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51)
을 위한 세계는 없다-51화(51/817)
〈 51화 〉 죽은 드워프를 위한 파반느 (4)
* * *
***
여명이 소리치는 순간, 성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은 시간은 3초, 트럭의 뒷문을 열었다.
2초, 소총을 들어 조준하고.
1초, 발사.
탕!
탄피가 튀어 오르고, 총알이 총구를 떠났다. 허공을 가르고, 운명을 거스르며 날아간 총알이 목표물과 부딪혔다.
대전차 로켓.
원래 미래였다면, 트럭을 한 방에 날려 버렸어야 할 로켓은 단 한발의 총알과 함께 폭발했다.
콰아아앙!!!
폭발의 여파가 트럭의 뒤를 휩쓸고 지나갔다. 덜컹! 뒷바퀴가 휘청거렸지만, 그뿐이었다.
여전히 달리고 있는 트럭 위에서, 성녀는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용병들을 향해 손가락을 들어 브이 자를 그렸다.
짧은 정적.
황당함과 긴장이 오고 가는 가운데, 가장 먼저 움직인 건 여명이었다. 잠시 바깥을 살피던 그는 주저 없이 트럭의 뒷문을 향해 뛰어내렸다.
“야! 어디가!”
성녀가 소리치고 나서야, 용병들은 정신을 차리고 바깥 상황을 확인했다.
“미친. 저게 다 뭐야?”
“…꼬리가 붙었군.”
트럭 다섯 대와 수십 대가 넘는 오토바이.
습격하는 놈들이 있을 거라곤 예상했지만, 웬만한 용병단 하나를 상회하는 물량일 줄이야.
“야, 운전병! 왜 여태껏 눈치 못 챈 거야!”
용병 중 하나가 기겁해서 소리쳤다. 녀석들을 살펴보던 권 단장이 입을 열었다.
“마법이다. 엔진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걸 보니, 아주 작정을 하고 왔군.”
권 단장의 말마따나, 꼬리 붙은 녀석들에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두말할 것도 없었다. 마법, 그것도 어마어마한 실력자가 펼친 마법이 틀림없었다.
“이거 어째 익숙한 상황인데.”
바로 며칠 전 북만주를 떠올린 김만수는 미간을 구기며 단장의 얼굴을 확인했다. 단장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은 표정이었다.
“갈비뼈를 노리는 놈들이라고 하기엔 수가 너무 많군. 선자불래 내자불선이라, 분명 다른 의도로 온 놈들이다.”
단장은 빠르게 상황 판단을 끝낸 뒤, 무기를 들었다. 그의 덩치에 걸맞은 거대한 기관총과 대검.
“초인이 아닌 사람은 남아서 다룰마와 트럭을 지켜라. 나와 나머지 인원은 전부 응전한다. 그리고 성녀님께서는”
그의 명령이 끝나기도 전에, 성녀가 무기를 한 아름 끌어안고 바깥으로 뛰어내렸다.
꺄악, 바닥을 구르는 소리가 뒤늦게 들려왔다.
“…함께 하시겠다는군.”
권몽주는 말을 끝낸 뒤, 트럭에서 뛰어내렸다. 김만수와 초인 용병들 또한 숙련된 군인처럼 그의 뒤를 따랐다.
타닥!
땅에 착지하자마자, 만주의 싸늘한 공기가 용병들을 쓸고 지나갔다. 엿 같은 전장의 공기.
부아아아앙!
이제야 마법을 푼 것일까? 오토바이의 엔진음이 용병들의 귀를 찔렀다.
용병들은 바로 응전태세를 갖추고 오토바이들을 경계했다. 하지만 녀석들은 용병들에게 달려드는 대신, 길게 방향을 틀었다.
전투를 피하려고? 아니, 트럭을 쫓으려는 생각이 분명했다.
‘발부터 묶겠다? 지휘관이 따로 있군.’
용병, 혹은 그에 비견될 정도로 군사훈련을 받은 녀석들이 틀림없었다.
권 단장은 기관총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우선순위는 오토바이다! 트럭에 접근 못 하게 막아!”
그 이상의 명령은 필요 없었다. 숙련된 용병들은 즉시 대응을 시작했다.
소총을 든 용병들이 사격을 시작했고, 단거리 무기를 쥔 용병들은 땅을 박차고 달렸다.
