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541)
을 위한 세계는 없다-541화(541/817)
EP.541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4)
* * *
***
가축우리의 지하 정문 통로.
대형 트럭이 들락거릴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콘크리트 통로에서, 시스는 문뜩 뭔가를 느꼈다.
?
이상함을 감지한 그녀가 고개를 돌린 순간.
통로 안쪽에서 옅은 충격파가 밀려왔다.
!
산들바람 같은 충격파는 그녀의 녹색의 머리카락을, 그리고 그녀에게 붙잡힌 보안요원을 쓸고 지나갔다.
“뭐야, 폭탄이야?”
갑작스러운 충격파에 놀란 걸까. 엄폐물 뒤에서 재장전하고 있던 네티가 얼떨떨한 얼굴로 물었다.
시스는 잠시 충격파가 몰려온 방향을 바라보다가, 붙잡은 보안요원에게 권총 방아쇠를 당기며 대답했다.
“폭탄은 아니고, 형부 같아.”
“형부?”
“응, 바람 속에서 용의 마나가 느껴져.”
감도 좋네. 재장전을 끝낸 네티는 그대로 엄폐물에서 일어났다. 멀지 않은 통로 저편에서, 보안요원을 정리하는 언니와 시리가 보였다.
“정문 클리어. 이대로 진입한다.”
마지막 보안요원의 목을 부러트린 세티 언니의 말. 네티와 막내는 쫄래쫄래 따라붙었다.
그렇게 통로를 지나 내부로 들어가는 내내, 자매 중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살인의 뒷맛 때문에? 아니면 그녀들이 오랜만에 우리로 돌아온 가축이라서?
네티는 둘 다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자매들의 생각은 알 수 없었다. 사실, 알 필요도 없었다.
그녀들은 주인에게 끌려가는 가축이 아니라, 총을 들고 돌아온 복수자였으니까.
그리고 통로 너머 연구소에 도착하자마자, 네티는 확실하게 그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너, 너희는 누구야? 감마팀은? 입구를 지키던 감마팀은 어디 갔어?”
부들부들 손을 떠는 뚱뚱한 여자.
어울리지도 않는 높은 하이힐을 신은 그녀는 누구보다도 잔인하게 자매들을 괴롭히던 연구원 중 하나였다.
무술을 익히지 못했다고, 신체 내구도 실험에 실패했다고, 때때로는 그저 짜증 난다는 이유로.
저 역겨운 하이힐에 손등을 밟히고, 두툼한 손바닥에 뺨을 맞은 게 대체 몇 번이던가?
한때는 저 연구원의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에 경기를 일으킬 정도였는데…
네티는 충동적으로 얼굴에 덮인 환상을 벗었다.
“오랜만이네요. 큰 언니.”
그녀의 얼굴을 본 연구원의 눈이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푸, 푸른 양? 그러면 여기 다른 사람들도….”
누가 먼저 시킨 것도 아닌데, 자매들은 거의 동시에 환상을 벗었다.
그리고 자매들의 얼굴을 보며 무슨 착각을 한 건지, 연구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자, 잘 왔다! 잘 왔어! 개성에 있는 건 알았지만, 설마 이렇게 적절한 순간에 올 줄은 몰랐구나!”
조금 전까지 손을 떨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매들에게 명령했다.
“너희는 지금 당장 복도로 따라 연구소 내부로 가. 소장님이 창고로 가셨는데, 거기서 폭발이 일어났어… 당장 가서 무슨 일인지 확인해. 그리고 푸른 양… 아니, 검은 양은 남아서 날 지키고.”
“….”
“뭐 하고 있어? 당장 명령에 안 따르고?”
자매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네 쌍의 눈동자가 그녀를 빤히 바라보자, 연구원이 버럭 소리 질렀다.
“당. 장. 움직이라고!”
그녀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네티의 이마를 꾹꾹 찔러댔다. 네티는 살의가 이렇게나 쉽게 만들어지는 감정이란 사실에 놀라며 대답했다.
“큰 언니. 사실 전 당신을 큰 언니라고 부르는 게 싫었어요. 아줌마란 표현이 아무리 싫어도 그렇지. 세티 언니네 엄마보다도 나이 많은 주제에. 양심도 없나?”
“…뭐?”
