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543)
을 위한 세계는 없다-543화(543/817)
EP.543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6)
* * *
***
시간을 조금 뒤로 돌려, 가축우리의 기록보관소.
이름보다 김 주임으로 불리는 남자는 이를 달달 떨었다. 그를 구해줄 지원군이 아직도 오지 않은 까닭이었다.
포격 소리를 듣자마자 동료들과 함께 비상 벙커로 들어온 게 한참 전이건만!
소방차조차 몇 분이면 오는데… 군은 대체 뭘 하고 있단 말인가?
새삼 외부와의 통신이 금지된 게 아쉬웠다. 빌어먹을 휴대폰이라도 있었으면, 벙커 바깥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는 지라도 알 수 있을 텐데!
겁에 질린 김 주임이 챙겨온 권총을 보물이라도 되는 양 꽉 붙잡는 순간.
삐빅, 삑, 삑—
비밀 벙커 문에서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침입자? 아니면 이제와서 벙커로 들어오려는 멍청한 연구원?
어느 쪽이건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김 주임은 권총을 쥔 채로 버럭 소리쳤다.
“누구냐!? 여긴 꽉 찼어! 당장 꺼져!”
그러나 묵묵히 번호를 누르는 소리만 돌아올 뿐,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적인가? 아니, 아니지. 침입자가 어떻게 벙커의 비밀번호를 알겠는가?
그 순간 문뜩, 김 주임은 최근 입구에서 당직을 서던 하이힐 돼지 년을 떠올렸다. 희생양 자매가 아카데미로 간 뒤 실적 부진으로 밀려난 년. 그년이 분명했다.
“여기 꽉 찼다고! 당장 안 꺼지면 문 열자마자 쏴버릴 줄 알아!”
이번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겁을 먹은 동료들이 벙커 뒤편으로 물러나는 가운데, 김 주임은 총을 뽑았다.
한심한 땅개들처럼 총을 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총을 쥐자 어쩐지 자신감이 샘솟는 것 같았다.
그래, 들어오면 쏴버리자. 어차피 윗선에서도 책임을 묻지 않을 거야.
그렇게 그가 권총의 안전장치를 푼 순간.
드르르륵-! 벙커의 문이 열리며 예상외의 인물이 드러났다. 김 주임과 동료들은 하! 웃으며 상대의 이름을 불렀다.
“검은 양!”
“….”
“때맞춰 잘 왔다! 외부 상황은 어떻지? 침입자들은 누구였지? 모스크바? 미국? 그것도 아니면 일본?”
검은 양, 세티는 대답하지 않았다. 김 주임은 그녀가 들고 있는 검은 막대기에 피가 흐르는 걸 보고 말했다.
“벌써 정리를 끝냈나 보구나?”
김 주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동료들도 덩달아 긴장을 풀었다.
“좋아, 아주 좋아. 우리는… 아무것도 못 본 걸로 하자. 이제 언제 나가면 될까?”
그제야, 세티가 입을 열었다.
“그보다 먼저, 질문 좀 드려도 될까요?”
“질문? 물론이지.”
세티는 벙커 내부를 훑으며 말했다.
“연구원은 여기에 남으신 분이 전부인가요? 제 기억엔 적어도 두 배는 됐던 거 같은데.”
“…너희 자매가 아카데미에 간 뒤로, 인사이동이 좀 있었다.”
네가 성공적으로 떡밥을 물어온 덕분이지.
김 주임이 칭찬을 덧붙이건 말건, 세티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다음 질문을 꺼냈다.
“추가로, 바깥에 있는 기록보관소 비밀번호를 알고 계신 분?”
“…그건 갑자기 왜?”
“위에서 기록을 옮기라는 명령이 떨어졌으니까요?”
뭔가 이상한 신호를 감지했지만, 김 주임은 필사적으로 그 신호를 무시했다.
“미안하지만 그건 너 같은 가축이 볼 수 있는 게 아니란다. 일 정리가 끝나면 보안팀이 와서 처리할 테니, 너는 일단 여기를 지켜주는 게 어떻니?”
“….”
“그리고 오랜만에 보니, 벌써 어엿한 여자가 됐구나. 그 천여명이란 놈이 정말로 대단하긴….”
탕!
여명의 이름이 나온 순간, 세티가 김 주임의 허리에 걸려 있던 권총을 뽑아 그대로 그의 종아리를 쐈다.
“으아아악!!!”
김 주임이 다리를 붙잡고 쓰러진 직후, 세티가 차가운 눈으로 그를 내려다봤다.
“더러운 입으로 그 이름을 부르지 마.”
“아악, 으, 이, 씨발! 개, 씨발, 가축 년이… 아으, 어, 이 씨발, 년… 네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질… 흡!”
