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50)
을 위한 세계는 없다-50화(50/817)
〈 50화 〉 죽은 드워프를 위한 파반느 (3)
* * *
***
현재로 돌아와서, 덜컹거리는 군용 트럭 위.
다룰마는 정말로 3일 만에 결정을 소화한 여명을 보며 경탄과 황당함을 동시에 느꼈다.
단순히 영약을 몸속에 품고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천여명이란 저 용병은, 영약을 제대로 소화한 게 틀림없었다.
출발하기 직전에 벌인 결투가 그것을 증명하지 않는가.
이력서나 조작하는 초짜놈이 경력이 십수 년은 되는 용병의 양팔을 깔끔하게 잘라버리다니?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하긴, 저 정도는 돼야, 성녀가 관심을 가지겠지.’
다룰마는 여명의 옆에서 무어라 떠들어대고 있는 성녀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세계수의 결정은 성녀를 통해 자연스레 성국의 고위층에게 흘러가야 할 뇌물이었다.
둔 가문의 원로들이 의도한 본래 쓰임새가 그랬다. 다룰마의 독단으로 일이 이렇게 되었을 뿐.
하지만…
살갑게 떠들고 있는 성녀와 여명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쁘지 않은 선택 같았다.
적어도 꼬장꼬장한 성국의 늙은이들보다 더 나은 사람에게 주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가문의 원로들이 알면 ‘노란 겨울’을 운운하며 그를 후추 가스실에 처박겠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무엇보다 그에겐 믿는 구석이 있었다.
만에 하나, 정말로 낮은 확률로 저 녀석이 성녀의 연인이 된다면…?
‘그럼 정말로 대박인데.’
가능성이 아예 없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성녀의 아버지가 그러했듯, 성녀 또한 의무보다 사랑을 찾아갈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게다가 성검과 달리, 축복은 성국의 사제들이 빼앗을 수도 없었다.
어쩌면, 세계수의 결정을 녀석에게 준 게 그의 인생에 가장 성공한 투자가 될지도…?
‘그것도 이번 원정을 성공시킨 뒤의 이야기겠지만.’
행복한 상상을 이어가던 다룰마는 한숨과 함께 현실을 직시했다.
원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고, 성공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트럭의 꼬리를 확인했다. 용의 갈비뼈를 노리는 승냥이들이 지평선 너머로 보였지만, 만주 기지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 이제 시작해볼까.
“자, 자, 다들 집중!”
다룰마는 드워프 특유의 굵직한 목소리로 트럭 안의 시선을 모았다. 권 단장과 김만수를 필두로 한 용병들과 성녀와 여명이 일제히 그를 바라봤다.
“우선, 사과부터 하겠습니다. 이번 임무는 본래 말했던 것처럼, 단순히 보물을 찾으러 가는 게 아닙니다.”
다룰마는 짧게 숨을 들이쉬고,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만주의 멸망을 막으러 가는 겁니다.”
몇몇 용병들은 농담인가 싶어 피식 웃음을 터트렸으나, 권 단장의 심각한 얼굴을 보고선 모두 입을 다물었다.
그제야 자신에게 시선이 모인 걸 확인한 다룰마는 흠흠, 헛기침과 함께 말을 이었다.
“과거, 스탈린이 드워프의 영토를 침략했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독가스를 뿌리고, 항복하지 않는 자들을 학살하고, 살아남을 자들을 굴라그로 끌고 갔던… 비 인도적인 전쟁.”
몇몇은 갑자기 웬 역사 교육이냐는 표정이었으나, 여명은 달랐다. 그는 진지하게 다룰마의 말을 경청했다.
“그 전쟁을 목격한 어떤 드워프는, 스탈린에게 복수하고자 했습니다. 피에는 피. 증오에는 증오. 어리석은 생각이었지만, 그는 그것을 실행에 옮겼지요.”
다룰마가 거기까지 이야기하자, 톈린이 손을 들었다.
용병 중 유일한 만주 토박이인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스탈린에게 복수하려는데 왜 만주가 멸망합니까?”
