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488)
을 위한 세계는 없다-488화(488/817)
EP.488 [19] 막간 – 엘프의 밤
* * *
***
비전 유물에서 깨어난 직후, 여명은 자신이 어디에 깨어났는지 깨달았다.
아카데미 호텔 VIP룸.
고급스러운 침대와 이불, 그리고 멋진 대리석 바닥까지 모든 게 익숙했다. 그가 좀비 사태를 막아낸 뒤 묵었던 바로 그 방이었다.
세티가 옮겨 놓은 걸까. 안전한 장소라는 걸 확인한 그는 바로 침대에서 일어나 휴대폰부터 꺼냈다.
그리고 날짜와 시간을 확인한 그는 픽 한숨을 쉬었다.
“…이틀이나 잠들어 있었네.”
정확히는 하루하고도 반나절이었다. 그나마 처음 이야기하던 것처럼 한 달이나 잠들어 있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두통과 함께 머리를 쓸어 넘긴 여명은 세티에게 연락하려다가, 밤이 깊었다는 걸 깨닫고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조용히 방을 나선 그는 미리부터 찾았다. 혹시라도 그녀가 깨어나지 않았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밖으로 나갈 준비까지 했으나, 다행히 쇠미리는 바로 옆방에 있었다.
끼익, 그녀의 인기척을 느끼고 방문을 연 여명은 그녀를 불렀다.
“미리? 일어났어?”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달빛 아래에서 들리는 건 작고 여린 숨소리뿐이었다.
아직 못 깨어난 건가. 여명은 조심스레 그녀가 잠든 침대로 다가갔다.
잠든 쇠미리는 아름다웠다. 이불과 베개 위로 흩어진 금발도, 살짝 홍조가 올라온 볼도, 감은 눈 사이로 길게 늘어진 속눈썹도.
여명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머리맡에 앉았다. 무슨 흑심이 있는 건 아니었다. 기울어진 베개를 똑바로 펴주고, 반쯤 흘러내린 이불을 올려줄 생각이었다.
그랬는데….
움찔, 그의 감각이 미리의 발가락이 움직이는 걸 잡아냈다. 아주 살짝 발가락이 오그라든 것에 불과했지만, 잠든 사람의 반응은 아니었다.
여명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언제까지 자는 척하는지 볼까.’
그는 그녀를 깨우는 대신, 눈치채지 못한 척 슬그머니 미리의 머리카락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그대로 금실처럼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였다. 달빛이 눈을 가늘게 뜨는 가운데, 그의 손길은 어느새 그녀의 귓불까지 이어졌다.
평소에는 마법으로 가려진 기다란 귀.
엘프의 귀를 만지면 저주받는다는 세간의 헛소문과 달리, 그녀의 귀는 보들보들했다. 마음 같아서는 계속 만지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여명은 천천히 귀에서 손을 뗐다. 이 이상 만지면 그녀의 얼굴이 터져버릴 것 같았으니까.
살짝 다문 입술, 떨리는 속눈썹.
그는 그런 그녀를 조용히 내려다봤다. 잠시라고 하기엔 길고, 한참이라고 하기엔 짧은 시간이 지난 뒤 미리가 빼꼼, 한쪽 눈을 떴다.
“….”
여명과 눈을 마주친 그녀는 놀란 듯 입을 벙긋거리다가, 부끄러운 듯 베개에 얼굴을 묻으며 말했다.
“저. 저는… 주, 주, 준비됐어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를 따라 그녀의 새하얀 목덜미가 드러났다. 여명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무슨 준비?”
“노, 놀리지 마세요….”
평소 같았으면 더 그녀를 놀렸겠지만, 여명의 이성은 여기까지였다.
이 세상 누가 새빨갛게 물든 엘프의 목덜미를 보며 참을 수 있을까? 여명은 그녀의 예쁜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아… 아, 앗….”
옅은 신음을 따라 달콤한 살 내음이,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민들레의 향기가 그의 이성을 밀어냈다.
