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521)
을 위한 세계는 없다-521화(521/817)
EP.521 잘 돼 갑니다 (4)
* * *
***
유진수는 훌륭한 감독이었다.
자만심이나 자화자찬이 아니라, 세간의 평이 그러했다.
그가 만드는 드라마는 언제나 호평 일색이었고, 잘나신 ‘대한 중앙 방송사’의 PD들조차 그에게 굽실거리기 바빴다.
자유민주주의니 뭐니 나불대는 후배들은 그를 두고 권력에 아첨하는 아첨꾼이라고 욕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놈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대가가 처자식을 굶기는 거라면야, 뭐, 열심히 하라지.
뭐, 아무튼, 그런 그에게도 정말 하기 싫은 일이 하나 있었다.
바로 국가 홍보물을 만드는 것.
그를 이 자리까지 올려준 일등 공신이었으나, 높으신 분들을 위한 영상을 만드는 건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었다.
예술의 ㅖ자도 모르는 것들이 얼마나 쪼아대는지.
잘나신 의원 나리의 갑질을 당하다 보면, 종종 전용섭처럼 미국으로 도망가 버릴까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그런 생각은 언제나 상상으로 끝났다.
유진수는 초인이 아니었고, 처자식들이 수천만 국민들에게 욕먹는 꼴을 볼 수 있을 만큼 담이 크지도 못했으니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홍보물 제작 의뢰가 들어올 때마다 온갖 핑계를 대며 도망치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어젯밤에 온 홍보물 의뢰는 도망칠 수 없었다.
[유 감독!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나? 뭐, 받았으니 됐네.]곰 같은 마누라와 여우 같은 딸내미만 알고 있는 개인 번호로 전화가 와서?
[거두절미하게 말하지. 지금 하는 일 다 멈추고, 홍보 영상 하나 찍… 안 된다고? 하, 농담하지 말게, 유 감독. 나 홍용완이야. 진심으로 자네가 내 제안을 거부할 수 있다고 생각해? 어?]혹은 의뢰인이 그 잘난 홍용완이라서? 아니, 아니었다.
[그러지 말고 들어봐. 자네에게도 좋은 내용이야. 이번 홍보물은… 올림피아에 출전하는 우리 사위에 대한 거니까.]홍용완의 사위… 천여명. 그래, 그 청년 때문이었다.
연일 포털 사이트 메인을 장식하고, 만주 사태로 침울해진 국가 분위기를 끌어올린 청년.
이건 놓칠 수 없었다.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자리의 문제였다.
만약 다른 후배 감독이 이 일을 가져가면 그의 위치가 위험해질 테니까.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가 미처 생각지 못한 일이 하나 있었으니, 높으신 분들은 예술의 ㅇ자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좋아, 그러면 빠르게 인원 갖춰서 로드 하우 아카데미로 가게. 올림피아 본선 시작 전에 우리 사위하고 대화도 좀 하고… 아, 그리고 잊고 있었던 건데. 이건 공동 제작일세.]-뭐라구요? 공동 제작? 누구랑 말입니까? 설마 최진철이, 그 자식은…
[아니, 그 친구 말고 미국 유명 감독이 같이할 걸세. 뭐, 그냥 이름만 올리는 정도니까, 크게 신경 쓰지 말게.]순수 한국인으로만 만드는 것보다, 양키 놈 이름을 올리는 게 홍보에 더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높으신 분들이란.
한숨을 내쉰 유진수 감독이 알았으니 상대 감독 이름이나 알려달라고 말했다.
어디 늙은이들만 아는 퇴물 하나 데려왔겠지… 그런 상식적인 감독의 생각과 달리, 홍용완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그의 상식 밖에 있었다.
[존 어빙이란 이름의 양키인데… 연락을 받자마자 아카데미로 향했다더군. 연락처 줄 테니 알아서 대화해 보게.]-존… 잠깐, 누구요?
[존 어빙. 자네는 모르는 사람인가? 유명하다던데?]-….
그래, 유명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유민주주의를 운운하는 멍청이들 사이에서.
