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498)
을 위한 세계는 없다-498화(498/817)
EP.498 애국자의 미덕 (10)
* * *
***
같은 시각, 도쿄 주오구.
일본의 월스트리트라 불리는 니혼바시 금융가는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침착하게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반복합니다. 시민 여러분, 모두 침착하게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귀를 찌르는 경고 방송과 혼비백산 도망치는 양복쟁이들, 그리고 겁에 질린 채 지원만 부르는 무능한 경찰들까지.
한때 혁명을 꿈꾸던 자들이 너무나 보고 싶었던 풍경이었지만…
어째서일까?
적군 삼 대장 중 유일한 여성인 이시카와 마리아는 그 광경에서 큰 감흥은 느끼지 못했다.
이 모든 게 연기에 불과해서?
아니면 그녀가 침입한 곳이 ‘도쿄 증권거래소’가 아닌, ‘스미토모 종합 은행 본사’라서?
둘 다 어느 정도 지분이 있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고맙네.”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노인네, 스미토모 종합 은행의 총재가 문제였다.
적군 살생부 최상위권에 등재된 악덕 자본가.
그는 갑자기 쳐들어온 이시카와에게 화를 내거나, 욕하지 않았다. 부패한 자본가처럼 돈으로 그녀를 회유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침착하게 용이 보낸 전언을 듣고는, 그녀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게 전부였다.
“당신을 위해 한 일이 아닙니다. 이 회사가 한국에 넘어가면 고통받을 노동자들을 위한 일이죠.”
“그게 대의가 아니고 무엇이겠나? 적군은 테러리스트라고만 생각했는데… 내 식견이 좁았네. 부끄럽군.”
“…”
“아, 그리고 불을 질러야 하면 언제든 말해주게. 휘발유는 없어도, 라이터 기름이라면 넉넉하니.”
사장은 머릿속에 살인 기생충이 박힌 사람답지 않게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마리아가 이제와서 화염병을 만들 시간이 없다고 대답하려는 찰나, 그녀의 휴대폰이 울었다.
[여기는 복복시계. 이시카와, 그쪽 상황은?]일본 공산당 쪽의 연락이었다. 마리아는 본사 건물로 침투하는 경찰들을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스미토모 종합 은행 테러는 완료했습니다. 이제 탈출하면 끝입니다.”
[좋아, 이걸로 한국 놈들의 의심을 잠시 피할 수 있겠군.]“…그보다, 다른 삼 대장은?”
[스즈키 쪽도 스미토모 계열사 두 곳의 임원들을 납치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토도는… 마지막 무대로 향하는 중이다.]다행히 아직 죽은 사람은 없는 건가. 마리아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실, 누구 하나 죽어 나가도 이상할 게 없었다. 작전은 연극이었지만, 전투는 진짜였으니까.
“확인. 이제 후퇴하겠습니다.”
[알겠다. 서기장님께는 이쪽에서 따로 연락하지.]서기장이라니.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반박했다.
“…그는 서기장이 아닙니다.”
[아직은 그렇지.]아직은. 이란 단어가 마리아의 귀를 푹 찔렀다. 그녀는 반박하지 않고 통화를 끊었다. 그리고 살짝 놀란 표정의 사장을 향해 말했다.
“오늘 일은 어디에서도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내 모든 주식과 충성심을 걸고 맹세하지.”
“저는 충성심 쪽을 믿겠습니다. 자, 그러면 다음에 저희 쪽에서 다시 연락드릴 때 보시죠. 그때는 머릿속의 그것까지 제거해 드리겠습니다.”
“….”
사장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본 마리아는 그대로 사장실을 떠났다.
떠나려했다.
그러나 몇 걸음 가기도 전에, 떨리는 목소리가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혹시… 우리 때문에 용께서 억지로 소련과 손을 잡은 건 아니겠지?”
재밌는 상상인 동시에 그럴싸한 상상이었다. 서기장이란 단어에는 그만한 힘이 있었다.
마리아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소련과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 그러니 괜한 걱정하지 마시고, 뒤처리에나 신경 쓰시죠. 당신들의 용은 이 상황을 즐기고 있을 테니까.”