여명은 어린 양을 잡아먹는 늑대처럼 그녀의 부드러운 목덜미 위로 입술과 잇자국을 남겼다.
거친 입술이, 부드러운 혀끝이 피부를 스칠 때마다 미리의 몸이 움찔움찔 떨었다.
잔뜩 긴장한 허리, 굳어버린 하체, 오그라든 발가락.
그 모든 걸 피부로 느낀 여명은 참지 못하고 손을 움직였다.
그는 오른손으로 그녀의 배를 휘어 감고, 그녀의 등에 무게를 실었다. 왼손은 이미 블라우스 사이로 파고들고 있었다.
따닥, 거친 손길에 단추 몇 개가 떨어졌지만, 미리는 그의 손을 막지 않았다.
“아아… 우으웃… 앗… 아으으….”
브래지어를 유린하는 손길을 따라 미리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하지만 여명은 멈추지 않고 그녀의 목을, 가슴을, 그리고 배를 계속 공격했다.
남녀 관계, 아니, 성적인 지식조차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미리의 몸은 경비병 없는 요새와 같았다. 그녀는 여명의 손과 입술이 이끄는 대로 모든 것을 내어줬다.
“자, 잠깐… 여명, 잠까안….”
어느 순간, 뭔가가 그녀의 척추를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싹이 나고 꽃이 피듯, 그녀의 몸이 통제를 벗어나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멈추긴커녕 그녀의 배 위에 있던 손을 움직여 더 은밀한 곳을 차지했다.
허벅지 사이로 파고든 손, 거친 손가락, 흘러내리는 꿀, 끈적한 목소리.
“괜찮아, 몸에서 힘 빼.”
“아, 아… 여명… 저… 무, 무서워요.”
“진짜 무서운 건 시작도 안 했어. 힘 빼.”
평소와 달리 강압적인 목소리. 그건 이미 그녀의 몸을 차지한 자의 목소리였다. 미리는 대답조차 하지 못한 채 덜덜 떨리는 몸을 여명에게 기댔다.
이윽고, 그의 숨결이 그녀를 완전히 장악한 순간.
“이제… 그만… 아… 제발… 이거… 이, 이상… 아, 앗… 아아앙… 으읏…!”
절정에 도달한 그녀는 태풍을 맞은 사시나무처럼 온몸을 떨었다. 여명은 그런 떨림조차 손에 넣겠다는 듯 부들부들 떨리는 그녀의 귀를 깨물었다.
“허억… 아앗… 아앗…”
미리는 덜컥 겁이 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녀의 뜻대로 움직이는 부위가 한 곳도 없었다.
단정치 못하게 벌어진 입, 반개한 눈, 부들부들 경련하는 몸.
하지만 이어진 여명의 손길이 모든걸 덮어버렸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브래지어를 벗기고, 그녀의 몸을 돌리는 따스한 손.
“미리야.”
여명과 눈을 마주한 미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욕망으로 타오르는 그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 흐트러진 머리카락에 벌어진 블라우스 사이로 가슴을 드러낸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
“…너무 예뻐.”
“….”
투박한 말은 때때로 투박하기에 그 효용을 보이는 법.
단 한 마디로 그녀의 부끄러움을 박살 낸 여명은 조금 전의 격렬함과는 전혀 다른 부드러움으로 그녀의 몸을 붙잡았다.
“여명… 읍.”
미리는 이번에도 말을 잇지 못했다. 겹친 입술 사이로 그의 혀가 파고든 까닭이었다. 아. 그녀는 힘이 빠진 양팔로 그의 목을 휘감은 채 모든 걸 그에게 맡겼다.
여명의 손이 치마를 올리는 것도, 조심스레 그녀의 속옷을 끌어 내리는 것도 막지 않았다. 막을 수 없었다.
이윽고, 여명이 그녀의 달콤한 구강을 원하는 만큼 맛본 뒤 두 사람은 고개를 떨어트렸다.
