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491)
을 위한 세계는 없다-491화(491/817)
EP.491 애국자의 미덕 (3)
* * *
***
도쿄 국제 공항. 흔히 하네다 공항이라 불리는 곳.
“이야, 사람 바글거리는 것 좀 보세요.”
비행기에서 내린 시스는 아침부터 공항을 가득 채운 사람들을 보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에 비해 여명은 덤덤한 표정을 지키고 있었다.
이곳이 한국의 개성 공항, 필리핀의 호세 마닐라 공항과 함께 아시아 3대 공항으로 불리는 곳이라서?
물론 그런 이유도 있었지만, 그게 표정을 숨긴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다.
“보는 눈이 꽤 많네.”
여명은 공항 곳곳에서 느껴지는 눈빛을 감지하며 말했다. 하나, 둘, 셋… 적어도 일곱 개가 넘는 눈동자들이 그를 향하고 있었다.
“우리 비공식으로 온 거 아니었어?”
“비공식이 비밀을 뜻하는 건 아니잖아요?”
시스는 솔직하게 대답했고 여명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공항 터미널 저편에서 빤히 바라보던 누군가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녀석이 화들짝 놀라며 인파 사이로 도망가는 걸 본 뒤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한국 정부에서 따로 사람을 보낸 거 같지도 않고… 이것도 시험이라고 보면 되나?”
시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제와서 더 시험하는 건 아닐걸요? 제 생각에는, 흐음… 자랑 아닐까요?”
“자랑?”
“예, 일본인들 면전에 형부를 들이밀고 이렇게 말하는 거죠. 너희는 이런 거 없지?”
“….”
노골적인 말이었지만, 동시에 그럴싸한 말이기도 했다. 그게 아니라면 한국에서 차량 한 대, 하다못해 안내원 하나 안 보낼 이유가 없었으니까.
“…어이가 없네.”
일본이 아무리 밉다지만, 이런 식으로 놀려먹는 건 뭐랄까, 참 품위가 없다 싶었다.
“정치인들이 하는 짓이 다 그렇죠, 뭐.”
시스는 동의하면서도 계속 공항을 두리번거렸다. 마치 놀이공원을 처음 본 소녀 같은 모습.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금제를 푼 뒤 여명과 함께 이곳저곳 돌아다닌 다른 자매들과 달리, 그녀는 계속 아카데미에만 있었으니까.
여명은 그런 그녀와 자신을 감시하는 눈빛들 사이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리고 시스가 구경을 멈추고 그를 올려볼 때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처제, 애국자 회의가 언제, 어디라고 했지?”
“오늘 오후 8시, 도쿄 치요다구의 제국 호텔 특별 모임장이요.”
“8시… 시간이 좀 많이 남네? 처제, 내가 생각하기엔 시간이 남는 동안 정부에서 원하는 대로 ‘자랑’ 좀 하러 돌아다니는 게 맞는 거 같은데… 처제 생각은 어때?”
그가 은근한 목소리로 묻자, 막내의 표정이 묘해졌다.
“저야 뭐… 형부 뜻이라면 상관없긴 한데….”
“한데?”
“굳이 가실 거면, 시부야나 아키하바라로 가는 게 어떨까요?”
역시, 놀고 싶은 생각이 가득했구만. 여명은 픽 웃은 뒤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난 도쿄 지리 하나도 모르니까, 처제가 안내해 줘. 어때?”
대답은 필요 없었다. 시스는 기쁜 표정을 숨기지 않고 덜컥 그의 손을 잡았으므로.
***
노골적이네.
공항에서 나온 여명이 떠올린 첫 번째 생각은 그것이었다.
택시를 잡기 위해 여객 터미널로 향하는 사이,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이나 되는 눈이 따라붙었다.
코트를 입고 곁눈질하는 남자 하나, 휴대폰을 하는 척 동영상을 찍는 놈 하나, 마지막으로 관광객으로 위장한 여자까지.