“귓구멍 막혔어요? 다시 말해줘요?”
“이 년이 감히…!”
연구원은 도끼눈을 뜨며 주머니에서 작은 버튼이 달린 기계를 꺼냈다. 가축들의 금제를 발동하는 휴대용 마도구.
“너무 오랫동안 아카데미에 있어서 잊었나 본데! 너희는 가축이야! 당장 시키는 대로 움직여!”
기껏해야 자동차용 스마트키만 한 도구를 휘두르며 소리치던 그녀는, 자매들 모두가 미동도 안 한다는 걸 보고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다음 순간, 막내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침입자 넷. 우리도 넷.”
“….”
“감마팀은 어디로 갔을까?”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연구원은 마도구에 달린 버튼을 연타했다.
따닥, 따닥, 따닥-! 한때 자매들을 두려움으로 몰아넣던 버튼은 아무 변화도 만들지 못했다.
“어, 어떻….”
겁에 질린 연구원의 손발이 다시 떨리건 말건, 세티는 자매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시간 아깝다. 나는 이대로 기록보관소로 갈 테니까, 막내랑 시리는 실험실로 가. 그리고 네티는… 인간 우리로 가서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 찾아봐.”
“이 쓰레기는?”
“처리하고 싶은 사람이 처리해. 단, 살려두지는 말고.”
세티가 그렇게 연구소 안으로 향하기 무섭게, 막내가 권총을 꺼내 방아쇠를 당겼다. 탕!
“끄아아악!!”
종아리에 총을 맞은 연구원은 그대로 땅에 쓰러졌다.
막내는 그대로 머리를 노리고 한 번 더 방아쇠를 당겼으나, 그녀의 권총에선 총소리 대신 달칵, 달칵, 빈 탄창 소리만이 울렸다.
“까비, 운도 좋네. 탄약 낭비하기 싫으니까. 전 여기서 끝낼게요. 고맙죠? 큰 언니?”
연구원은 그게 무슨 미친 소리냐고 되묻지 못했다. 시리의 손에서 화르륵! 불길이 일어난 까닭이었다.
시리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절 괴롭힌 것에 관한 죄는 묻지 않을게요. 당신은 그냥 쓰레기 같은 인간일 뿐이니까.”
“그, 그러면… 사, 살려주는 거니?”
“아뇨, 우리 엄마를 고문한 건 다른 이야기거든요.”
시리는 곧장 손에 있는 화염을 연구원의 하반신에 집어 던졌다.
다리와 치마가 불길에 휩싸인 연구원이 악! 악!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두 자매는 세티가 시킨 대로 실험실로 향했다.
“마무리는 네티 언니가 해.”
“….”
그렇게 두 사람이 멀어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네티는, 울부짖는 연구원을 바라봤다.
“살려줘…! 제발! 죽고 싶지 않아!”
“….”
“나, 나도 어쩔 수 없었어! 끄윽, 전부 정부에서 시킨 일이었다고! 이 정부 아래에서 내가, 나 같은 소시민이 뭘 할 수, 악! 이 불 좀, 꺼줘! 제발!”
불을 끄기 위해 발악하는 그녀의 모습은 처량했다.
하이힐로 가축들의 팔과 다리를 밟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연신 비명을 지르며 옷을 흔드는 모습.
“이런 기분이었구나.”
당신이 살려달라고 비는 가축을 보는 기분이.
네티는 소총을 들어 연구원의 머리를 겨눴다. 막내와 같은 실수는 없을 것이다. 그녀는 바로 조금 전에 새 탄창을 장전했으니까.
하지만…
“살려줘! 네티! 이, 이대로 날 죽이면, 아악! 너도! 너도 또, 똑같은 사람이 되는 거야!!”
“….”
“펴, 평생 속죄하며 살게! 그러니 제발!”
연구원의 애타는 외침을 들은 네티는 문뜩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형부라면 여기서 어떻게 했을까.
답은 간단했다. 그녀는 총구를 내리고, 군용 로프를 꺼냈다.
“빠, 빨리 구해줘! 이 은혜는 내 평생 잊… 지, 지금 뭐 하는 거야!? 이 씨발년이, 지금 뭘…! 커흑, 컥!”
그녀는 로프를 연구원의 목에 빙빙 감은 뒤, 반대쪽을 가까운 기둥에 묶었다.