“이 순간부터 앞으로 영원히… 넌 내꺼야.”
로맨틱한 말은 이성의 영역이었고, 이성은 이미 이 자리에 없었다. 그렇기에 두 사람 사이를 채우는 건 투박하고 본능적인 언어였다.
“누구한테도 못 줘.”
미리의 촉촉한 눈이 여명을 바라봤다. 그는 참지 못하고 또다시 그녀의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아래로, 아래로.
그녀는 점점 더 아래로 내려가는 여명의 머리를 꽉 부여잡으며 속삭였다.
“읏… 네… 저, 저는, 앗, 여명, 거예요….”
곧, 그의 손이 가슴에 닿았다. 아이를 어루만지듯 달콤한 손길과 원초적이고 거친 손길이 연달아 그녀를 괴롭혔다.
하악, 거친 숨소리를 따라 그의 입술이 갈비뼈로, 배꼽으로, 그리고 반쯤 벗겨진 치마 아래로 내려갔다.
바이콘의 사랑을 받는 여인이라면 본능적으로 허리를 뺐겠지만, 그녀는 유니콘에게 사랑받는 여자였다. 아직까지는.
“아, 거긴….”
본능적인 부끄러움에 다리를 오므렸으나, 여명은 그녀의 허벅지를 붙잡아 세웠다. 알몸을 보인 것보다도 더 큰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쾅쾅 뛰었다.
그리고 여명의 입술이 그녀의 밀밭을 침범한 순간, 그녀는 이미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읏… 아… 여, 여명…….”
그녀는 여명의 머리를 붙잡으며 허리를 활처럼 휘었다. 아, 아, 그녀는 여명이 바지를 벗는 것도 모른 채 기쁨과 쾌락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그 끝없는 쾌락이 멈춘 건 마찬가지로 반라가 된 여명이 그녀와 마주한 뒤였다.
“아아….”
헐떡이는 호흡 사이로 보이는 그의 맨몸을 본 미리는 숨을 참았다. 그동안 찢어진 옷 사이로 맨몸을 몇 번이나 봐왔지만, 그 아래는… 처음이었으니까.
그녀는 그의 물건이 큰지, 작은지도 판단하지 못했다. 그럴 지식이 없었다.
그저 본능적으로, 혹은 야설이나 다름없는 초대 용사의 책에서 본대로, 그녀는 여명을 향해 조심스레 다리를 벌렸다.
미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흠뻑 젖은 황금빛 밀밭을 드러낸 채, 애타게 그를 원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미리디스.”
여명이 다가오고, 미리의 심장은 터질 듯 거세게 뛰었다.
아, 드디어….
두려움과 기대 속에서 시작된 삽입은 느렸다. 본능 앞에서도 배려를 잊지 않은 건지, 아니면 그저 그녀에게 지울 수 없는 기억을 심어 주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었으나 그는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그녀를 파고들었다.
이윽고 두 사람의 몸이 맞닿았을 때, 미리는 최선을 다해 그를 끌어안았다.
“아읏… 으… 핫… 읍,… 아… 읏….”
뿌리까지 파고드는 여명의 성기를 따라, 무언가 찢어지는 감각이 허리를 타고 올라왔다.
그녀의 흐드러진 얼굴 위로 눈물이 고이는 가운데, 여명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허리를 앞뒤로 흔들기 시작했다.
“읍… 흣, 읍, 읏….”
필사적으로 입을 막는 미리. 여명은 그런 그녀가 사랑스러워서 참을 수 없다는 듯 조금 더 속도를 높였다.
도담한 그녀의 가슴이 출렁거리며 아름다운 원을 그리고, 비음 섞인 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비명이 나오려는 순간.
여명은 입술로 미리의 입을 막았다. 도망칠 곳도, 흘러내릴 곳도 없었다. 그녀는 온전히 그의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철썩, 철썩, 침대 위에서는 두 사람의 몸이 겹치는 소리와 그녀의 가슴이 흔들리는 소리만이 계속 이어졌다.