특히 마지막은 초인이 아니면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은밀했다.
하지만 시스와 여명은 애써 모른 척, 정부에서 부른 김에 관광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형부, 모범 택시 타도 괜찮을까요? 좀 비싼데.”
“처제가 편한 쪽으로 해. 돈 걱정은 하지 말고.”
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 때문인지, 아니면 뒤따라 붙은 감시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시스는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터미널에 대기 중인 모범 택시로 달려갔다.
덜컥, 처제를 따라 고급스러운 택시에 올라타자 중년의 택시 기사가 친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안녕하세요, 손님. 어디로 모실까요?”
“도쿄 백화점 본점이요!”
시스가 목적지를 말하기 무섭게, 기사가 택시 미터기를 켰다.
“예, 시부야의 도쿄 백화점 본점.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그렇게 택시가 출발하자 여명은 살짝 놀랐다. 따라붙었던 눈들이 일제히 사라진 까닭이었다.
차를 타고 따라붙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별 볼 일 없는 놈들이었던 걸까?
그 의문의 답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손님들, 한국에서 오신 분들입니까?”
살갑게 말을 걸어오는 택시 운전사. 자동차 백미러로 두 사람을 바라보는 중년인은 초인이었으니까.
그것도 잠시 여명의 감각에서 벗어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초인.
냉전의 영향으로 가뜩이나 초인이 부족한 일본에서 이런 인물이 택시 운전 따위를 할 리 없었으니, 이 사람이 감시자가 틀림없었다.
“예, 한국에서 왔습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여명은 아직 눈치채지 못한 척 대답했다.
“한국 분들에게는 특유의 자신감이 느껴지거든요. 차원문이 있는 나라의 아우라라고 할까, 이웃 나라로서 참 부럽습니다….
살짝 말끝을 흐리는 운전사. 시스는 그제야 그의 마나를 느낀 듯 얼굴에서 미소를 지웠다.
“차원문이 있어서 꼭 좋은 건 아니었습니다. 소련군과 미군이 동시에 나라에 주둔했고, 덕분에 늘 두 나라에게 내정간섭을 받아야 했으니.”
여명이 그렇게 대답하자마자, 운전사의 눈이 살짝 가라앉았다.
“…차원문도 없이 내정간섭을 받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
“안정적으로 개성 차원문을 이용하고 싶었던 스탈린은 일본을 반공 국가로 남겨둘 생각이 없었고, 반대로 태평양 최전선의 반공 국가와 병참 기지를 잃고 싶지 않았던 미국… 일본의 근현대사를 잘 모르시나 보군요?”
“…냉전을 정면에서 견뎌낸 국가라는 것 정도는 압니다.”
여명이 그리 대답하자, 운전기사가 피식 웃었다.
“견뎌냈다… 재밌는 표현이군요. 우리 일본인들은 살아남았다는 표현을 더 좋아합니다.”
철컥, 여명은 인벤토리에서 권총을 꺼내 운전석 뒤통수에 겨눴다. 네티가 광을 낸 총은 방아쇠를 당기면 언제라도 발사될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백미러로 총을 확인했음에도, 운전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궁금해서 그럽니다. 한때 우리의 식민지였던 나라가 척척 마법사를 생산하는 것도 모자라, 당신 같은 인간이 갑자기 튀어나오다니… 행운이란 말로는 설명이 안 되지 않습니까?”
“…빙빙 돌리지 말고, 요점만.”
여명이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리자, 이번에는 조금 진솔한 대답이 돌아왔다.
“당신의 몸을 분석할 기회를 주실 수 있겠습니까? 가능하면 평화롭게. 물론, 보상도 드릴 겁니다.”
“생각 없어. 8시에 선약이 있기도 하고.”
칼 같은 거절. 운전사는 다시 생각해 보라는 듯 부드럽게 말했다.