***
붉은 아지랑이 너머, 여명의 자세를 본 알라이 로피는 비늘을 떨었다.
용사의 무술?
완벽한 자세는 아니었지만, 거의 천년에 가까운 삶을 살아온 그는 단번에 무술의 기수식을 알아봤다.
저걸 갑자기 왜? 아니, 그보다 저 자식 용사였나?
온갖 고민과 당혹감이 용의 머리를 가득 채웠다. 어쩔 수 없었다.
여명의 행동은 연극 중에 대뜸 진검을 뽑는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대체 무슨 생각이냐? 용사의 무술이라니!]용은 마나를 넓게 펼쳐 녀석만 들을 수 있도록 속삭였다. 여명 또한 용이 들을 수 있을 만큼 적당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아보시는군요?”
[당연히 알아보지! 그리고 나 말고도 알아보는 놈이 수두룩할 거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여기서 그걸 펼치는 거냐?]“알아보라고 쓰는 겁니다.”
[뭐어?]“진실을 숨기려면 혼란 속에 숨겨야 하는 법이고, 지금 이 무대는 해석의 여지가 많을수록 좋지 않습니까.”
[….]알라이가 그게 무슨 소리냐고 되묻기도 전에, 여명이 자세를 살짝 바꿨다.
팔을 조금 더 뒤로 빼고, 상체를 기울인 자세.
그건 용사의 무술이라기엔 어정쩡하고, 아니라기엔 너무나 비슷한 자세였다.
“붉은 별이 용사의 무술을 쓴 걸까, 아니면 유사품을 쓴 걸까… 이 정도면 의심할 만하죠?”
그래, 애드립치고는 확실히 괜찮은 생각이었다. 문제는…
[그거, 위력은 그대로냐?]“네.”
여명은 검에 마나를 모으며 대답했다. 직후, 그의 주변 대기가 요동치며 주가시빌리의 아지랑이가 불길하게 일렁거렸다.
이 미친놈, 진짜 쏠 생각이구나. 용은 심장의 마나를 가득 끌어 올려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렇게 녹색 불길이 거대한 용의 이빨 사이로 이글거리는 찰나.
용과 인간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자신의 절기를 내보였다.
콰아아 – !!!
용의 숨결은 한줄기 불기둥이 되어 도쿄 하늘을 반으로 가르며 날아갔고, 그대로-검붉은 검기와 충돌했다.
!
도망치던 시민들과 언론인들의 시야로, 폭죽처럼 터져 나오는 녹색 불꽃이 새겨졌다.
-누가 이기고 있는 거지? 용? 빨갱이?
누군가 중얼거린 질문의 답은 금세 알 수 있었다.
갈라진 불길 사이, 힘을 잃지 않은 검기가 그대로 용의 뒤편에 있는 빌딩을 후려쳤으니까.
쿠구궁…!
먼 거리에서도 들릴 만큼 섬뜩한 소리와 함께 빌딩 일부가 뭉텅이로 잘려나가며 땅으로 추락했다. [스미토모 파크 빌딩]이란 간판은 덤이었다.
용은 비통하게 포효했다.
안 돼! 내 빌딩!
여명은 애써 사람 말을 참는 용을 보며 쓴웃음을 삼켰다. 그리고 한 번 더 용사의 무술을 준비했다. 다름 아닌 스미토모 본사 건물을 향해서.
용은 또다시 여명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애원했다.
[야 이, 본사는 안 돼!]“외장재만 살짝 베겠습니다.”
[그것도 안 돼! 죽은 우리 마누라가 세운 곳이야!]“….”
아, 그건 어쩔 수 없지. 여명은 슬쩍 손에 들어간 힘을 빼며 대답했다.
“그러면 여기서 끝내죠. 제가 본사 건물을 노리는 척할 테니, 저한테 온 힘을 다해 숨결을 쏘세요.”
용은 대답하지 않고 그대로 입에 불길을 머금었다. 그리고 여명이 다시 한번 검술을 펼치는 순간.
!!!
용의 불길이 하늘을 뒤덮었다. 압축해서 쏘아낸 불기둥과 달리, 넓고 화려한 불길이었다.