“평생 속죄하실 필요 없어요. 이 불이 전신을 태울 때까지, 딱 그때까지만 속죄하시면 돼요.”
“으급, 읍, 읍!!”
연구원은 로프를 풀기 위해 발악했지만, 그때마다 로프가 그녀의 두꺼운 살집 사이로 파고들었다.
“마법으로 온도를 낮춘 불이니까, 일반적인 불보다 오래 속죄하실 수 있을 거예요. 아, 그리고 전 딱히 당신을 죽이지 않았으니까. 당신이랑 똑같은 사람이 된 것도 아니죠?”
“으읍!!! 읍!!”
연구원은 차라리 죽여달라는 듯 눈을 부릅뜨고 입을 벙긋거렸지만, 네티는 그대로 등을 돌렸다.
“안녕. 자칭 큰 언니. 만나서 더러웠고, 다시는 보지 말아요.”
그녀의 등 뒤로 한동안 읍읍! 고통에 찬 신음이 들려오다가, 사라졌다.
네티는 개의치 않았다.
***
우웨엑.
피범벅이 된 복도를 걷던 노인은 바닥을 짚고 구역질을했다.
속에서 느껴지는 고통과 쏟아낸 덩어리 속 피를 보아하니, 내장이 심하게 다친 듯했다.
못해도 석 달은 요양해야 할 상처.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노인은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도 아니고 500구의 시체가 동시에 폭발한 시체 폭발 속에서 고작 이 정도 상처로 살아남은 건 행운이란 표현으로도 부족했으니까.
비록 그것을 위해 히라리아에서 받아 온 마석을 소비해야 했지만… 본래 마석이란 위험한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법.
아쉬움을 삼킨 노인은 쿨럭, 쿨럭 피를 토하며 일어나 다시 복도를 걸었다.
이윽고, 그의 앞에 세 갈래 길이 나타났다.
각각 연구소의 기록보관소, 실험실, 그리고 가축우리로 이어지는 길.
노인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상대는 수백구의 시체를 단번에 터트릴 수 있는 네크로맨서를 고작 자폭병으로 보낼 수 있는 세력이었다.
그만한 세력이 이 연구소에서 얻을 물건은 하나뿐이었다. 수십 년간 쌓아온 인체실험의 기록.
그들의 목적이 기록을 없애는 건지, 아니면 유출하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마음대로는 되지 않으리라.
“조국을, 위해….”
노인은 그대로 가축우리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우리 속에 있는 짐승들을 풀어 시간을 벌 생각이었다.
탁, 저벅, 탁, 저벅. 절뚝거리는 발과 손에 들린 해골 지팡이가 묘한 리듬을 만들길 잠시.
터벅, 터벅-일정한 발소리가 리듬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것도 그의 뒤통수에서.
설마 상대가 추가 인원을 투입한 걸까? 우울한 상상을 떠올린 노인은 더욱 속도를 올렸다. 늙고 망가진 폐가 피 섞인 숨을 헐떡였으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그는 가축우리의 관리실에 도착했다.
“소장님! 무사하셨군요!”
관리실 직원들은 그를 보자마자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노인은 쿨럭, 한 번 더 피를 토하며 말했다.
“내 안위는 신경 쓰지 말고, 당장 우리를 열어라! 침입자를 막아야 한다!”
“예? 하지만… 지금 우리에 남아 있는 것들은 전부 미완성….”
“소장의 권한으로 허가 한다! 우리 속에 있는 놈들을 전부 풀어라!”
“예, 옙!”
직원들은 곧장 방의 디스플레이를 조작했다. 간단한 기계음이 방을 채운 직후, 디스플레이 화면 위에 적힌 [괴인] 과 [미완성 양치기] 란 단어가 붉게 물들었다.
해골 지팡이를 든 노인, 소장은 인상을 팍 찌푸리며 소리쳤다.
“뭣들 하는 거냐? 내가 분명 전부 풀라고 했을 텐데?”
“전부 풀었….”
직원이 당황하는 순간, 소장은 [용사 후보]라 적힌 디스플레이를 쿵! 내려치며 소리쳤다.
“용사 후보! 녀석들도 풀어라! 부작용은 나중에 생각해! 당장은 침입자를 막는 게 우선이다!”