***
여명의 아침을 깨운 건 드워프 재벌 다룰마의 전화였다.
[본선 진출 축하하네.]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온 그는 본선 축하 외에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넸다.
만주에서 잘라냈던 카할 마그두의 갈비뼈 제련이 끝나서 이제 이것저것 만들기 시작했다거나.
일본의 스미토모 그룹은 음흉한 것들이니 친하게 지내지 말라거나.
구더기 공주 출장 기간을 늘렸으니 올림피아 끝날 때까지 써먹으라거나…
다룰마는 그 외에 온갖 자잘한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여명이 한마디 할 때까지, 계속.
“…다룰마, 따로 할 말 있으시면 하세요.”
[….]다룰마는 잠시 말이 없다가, 크흠 헛기침한 뒤 말했다.
[그… 그러면 말일세. 스폰서 옷 좀 입어줄 수 없겠나?]“예?”
“….”
그러고 보니, 그런 이야기도 했었지. 여명이 머리를 긁적이는 가운데, 다룰마가 조심스레 덧붙였다.
[크게는 안 바라고, 그냥 선수복 등에 크게 달아주면 충분하네.]“…등판이요? 거기가 가장 눈에 띄는 곳 아닙니까?”
[아닐세. 가장 눈에 띄는 건 엉덩이지.]“….”
[뭐, 원한다면 엉덩이에 붙여도 되네만….]“그냥 등판에 붙이겠습니다.”
고맙다는 다룰마의 대답을 끝으로, 여명은 통화를 끊었다. 그리고 이제 슬슬 나갈 준비를 하려는데…
[본선 축하해. 다음에 만나면 밥이라도 살게.]성검에게서 문자가 왔다.
시카고에서 있던 일을 떠올린 여명은 웃으며 답장을 쓰려다가, 문뜩 읽지 않은 문자가 쌓여있는 걸 확인했다.
[올림피아 본선에 오른 걸 축하하네, 젊은 친구.]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브라우닝이 보낸 문자였다. 시간을 보아하니, 경기가 끝난 직후 보낸 모양.
10강이 직접 자기 경기를 보고 있을 줄 몰랐던 여명은 코를 쓱 문지르며 다른 문자를 확인했다.
[조카, 약 잘 받았다. 근데 진짜 본선에서 우리 회사 광고 안 달 거냐?]일본의 용이 보낸 노골적인 문자.
[본선 축하하네. 천여명. 내 끔찍한 조국에는 따로 알렸으니, 앞으로 본선에서는 주와이외즈를 써도 되네.]어딘가 기품이 느껴지는 오귀스트의 문자. 그리고…
[$^!##%야, 남의 이름 팔고 다니면 재밌냐?]처음 보는 번호로 온 익숙한 문자까지.
여명은 조용히 마지막 번호를 차단한 뒤, 시계를 확인했다. 약속 시간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평소보다 훨씬 시간을 들여 옷을 차려입은 뒤 방을 나섰다.
본선 진출이 확정된 탓인가, 기숙사 사감들은 주말 아침부터 어딜 쏘다니냐고 묻는 대신 본선에 오른 걸 축하해주었다.
아무튼, 기숙사를 나선 여명이 살짝 풀린 분위기 속에서 아카데미를 가로지르길 잠시.
여명은 해가 하늘을 채우기 전에 약속 장소, 그러니까 아카데미 공항에 도착했다.
“형부! 여기요!”
공항에서는 세티와 자매들 전원이 모여있었는데, 네티와 막내가 여명을 보자마자 팔을 어지럽게 흔들었다.
그리고 여명이 그녀들에게 다가가기 무섭게, 그를 알아본 몇몇 사람들이 사진이나 종이를 내밀어 댔다.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적어서 망정이지, 사람이 많은 시간에 왔으면 꼼짝도 못 했을 인기.
희생양 자매들은 이런 인파가 부담스러운지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나마 이런 일에 익숙한 세티가 입을 연 건, 다가와서 사진을 요구할 정도로 용기 있는 사람들이 전부 사라진 뒤였다.
