끌었다. 케프리께서 말했다.
-선택의 시간이다. 이 저주를 먹고, 마탑을 멸망시킬 것이냐?
“예.”
일말의 고민도 없는 대답. 케프리는 맞잡은 손을 벽으로 이끌었다. 이윽고 사아아-깊고 깊은 마나가 두 손을 타고 여명의 몸을 향해 몰아치기 시작했다.
따스한 고양감 속에서, 여명이 말했다.
“고마워요. 천사님.”
-고마워할 필요 없단다. 감사받기 위해 선을 행하는 태양은 없는 법이니까. 비가 지나간 자리에 잡초가 자라건, 독초가 자라건 상관하지 않는 것처럼.
“….”
그건 오래전, 여명이 드레이테리얼에서 발라구에게 했던 말이었다. 여명이 스스로 용사가 아니라고, 되고 싶지도 않다고 하던 시절의 말.
그러나 그때도 그는 용사였고, 지금도 용사였다.
여명은 쇠똥구리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며 물었다.
“천사님,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무엇을?
“저는… 마음먹은 대로 살아도 될까요? 제 진의대로 살아도 괜찮은 걸까요?”
케프리는 대답 대신 가운데 손을 들어 바닥을 가리켰다. 이번에도 바닥이 아닌 히라리아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이번에 보여준 건 세티도 아니었고, 에케모도 아니었다.
괴수를 피해 도망가는 마법 마차.
익숙한 마차였다. 그와 일행을 마탑까지 안내했던 마법사가 끄는 마차였으니까.
자세히 보니, 마차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 사람을 가득 태우고 있었다.
얼마나 사람이 바글거리는지, 사진을 찍으려는 지구인 기자가 간신히 카메라만 내밀 수 있을 정도.
여명이 멍하니 그 모습을 보고 있자, 케프리께서 속삭였다.
-욕심이 과하지?
“….”
-하지만 저자의 욕심이 수많은 사람을 구하고 있구나. 만약 성공한다면, 그는 원하는 만큼 돈을 벌 것이다. 살아남은 자들은 저자에게 고마워하겠지.
마치, 비가 지나간 자리에서 핀 꽃이 비에게 고마워하는 것처럼.
하지만…
“실패하면요?”
-실패하지 않을 거란다.
케프리가 그와 눈을 마주했다. 흑진주처럼 깊은 눈동자 위로, 여명의 황금빛 눈동자가 떠올랐다.
-나는… 아니, 우리가 떠오를 테니까.
그래, 그의 말대로 되리라. 여명은 그렇게 확신하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마탑의 마나와 이 시간에 존재해선 안 되는 케프리의 신격이 그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
환골탈태換骨奪胎, 혹은 대오각성大悟覺醒.
이보다 더 적절한 단어가 없기에, 혹은 경험한 사람이 너무나 극소수이기에 그렇게 불리는 기적.
그러나 현실의 육체를 본 여명은 다른 단어를 떠올렸다.
재탄생.
망가진 그의 몸은 형체를 유지하지 못했다. 갈라진 피부는 물론이고, 망가진 내장들 또한 어마어마한 마나 속으로 녹아내렸다.
남은 건 무수한 느낌과 생각, 그리고 신성한 마나의 덩어리뿐.
설마, 나 보고 재조립하란 뜻인가?
하지만 어떻게? 이건 아이에게 찰흙을 주고 아무거나 만들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언가 만들 수야 있겠지만, 그게 환골탈태란 이름에 어울리는 육체가 될 것인가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는 한참을… 동시에 길게 늘어진 찰나 속에서 고민했다.
그리고 문뜩, 자신에게 거의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마나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다른 사람의 정신과 기억을 자신의 심상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만큼 막대한 마나.
여명은 고민하지 않았다. 다행히 이 도시에는 자칭 유능한 제작자가 있었으니까.
딱.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어떤 괴수의 정신이 이곳으로 불려왔다.
-…으, 응?
카레닌, 괴수의 몸에 깃든 게임 제작자는 갑작스러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멍하니 여명을 바라봤다. 여명은 웃으며 말했다.
『카레닌,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도움? 아, 아직 죽은 건 아닌가?
