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519)
을 위한 세계는 없다-519화(519/817)
EP.519 잘 돼 갑니다 (2)
* * *
***
[승자는! 홍세티!]성난 해설가의 선언 뒤로, 어마어마한 환호가 이어졌다.
세티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링 관람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물론, 패배한 동급생에게 다가가 손을 내미는 것도 잊지 않았다.
최근 언론사를 너무 자주 본 탓인가?
링을 내려가는 세티는 자신도 모르게 내일 올림피아 예선전의 기사 제목을 떠올렸다.
‘특이점은 있지만, 이변은 없었다.’
그래, 이변은 없었다. 그녀를 비롯해 살로메, 성녀, 전윤성 등등 당연히 본선에 오르리라 예측된 모두가 본선에 올라갔으니까.
그렇다고 뻔한 예선이었느냐면, 그건 아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여명 때문에.
유력 본선 주자인 시이나 선배의 척추를 꺾어버리고, 용병행이 정해진 선배의 팔을 잘라버린 이번 올림피아의 특이점.
혹자는 그가 붉은 별과 칼을 맞댄 사실을 언급하며 벌써 올림피아 우승자를 운운하는 상황이었다.
아직 본선이 시작되지 않은 만큼 그저 예상에 불과하지만… 대중의 기대란 언제나 의외의 존재에게 쏠리는 법.
당장 그녀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환호와 갈채조차 여명이 받은 환호와 비교하면 볼품없었다.
그리고 한국인들의 반응은 이것 이상이리라.
오늘 저녁 뉴스나 인터넷을 가득 채우다 못해 전 국민 중 7할이 여명의 이름을 숙덕거릴 것이다.
꼭두각시나 다름없는 김규원 현 대통령이나, 김만일 전 대통령도 이런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세티 본인이 의도하고 선동한 결과였지만, 이미 예상을 한참이나 벗어난 인기였다.
만약 이 인기를 잘 이용하면, 단순히 한국 수뇌부를 쓸어버리는 것 이상을 할 수 있을지도….
그렇게 세티가 어떤 계획을 떠올리며 입술을 씹는 사이, 네티가 그녀의 옆에 쪼르르 따라붙었다.
“수고했어. 언니.”
세티는 동생이 건네준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대답했다.
“별거 아니었어. 성녀는?”
“한 방에 상대방을 쓰러트리고 헤로니모인가, 그 사람 치료하러 병원으로 갔어. 잘린 팔 붙이는 건 아카데미 최고 전문가라나 뭐라나.”
“….”
두 자매는 그런 대화를 나누며 강당을 벗어났다. 붙잡는 사람은 없었다. 관객들의 시선은 이미 다음 경기를 향하고 있었으므로.
아무튼, 세티는 주변에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을 때가 돼서야 중요한 질문을 꺼냈다.
“이번 사건의 배후는? 엘프 사냥꾼이야?”
헤로니모를 심문했냐는 질문. 네티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야. 뭐, 더 큰 돈을 받았다는데… 헤로니모 선배는 형부한테만 말하겠다고 입을 다물었어.”
세티는 살짝 눈썹을 찡그렸다.
“너나 성녀한테도 말 못 할 뒷배가 있다는 거네.”
“응. 아마 엘프 사냥꾼을 부른 것도 그 뒷배인 거 같아.”
올림피아의 여명을 노렸다고? 누가? 세티는 명단을 떠올리다가, 고개를 저어 고민을 떨쳐냈다.
어차피 여명이 직접 물어보면 될 일.
“그래서, 여명은?”
“거, 빨리도 물어본다.”
“이겼다고? 그래, 그럴 줄 알았어. 우리 여명이 질 리가 없지.”
“….”
“아, 우리 동생, 뒤처리는 잘했지?”
네티는 언니의 엉덩이를 한 대 때리고 싶다는 충동을 참은 뒤 대답했다.
“카를로스와 후안은 사망. 시체와 장비는 흔적도 없이 불태웠어. 두 사람이 묵고 있던 호텔에는 시리랑 딜라를 변장시켜서 체크아웃했고… 급하게 나온 척하려고 약초도 일부만 챙겼어.”
“잘했어.”
“뒷배가 있다니까, 평소보다 더 빡세게 했지. 근데….”
네티는 슬쩍 언니의 눈치를 살폈다. 뭔가를 감지한 세티가 걸음을 멈췄다.
“근데?”
“문제가 하나 있어.”
“…무슨 문제?”
“그, 형부가 싸우면서 우리 용용이 집을 다 부숴버려서….”
“….”
“한 시간 넘게 찡찡거리고 있어. 형부는 달래주느라 못 나오는 중이고.”
“….”
세티는 황당과 한심함 사이 어딘가에 표정으로 네티를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뭔가를 고민하다가, 불현듯 이런 말을 꺼냈다.