“유명인이란… 본선 갈 때마다 이러면 아주 죽을 맛이겠네.”
여명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여론 조작하신 분이 하실 말은 아닌 거 같은데.”
“…내가 한 건 기껏해야 한국 기자들과 포털에 뇌물을 먹인 게 전부야. 이런 인기는… 음, 여명 너 스스로 이룬 일에 가깝지.”
“내가 뭐?”
“전윤성의 팔을 자르고, 선배 척추를 부수고, 붉은 별과 싸우고… 다들 올림피아에 이변이 일어날 거라고 기대하고 있어. 언더 독이 뭔가 저지를 거다! 같은 느낌으로.”
“…언더독?”
스포츠에서 약자 포지션을 가리킬 때 쓰는 말. 여명은 자신도 모르게 되물었다.
“내가 왜 언더독이야? 전윤성 팔 자른 거 다 까먹었나?”
“그거야 다들 알지. 하지만 전윤성의 뒤에는 미국이 있잖아? 최근 다섯 번 연속 중등부와 일반부 통합 우승을 차지한 미국이, 네가 우승하는 걸 가만히 두고 보지 않을 거라고 보는 거지.”
의외라면 의외였지만, 마냥 이상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여명의 진짜 실력을 모르는 대중의 눈으로 그와 전윤성을 비교하면, 누가봐도 미국을 등에 업고 있는 전윤성이 우위였으니까.
아예 10강인 맥팔레인이 노골적으로 전윤성을 봐주는 상황.
이미 전윤성의 팔을 잘라 강함을 증명한 여명이 언더독… 그러니까 약자 포지션에 선다고 해서 어색할 건 없었다.
10강은, 미국은 그런 존재였다.
“그리고 굳이 한 가지 이유를 더 꼽자면… 올림피아랑 언론에서 그렇게 몰아가는 쪽이야.”
“…?”
“네가 언더독인 편이 더 흥행에 도움 되잖아.”
싸운 적을 불구로 만드는 잔혹한 동방 소국 출신 용병과 그 소국을 떠나 미국에서 정착한 그림 같은 천재.
여느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올림피아를 보는 대중들은 그럴싸한 드라마를 원했고, 진실이 무엇이건 간에 여명의 이야기는 딱 그런 드라마에 가까웠다.
“언론과 올림피아가 만든 이미지라… 바꿔볼까?”
세티는 설탕을 팍팍 타며 대답했다.
“바꿀 수는 있고? 대중의 이미지라는 건 한 번 각인되면 쉽게 안 바뀌는 법이야.”
“하지만 제대로 된 영상 한 번으로 바뀌기도 하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티가 되물었다.
“…혹시, 오늘 오기로 한 다큐 감독 이야기하는 건 아니지?”
움찔, 여명은 커피 빨대를 입에 문 채로 시야를 돌렸다. 정곡이었다.
그러자 네티가 작게 중얼거렸다.
“형부, 다큐에 너무 진심인 거 아니에요? 미국에서 보낸 감시자일지도 모르는데.”
“음, 그게… 감시자인 건 확인해 봐야 아는 거고. 무엇보다 나한테는 그냥 다큐가 아니라서 그래. 이 감독님의 다큐는… 선생님이자, 놀이동산, 그리고 친구였다고.”
“….”
네티는 쭈욱-커피 한 모금을 빤 뒤 대답했다.
“가끔, 형부가 실험실에서 자란 우리 자매보다 더 불쌍해 보일 때가 있….”
무례한 말을 그대로 내뱉던 네티는 자매들의 사나운 시선을 받고 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걸 본 여명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난 괜찮아. 지금은 세티랑 처제들도 있고, 또 이렇게 존경하는 감독님을 만나 영상도 찍을 수 있게 됐잖아? 이제 딱 하나, 딱 하나만 마무리하면 돼.”
“….”
마무리? 세티를 비롯한 자매들은 거의 동시에, 그의 기쁜 목소리 뒤에 숨겨진 뜻을 읽어냈다.
