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542)
을 위한 세계는 없다-542화(542/817)
EP.542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5)
* * *
***
소장은 멍하니 복도를 휩쓰는 불길을 바라봤다.
주와이외즈. 프랑스의 10강, 오귀스트가 자랑하는 프레시외즈의 쌍둥이 무술.
그의 조국이 간절하게 꿈꾸던 10강의 무술답게, 불길의 빛은 찬란했다.
고통과 피, 그리고 죽음을 상징하는 빛이었다.
“캬아악!!”
가장 먼저 불길과 충돌한 건 아직 머리를 받지 못한 미완성 양치기였다.
뒤틀린 마나로 움직이는 괴물답게, 그것은 어떠한 공포도 없이 기꺼이 불길 속으로 자신을 내던졌다. 마치 불 속으로 뛰어드는 날벌레처럼.
그리고 날벌레들이 언제나 그러하듯, 그들은 작은 그을음과 잿가루만을 남긴 채 사라졌다.
타오른다. 죽음이 타오른다.
불길이 시작되고 채 1분도 되지 않아, 달궈진 콘크리트 복도는 음울한 화장터의 냄새로 가득 찼다.
매연과 잿가루. 그것이 수십 마리의 임시 양치기들이 남긴 유일한 물건이었다.
그러나 여명은 불길을 거두지 않았다. 잿가루 너머, 새로운 ‘무언가’가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으므로.
비교적 인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양치기들과 달리, 그것들은 이미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혐오스럽게 뒤틀린 육체, 이성을 잃은 몸놀림, 그리고 몸 곳곳에서 자라난 종양과 촉수들까지.
여명은 어렵지 않게 그것들의 정체를 유추할 수 있었다.
괴수 이식에 실패한 군인들.
이성을 유지한 괴수 군인들과 달리, 완전히 인간성을 잃은 실패작들을 연구소에 처넣고 실험체로 써먹은 거겠지.
그가 씁쓸함과 혐오를 동시에 느끼는 가운데, 녀석들은 불길 사이로 뛰어들었다.
-으워어! 으어어!
괴수 특유의 재생력 덕분인지, 녀석들은 양치기와 달리 불길을 버텨 냈다. 피부가 탄화되고, 근육이 녹아내리는 와중에도 끝없이 촉수와 뒤틀린 팔다리를 움직였다.
그렇게 가까워지는 발소리를 들으며 소장이 희망을 느끼는 순간.
여명은 오른쪽 눈을 감았다, 떴다.
!!!
소리는 없었다. 공간을 채운 건 오직 하나, 그의 눈동자에서 시작된 붉은빛뿐.
“이, 이건… 알파 빔?”
그 빛의 정체를 알아챈 소장이 입을 벌리는 가운데, 복도 너머에서 치이익! 살과 콘크리트가 토막 나는 소리가 울렸다.
이윽고, 침묵이 찾아왔다.
죽음처럼 깊은 침묵을 깬 건 소장이었다. 그는 몸을 벌벌 떨며 여명을 바라봤다.
주와이외즈와 알파 빔. 10강의 무술을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가지고 있다니.
그는 떨림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왜… 대체 왜, 그만한 힘을 가지고 조국을 배신한 거냐?”
“….”
“지,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꿔라. 10강의 무술이 있다면… 우리 조국은 날아오를 수 있다!”
네티는 어이가 없다는 듯 소장을 노려봤지만, 소장은 입을 멈추지 않았다.
“저 저열한 동남아 놈들은 물론이고, 아직도 콧대를 높이는 모스크바의 병신들도 전부 짓밟아 버릴 수 있다. 내, 내가 널 변호하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조국은 널-!”
그때, 네티의 소총이 불을 뿜었다. 탕!
“추하시네. 그런 헛소리를 지껄인다고 저희가 속을 줄 알았어요?”
그렇게 말한 네티는 소장이 몰래 손을 올리고 있던 디스플레이를 바라봤다. 금이 갔지만,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화면.
“크윽, 푸른 양! 이 은혜도 모르는 년이…!”
“은혜? 이 개자식이 진짜… 어디 한 번 그 쪽한테도 은혜를 베풀어 볼까?”