두두두두두!!!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녀석들도 가만히 당해주지 않았다. 총을 꺼내 응사하거나, 수류탄을 꺼내 용병들을 위협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용병들은 전부 초인. 기동력도, 반사신경도 모두 오토바이들보다 한 수 위였다.
오토바이들이 우수수 쓰러지는 데 반해, 용병들은 별다른 피해가 없이 전투를 이끌었다.
결국, 피해가 누적된 오토바이들은 응전을 포기하고 원래 목표인 트럭으로 방향을 돌렸다.
“우측! 우회하지 못하게 막아!”
운명의 장난이라고 해야 할까. 하필 우측을 막아야 할 용병이 재장전을 하고 있었다.
오토바이들은 일제히 방향을 틀어 사각으로 파고들었다.
순간의 방심이 부른 구멍. 권 단장의 머릿속으로 반파되는 트럭의 모습이 떠올랐다.
‘트럭을 잃으면 다음 습격에 그대로 노출된다. 그 상황만은 막아야….’
그가 고민에 빠진 순간.
저편에서 무언가가 날아와 우회하는 오토바이들 사이에서 폭발했다.
콰앙!!!
익숙한 폭발이었다. 바로 조금 전, 트럭의 뒤편을 강타했던 로켓을 어떻게 몰라보겠나.
권 단장이 반사적으로 로켓이 날아온 곳을 확인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빈 로켓포를 집어 던지고 있는 성녀의 안대와 눈을 마주쳤다.
용병들이 입을 떡 벌리건 말건, 성녀는 양손에 제각각 소총을 들어 올리곤 용병들을 향해 턱짓했다.
그 턱짓의 의미는 분명했다. 빨리 남은 오토바이들을 처리하고 따라오세요.
“…요즘은 성국에서 군사 교육도 한답니까?”
한 용병이 그 꼴을 보며 실없는 농담을 내뱉었으나, 권 단장은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헛소리할 틈이 있으면 빨리 싸우기나 해! 신참이 맨 앞에서 싸우도록 내버려 둘 생각이냐?”
권 단장의 호통은 즉시 효과를 보였다. 드넓은 만주 벌판 위, 다시 싸움이 재개되었다.
***
뒤편에서 들리는 총소리를 뒤로하고, 여명은 정면을 바라봤다.
그를 포위하듯 둘러싸고 있는 트럭이 다섯 대.
마나를 넓게 퍼트리니, 트럭마다 익숙한 마나가 느껴졌다. 양치기들 특유의, 뒤틀린 마나.
북만주 기지 때도 그렇고, 한국 정부가 대체 왜 만주에서 이런 짓을 벌이고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복잡한 정치적 문제? 그것도 아니면 세티가 말했던 ‘정신 나간 짓’의 연장선?
어느 것 하나 확신할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여기서 녀석들을 계획을 망친다면, 정부는 반드시 자신을 주목하게 되리라.
몰래 숨어서 양치기를 죽이던 쇠똥구리 시절과 달랐다. 천여명은 세상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낸 신분이었으니까.
짧은 상념이 이어지던 그때, 여명은 검을 뽑아 허공에 휘둘렀다.
티잉!
그를 노리던 총알이 튕기며 바닥에 떨어졌다. 검이 찌르르 울리는 게, 평범한 총알은 아닌 듯싶었다.
‘…특수탄?’
초인이 두 자릿수나 되는 용병단을 잘도 습격했다 싶더니, 나름 준비한 한 수가 있다는 건가.
여명은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발에 마나를 실었다. 파양결의 마나가 일렁이고, 그의 몸이 섬광처럼 가속했다.
“죽 여라!”
다음 순간, 뒤틀린 마나가 담긴 목소리가 울렸다.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양, 트럭의 문이 열리며 인간들이 우르르 하차했다.
눈이 새빨갛게 충혈된 채,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용병들.
‘좀비? 아니, 살아있는 사람에게 뒤틀린 마나를 집어넣은 건가?’
녀석들의 몸에서 뒤틀린 마나가 느껴지고 있었으나, 마나가 있는 위치가 문제였다.
뇌.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뒤틀린 마나가 뇌를 차지하고 있었다.