복수.
모두가 머지않은 복수를 실감한 듯 말을 아끼는 가운데, 미국발 비행기가 도착했다는 안내가 공항을 울렸다.
“왔네.”
여명과 자매들은 재빨리 커피를 처리한 뒤, 공항 톨게이트로 향했다.
세티에게 조종당하는 양치기와 한국 정부에서 보낸 듯한 기자들이 미리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여명 일행은 그들에게 적당히 인사를 건네고 감독을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기다리고 기다리던 감독이 톨게이트로 나왔다.
희끗희끗 머리카락이 벗겨지고, 눈가의 주름이 가득한 백인 노인.
존 어빙.
이 분야의 전설이라 불리는 감독치고는 평범하기 그지없었지만, 자매 중 누구도 그의 외모를 평가하지 않았다.
그가 챙겨온 짐이 좀… 이상한 까닭이었다.
검색
끌차 가득 실린 건 옷도 아니요, 관광객들이 으레 가지고 다니는 기념품도 아닌, 촬영 장비들이었다.
사이즈가 다른 카메라들과 삼각대, 마법진이 새겨진 이동식 촬영 의자 등등.
촬영 장비들이 어찌나 많은지, 저 조그마한 끌차에 꾹꾹 눌러 담을 수 있을 만큼 눌러 담은 느낌이었다.
“…그냥 감독 보조 아니었어요? 무슨 본인이 촬영하는 것처럼 끌고 왔네요.”
“….”
“설마, 미국이 감독을 시켜서 형부를 감시하려는 건…?”
네티의 감상이 어떻건 간에, 일행은 감독에게 다가갔다. 진실은 일단 부딪혀 봐야 알 수 있는 법이었으므로.
“존 어빙 감독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천여명이라고 합니다.”
여명이 공손히 인사를 건네자, 감독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영상 감독보다는 늙은 마법사에 가까운 깊은 눈빛이 일행을 훑길 잠시.
“네가 천여명?”
“예, 제가 천여…”
그때, 존이 그의 말을 끊었다.
“너 말이다… 혹시, 빨갱이냐?”
“…?”
설마 첫인사에서 이런 대화가 오갈 줄 몰랐던 여명은 표정 관리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이게 무슨 개소리지? 란 눈으로 감독을 바라봤다.
감독은 그런 여명의 눈을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흠… 이상하군. 아닌가? 내 감이 빗나가는 경우는 잘 없는데. ”
“어… 저기, 감독님? 갑자기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
뒤늦게 정신을 차린 여명이 입을 열었으나, 감독은 괴팍한 노인네들이 늘 그렇듯 제멋대로 대화 주제를 돌려버렸다.
“빨갱이가 아니면 됐다. 일단 톨게이트부터 떠나지.”
“….”
네티가 뒤에서 ‘꼴통 노인네 당첨’ 이라고 중얼거리건 말건, 세티는 양치기를 시켜 감독의 짐을 챙기고 일행과 함께 공항 밖으로 모셨다.
그리고 가까운 호텔로 향하는 차량을 잡으려는데….
“아니, 숙박업소는 필요 없다. 어차피 바로 일본으로 떠날 거니까. 대충 식당만 들렀다 가지.”
“…예??”
존 어빙 감독은 세티와 자매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여명을 향해 말했다.
“내가 아카데미에 온 건, 천여명. 널 만나기 위해서다.”
“…제 영상 때문은 아니군요. 그렇지요?”
“그래, 너희 나라에서 만드는 알량한 프로파간다를 함께 찍어줄 생각도, 의리도 없다. 이름을 빌려주는 것만으로도 받은 돈값은 다 했다.”
“그러면….”
“붉은 별.”
“…?”
“난 붉은 별에 관한 영상을 찍고 있다. 그리고, 지금 그와 마지막으로 검을 나눈 사람은… 너지.”
표정 관리에 실패한 네티가 자매들에게 한 대씩 맞는 사이, 감독은 여명의 어깨를 꽉 붙잡았다.