네티는 그대로 총구를 소장의 머리에 겨눴다. 하지만 그녀가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여명의 손이 총을 막았다.
“처제, 잠깐. 이렇게 끝내선 안 돼.”
“그건….”
“쓰레기도 타는 쓰레기랑 일반 쓰레기를 구분하는데, 복수도 구분해야지. 저런 놈에게 빠른 죽음은 사치야.”
이 오만한 매국노 새끼가… 소장은 이를 갈았으나, 이 찰나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시체 조종. 뒤틀린 마나를 끌어 올린 그는 죽은 직원의 손을 움직여 아직 멀쩡한 디스플레이 화면을 두들겼다.
탁, 탁, 이윽고 디스플레이 화면의 잠금이 풀리는 순간.
콰직!
여명이 그의 목을 짓밟았다. 커헉! 소장은 시체 조종 마법을 유지하지 못한 채 고통스러운 숨을 토했다.
이럴 순 없어. 한 걸음, 고작 한 걸음 남은 순간이었는데!
그가 애타는 눈으로 디스플레이를 바라보자, 여명이 그와 같은 곳을 보며 말했다.
“이게 당신의 희망이었나 보지?”
“커흑, 이, 개새… 조국은, 바, 반드시 너에게 복수를….”
여명은 그가 뭐라고 지껄이건 상관하지 않고 처제에게 디스플레이를 확인하라고 말했다.
네티는 곧바로 바닥에 떨어진 디스플레이를 들여다봤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용사 후보… 이걸 풀어 주려고 저 지랄을 했나 보네요.”
“…용사 후보?”
네티는 디스플레이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쉽게 말하자면, 저희 자매와 반대로 만든 실험체라고 보시면 돼요. 마법, 무술, 신성… 모든 재능을 가진 채 태어난 저희 자매들과 달리, 이 사람들은 멀쩡한 인간의 몸에 재능을 억지로 욱여넣은 존재거든요.”
“….”
후천적으로 용사를 만들려고 한 건가? 정말 별 짓거리를 다 했네. 여명이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는 사이, 소장이 빼액 소리쳤다.
“이 배은망덕한 쓰레기 년! 그들을 너희와 같은 취급 마라! 용사 후보 5인이면 10강과도 능히 싸울 수 있다! 올림피아 4강에도 못 들어간 너희 쓰레기들과는 질적으로 달라!”
네티가 눈살을 찌푸리건 말건, 소장은 계속 소리쳤다.
“내 계획대로 처음부터 모든 자원을 후보들에게 투자했으면, 이런 참사는 없었을 것을…! 천 박사 그 쓰레기 때문에…!”
여명은 더는 소장의 헛소리를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염동력으로 소장의 목을 졸라 기절시킨 뒤, 그대로 허공에 띄우며 말했다.
“처제, 그 용사 후보란 사람들… 대화가 통할까?”
네티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제 기억 속 용사 후보들은… 모두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나 마찬가지였어요. 마취도 없이 배를 갈라도 미동조차 안 할 정도였죠.”
“….”
어쩔 수 없이 죽여야 하나. 속으로 아쉬움을 삼킨 여명이 그대로 관리실을 떠나려는 데, 어째서인지 네티가 따라오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네티는 뭔가를 찾는 것처럼 심각한 표정으로 디스플레이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처제, 왜 그래?”
“아니, 그게… 좀 이상해서요.”
“뭐가?”
“이 디스플레이에 의하면… 우리에 남은 건 용사 후보 다섯 명이 전부예요. 양치기랑 괴수는 몰라도, 저희 자매가 자랐던 구역에 적어도 오십 명은 실험 후보가 있었는데….”
“실험 후보… 설마 아이들이야?”
“대부분은요. 시리의 어머니를 제외하면 전부 저희랑 비슷하거나 더 어린아이들뿐이었는데….”
왜 표시가 안 되지. 네티는 불안한 듯 말꼬리를 흐렸다.
불길함을 느끼는 건 여명 또한 마찬가지였다. 실험 후보의 존재를 모를 리 없는 세티가 미리 말해주지 않았다는 건…
쯧. 혀를 찬 여명은 처제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단 가보자. 전투원만 표시되는 걸지도 모르니까.”
“….”