여명은 눈살을 찌푸리고, 검을 든 손을 꽉 쥐었다.
끔찍하게 맛이 간 모습과 달리, 녀석들은 평범한 좀비와 격을 달리했다. 총화기로 무장한 채, 일사불란하게 사격 자세를 잡은 모습이 그 증거였다.
두두두두두!!!!!
역시나, 정교한 사격이 그를 향해 쏟아졌다. 여명은 총알을 피하기 위해 갈 지(之)자를 그리며 달렸다.
그러나 엄폐물도 없는 만주 벌판에서 모든 총알을 피하는 건 불가능했다.
볼을 스치고 지나간 총알이 하나, 옆구리에 한 발, 가슴에 두 발, 방패처럼 들어 올린 왼손에 네발.
‘치명상은 없어.’
온갖 총상을 재생력으로 버텨내며 거리를 좁힌 뒤, 여명은 허리춤에서 수류탄을 뽑아 던졌다.
초인의 힘이 실린 수류탄은 포물선을 그리지 않았다. 마치 야구 선수의 그것처럼, 정확히 직선으로 날아갔다.
콰앙!!
수류탄이 터지고, 운 없는 녀석들의 팔다리가 날아갔다.
총격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으나, 화망에 사각이 생겼다.
여명은 그 사각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순식간에 빈틈을 파고들어, 녀석들 코앞에 도달했다.
터엉!
시작은 래밍턴MH750이었다. 그다음은 보급용 철검, 그리고 마지막으로, 파양결.
여명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수를 동원해 용병들에게 안식을 선물했다. 벼를 베는 농부처럼, 그는 쉴 새 없이 감염된 용병들을 쓰러트렸다.
그렇게 용병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던 어느 순간, 뒤틀린 목소리가 다시 한번 울렸다.
“쏴라! 녀석을 죽여!”
명령이 내려오자마자, 용병들은 아군 오사 따윈 신경 쓰지 않고 총을 갈기기 시작했다.
타타타타탕!!
아군이 맞건 말건, 어떻게든 여명의 몸에 총알을 꽂아 넣기 위해 방아쇠를 당기고 또 당겼다.
하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여명이 트럭을 엄폐물 삼아 몸을 날리고, 죽은 용병의 시체를 방패 삼아 번번이 총격에서 벗어난 탓이었다.
종종 몸에 총알이 꽂혔지만, 그의 재생력은 다른 초인들과 격을 달리했다. 뇌를 직격당하지 않는 이상, 특수탄을 맞아도 버틸만 했다.
결국, 용병들과 여명의 싸움은 지루한 소모전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무수한 고기 방패들과 끝없이 재생되는 초인의 싸움.
싸움의 승자는…여명이었다. 어느새, 용병들의 숫자가 그를 막지 못할 정도로 줄어들었다.
여명은 이제 거의 남지 않은 용병들에게 안식을 주며 주변을 훑었다.
화약 냄새, 피 냄새, 그리고 역겨운 오물 냄새.
그는 질식할 것 같은 냄새 속에서 일의 원흉을 찾아다녔다.
돼지머리, 혹은 소머리의 양치기 녀석. 녀석을 처리해야만 이 지루한 싸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테니까.
‘…대체 어디 있는 거냐.’
그러나 양치기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용병들이 죽어가며 흘린 뒤틀린 마나탓에 감각이 흐려진 걸까?뭔가 잡힐 듯 말듯 불길한 예감이 그의 등을 쓸고 지나갔다.
이건 마치…
“불사의 왕이시여!”
그때, 뒤틀린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여명은 재빨리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샷건을 발사했다.
터엉!
특수처리가 된 탄환이 적을 강타했다. 하지만 탄환이 부숴버린 건 적의 몸이 아니라, 마나로 이루어진 보호막이었다.
쩌저적! 보호막이 갈라지며 마나 가루를 흩뿌렸다.
‘보호막? 제대로 된 마법? 어떻게?’
여명이 눈살을 찌푸리며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의문이 풀렸다. 상대는 유사 마법이나 쓰던 돼지머리나 소머리가 아니었다.
기괴하게 일그러진 말머리.
붉게 충혈된 짐승의 눈이 여명이 눈을 마주쳤다. 그가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말머리가 먼저 주문을 완성했다.
“시체 폭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