여명은 짐짓 놀란척하며 불길에 휩쓸렸다. 저편에서 환호 비슷한 소리가 들려왔다.
환호라니.
이대로 쭈욱 불길에 밀려 하늘로 사라지려던 여명은 은근슬쩍 주가시빌리를 더 일으켜 불길을 견뎌내는 척해봤다.
환호가 기겁으로, 기겁이 응원으로 변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본의 수호룡이시여, 제발…
-이겨라! 밀리지 마!
-신이시여, 용을 가호하소서!
간절한 응원을 따라 여명은 슬금슬금 하늘 위로 밀려났다. 그때마다 커지는 목소리가 의외로 재밌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악당이 되는 건가? 그런 생각을 떠올리던 여명의 시야로, 문뜩 용의 눈빛이 보였다.
‘힘드니까 제발 빨리 끝내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여명은 힘을 풀었다. 그러자 기나긴 불길이 그를 구름 위까지 밀어냈다.
사실 절반은 여명 스스로가 올라온 거지만.
아무튼, 약속한 대로 용이 구름 위로 날아왔다.
[소리 들었냐?]“…무슨 소리요?”
[환호 소리! 내가 널 밀어버리니까 반응이 아주 뜨겁던걸? 이참에 날 주인공으로 한 영화도 한 편 만들어야겠다. 아니, 아예 정체를 밝히고 총리 한 번 해볼까?]“….”
여명은 한숨으로 답변을 대신한 뒤, 변신을 풀었다. 살기를 주고받지 않은 연기라서 그런지, 주가시빌리를 유지하는 것도 슬슬 한계인 까닭이었다.
[이제 연기는 끝난 건가?]용도 눈치가 있는지, 피곤한 여명의 얼굴을 보곤 더 이상 헛소리를 내뱉지는 않았다. 여명은 막내에게 [최종장]이란 문자를 보내며 대답했다.
“스미토모가 해줄 건 여기까지입니다. 이제부터는 제 개인적인 무대이니, 돌아가서 뒷수습에 힘써 주시죠.”
[뒷수습… 크흥, 오늘 얼마를 날렸는지 상상도 하기 싫군.]“돈보다는 한국의 마수에서 벗어나는 쪽을 선택하셨잖습니까.”
[그야, 장기적으로는 그쪽이 싸게 먹히니까.]“….”
[어쨌거나, 이제 동쪽 방향으로 던지면 되나?]여명은 고개를 끄덕인 뒤 동쪽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한국의 VIP들이 도망친 방향을.
용은 하늘에 떠 있는 여명의 몸을 꽉 쥐고는, 어깨를 뒤로 빼 던지는 자세를 취했다.
[아, 그리고 일본을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들르고.]“…한 번 더? 혹시, 뭔가 문제가 있습니까?”
[아니, 수십 년 만에 만난 친척을 맨손으로 보내자니 좀 아쉬워서.]친척? 고개를 갸웃거리던 여명은 문뜩, 용의 눈동자가 자신과 똑같은 황금색이라는 걸 깨달았다.
검은 머리카락과 비슷한 검은 비늘, 그리고 금색 눈동자…
“설마, 용사 혈통이라서 인간하고…?”
여명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용이 그를 땅으로 던졌다.
***
도쿄의 수도 고속도로.
-이겨라! 밀리지 마!
-일본의 수호룡이시여, 제발…
-신이시여, 용을 가호하소서!
도심을 중심으로 어지럽게 꼬인 도로로, 다수의 검은 차량이 일자로 질주하고 있었다.
일본에게 굴욕을 줄 생각으로 찾아온 한국의 ‘애국자’들이 타고 있는 차량들.
하지만 그들은 마치 패잔병이라도 된 것처럼 꼬랑지를 만 채 도쿄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자존심을 구기는 꼴이었음에도, 의원들 중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이 루트가 당장 전투 지역에서 벗어나 안전을 챙기고, 상황이 안정화되는 대로 일본을 빠져나가기 위한 최적의 루트였으니까.
하지만 때때로, 최적의 루트란 가장 읽기 쉬운 루트가 되기도 했다.
바로 지금처럼.
펑!