소장의 일갈에 직원들은 겁먹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보안을 풀기 시작했다.
이윽고 용사 후보의 최종 보안을 풀려는 순간.
벌컥! 소장이 들어온 방향과 반대 방향에서 누군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짧은 하늘색 머리의 숏컷 소녀.
“…푸른 양?”
그를 알아본 직원 하나가 입을 열기 무섭게, 푸른 양이 든 소총이 불을 뿜었다.
두두두두!!!
직원들이 바닥을 굴렀지만, 이 거리에서 총알을 피하는 건 불가능했다. 게다가 상대가 염동력 마법을 전문으로 익힌 마법사라면야.
네티는 염동력으로 엄폐한 직원들을 붙잡은 뒤, 그대로 들어 올려 벌집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나마 저항한 건 마나를 쓸 줄 아는 소장뿐.
소장은 침입자 중 하나가 푸른 양이라는 사실이 어지간히도 충격인 듯, 디스플레이 책상 뒤에 숨어 소리쳤다.
“푸른 양, 네가 어찌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이냐!”
“진짜 몰라서 물어요?”
철컥, 재장전하는 소리가 관리실 내부에 울렸다. 소장은 다급히 마나를 끌어 올리며 말했다.
“정말로 몰라서 묻는 것이다! 조국은 너에게 목숨을 주었고, 힘을 주었거늘, 어찌! 이건 매국이다!”
“힘을 줘?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우리를 해부하고, 고문한 게 힘을 준 거야?”
“필요한 일이었다!”
“좆 까, 개새끼야.”
두두두두! 네티는 숨어있는 소장을 향해 소총을 갈겼다.
관리실 책상은 이 거리에서 소총 탄환을 견딜 정도로 튼튼하지 못했고, 소장은 바닥을 구르는 사이 몇 발을 비켜 맞았다.
정타는 아니었지만, 눈앞이 아찔해질 정도의 고통이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가운데, 소장은 이를 악물고 반론했다.
“왜 이해하지 못하는 거냐! 우리가 네게 한 일은 전부 대의를 위한 일이었다는 걸!”
“대의? 어린아이를 고문하고 죽이는 게 대의야?”
“그래! 대의다! 조국을 위한 대의! 너희의 희생은 유감이지만, 진보에는 희생이 필수 불가결한 법이다!”
“이 개새끼가 진짜-”
그때, 소장은 그녀의 말을 끊었다.
“조국은! 나약했다! 일제에게 능욕당했고, 해방 이후에는 미국과 소련에게 이용당했다! 그 고통! 그 수치! 그것을 이 나라의 아들과 딸들에게 물려줬어야 한단 말이냐!?”
그렇게 말한 소장은 관리실 저 너머에서 몰려오는 발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너는 우릴 비판하겠지만, 결과를 봐라! 우리는 올림피아를 개최했고, 세계 13위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 우리는 아들, 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나라를 물려줄 수 있게 되었다!”
“…사과는커녕, 후회도 없네. 쓰레기가.”
“그래,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조국을 위해 손에 피를 묻혔지만, 내가 묻힌 피 덕분에 우리의 아들, 딸들이 어떠한 치욕도, 굴욕도 겪지 않을 테니까! 이 모든 건… 조국을 위해서!”
그렇게 소장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문이 벌컥 열리며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은 양치기들이 우르르 방에 들어섰다.
“죽어라! 매국… 응?”
한데, 방에 들어온 건 양치기만이 아니었다. 조금 전 그가 들어왔던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천여명?”
온몸에 피를 뒤집어썼음에도, 소장은 바로 그의 정체를 깨달았다. 저토록 선명한 황금 눈동자. 다른 사람일 리 없었다.
설마 너도 매국노냐는 질문이 나오기 전에, 천여명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도 이 나라의 아들, 딸이었어.”
조금 전 그의 연설을 들은 걸까? 여명은 담담한 얼굴로 소장과 밀려드는 양치기를 번갈아 보며 덧붙였다.
“너희가 치욕과 고통을 준 아들, 딸.”
“….”
“그리고 이제, 너희에게 받은 걸 돌려주마.”
그렇게 말한 여명의 등 뒤로 불길이 치솟았다. 다음 순간, 주와이외즈의 불길이 몰려드는 양치기들을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