“선약… 조선 놈들이 우리나라에서 벌이는 인성질을 말하나 보군요. 그놈의 기념 행사를 왜 우리나라에서 하는지 모르겠지만, 걱정 마십시오. 8시 전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끝내드릴 테니.”
“….”
간절한 건지, 아니면 건방진 건지. 상대의 태도에 어이가 없어진 여명은 힐끗 시스를 살펴봤다.
그녀는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고, 처제를 실망시킨 형부의 입에서 나올 말은 하나뿐이었다.
“생각 없어.”
“그렇다면 유감입니다.”
직후, 운전사가 핸들을 콱! 꺾었다. 끼이이익-! 차가 기울어지는 가운데 여명의 권총이 불을 뿜었다.
탕!
운전사는 좁은 운전석에서 몸을 틀어 총알을 피했지만, 그뿐이었다. 여명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운전석을 통째로 차버렸고, 무지막지한 힘에 차인 그는 운전석과 함께 자동차 앞 유리를 뚫고 날아가 버렸다.
“죽었겠는데요?”
시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으나, 여명은 녀석의 생사를 확인할 틈이 없었다. 운전사를 잃은 차가 기우뚱-기울어지기 시작했으니까.
“꽉 잡아!”
여명은 그렇게 말하며 막내의 몸을 꽉 붙잡았고, 시스는 다른 자매들과 마찬가지로 말을 잘 들었다.
목을 단단히 붙잡은 막내의 팔뚝을 느낀 그는 곧바로 잠긴 문을 뚫고 밖으로 뛰어내렸다.
가속도에 쏠린 몸이 균형을 잃고 밖으로 내팽개쳐지고,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길 잠시.
콰과광!!
골목에 처박힌 차가 박살 나는 소리가 귀를 찔렀다. 어디 주택가라도 되는지, 지나다니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다행이었다.
주변을 확인한 여명은 조심스레 시스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처제, 다친 곳은?”
“전 괜찮아요. 근데….”
시스는 손을 들어 여명의 뒤통수 방향을 가리켰다.
“저 사람도 괜찮은가 본데요.”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찢어진 옷 사이로 피를 흘리는 운전사가 보였다.
그의 옆에는 비슷한 수준의 초인 두 사람이 서 있었는데, 한 명은 공항에서 둘을 감시하던 여자 초인이었다.
스릉—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일본도를 뽑아 들었다. 60cm를 조금 넘는 칼날을 가진, ‘세계의 검’ 다큐멘터리에서 본 바에 의하면 코다치라 불리는 칼이었다.
여명은 지지 않고 인벤토리에서 검을 뽑아 들며 물었다.
“이거 외교 문제 아닙니까?”
“우리가 일본 정부 소속이라고 누가 그랬지?”
“….”
“한국의 불만은 스미토모 막부가 알아서 할 것이다.”
스미토모 막부? 거긴 기업 아닌가? 여명은 의아함을 삼키며 자세를 잡았다.
직후, 세 사람의 일본인은 정확히 같은 자세를 잡고 여명을 향해 달려들었다.
곧게 뻗은 다리, 정직한 직선 돌격, 그리고 양손으로 잡은 채 여명의 눈을 겨눠진 검.
그건 누가 봐도 전통 일본 검술에 초인의 마나가 더해진 무술이었다.
어쭙잖은 전설로 포장한 천둔검법과 다른, 진짜 지구 전통과 아샤의 무술을 합친 무술.
자신도 모르게 흥미가 생긴 여명은 제국기사단 검술을 펼쳤다.
챙!
시작은 운전사였다. 그는 예상보다도 강한 힘을 실어 여명의 검을 쳐내고, 손목을 노려왔다.
그 찌르기를 감지한 직후, 여명은 검을 틀어 타점을 바꿨다. 검의 손잡이와 충돌한 일본도가 지잉-울리며 뒤로 물러났다.
일 대 일이었다면 여기서 끝났겠지만, 상대는 셋이었다. 운전사의 빈 곳을 변장한 여성의 검이 채웠고, 나머지 한 명의 검이 여명의 하체를 노렸다.