『네, 제가 당신의 정신만 잠시 이곳에 불렀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여명은 녹아내린 자신을 바라봤다. 그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녹아내린 여명의 몸에서 느껴지는 따스함, 그리고 그것을 받드는 마탑의 마나가 모든 설명을 대신하고 있었으니까.
카레닌은 잠시 뜸을 들인 후 대답했다.
-캐릭터 만드는 건 너무 오랜만인데.
말은 그렇게 했으나, 카레닌의 정신은 저 아래로 내려가 녹아내린 여명의 몸에 손을 올렸다.
-그래서, 어떻게 만들면 되겠나?
여명은 말이 아닌 마나로 대답했다. 마탑의… 아샤의 마나가 카레닌의 주변에 모여들고 따스한 태양신의 마나가 그 뒤를 따랐다.
그것은 반짇고리였다. 마탑의 마나로 짠 실과 신성을 굳힌 바늘.
어깨의 촉수로 바늘을 쥔 카레닌은 여명의 몸에 그것을 가져다 대며 물었다.
-그럼… 가장 기본인 겉모습부터 시작하지. 어떤 걸 원하나? 키를 더 늘려줄까? 아니면 굳은살을 없애줄까?
여명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전과 똑같이 해주십시오.』
-이런 완벽한 성형 기회를 버리겠다고? 왜? 아깝게시리.
『굳은살은 제가 살아온 삶의 증거이자 형들과 함께한 추억입니다. 왜 그걸 없애겠습니까? 그리고 제 외모는… 세티의 이상형이거든요.』
-이런 씁… 괜히 물어봤네.
징글징글한 커플 같으니, 카레닌은 투덜거리며 바느질을 시작했다.
녹아내린 몸을 정돈하고, 꿰매고, 이어 붙이고…
순식간에 그의 겉모습을 복구한 그는 딱 한 군데를 남겨두고 바늘을 내려놨다.
-아무리 그래도 사내놈 아랫도리는 못 만지겠네. 니 사이즈는 니가 알 테니 알아서 만들어.
….
-자, 자, 빨리 다음으로 넘어가자고.
여명은 기다렸다는 듯 다음 재료들을 꺼내 펼쳤다.
파양결, 주가시빌리, 세계수의 마나, 용의 심장, 그리고 욕망으로 물든 진의… 하나하나가 세계를 피로 물들이기에 충분한 힘들.
다섯 빛으로 대표되는 힘들을 본 카레닌은 인상을 콱 찌푸리더니, 한마디 했다.
-이런 걸 혼자 다 처먹었다고? 버그 캐릭이야?
『여기저기서 노력하다 보니….』
-원래 버그 유저들은 다 그런 식으로 말해.
….
여명이 침묵하는 사이, 카레닌은 푸르게 파도치는 힘을 손에 쥐었다.
-파양결. 이건 심장… 아니, 혈관이 좋겠지.
그는 그대로 파양결을 펼쳐 혈관을 만들었다. 거친 물결은 물론이고 파도조차 견딜 수 있도록 단단하고 부드럽게.
촉수의 섬세한 손길로 전신 경혈과 미세혈관까지 하나하나 자아낸 그는 다음으로는 맑고 투명한 결정을 쥐었다.
-세계수의 마나. 뼈와 관절.
결정을 부숴 뼈를 만든다. 쉽게 부러지지 않게 튼튼하고, 탄력적으로.
관절과 연골 또한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어느 것 하나 막힘없도록 촘촘히 순수한 마나를 짜 넣고, 마지막으로 척추를 세웠다.
다음은 주가시빌리와 용의 심장을 동시에 들어 올린다.
-주가시빌리로 내장을 짜지. 쉽게 망가지지 않도록 질기고, 효율적으로. 그리고 용의 심장은… 이미 잘 소화했네. 누가 이식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위장과 합쳐버리면 되겠어.
이 순간, 카레닌의 의지는 여명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괴수의 숙련된 경험과 손재주는 여명의 의지를 따라 최선의 루트로 나아갔다.