“그러니 말해다오. 붉은 별은 어떤 사람이었지?”
여명은 당황 속에서 안도했다.
존경하는 감독님이 그를 노린 미국의 검은 손아귀가 아니란 사실에.
***
대중의 오해와 달리, 현대의 미국은 검은 손아귀 따윈 쓰지 않는다.
그들과 맞상대할 수 있는 강대국들이 사라진 뒤부터, 양지에서도 얼마든지 사람들을 압박할 수 있었으므로.
예를 들자면…
“…전윤성을 비롯해 본선에 오른 모든 학생들을 모아, 올림피아 대비 통합 훈련을 하겠소.”
히메나 교장은 아침부터 자신에게 면회를 요청한 남자를 보며 눈동자를 굴렸다.
그리고 이게 농담이 아니란 사실에 푸욱-한숨을 쉬었다.
“그건, 미국의 정식 요청인가요?”
그러자 그녀의 반대편에 앉은 말끔한 군인 복장의 남자가 대답했다.
“아니. 이건 내 개인적인 요청이오.”
“…그렇다면 거절하겠어요. 맥팔레인. 당신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외부인의 뜻대로 학생들을 움직일 수는 없어요.”
캐나다의 10강, 맥팔레인. 누가 봐도 군인인 그는 교장을 똑바로 바라봤다.
“교장,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 수락하시오.”
히메나 교장은 말없이 맥팔레인을 노려봤다.
“…왜요, 사실 당신 개인 의사 따위는 상관없고, 사실 모든 게 미국이 원하는 일이라서요??”
“…교장.”
“전윤성 혼자 10강에게 훈련 받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는 줄어들고, 로드 하우는 대놓고 10강을 끌어들였다고 다른 아카데미들의 부러움 섞인 비판을 듣겠네요. 겸사겸사 천여명의 전력도 파악하고, 합법적으로 그의 주변에 모인 학생들도 떨어트리고….”
“….”
“이 제안, 대체 누가 생각한 건가요? 대단하네요. 겉으로는 선의로 포장된 제안 속에 이렇게나 구더기가 득실거리다니.”
교장은 푸욱 한숨을 내쉬었다. 맥팔레인은 그녀의 예상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그녀의 눈을 바라봤고, 그건 그 어떤 말보다도 확실하게 교장의 말을 증명했다.
“제안을 수락하시오.”
“대체 왜 그렇게 올림피아에 연연하는 건데요? 어차피 학생 싸움인데, 한 번 쯤 질 수도 있죠.”
“난 구구절절 설명하러 온 게 아니오.”
“간단한 설명도 못 할 거 같으면 가세요.”
교장이 손을 휘휘 내저어 축객령을 내렸으나, 맥팔레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 기 싸움을 이어가길 한참.
먼저 입을 연 건 맥팔레인이었다.
“그냥 받아들일 수 없다면, 자율 참여라는 조건을 걸고 받아들이시오. 그러면 적어도 학생들에게 가는 피해는 없을 테니.”
“….”
“내가 양보할 수 있는 건 여기 까지오. 교장, 이 일은 미군에서 내려온 지침이란 말이오. 아시겠소? 저항한다고 버틸 수 있는 게 아니오.”
교장은 스윽스윽 움직이던 펜을 멈췄다. 그녀는 욕도, 그렇다고 감사 인사도 하지 않았다.
그저 피곤에 찌든 눈으로 퀴니 코완의 쪽지가 들어있는 액자와 맥팔레인을 번갈아 바라봤을 뿐.
잠시 후, 그녀는 다시 펜을 움직이며 말했다.
“자율 참여에, 교직원과 외부 강사들도 참여하는 조건으로.”
맥팔레인은 그런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각 잡힌 자세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소. 위쪽에는 그렇게 전하겠소.”
“….”
“그리고… 당신의 낭만에 경의를 표하오. 부디, 오래 오래 건강하시오. 교장.”
탁! 문이 닫히는 소리를 끝으로, 교장의 한숨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