도쿄의 하늘 아래 칼날이 번뜩이고, 금속과 금속이 충돌하며 비명을 내질렀다.
채앵 – !
칼날과 칼날 사이에 튀는 불씨. 상단을 밀어내고, 하단 찌르기를 막는다. 반격하고, 가로 막히고, 다시 한번 충돌.
검을 쏟아내는 세 사람은 강했다. 어디 가서 꿀릴 실력은 아니었고, 총이나 수류탄 같은 현대 무기를 준비했다면 전쟁터에서도 이름을 날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여명의 강함은 그 이상이었다.
세 사람의 검이 동시에 벼락을 만드는 순간, 여명은 강함의 일부를 내비쳤다.
우선 시작은 비각술의 진각. 그는 살짝 뒤꿈치를 들고, 그대로 바닥을 밟았다.
곧 어마어마한 힘이 바닥을 후려치며 쿠웅! 충격파를 만들어 냈다.
충격파를 따라 일직선을 그리던 세 개의 검이 출렁거리기 무섭게, 여명은 염동력을 펼쳐 세 사람의 멱살을 동시에 붙잡았다.
“아닛?!”
운전사가 기겁했으나, 이미 늦었다. 여명은 세 사람이 마법을 떨쳐내기 전에 그들을 가까운 주택 담장에 집어 던졌다.
쾅! 쾅!
주인이 애지중지 관리했을 벽돌 담장에 사람이 처박히며 쩌적-금이 가고 흙먼지가 튀었다. 무슨 포탄에 맞은 것 같은 모습이었고, 실제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시스가 구경을 멈추고 그를 올려볼 때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처제, 애국자 회의가 언제, 어디라고 했지?”
“오늘 오후 8시, 도쿄 치요다구의 제국 호텔 특별 모임장이요.”
“한데?”
“굳이 가실 거면, 시부야나 아키하바라로 가는 게 어떨까요?”
우선 시작은 비각술의 진각. 그는 살짝 뒤꿈치를 들고, 그대로 바닥을 밟았다.
곧 어마어마한 힘이 바닥을 후려치며 쿠웅! 충격파를 만들어 냈다.
운전사가 기겁했으나, 이미 늦었다. 여명은 세 사람이 마법을 떨쳐내기 전에 그들을 가까운 주택 담장에 집어 던졌다.
쾅! 쾅!
주인이 애지중지 관리했을 벽돌 담장에 사람이 처박히며 쩌적-금이 가고 흙먼지가 튀었다. 무슨 포탄에 맞은 것 같은 모습이었고, 실제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웩-”
담장에 처박힌 운전사가 피를 토했다. 허리를 끊어버릴 생각이었는데, 부들부들 떨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걸 보니 생각보다 튼튼한 듯했다.
“더 할겁니까?”
여명은 손에 커다란 얼음덩이를 만들며 물었다. 운전사는 멍하니 그의 마법을 지켜보다가, 손등으로 입을 닦으며 대답했다.
“갈림길을 걷는 자… 우리가 예상한 것 이상이었군.”
“그건 내 질문의 대답이 아닌데요.”
여명은 어느새 뾰족해진 얼음덩어리를 겨눴다. 운전사는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동료들을 향해 무언가 눈빛을 보내고는,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의 대답은… 이것이다!”
다음 순간 그들의 몸과 눈이 붉게 물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살기로 이루어진 아지랑이를 피워냈다.
“…주가시빌리?”
붉은 별의 그것과 비교하면 좁쌀만 한 크기였으나, 그건 분명 주가시빌리였다.
뭐야 이건. 여명이 황당해하는 사이, 변장한 여성이 검에 살기를 두르며 소리쳤다.
“폭주까지 1분, 토도! 스즈키! 팔다리가 잘려도 목숨만 붙어있으면 돼! 바로 끝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