네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 두 사람은 녹아내린 문을 넘어, 괴인의 시체가 가득한 복도로 걸음을 옮겼다.
***
길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미 설계도를 외운 것도 있고, 무엇보다 네티가 길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덕분이었다.
“여기서부턴 바닥 조심하세요. 실험체들이 멋대로 우리에서 나올 수 없도록 고압 전류가 흐르고 있거든요.”
비각술로 복도를 주파하는 와중에도, 네티는 가축우리 곳곳의 용도를 말해줬다.
“저기 유리창 너머에 있는 곳이 전투력 측정하는 곳이었어요. 보통은 괴수랑 싸웠는데, 실력이 늘지 않았을 때는 벌로 자매끼리 싸우게 했죠.”
“….”
“큰 언니랑 세티 언니는… 벌을 받을 때마다 아무것도 안 했어요. 소장은 노발대발하면서 언니가 저희 배를 찌를 때까지 굶기겠다고 했는데, 정말로 일주일쯤 굶으니까 상품성이 떨어진다면서 억지로 밥을 먹였죠.”
상황이 상황인지라, 여명은 어떠한 위로도 해 줄 수 없었다.
그저 이상할 정도로 연구원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만 떠올렸을 뿐.
아무튼, 목적지에 도착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던 건 텅 빈 우리였다.
바로 얼마 전까지 수십 명의 사람이 갇혀 있었는지, 실험복과 각종 장난감들이 널브러진 방.
네티는 잠시 그 방을 노려보다가, 기절한 소장의 멱살을 잡아 흔들어 깨웠다.
“일어나! 개자식아!”
“커흑, 컥… 그, 그만….”
“혓바닥 잘라버리기 전에 똑바로 말해. 여기 있던 애들 다 어디 갔어?”
“….”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눈을 깜빡거리던 소장은, 주변을 둘러보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하, 희생양, 너희는 여전히 가축이구나… 이렇듯 우리로 돌아오다니.”
네티는 그의 상처를 푹-찌르며 말했다.
“지랄 말고, 여기 있던 애들 다 어디 갔어?”
“크윽, 가, 가축들은… 더 쓸모 있는 곳으로 이송되었다.”
“쓸모 있는 곳? 어디?”
“내가, 그걸, 커흑, 알려줄, 것, 같으…냐?”
소장이 비열한 미소를 짓고, 네티가 그의 머리에 총을 겨눈 순간.
여명은 음울한 눈으로 정답을 떠올렸다.
“…남산.”
“뭐?”
“개성 연구소는 파괴됐으니… 여기 있던 애들은 모두 남산으로 갔겠군. 맞지?”
소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여명 또한 자신의 가설이 사실이냐고 묻지 않았다. 떨리는 소장의 눈동자보다 더한 증거는 없었으니까.
그러나 상황을 따라가지 못한 네티는 텅 빈 방과 여명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남산? 남산에도 연구소가 있어요? 거기에 뭐가 있길래 아이들을 데리고 간 걸까요?”
여명은 염동력으로 소장의 목을 조르며 대답했다.
“마침 그 질문에 답을 해 줄 놈이 여기 있네.”
하지만 목이 졸리는 와중에도 소장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남산을 안다는 건… 그쪽이 개성 연구소를 습격하고, 천 박사를 잡아간 범인이란 뜻이군. 어쩐지, 시체를 찾을 수 없더라니.”
“….”
“조국을 배신하느니, 차라리 자살하라고 그렇게나 당부했거늘… 적에게 남산 연구소를 불어? 하! 지 애비와 다를 게 없는 쓰레기 같은 년. ”
이게 무슨 소리냐는 듯 눈살을 찌푸리는 네티와 달리, 여명은 싸늘한 눈으로 소장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네놈도 천 씨로군? 매국노들이 다 같은 성을 쓰다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우연이란 말인가?”
“그건 내 질문의 답이 아닌데.”
여명은 차가운 눈으로 염동력을 움직였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소장의 몸이 마치 꽈배기처럼 비틀리기 시작했다.
“어억! 억!”
내장과 척추, 피부와 신경이 동시에 비틀리자 소장의 입에서 주르륵 침이 흘렀다. 붉게 충혈된 눈동자가 벌벌 떨렸고, 몸 곳곳에서 뚜뚝뚜둑 소리가 울렸다.