행렬의 맨 앞에 있던 차량 위에서 불길이 일어났다. 대단한 함정은 아니었다. 고작해야 휘발유와 설탕, 그리고 고무를 섞어 넣은 화염병이 터진 것에 불과했으므로.
하지만 그런 화염병이 수십 개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펑, 펑, 펑! 좁은 고속 도로 전체가 불길에 물들자 끼이익 – ! 보안 차량들도 어쩔 수 없었다. 일자로 달리던 차량들은 일제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또 뭔 지랄인가?”
행렬 중간, 가장 안전한 위치에 타고 있던 조웅찬 장관이 물었다.
“화염병이 터졌다고 합니다. 잠깐 상황 파악 후 다시 출발하겠습니다. 저희가 있으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와 같은 차에 타고 있던 경호원이 무전으로 상황을 전달했지만, 조웅찬 장관의 표정은 더욱 험악하게 일그러질 뿐이었다.
“화염병…? 빨갱이들이 쓰는 물건이잖아! 당장 차 돌려! 우선 이 고속도로에서 벗어…!”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걱정하던 일이 터졌다. 쿵! 누군가가 그가 타고 있는 차 바로 앞에 떨어지더니…
“조웅찬!”
칼을 뽑아 차 뚜껑을 찔렀다. 마나를 두른 일본도는 마치 통조림 뚜껑을 까는 것처럼 쑤욱-차량 뚜껑을 따고 속을 쑤셨다.
푸확. 앞차 창문으로 피가 튀는 게 보였다. 아마 불운한 호위 하나가 죽은 것이리라. 조웅찬은 기겁하며 호위에게 소리쳤다.
“초인이다! 당장 막아!”
그의 목소리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호위가 아닌 앞차에 올라탄 빨갱이였다. 택시 운전복을 입은 그는 칼을 뽑고 그가 탄 차량 범퍼에 올라탔다.
“조웅찬! 일본을 능욕한 악적! 거기 있었구나!”
저 등신 새끼가 지금 뭐라는 거야? 일본 진출은 내가 아니라 김관형 외교부 장관이 한 일인데.
조웅찬은 억울한 마음을 삼키면서도 본능적으로 허리를 숙였다. 촤아악 – ! 녀석이 발도술과 함께 날아온 검기가 미처 숙이지 못한 경호원들의 목을 우수수 베고 지나갔다.
“이런 빌어먹을.”
순식간에 혼자가 된 조웅찬은 경호원 시체를 밀어내고 차 문을 열었다.
그가 헐떡거리며 밖으로 나오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검을 뽑은 빨갱이가 보였다.
안 돼.
그는 이를 악물고 바닥을 굴렀다. 고작 일본 빨갱이에게 죽기엔 그는 너무나 음험한 존재였으나, 날아오는 칼 앞에서 그가 평생 쌓아온 권력과 부, 그리고 인맥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
챙!
아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그를 위해 칼을 막아선 청년의 뒷모습이 바로 그 증거였다.
“천여명!”
“괜찮으십니까?”
여명은 빨갱이와 검을 맞댄 채로 물었다. 조웅찬은 그와 거리를 벌리며 대답했다.
“나는 괜찮네!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당장 저 빨갱이를 죽여버리게!”
그의 명령이 끝나기도 전에, 천여명이 움직였다. 그의 검이 뚝뚝 끊기는 듯한 움직임과 함께 일본인 습격자를 덮쳤다.
챙! 검과 검이 충돌하는 소리. 조웅찬은 이제야 차량 밖으로 나오는 경호원들에게 소리쳤다.
“뭣들하고 있어! 당장 머리를 해방해! 천여명을 도와서 저놈을 죽여버…!”
“장관님, 잠깐.”
그때,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알 수 없는 이시스가 그를 말렸다.
“여기서 해방 명령을 내리시면 안 됩니다.”
“녹색 양, 이 년! 감히 가축 주제에 내 말에 토를 다는…!”
언성을 높이려던 조웅찬은 이시스가 무언가를 가리키자마자 순식간에 이성을 되찾았다. 고속도로 곳곳에 깔린 CCTV.