“…그 시절 드워프들은 지구인들은 모두 똑같다고 생각했으니까. UN은 외면했고, 몇몇 공산국가들은 소련과 손을 잡고 우리의 땅을 약탈했으니, 나름 타당한 시선이었네.”
“하.”
타당하다고? 톈린이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는 사이, 다룰마가 덧붙였다.
“아무튼, 그의 복수는 결과적으로 실패했지. 소련은 이미 몰락했고, 스탈린은 실종되었으니까.”
다룰마는 턱을 쓸며 소련이 몰락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수많은 드워프들이 뉴스를 보며 입을 벌리던 그 순간을.
드워프가 지구에서 온갖 멸시를 받으며 기업을 키운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복수야말로 유일무이한 드워프들의 숙원이었다.
하지만 소련은 스스로 몰락했고, 스탈린은 실종돼버렸다.
목적을 잃은 수많은 드워프들은 공허한 승리 속에서 절망했다. 다룰마의 아버지 또한 그런 드워프들 중 하나였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그래서, 대체 무슨 방법으로 만주를 멸망시키는 겁니까?”
이어지던 다룰마의 상념을 끊은 건, 여명이었다.
“드워프가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그자는 핵무기는커녕 네이팜 하나 가지고 있지 않았네. 대신, 핵무기 비슷한 걸 가지고 있긴 했지.”
“…핵무기 비슷한 것?”
“황금 옥새.”
여명이 설명을 요구하듯 팔짱을 꼈다. 다룰마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옛 드워프 왕가의 상징이라네. 모든 드워프들의 지도자라는 증표이고, 드워프가 가지고 있던 강력한 마도구 중 하나지.”
마도구. 그 단어를 듣는 순간, 용병들이 일제히 미간을 구겼다. 그들의 머릿속에 용병업계의 3대 금기 중 하나가 떠오른 탓이었다.
봉인된 마도구는 건드리지 마라.
그러나 용병들이 무슨 생각을 하건, 다룰마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황금 옥새는 산을 파내 지하 대로를 만든 최초의 드워프 왕의 전설이 담긴 마도구라네. 마력을 불어넣으면, 자동으로 땅을 파주는 마법이 담겨있지.”
땅을 판다고? 땅 파서 만주를 멸망시킬 방법이 있나?
용병들이 고개를 갸웃했으나, 이어진 말에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화산에 지하 대로를 뚫으면 어떻게 될 거 같나? 화산과 화산 사이를 연결하는 건 또 어떻고?”
“….”
“복수를 다짐한 드워프는 만주에 있는 모든 화산을 잇는 거대한 통로를 뚫을 계획을 세웠네. 대싱안링 산맥부터 백두산까지. 거대한 연쇄 폭발을 준비한 걸세.”
그제야, 일의 심각성을 깨달은 용병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거, 실현 가능성 있는 이야깁니까?
“가능할 수도, 불가능할 수도 있네. 황금 옥새가 아무리 대단한 마도구라도, 여태껏 누구도 그런 일을 시도한 적은 없으니까.”
“그럼…”
내버려 둬도 되는 것 아닙니까? 용병의 뒷말이 나오기도 전에, 다룰마가 말을 끊었다.
“만약 가능하다면? 그 드워프가 이 땅에 황금 옥새를 가지고 온 게 이미 수십 년 전일세. 당장 내일 백두산과 싱안링 산맥이 동시에 분화해도 이상할 거 없다는 소리지.”
현실성 없는 이야기였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상상하기 쉬운 이야기였다.
만주와 그 근처의 모든 휴화산이 일제히 분화한다면?
트럭 안의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
“내일은 안 터져.”
침묵이 가득한 트럭 안에서, 성녀가 그렇게 속삭였다. 예지의 축복을 지닌 소녀의 확신이었다.
여명은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
“…터지긴 터진다는 소리로 들린다만.”
“당연히 터지지. 하지만 멸망은 아닐 거야. 그냥 만주에서 수백만 명 정도 죽고, 화산재 때문에 한국과 일본 경제가 천문학적인 피해를 보는 정도?”
