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53)
을 위한 세계는 없다-53화(53/817)
〈 53화 〉 죽은 드워프를 위한 파반느 (6)
* * *
***
로드 하우 아카데미의 점심시간.
‘작가’는 쓰레기장과 운동장 사이 인적없는 풀숲에 앉아 노트를 펼쳤다.
그가 기억하고 있는 이 세상의 원래 스토리를 정리해 놓은 노트.
비장의 무기나 다름없는 노트였으나, 노트는 첫 장부터 커다란 X자가 그어져 있었다.
‘프롤로그부터 꼬이면 어쩌자는 거냐.’
이 세상의 프롤로그. 미친 네크로맨서와 수많은 좀비 군단의 습격은 일어나지 않았다.
좀비는커녕 네크로맨서의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시발.’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을 비극이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기뻐해야 마땅한 일이었지만, ‘작가’는 기쁨은커녕 분노를 느꼈다.
프롤로그는 그에게 있어 기회였다. 마음에 안 드는 조연들을 처리하고, ‘주인공’이 누군지 알아낼 기회.
애써 준비한 암살용 단검과 독침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부줌을 처리하며 세간의 관심을 받아야 할 ‘주인공’도 나타나지 않았다.
첫 단추부터 꼬였으니, 그다음이 멀쩡할 리 없었다.
1장 스토리의 핵심 인물인 성녀.
그녀는 입학식에 불참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아카데미에서 모습을 감춰버렸다.
이해할 수 없는 건 그 이후의 행적이었다.
성녀는 고향인 성국도 아니고, 평소 꿈꾸던 관광지들도 아닌, 만주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대체 왜?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두 개의 손과 투명 망토를 보고 얼마나 기가 막혔는지, 작가는 기사를 보자마자 휴대폰을 집어 던져버렸었다.
‘시발, 대체 미래가 얼마나 바뀐 거지?’
작가는 노트의 페이지를 앞뒤로 넘기며 고민했다.
게임에서는 ‘광렙 사냥터’로 불리던 만주는 사냥터가 되긴커녕 멀쩡하게 시베리아의 괴물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5장에서야 모습을 드러내야 하는 용이 뉴스에 실렸고, 격전 끝에 갈비뼈까지 남겼단다.
만주와 용의 갈비뼈라니. 대체 얼마나 많은 스노우볼이 굴러갈까? 감히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작가는 노트를 덮어버린 뒤, 미간을 주물렀다. 뭔가 대책을 세우고 싶어도,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대체 세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빌어먹을 조연 캐릭터들이 뭘 하고 있는지 알아야 뭔가 대책을 세울 거 아닌가.
‘젠장, 역시 정보 길드하고 빨리 선을 만들어야 해.’
작가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두 개의 주요 정보 길드를 떠올렸다.
푸른 쥐와 시크릿 소사이어티.
노트에 처음 적은 계획은 푸른 쥐와 접촉하는 것이었다.
성녀를 통해 간편하게 접촉할 수 있는 건 물론이고, 얻어낼 물건도 많았으니까.
하지만 성녀가 아카데미에 오지 않았고, 성녀를 감시하는 푸른 쥐 길드원까지 덩달아 아카데미에 오지 않았다.
그러니 남은 선택은 하나뿐.
‘시작부터 범죄자들하고 엮여야 한다니… 시발.’
작가는 짜증 섞인 발걸음으로 풀숲을 나섰다.
어쩔 수 없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입술 사이로 비집고 나오는 욕설을 참기가 어려웠다.
젠장, 젠장.
그렇게 투덜거리며 걷기를 한참, 작가는 풀숲을 나와 쓰레기장에 도착했다.
아카데미의 다른 시설과 마찬가지로, 역사와 전통을 품은 낡은 시설과 최신예 시설이 공존하는 쓰레기장.
파리하나 날리지 않는 쓰레기장은 조용했다. 하긴, 점심시간부터 쓰레기장을 찾는 학생은 없겠지.
물론 평소에도 이곳을 찾는 학생은 거의 없었지만… 작가에겐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그가 찾는 사람은 학생이 아니었으니까.
그는 쓰레기장 구석에 적당히 자리를 깔고 앉아, 어떤 말로 대화를 시작해야 할지 고민했다.
정보를 사고 싶다? 너무 뻔하고.
당신들과 비밀을 공유하고 싶다? 구닥다리야.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표절이잖아.
그렇다면 가장 무난한 건 역시…
나도 지구를 증오한다.
‘그래, 역시 친해지려면 같은 적을 두는 것만 한 게 없…’
그렇게 작가의 생각이 이어지던 순간, 저 너머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저벅, 저벅.