양치기들에게 인식 저하 마법이 있다지만, 마법을 사용하기 전 변신 장면은 고스란히 찍힐 게 분명했다.
거기다 차량용 블랙박스까지 가면? 양치기들의 존재를 숨기는 건 아예 불가능하리라.
“해방은… 취소한다. 맨몸으로 도와라!”
현실을 깨달은 조웅찬은 바로 명령을 수정했다. 노예인 양치기들은 불만 없이 천여명과의 싸움에 가담하려 했으나, 빨갱이 초인과 여명의 싸움은 침입자를 허용하지 않았다.
서로의 검과 검이 팽팽하게 맞서는 싸움.
잠깐이라도 사이에 끼어드는 순간 칼에 베이거나, 방해가 될 게 분명했다. 그걸 알아챈 조웅찬 장관은 다른 방법을 찾았다.
“녹색 양. 천여명에게 축복으로 보조할 수 있겠나?”
시스는 즉시 명령에 따라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하지만 이미 체력이 바닥난 듯 미약한 축복만이 여명에게 깃들 뿐이었다.
쓸모없는 년. 역시 흰색 양이 아니라 다른 년을 처분했어야 했나.
속으로 욕지거리를 삼키는 조웅찬 장관에게는 다행히도, 승부는 점점 여명에게 기울어지고 있었다.
“칙쇼…!”
빨갱이 녀석 또한 승부의 어려움을 느꼈는지, 여명의 검을 크게 쳐내고는 곧바로 등을 돌렸다.
탕, 탕! 녀석을 향해 경호원들이 사격을 가했지만, 빨갱이는 이미 고속도로 아래로 뛰어내린 뒤였다.
왜 쫓지 않지? 공을 세울 기회를 이렇게 놓칠 놈이 아닌데.
그런 의문과 함께 천여명에게 다가간 조웅찬 장관은 그제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헐떡이는 숨, 떨리는 눈꼬리, 그리고 찢어진 옷 아래로 보이는 상처들까지.
여명은 한눈에 보기에도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하긴, 붉은 별과 싸우고 왔는데 멀쩡한 게 이상한 일이었다.
아니, 오히려 고작 이 나이에 이만한 전투력을 보인 걸 칭찬해야 하리라.
그 무시무시한 호세나 알파 원조차 이 나이에 이만큼 강하지는 못했다… 거기까지 생각한 조웅찬은 짐짓 걱정스러운 척, 여명에게 물었다.
“괜찮나?”
“예, 장관님은 무사하십니까?”
“보다시피, 자네 덕분에 멀쩡하네… 고맙네. 아주 큰 일을 해줬어.”
“그러면 이걸로 애국자들 내부에서 제 입지도 좀 올라가겠군요.”
여명은 슬금슬금 차량에서 내리는 조웅찬 휘하의 의원들을 보며 말했다. 다른 장관들은 각자의 파벌을 데리고 떠난 듯했다.
아무튼, 장관은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물론이지. 모두에게 아주 깊은 인상을 남겼을 걸세.”
“…어느 정도나요?”
“글쎄, 어느 정도를 원하나?”
은근하면서도 직설적인 물음. 여명은 그보다도 더 직설적으로 대답했다.
“각하께서 직접 칭찬해 주실 정도면 좋겠습니다.”
“….”
꿈틀, 조웅찬 장관의 미소가 깨질 뻔했다. 참 난놈은 난놈이었다. 벌써부터 위로 올라갈 생각으로 가득하다니.
“미안하지만, 아직 그 정도는 아닐세.”
“…그렇습니까? 아쉽군요.”
“하지만 내가 각하께 자네에 대해 보고할 일이 더 있으면 또 모르지. 예를 들어, 올림피아 본선에서 다른 국가의 콧대를 박살 낸다던가.”
“….”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말게. 본래 애국자들이란… 서로 돕는 법이니까.”
물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도우면 재미없겠지만.
장관은 굳이 뒷말을 꺼내지 않았고, 여명 또한 물어보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서로 의미심장한 미소를 교환하는 가운데, 그것을 지켜보던 양치기 한 명이 몰래 문자를 보냈다.
[천여명이 천둔검법을 습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