그는 본능적으로 애를 태우는 기교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감정만으로 미리를 밀어붙였다. 이제 막 꽃잎을 따는 소녀를 위한 기교는 그것으로 충분했으니까.
이윽고, 끝을 느낀 여명은 그녀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미리 또한 반사적으로 그를 꽉 끌어안은 그 순간.
울컥, 여명의 정액이 그녀의 배 속을 채웠다. 그녀는 알 수 없는 충족감을 느끼며 몸을 떨었다.
푸하-! 사정을 끝낸 여명이 입술을 떼자, 그녀가 크게 숨을 토했다.
“여명….”
뒤늦게 몰려드는 절정 때문인가, 그녀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전부였다. 성녀도 이런 걸 겪은 거냐는 말이나, 사랑한다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열기로 가득한 침묵.
둘은 그렇게 연결된 채 가만히 숨을 헐떡였다.
피부를 적신 땀이 접착제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녀는 영원히 그와 이렇게 붙어있고 싶었다.
여명 또한 그런 마음이었는지, 조심스레 그녀의 볼을 쓰다듬었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그의 손가락을 따라 움직이고, 불그스름한 피부를 드러냈다.
두 쌍의 눈동자가 서로를 비춘다. 태어난 그 순간처럼 땀을 흘리는 두 사람은 상대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봤다.
직후, 뒤늦게 이성을 되찾은 여명이 장난스레 말했다.
“사랑합니다. 공주님.”
“….”
쇠미리는 웃으며 그의 가슴을 때렸다. 이제 공산주의에 공주는 없다-라고 말할 차례였으나, 그녀는 다른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으읏… 그… 왜, 또 커져요?”
그녀는 그 말이 얼마나 남자를 흥분시키는 말인지 알지 못했다. 여명은 얼마 되찾은 이성을 다시 옆자리로 밀어둔 채,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직 끝이 아니니까?”
“자, 잠깐… 아흣.”
그녀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여명이 기다란 귀를 깨물었다.
봄은 끝나지 않았고, 또다시 열기가 그녀를 파고들었다.
***
기나긴 밤을 지나, 창밖으로 태양이 고개를 내미는 시간.
쇠미리는 반사적으로 눈을 떴다. 아윽, 허리 아래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힘겹게 허리를 올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스르륵-이불이 흘러내리자, 피부에 닭살이 돋았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인 까닭이었다.
이런, 그녀는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가슴을 가렸다. 그리고 동시에 여명을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주변 어디에도 여명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간 거지? 그녀는 알몸인 것보다 여명이 없다는 사실에 더욱 큰 서늘함을 느꼈다.
이불을 끌어 올리는 사이, 침대 주변에 굴러다니는 옷들이 보였다. 주름지다 못해 쭈글쭈글해진 블라우스와 치마, 그리고 속옷.
그런데, 저건 그녀의 속옷이 아니었다. 그녀의 팬티는 여전히 발목에 걸려 있었다.
“….”
속옷까지 두고 간 걸 보면 멀리 간 건 아닌데… 쇠미리는 안도감을 느끼며 슬그머니 여명의 속옷으로 손을 뻗었다.
“끙….”
딱딱하게 굳은 하체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는 고작 침대 바로 아래 있는 속옷을 잡지 못해 낑낑거렸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나 낑낑거렸을까?
결국, 그녀가 이불 밖으로 상체를 내밀어 속옷을 잡은 순간.
끼익.
문이 열리며 여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머그컵 두 잔을 든 여명과 그의 속옷을 붙잡은 쇠미리.
“어… 이건 그냥….”
“그냥 뭐?”
“….”
그냥 속옷 한 번 보고 싶었다고 말할 수 없었던 쇠미리는 슬그머니 이불 속으로 되돌아갔다.
웃음을 참은 여명은 침대에 다가와 머그컵을 내밀었다.
“마실래? 주방에 꿀이 있길래, 꿀차 좀 끓여왔어.”