당장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고문이었으나, 여명은 시기적절하게 위력을 조절해 고통을 계속 이어 나갔다.
대체 이런 고문법은 어디서 배우신 거지? 옆에 있던 네티마저 두려움을 느낄 때쯤.
“크흐흑! 그만! 그만!!”
소장이 먼저 항복을 선언했다. 고문에서 벗어난 그의 입에서는 거품 섞인 피를 질질 흘렸다.
“말해. 남산에서 뭘 꾸미고 있는 거지?”
“제, 제물… 어으… 제물이… 필요… 해서….”
“…제물? 무슨 제물?”
“레, 레벨 업… 각하께… 권능을….”
레벨 업. 그 단어를 들은 여명은 거의 본능적으로 주먹을 쥐었다.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그와 청소부들을 죽이던 플레이어가 지껄인 그 단어를.
“너희는 대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거지? 설마 플레이어를 부활시킬 생각이냐?”
“플레이어, 그만한 권능을, 가지고도… 고작, 전윤성에게… 죽은, 쓰레기, 새끼… 우, 우리의 꿈은… 그보다 더, 더… 큰 미래를….”
그때, 복도 저편에서 철컹-! 두꺼운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울렸다.
한 번도 아니고, 다섯 번 연속으로.
용사 후보 다섯 명을 떠올린 여명은 다시 소장을 기절시킨 뒤, 네티에게 맡겼다.
“처제. 이 인간 데리고 당장 세티에게 가.”
“예?”
“가서 세티랑 시리에게… 이런, 늦었군.”
무슨 소리인지 몰라 당황하던 네티는 그제야 복도 너머에서 달리는 발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일곱… 아니, 여덟인가?
그중 다섯은 너무나 익숙한 비각술의 발소리였고, 나머지 셋의 발소리는 마치 짐승의 그것처럼 거칠었다.
“형부, 이건….”
“우리 말고도 불청객이 더 있나 보네. 처제, 미안하지만 나랑 같이 싸워줄래?”
“…물론이죠.”
여명은 그대로 힘껏 마나를 끌어 올리더니, 복도 너머로 마나를 퍼트렸다. 무술도 뭣도 아닌 순수한 기세.
그것은 세티와 다른 자매들에게 갈 관심을 끌어오기 위한 수법이었고, 발소리들은 그 수법에 걸려들었다.
쿵, 쿵, 쿵! 바닥이 울릴 정도로 격한 발소리들이 일제히 이곳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여명이 검을 뽑고, 네티가 소총 탄창을 갈아 끼우길 잠시.
망가진 전등 아래로, 실험복을 입은 다섯 명의 남성이 나타났다.
용사 후보.
그들의 멍한 얼굴을 본 네티가 숨을 죽인 가운데, 여명은 흠칫, 눈살을 찌푸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용사 후보 중 가장 앞에 있는 중년인은, 그가 아는 얼굴이었으니까.
‘김강혁 장관의 꿈속에서 본… 훈련생.’
나라를 위해 젊은 정치인을 암살하던 바로 그 인간이었다. 현대에는 뭘 하고 있나 했더니, 저렇게 실험체가 되어 버린 건가.
“….”
새삼 한국의 끔찍함을 실감한 여명은 네티를 지키듯 앞으로 나섰다.
곧 실험복을 입은 용사 후보들이 검을 뽑았고, 그 뒤로 나머지 세 명이 도착했다.
금색 자수가 새겨진 검은 사제복을 입은 두 명의 인간과 한 명의 수인.
여명을 향해 시선을 모은 그들은 종말 교단의 사제들이었다.
-…천여명?
-성도나 미국의 계획이 아니라, 한국인끼리 벌인 일이란 말인가!
-저거, 코르부스, 그 배신자 년의 제자다. 내가 먹어도 되나?
그를 알아본 사제들이 쑥덕거렸지만, 여명은 개의치 않았다.
오늘 밤, 이곳에서 그를 본 생존자는 한 명도 없을 테니까.
“가라, 실패작들아. 가서 너희의 가치를 증명… 어?”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제들이 용사 후보들에게 명령을 내린 바로 그 순간.
천여명의 몸에서 붉은 아지랑이가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