한데, 그 발소리가 하나가 아니었다.
작가는 후다닥 자리를 털고 일어나, 쓰레기 더미 뒤에 숨었다.
그리고 쓰레기봉투 너머로 빼꼼 고개를 내밀어보니, 역시나 두 명의 사람이 쓰레기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앞서 오는 사람은 그가 기다리고 있던 시크릿 소사이어티의 스파이였다.
새하얀 청소부 옷에 정갈한 삼각 두건을 쓰고, 연분홍색 고무장갑을 낀 청소부.
그녀는 설정상 무려 10년 동안 아카데미 청소부로 위장하고 있는 독종이었다. 속칭, 에이바 아줌마.
그리고 그런 그녀의 뒤를 따르고 있는 건 사람은 낯설다면 낯설고, 익숙하다면 익숙한 소녀였다.
‘…홍세티? 저 여자가 왜?’
입학식 전부터 유명인이 된 귀쟁이 공주의 룸메이트이자, 주인공 후보인 전윤성이 껄끄러워하는 인물.
그녀는 작가가 얼마 전부터 콕 짚어 관찰하던 요주의 인물 중 하나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주요 인물과 엮이는 주제에, 소설이나 게임 속에서 등장하지 않는 미지의 인물이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저 외모.
단순히 엑스트라라고 생각하고 넘기기엔, 그녀의 외모가 범상치 않았다.
차갑게 굳은 표정조차 아름답게 보이는 얼굴과 단련된 몸매. 길게 늘어지는 검은 생머리와 청금석처럼 깊은 푸른빛의 눈동자…
하나하나가 히로인인 귀쟁이 공주와 비견되는 외모 아닌가.
벌써부터 몇몇 남학생들은 함께 다니는 두 사람을 두고 흑금 자매니, 학교의 대표 미인이니 뭐니 하며 떠받들고 있는 판이니,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역시 평범한 엑스트라가 아니었어.’
작가가 그렇게 확신하는 사이, 두 사람은 cctv가 잡지 못하는 쓰레기장 구석에서 대화를 시작했다.
세티, 약속을 어겼더구나. 우리에게 상의도 하지 않고 멋대로 굴다니.
에이바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온화했으나, 그녀의 표정과 말투는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우리는 너의 진심을 믿고 그 무술을 넘겼다. 그런데 이게 그 보답이니?
약속? 세티도 시크릿 소사이어티의 일원인 건가? 작가는 얼마 없는 마나를 귀에 집중했다.
그리고 이어진 세티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었다.
공짜로 준 것처럼 말하지 마. 엿 같으니까.
뭐라?
정당한 거래였잖아? 나는 당신들이 원하는 걸 줬고, 당신들은 그냥 그 대가를 내놨을 뿐이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 안 그래?
세티의 목소리는 상상 이상으로 차가웠다. 평소 조용한 미소녀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파양결은 네가 준 자료보다 가치 있는 무술이다! 감히 그따위 말을…
에이바의 언성이 올라가려는 순간, 살벌한 마나가 쓰레기장을 짓눌렀다.
지랄은, 여기까지만 하자. 응?
식은땀을 조금 흘릴 뿐인 에이바와 달리, 아슬아슬하게 초인의 문턱을 밟고 있는 작가는 알 수 있었다.
저 살기, 저 마나.
세티는 진심이다. 여기서 조금만 더 선을 넘는 순간, 진심으로 에이바를 죽일 생각으로 마나를 일으켰다.
내가 익히지 못할 걸 알고 준거잖아. 그렇지?
에이바가 무어라 반박하려 했지만, 세티의 말이 조금 더 빨랐다.
당신들 말처럼 뛰어나긴 하지, 일정 경지 이상 익히면 바로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특이하기도하고.
아니, 그건…
내가 정부에게 토사구팽당하도록 유도한 거지? 알아, 그리고 이해해. 그럴 수 있지. 애초에 서로 뭣도 아닌 사이잖아?
그녀는 에이바의 어깨 위로 살며시 손을 올렸다. 마나가 일렁거리는 무시무시한 손.
그리고 그제야, 에이바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나, 나를 죽인다고 달라질 건 없다. 우리의 뜨, 뜻은 확고하다.
무슨 뜻인데? 아카데미에 겨우 심어놓은 스파이를 버릴 정도로 중요한 뜻이야?
우, 우리는… 파, 파양결이… 퍼, 퍼지는 걸 막고 싶을 뿐이다. 다, 다른 차원의… 끅, 무술을 지구에 푸는 건… 요, 용납 모, 못… 커헉!