“….”
“탈수 증상 와도 난 모른다.”
그제야 꾸물꾸물 이불 밖으로 나온 쇠미리는 머그컵을 받았다. 여명은 뭐라 더 놀리지 않고 조용히 그녀와 잔을 기울였다.
달콤하고, 따뜻한 차였다. 마치 어젯밤처럼.
“…저기, 여명.”
먼저 입을 연 건 쇠미리였다. 그녀는 뭔가 엄청 부끄러운 질문을 꺼내려는 듯 손발을 꼼지락거렸다.
“그… 어제….”
“어제?”
“제거… 봤, 잖아요…? 그… 인간 거랑… 많이… 달랐… 어요?”
“….”
과연, 부끄러운 질문이었다. 자칫하면 차를 뿜었을 정도로 부끄러운 질문.
여명은 꿀꺽, 목에 걸린 차를 간신히 넘긴 뒤 대답했다.
“아니. 난 차이 못 느꼈어.”
하아-쇠미리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여명은 그런 걸 신경 쓰고 있었냐고 묻는 대신, 조용히 그녀의 볼에 입을 맞췄다.
그러자 쇠미리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뒤로 뺐다.
“…뭘 이런 걸로 놀라? 어젯밤에 더한 것도 했으면서.”
쇠미리는 이거랑 그거랑 다르다느니, 노골적인 건 성녀만으로도 충분하느니 같은 소리를 하며 여명을 타박했다.
그렇게 웃으며 대화를 주고받길 잠시.
여명이 빈 머그컵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괜찮지?”
“네? 뭐가요?”
“그… 음, 세 번째인 거?”
이제와서? 쇠미리는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가, 남은 꿀차를 홀짝이며 말했다.
“전 상관없어요. 아샤인이고, 엘프잖아요. 일부다처는 익숙해요. 설마 제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래?”
“네, 그래도 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성녀님보다 제가 먼저 만났는데, 순번이 밀렸다는 것 정도?”
“….”
여명이 놀란 표정을 짓자, 쇠미리가 큭큭 웃으며 그의 볼을 찔렀다. 확실히, 인천에서 먼저 만난 건 그녀였다.
그때는 설마 이런 관계가 될 줄은 몰랐지만… 어쩌겠는가?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그가 엘프와, 그리고 그녀와 꿈이 이어지는 걸 조금만 일찍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아니, 그 이전에 숲 인간 중 여명과 비슷한 사람이 한 명만 더 있었어도.
거기까지 생각한 그녀는 아쉬움을 삼켰다. 직후, 그녀는 아쉬움을 밀어내려는 듯 슬그머니 이불을 벌리며 말했다.
“아침까지는 아직 더 시간이 있는데… 조금만 더 잘까요?”
“….”
“야한 의미로 한 말 아니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아파서 일어나지도 못하겠어요.”
그녀가 투덜거리자, 여명은 딴청을 부리며 이불 사이로 들어왔다. 서늘한 그의 피부가 닿자 긴장이 확 풀렸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쇠똥구리 씨.”
“제가 드리고 싶은 말입니다. 쇠미리 씨.”
아니, 사람 성이 어떻게 쇠 씨-같은 소리를 속삭인 두 사람은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새벽빛이 포근히 두 사람을 덮어주는 가운데, 쇠미리는 그대로 잠들… 지 못했다.
갑자기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불청객 때문에.
“어?!”
하늘색 숏컷 소녀… 네티는 한 이불 속에서 껴안은 두 사람을 보자마자 눈을 깜빡였다.
“….”
심히 어색한 침묵.
다행히 그 침묵이 길어지기 전에, 네티의 주머니에서 유니콘의 영혼이 튀어나와 소리 질렀다.
[안 돼! 이럴 순 없어!! 이 파렴치한 주인 같으니!!!]실체화된 유니콘은 그대로 울음을 터트렸다. 보는 사람이 미안해질 정도로 서러운 울음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