“그 용이 수룡 진주를 수리하겠다고 가져간 게 언제였지?”
“…꽤 옛날이었을 걸?”
형부가 마탑 가기 전에 맡긴 일이었으니까… 네티가 은근히 말꼬리를 흐리는 가운데, 세티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쓰읍,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빙다리핫바지로 보이나… 네티?”
“넵, 언니.”
“해머 갖고 와.”
***
다행인지 불행인지, 세티가 오함마를 찍을 일은 없었다.
두 사람이 성큼성큼 둥지에 도착할 때쯤에는, 여명의 설득이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으니까.
[내 분명히 요구하건대, 새집에는 극장용 아이맥스 영사기와, 내 사이즈에 맞는 콜라 머신이 있어야 한다!]“….”
[더불어 케이블 방송이 나오는 TV와 만화책을 보관할 도서관, 그리고 최신 그래픽 카드가 설치된 컴퓨터 두 대를 요구한다. 하나는 방송용, 하나는 일상용으로 쓸 것이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저녁 메뉴는 성대해야….]쿵! 세티는 망치 머리를 땅에 두들기는 것으로 관심을 끌었다.
직후, 신나서 떠들던 용은 그녀를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서 여명의 뒤로 숨었다. 그래봤자 그 큰 덩치가 숨겨지진 않았지만.
[처, 천여명! 내 말이 맞았지? 니놈 마누라가 저렇게 폭력적이라고! 저기 저 망치가 그 증거다!]라날이 뭐라고 지껄이건, 여명은 두 팔을 벌리며 세티를 반겼다.
“세티, 경기 잘 끝냈어?”
“응, 걱정해 준 덕분에. 그러는 여명, 너는? 잘 끝냈어?”
여명은 대답 대신 새까맣게 탄 바닥을 바라보았다. 많은 게 담긴 눈빛이었고, 세티는 그게 카를로스의 마지막 흔적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세티는 여명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물었다.
“그보다, 무슨 대화 하고 있던 거야? 새집? 저녁 메뉴?”
그러자 여명은 반쯤 폐허가 된 용의 둥지를 둘러보며 말했다.
“변신술도 완성했겠다. 집도 망가트렸겠다, 이제 라날한테도 새집을 구해줘야지. 그리고 저녁은… 음, 그냥 이것저것 기념하고 싶어서.”
[뭐? 날 위로하기 위해서 저녁 차리는 거 아니었어?]용이 언성을 높이건 말건, 여명은 개의치 않고 말했다.
“그것도 있고, 본선 진출 기념도 있고, 또….”
여명은 슬쩍 쇠미리를 바라봤다. 은은한 엘프의 눈가에는 선명한 눈물 자국이 남아있었다.
세티는 미리에게 눈인사를 보내며 대답했다.
“위로 잔치를 벌이자고?”
“아니, 그냥, 조촐하게 모여서 밥이나 먹자는 거지.”
11강을 죽이고, 엘프들의 원한을 푼 사람의 소망치고는 소박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그 대가로 엘프 공주를 손에 넣었으니 어마어마한 욕심쟁이인 건가?’
네티가 여명의 욕심을 가늠하는 가운데, 세티가 피식 웃었다.
“우리 여명이 원하면 해야지.”
[아니, 집을 잃은 나를 위로하기 위한 저녁….]억울한 용의 푸념이 끝나기도 전에, 세티는 휴대폰을 꺼냈다.
***
그리고 정확히 1시간 뒤.
뒷정리를 모두 끝내고 용의 둥지에 도착한 희생양 자매의 막내, 시스는 입을 떡 벌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런 풍경은 미처 예상조차 못 했으니까.
커다란 캠프파이어를 중심으로 용과 인간, 수인, 엘프, 그리고 언데드들이 두런두런 모여 있는 풍경이라니.
모인 사람들의 면면도 심상치 않았다.
구운 고기를 옮기는 건 네티 언니였고, 엘프 공주는 커다란 냄비에 주걱을 넣고 휘휘 젓고 있었다.
다섯 신 교단의 성녀는 그런 엘프를 향해 국물에 라임 넣어 먹는 년이라며 성을 내고 있었으며.
은발의 엘프와 핑크 머리 연금술사는 벌써 취한 건지 바닥에 뻗어 함께 신세 한탄을 해댔다.
용은 뭐… 말할 것도 없이 음식을 퍼먹느라 정신이 없었고.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반쯤 수리(?)된 데스나이트들이었는데, 용의 뱃가죽 아래 모인 그들은 맛도 못 느끼는 샌드위치를 가운데 두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게 다 뭐람….”
여러모로 비현실적인 풍경. 시스가 멍하니 중얼거리기 무섭게, 대답이 돌아왔다.