간신히 말을 이어나가던 에이바는 더 이상 말하지 못하고 무릎 꿇었다. 그녀는 벼락 맞은 사람처럼 몸을 파르르 떨었다.
세티는 에이바의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거라면 걱정할 필요 없어. 나는 그 사람 외에 파양결을 나눠 줄 생각 없으니까.
허억, 허억…
물론, 너희가 자꾸 내 신경을 건드리면 어떻게 될지… 말 안 해도 알지?
짧은 협박을 끝으로, 세티는 쓰레기장을 떠났다.
그녀의 발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작가도, 스파이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
싱안링 산맥이 보이는 드넓은 만주 벌판.
기절한 드워프 하나, 죽어가는 말머리 하나, 그리고 서로를 노려보는 두 사람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다가, 검은 방한복을 입은 녀석이 말했다.
“너 설마… 수미세계 출신이냐?”
수미세계? 기억 속에 없는 지명이었다. 여명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들어본 적도 없는 곳이다.”
“…그으래?”
여명을 바라보는 녀석의 눈에 마나가 고였다.
표정 변화, 미세한 몸짓, 심지어 마나의 흐름까지 꿰뚫어 보려는 것처럼 날카로운 눈빛.
“그럼 파양결은 어디서, 어떻게 익힌 거냐? 스승이 따로 있는 거냐, 아니면 네가 직접 비급… 아니, 비전 유물을 구한 거냐?”
“몰래 뒤통수를 노린 놈치곤 질문이 많군.”
“….”
“겁이라도 먹었냐?”
저열하기 짝이 없는 도발. 녀석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삼켰다.
“이 새끼가, 동향 사람인가 싶어 봐주려니까….”
“봐주려고 했다고? 살기나 숨기고 지껄이시지.”
“…하.”
녀석은 둘러메고 있던 다룰마를 바닥에 집어 던지고, 딱딱한 표정으로 여명을 노려봤다.
“이 세계놈이건, 저 세계놈이건, 꼭 뒤지게 맞아야 주제를 아는 놈들이 있더라.”
“동감이다.”
녀석이 무어라 반박하기 전에, 여명이 먼저 달려들었다. 다음 순간 여명은 녀석의 코앞까지 도달했다.
여명은 파양결을 일으켜 검을 짧게 휘둘렀고, 녀석은 마나가 담긴 주먹을 내질렀다.
!!!
검과 주먹이 아닌, 마나와 마나가 충돌하는 소리가 울렸다.
파양결의 파도가 담긴 마나와 그에 상응하는 또 다른 무술이 만들어낸 마나.
그 직후, 마치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충격파가 일어났다. 녀석의 옆에 있던 드워프가 볼품없이 날아갔다.
검과 주먹이 서로를 밀어내는 가운데, 녀석이 말했다.
“마나는 많다만… 섬세함이 부족해. 제대로 된 스승이 없었나 본데.”
하찮은 도발이 아니었다. 녀석은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전신의 마나를 끌어 올렸다.
쩌엉!
전신에서 터져 나온 마나가 검을 밀어냈다. 아니, 정확히는 여명의 몸 전체를 날려버렸다.
여명이 땅을 딛고 보니, 녀석의 몸에서 검붉은 마나가 투명하게 넘실거리고 있었다. 마치 아지랑이처럼.
“이제 한 번 뒤져볼까?”
이번에는 녀석이 먼저 달려들었다. 여태껏 싸워온 적들과는 움직임부터가 달랐다. 도약과 동시에 뻗어 나온 주먹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마나가 가속한다. 주변의 공기가 일순간에 가열되고, 뒤늦은 타격음이 대기를 찢었다.
쩌엉 !
뻗고, 튕기고, 휘두르고, 내려찍는다. 주먹을 막아내는 여명의 검이 찌르르 울렸다.
그렇게 녀석의 주먹이 여명의 검을 앞지른 순간, 여명의 발치로 수류탄 하나가 떨어졌다.
“잡기술을…!”
콰앙!!
허무한 폭발이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두 사람 모두 순식간에 수류탄 범위를 벗어난 뒤, 자세를 고쳐잡았다.
“폭탄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다니, 무인으로서 부끄럽지도 않냐?”
“…딱히?”
여명은 남은 수류탄 숫자를 헤아리며 대답했다. 시체 폭발 탓에 대부분 잃어버린 터라, 지금 그의 허리에 걸려있는 수류탄은 건 두 개뿐이었다.
‘아쉽군, 몇 개 더 있었으면, 조금 더 시간을 끌어볼 텐데.’