“….”
“그 후, 한국은 만주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압록강을 틀어막을 거야. 만주는 초인들을 위한 사냥터가 되겠지.”
노골적으로 예지능력을 드러내는 말이었다. 여명은 눈을 가늘게 뜨고 다른 용병들을 살펴봤다.
다행히, 성녀의 속삭임을 들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럴싸한 이야기인데. 신들께서 너한테 그렇게 말해주던?”
여명은 성녀의 예지능력을 모르는 척,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단순한 실수인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자신에게 예지를 드러냈는지 모르겠으나, 이럴 때는 모르는 척해주는 게 예의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비슷해, 난 미래를 볼 수 있거든. 단편적이긴 하지만.”
“….”
아니 이 인간이 진짜.
“…별로 안 놀라네? 설마 눈치채고 있었어?”
여명은 성녀의 넓은 마빡에 딱밤을 먹이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얘는 대체 왜 이렇게 생각 없이 살지?
“아니. 너무 놀라서 말이 안 나오는군.”
“…정말? 아닌 거 같은데.”
그렇게 쓸데없는 대화가 이어지는 사이, 다룰마 둔과 권 단장이 지도를 펴고 용병들을 불러모았다.
여명 또한 용병들을 따라가려다가, 자신은 독도법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을 보던 성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스마트폰 안 쓰고 웬 지도?”
여명은 무안함 때문에 괜스레 짐가방을 뒤적거리며 대답했다.
“우리 목적지인 북만주 주변에선 GPS가 안 터지니까, 지도라도 숙지해야지.”
“아, 그건 그렇네. 근데 여명, 그럼 너는 왜 지도 안 봐?”
당연히 지도 볼 줄 모르니까 안 보지. 여명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갑자기 대화가 끊긴 게 아쉬운 걸까, 성녀는 고개를 돌려 여명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녀는 또다시 용병들이 들을 수 없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너 설마 까막눈이야?”
“…그냥 지도를 못 읽는 거야.”
“에이, 까막눈보다 더하네. 용병이 그것도 몰라?”
여명은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았다. 카할 마그두가 보여줬던 바로 그 손가락 튕기기.
이걸로 딱밤 한 대쯤 때리면 이 주둥이가 좀 조용해지지 않을까?
그가 그런 생각으로 손을 들어 올리려는 순간, 성녀가 키득거렸다.
“너무 신경 쓰지 마. 정말로 길을 잃으면 예지라도 써서 길 찾아줄 테니까.”
“…예지를 지도 대신 쓰겠다고? 하루에 몇 번이나 쓸 수 있길래?”
“평소에는 두 번? 온몸의 마나를 쥐어짜면 다섯 번까지도 가능해.”
“….”
생각보다 자주 쓸 수 있는 능력은 아니로군. 아니,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강력한 능력은 언제나 막대한 마나를 동반하는 법이니까.
여명이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성녀가 여명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안대로 가려져 있었음에도 마치 눈을 마주친 것처럼 강렬한 눈빛이 느껴졌다.
이거 설마…
“너 지금 예지 쓴 거냐?”
“어….”
“야, 하루에 몇 번밖에 못 쓰는 능력을 왜 이런 순간에 낭비…”
그가 훈계를 내뱉으려는 순간, 성녀가 그의 말을 끊었다.
“여명, 무기 들어.”
성녀는 조용히 자동소총을 꺼내 장전했다.
여명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으면서도 가방에서 래밍턴 MH750과 철검을 꺼냈다.
“…뭘 예지한 거냐.”
“적습. 돼지머리를 뒤집어쓴 이상한 놈들이…”
돼지머리? 더 설명할 것도 없었다. 여명은 수류탄까지 전부 챙기며 물었다.
“남은 시간은?”
“5….”
“이런 미친.”
“4…”
여명은 자리에서 일어나, 용병들을 향해 소리쳤다.
“습격! 습격이다! 전부 무기 들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