“처제, 왔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커다란 쟁반을 든 형부와 세티 언니가 보였다. 두 사람의 쟁반 위에는 포장된 햄버거가 산처럼 쌓여있었다.
“어… 네, 형부. 근데 이게 다 뭐예요?”
“잔치.”
이번에 대답한 건 세티 언니였다. 그녀는 쟁반 위에 쌓인 햄버거 하나를 시스에게 내밀며 말했다.
“온 김에 너도 많이 먹어. 번화가 식당 음식 남는 거 다 쓸어오고, 평소에 놀리던 식재료도 다 털어 넣고 있으니까.”
어차피 대부분은 용이 다 먹겠지만. 세티가 뒷말을 중얼거리는 사이, 막내는 햄버거 포장을 풀며 물었다.
“네, 잘 먹겠… 저는 뭐 안 도와드려도 돼요?”
“응, 여태껏 뒤처리하다가 왔잖아. 편히 쉬어. 그런데 시리는?”
“나치 언… 아니, 살로메 언니 데리러 갔어요. 연락할까요?”
“아니, 알아서 오겠지. 밥 먹고 있어.”
시스는 기꺼이 그렇게 했다. 그녀는 햄버거를 입에 넣으며 둥지를 거닐었다.
가까이서 보니, 네티 언니는 나르는 고기보다 본인이 먹는 고기가 더 많았다.
엘프 언니가 끓이는 건 라면인지, 스튜인지 알 수 없는 국이었는데 한 주걱 얻어 먹어보니 의외로 먹을만했다. 예상보다 상큼하긴 했지만.
아무튼, 성녀라도 이미 들어간 라임은 어쩔 수 없는 건지 엘프를 버려두고 그녀와 함께 둥지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잔치라니, 참 여명다운 일이라니까.”
“….”
“우리 막내도 그렇게 생각하지?”
시스는 전 그쪽 막내 아닌데요, 라고 말하는 대신 주제를 돌렸다.
“이런 지하에서 불까지 지피고 이렇게 요리까지 하는데, 용케도 연기가 안 차네요.”
그러자 성녀는 곧장 둥지 중턱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커다란 까마귀가 앉아있었는데, 그녀는 바람 마법으로 주변의 연기를 모아 둥지 밖으로 빼내고 있었다.
이런 일이 퍽 익숙한 건지, 고기를 쪼아먹으면서도 마법을 펼치는 모습.
‘대체 여기서 밥을 얼마나 자주 해 먹은 거야?’
이거, 용사파티 아닌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나. 살짝 심술이 난 시스는 남은 햄버거를 우걱우걱 입에 쑤셔 넣었다.
물론, 그런 마음을 알 턱이 없는 성녀는 그런 시스를 이끌고 데스나이트들에게 다가갔다.
“요! 어르신들! 다들 뭐 하고 계세요?”
[맛도 못 느끼는 언데드들끼리 모여서 뭐 하겠나. 수다나 떠는 거지.]아직 팔의 수리가 끝나지 않은 두메아 가주가 그렇게 능청을 떨었다. 데스나이트에 익숙지 않은 시스는 움찔, 성녀 뒤에 숨었다.
성녀는 이해한다는 듯 그녀의 앞에 서며 말했다.
“무슨 수다요?”
[아니 뭐… 여기 이 아가씨가 저놈 샌드위치에 완전히 중독되지 않았는가. 그래서 샌드위치에 뭐가 들었나 토론하고 있었지.]여기 이 아가씨는 조심스레 샌드위치를 포장하고 있는 딜라였다. 세티에게 납치당한 네크로맨서.
“여명이 만든 샌드위치요? 그거 그냥 샌드위치….”
거기까지 말한 성녀는 저번에 제사를 지내던 케프리의 말을 떠올리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뭔가를 떠올린 듯, 딜라가 애써 포장한 샌드위치를 휙! 낚아챘다.
“앗.”
놀란 딜라가 뭐라고 하기 전에 한입 베어 무는 성녀.
그러나 그녀는 딱히 대단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 햄을 두껍게 썰어 넣은 걸 제외하면, 여명의 샌드위치는 그냥 평범하게 맛있는 샌드위치였다.
“난 대단한 걸 모르겠는데… 막내야, 너도 먹어볼래?”
막내는 사양하지 않았다. 형부가 직접 만든 샌드위치의 악명(?)은 그녀도 익히 들어봤으니까.
그리고 시스가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은 순간. 그녀는 성녀와 달리 화들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오, 뭔가 느낀 건가?]두메아 가주가 묻기 무섭게, 시스는 성녀의 손에서 남은 샌드위치를 가로채며 대답했다.
“와, 제, 제 평생 이런 건 처음 먹어봐요!”
[오, 어떤 점에서?]“그, 그… 뭐라고 해야 하나, 사랑이 들었어요! 어마어마한 사랑이요.”