-네가 쓰는 무술들은 하나 같이 단타형이었지? 호흡이 짧아도 버틸 수 있도록 폐와 폐포를 키우자고, 그리고 간의 해독력을 늘리는 김에 소화기관의 효율도 챙기고…
마지막으로 용의 심장과 하나가 되어버린 위장까지. 여명은 구더기 공주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남은 힘을 바라봤다.
깊고 깊은 어둠. 그의 진의.
카레닌은 아주 조심스럽게 진의를 쥐고 심장을 조각했다. 그 어떤 인간의 심장보다도 튼튼하고 강력한 심장.
하지만 그 이상의 효과는 부여하지 않았다. 진의를 통한 그의 무술은 아직은 완성되지 않은 밑그림에 불과했으니까.
그럼에도 여명은 확신했다. 지금으로부터 머지않은 미래에, 저 심장은 나머지 모든 힘을 아우르게 되리라고.
-이걸로 내 역할은 끝났어.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네가 완성될 수 있도록 시간을 끌면 되는 건가?
여명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정신을 이루고 있던 태양신의 신성이 완성된 몸의 정수리, 그러니까 백회혈에 자리를 잡고 있었으니까.
이윽고, 완성된 육체에 깃든 여명이 대답했다.
“제가 갈 때까지 살아계시면 됩니다.”
-그래? 얼마나 걸리는데?
“10.”
-10분?
“9….”
-???
“8….”
-그 유머, 나도 좋아해. 흠, 살아남으면 또 케이크 구워줄 테니 꼭 살려 달라고. 버그 용사.
여명은 웃으며 나머지 숫자를 셌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마지막 카운트 다운이 끝나려는 순간.
카레닌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아, 그리고 아랫도리 잊지 말고.
잊지 않았다.
***
-성녀님….
두하칸은 여명이 하늘로 솟구친 구멍을 보며 무릎을 꿇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가 보기에, 죽어가던 여명이 갑자기 빛에 휘감기더니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되살아난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에게 있어, 심상 세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여명이 무슨 일을 겪은 건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저 성녀님께서 남긴 기적의 일부가 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
그는 머리를 비추는 따스한 빛을 느끼며 손을 모았다.
-다가올 아침을 찬양하라.
그것이 두하칸이 죽음에서 되돌아온 뒤, 처음으로 한 기도였다.
***
태양이 떴다.
드디어, 여명이 찾아왔다.
진실을 흘리는 자는 귀를 뒤흔드는 목소리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를 괴롭게 하는 건, 안대로 가려진 그의 시야 너머로도 보이는 거대한 빛이었다.
오늘을 기대하게 만드는 따스한 빛.
그는 여섯 개째 타락석을 깨트리며 생각했다. 저건 거짓이다. 마탑의 마나를 집어삼켜 만든 순간의 거짓말.
희망은 질 나쁜 질병이며, 거짓말은 그 질병을 옮기는 병균이나 다름없다.
이 병의 치료제는 진실밖에 없었다. 이 세상이 잘못되었다는 확고부동한 진실.
그러니 저 빛을 한시라도 빨리 꺼트려야 한다. 시작된 질병이 퍼지기 전에, 이 세상의 주인이 저 질병을 이용하기 전에.
그렇기에 그는 본래 이곳에서 써선 안 되는 타락석마저 꺼내 결계를 펼쳤다.
펼치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타락석을 깨도, 결계는 펼쳐지지 않았다. 마치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것처럼.
“어째서…!”
그가 입을 열자, 저 너머의 여명이 고개를 돌렸다. 태양처럼 빛나는 황금색 눈동자가 그의 안대를 주시했다.
진실은 숨을 삼켰다. 커다란 등불 아래 숨어든 어둠처럼, 모든 것을 감싸 안는 빛 앞에서 주춤주춤 물러섰다.
하지만 죽음은 찾아오지 않았다. 익숙한 그분들의 목소리가 여명과 그의 귓가를 동시에 울린 까닭이었다.
『이제, 증명의 때가 왔다.』
『에케모와 쇠똥구리. 둘 중 누가 더 옳은지….』
『증명하라.』
여명은 기꺼이 그렇게 했다. 그는 겁에 질린 아야톨라를 내버려 둔 채, 에케모를 향해 날아갔다.
어둠이 포효하는 가운데, 여명의 검이 하늘을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