그는 아지랑이처럼마나를두른 상대를 보며 진한 아쉬움을 느꼈다.
배울 점이 많은 적이었다.전신으로 마나를 방출하는 수법도 그렇고, 사소한 마나의 운용과 몸짓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교과서와 같았다.
이렇게 한 두 시간만 더 싸울 수 있다면, 여명의 경지를 진일보시켜줄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
하지만 그런 무술 실력에 비해… 녀석의 공격은 여명에게 위협적이지 않았다.
냉정하게 판단하자면, 둘의 실력은 아슬아슬하게 동수.
‘왜지?’
여명은 녀석에게 다시 검을 휘두르며 그 이유를 고민했다.
마나가 담긴 주먹이 그의 몸을 강타할 때도, 장풍을 아슬아슬하게 쳐내고, 수류탄을 터트릴 때도. 계속.
그리고 어느 순간, 녀석의 의도적으로 몸의 움직임을 줄이는 것을 보고 깨달았다.
‘육체의 차이.’
어째서인지, 상대의 몸은 이제 막 2차 성징을 시작한 꼬맹이와 다를 게 없었다.
세세한 근육부터 연골까지, 전부 초인의 그것에 못 미친다.
무술이란 결국 마나로 몸을 강화하는 방법의 연장선.
강대한 무술 실력을 가지고 있어도, 부족한 육체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압도적인 무술 실력으로 그 간극을 좁히고 있지만… 이미 평범한 초인과 격을 달리하는 여명의 육체와 비교하면 그 차이는 분명했다.
‘…대체 정체가 뭐지?’
여명의 고민이 깊어지는 가운데, 녀석이 짜증을 참지 못하고 빽 소리쳤다.
“젠장, 뭔 놈의 몸이 그따구냐!”
녀석은 질린 표정으로 여명과 멀찍이 거리를 벌렸다.
“발경을 처맞고도 재생하다니. 너 진짜 인간 맞냐?”
“….”
“엄마는 괴물이고, 아빠는 인간인… 뭐 그런 거냐?”
도발이라면 황당하고, 진심이라면 어이가 없는 말이었다. 여명은 검을 털어내며 고개를 저었다.
“…너야말로 정체가 뭐냐.”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지 마! 학교에서 의문문에 의문문으로 대답하라고 가르쳤”
어이없는 대화가 이어지려는 순간, 저편에서 날아온 무언가가 녀석의 어깨를 꿰뚫었다.
탕!
새하얀 마나로 감싸인 총알. 여명과 녀석은 동시에 총알이 날아온 곳을 바라봤다.
바이크를 타고 달려오는 성녀. 그녀는 한 손으로는 핸들을, 다른 한 손으로는 소총을 겨누고 있었다.
“…축복을 받은 총알이라. 성녀인가.”
녀석은 피가 뚝뚝 흐르는 오른 어깨를 내려다보더니, 재빨리 땅을 박찼다.
여명은 녀석을 뒤쫓는 대신, 저 멀리 기절해있는 다룰마 둔을 향해 몸을 날렸다.
드워프의 안전을 확보하고 보니 녀석의 목적지는 그와 반대 방향이었다.
드워프가 목적이 아니라면, 설마…
그 설마가 맞았다. 녀석은 오른팔을 잃은 말머리를 끌어안은 후, 허공을 밟기 시작했다.
탕! 탕! 탕!
저 멀리서 성녀가 녀석을 향해 연달아 사격했으나, 녀석 조금 전처럼 당해주지 않았다.
그 대신, 말머리를 방패 삼아 총알을 막아냈다.
“캬아악!!!”
총구멍이 난 말머리가 비명을 질렀으나, 녀석은 신경 쓰지 않았다. 죽건 말건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그렇게 하늘 위에 오른 뒤, 녀석은 여명을 향해 외쳤다.
“너, 이 괴물 새끼야! 이름이 뭐냐?”
“…자기소개는 그쪽부터 하시지?”
여명이 이죽거리자, 녀석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대답했다.
“내 이름은 파순. 여섯 하늘의 파순이다. 자 이제, 그쪽 이름을 밝혀라.”
여명은 잠시 뜸을 들여 녀석을 붙잡아놓을까 하다가, 이글거리는 녀석의 눈빛을 보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녀석과는 다시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천여명.”
“천여명, 기억해 두겠다.”
뻔한 대화를 끝으로, 녀석은 허공을 밟아 도주했다.
여명은 잠시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기절한 드워프를 둘러멨다. 성녀가 탄 바이크의 엔진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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