[사랑이라. 그러면 다른 아해들은 그의 사랑을 못 느낀다는 건가?]“어… 제 생각에, 이건 평범한 인간의 미각으로는 느끼기 어려….”
거기까지 말한 시스는 입을 다물었다. 꼭 자기가 인간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지 않은가.
그녀는 정체가 들켰나 싶어 성녀를 바라봤지만, 성녀는 다른 부분에서 시스를 당혹케 했다.
“흠, 그건 좀 이상하네. 여명의 사랑이라면 나도 먹어봤는데.”
“…네?”
“ 훗, 막내는 아직 애라서 모르는구나?”
뭐요? 뭔 소리인지 감을 못 잡는 데스나이트들과 달리, 뭔 소리인지 눈치챈 시스가 경악한 순간.
딱!
여명의 손날이 성녀의 정수리를 내려쳤다.
“야, 놀 시간 있으면 와서 좀 도와.”
“놀고 있는 거 아니거든! 진지한 대화 중이었거든?!”
“예, 예 그러시겠죠.”
“나 말고 저 귀쟁이나 어떻게 해봐! 또 국물에 라임 넣었다고!”
성녀는 투덜거리면서도 여명을 따라갔다. 시스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은근슬쩍 남은 샌드위치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짝!
정색한 네크로맨서가 그녀의 손등을 쳤다.
“…제 껍니다.”
“….”
그 욕심을 이해한 시스는 남은 샌드위치를 우물거리며 형부를 따라갔다.
그리고 이것저것 잡일을 돕고, 식사 준비를 끝내길 잠시.
시리 언니와 살로메, 그리고 살로메의 오빠라는 사람이 도착했다.
모든 인원이 모인 걸 확인한 형부는 모두에게 식사를 나눠준 뒤에야 본인도 식사를 시작했다.
-야! 누가 국에다가 라임 탔어?!
-형부! 용이 햄버거 다 처먹으려고 해요!
-여기 고기 조금만 더 줘!
-콜라 말고 술 없어?
-핑크 데스가 아니라… 연지벌레의 주인이라고.
시끄럽다면 시끄럽고, 즐겁다면 즐거운 식사 시간.
시스는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봤다.
그녀가 본 것 중 가장 비슷한 광경은 학생 식당이었지만, 그것과는 또 달랐다. 그녀의 가족, 동료, 그리고 사랑이 함께하는 잔치라니.
간질거리는 기쁨을 느낀 시스는 평소보다도 훨씬 즐겁게 잔치에 참여했다.
못 마시는 술도 마셔보고, 시큼한 국물로 해장도 하고, 샌드위치의 비법을 묻기도 하고…
그녀의 잔치는 한참 뒤에 끝났다. 그러니까, 모두 반쯤 분위기에 취해 형부의 주변에 모일 쯤에.
[꺼억. 이만하면, 뭐, 오늘 집을 부순 건 용서해 주마.]용마저 부푼 배를 붙잡고 바닥에 드러누운 시점에서, 모두 킥킥 웃으며 이 순간을 음미했다.
그리고 동시에, 모두 비슷한 생각을 떠올렸다.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혹은, 이런 순간을 다시 느낄 수 있기를.
묘한 행복으로 가득 찬 정적.
그리고 그런 정적을 깨트린 건, 의외로 성녀가 아니었다.
-띠링.
세티의 휴대폰. 그것도 외부 인사들과 연락하기 위한 업무용 휴대폰의 소리가 정적을 밀어냈다.
“무슨 연락이야?”
품으로 파고드는 성녀를 쓰다듬던 여명이 묻자, 세티가 주섬주섬 휴대폰을 꺼냈다.
“별거 아니야. 한국에서 영상 하나 찍자네.”
“…영상?”
“왜, 있잖아. 뻔하디뻔한 홍보 영상. 찍을래?”
“뻔한 영상이면 좀… 감독이 누군데?”
세티는 슬쩍 휴대폰을 확인한 뒤 대답했다.
“유진수 감독이란 사람하고… 존 어빙?”
“뭐?”
여명이 화들짝 놀라자 반쯤 잠들어 있던 성녀도 놀라 고개를 들었다. 뻑! 그녀의 정수리가 여명의 턱을 가격했지만, 여명은 아픈 것도 잊고 되물었다.
“존 어빙? 미국의 감독?”
“어, 응, 미국인은 맞는데… 아는 사람이야?”
그 질문의 대답은 바닥에 뻗어있던 용에게서 나왔다.
[미국의 다큐멘터리 감독. 종교, 문화, 역사, 생물… 영역을 가리지 않고 다작하는 감독이다. 더럽게 재미없는 게 특징이지.]“…??”
모두의 시선이 쏠리자, 용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뭐? 왜? 저놈이 애지중지하는 다큐멘터리 DVD의 감독이잖아. 설마, 아무도 몰랐냐?]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