철컥. 차가운 총구가 미간을 겨누자마자, 김 주임이 입을 다물었다. 세티는 덤덤하게 말했다.
“아직도 모르겠어? 난 너희를 구하러 온 게 아니야.”
“서, 설마 위에서 우리를 제거하라는 명령을…?”
“상상력하고는. 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침입자야.”
“….”
세티는 총으로 지그시 김 주임의 볼을 누르며 말을 이었다.
“보안팀도, 군도 오지 않을 거야. 알잖아? 일을 벌일 때는 확실하고 철저하게… 당신들이 우리를 그렇게 키웠으니까.”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김 주임은 몸을 벌벌 떨었다.
“보, 복수?”
“더 고상한 표현을 써야지. 이건 응징이야. 너희가 우리 자매에게 저지른 일에 대한 응징.”
김 주임은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종아리에 난 총구멍에서 피가 철철 흘렀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세티를 향해 호소했다.
“나, 나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야! 개인적인 감정은 하나도 없었어. 그, 그… 맞아! 네가 괴수에게 물렸을 때 치료해 준 게 바로 나….”
탕!
세티는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머리에 구멍이 난 김 주임의 몸이 뒤로 쓰러지며 철퍽, 바닥에 피를 더했다.
“참 신기하지.”
“….”
“큰 언니를 강간하려다가 손가락이 부러진 새끼가, 개인적인 감정은 없었다니.”
세티는 얼굴에 튄 피를 닦지도 않은 채 음울하게 웃었다. 그녀는 탄창의 남은 총알을 확인한 뒤, 벙커에 숨은 연구원들을 향해 속삭였다.
“남은 총알은 11발. 남은 사람은 12명… 기록소의 보안을 풀 수 있는 한 사람은 살아서 이 벙커를 나갈 수 있겠네.”
“….”
“자, 그러면 누가 살아서 나갈까요?”
연구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내가 비밀번호를 알아! 날 보내줘!
-판임관 새끼가 뭘 알아? 비켜!
-세, 세티! 나 알지? 나 박 주임이야. 내가 이 중에서 가장 권한이 높다! 그러니 나, 날 살려다오!
그들은 애타게 세티의 자비를 구걸했다. 마치, 가축들이 그들에게 자비를 구걸했던 것처럼.
하지만 세티는 연구원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곳을 벌하러 온 응징자이며, 과거를 정리하러 온 심판자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총을 들고,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탄창이 텅 비고, 바깥에서 죽을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계속.
***
1초.
종말 교단의 사제들은 여명이 뿜어낸 붉은 아지랑이가 무엇인지 즉시 이해했다.
주가시빌리. 지구의 슈퍼 파워가 만든 최흉, 최악의 살인기.
2초.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사제들은 각자 범위 공격을 위해 수류탄을 꺼내고 주문을 엮어냈다.
당연한 대응이었다. 아지랑이로 눈을 가리고 난전으로 몰고 가는 건 주가시빌리의 특징 중 하나였으니까.
그리고 이쪽이 수가 더 많은 상황에서 난전은 바보짓일 뿐. 일 초라도 빨리 아지랑이를 걷어내고, 녀석의 수를 줄여야…
3초.
다음 순간, 천여명이 먼저 아지랑이 속에서 튀어나왔다. 그의 손에는 겨자 가스처럼 연노란 색으로 물든 검이 들려 있었다.
사제들 앞에 서 있던 다섯 명의 용사 후보가 동시에 여명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다섯 명, 다섯 개의 검은 마치 한 사람이 휘두르는 것처럼 완벽하게 합을 맞추며 여명의 몸을 난도질했다.
4초.
그러나 여명은 용사 후보들과 드잡이질하지 않았다.
왼팔에서 피가 튀고, 옆구리와 허벅지에 커다란 상처가 나는 와중에도 사제들을 향해 날아왔다.
가장 앞에 있던 사제는 그제야, 여명의 정체를 깨달았다.
우리가 속았다. 녀석은 학생이 아니다.
“모두 피해!! 녀석은 붉은 별-”
아쉽게도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목과 분리된 머리가 그대로 허공에 떠올랐으므로.
5초.
수인 사제의 주문이 완성되었다. 반투명한 어둠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손이 여명을 덮쳤다.
“죽어!”
비명 같은 수인 사제의 외침과 동시에, 여명의 오른쪽 눈에서 붉은 광선이 번뜩였다.
6초.
알파 빔은 거대한 손을 꿰뚫고 그대로 수인 사제의 머리통을 직격했다.
파지직! 늑대를 꼭 닮은 머리가 흔적도 없이 증발한 사이, 앞서 머리가 잘린 사제의 몸이 쓰러졌다.
7초.
용사 후보들이 쓰러진 사제를 짓밟으며 여명에게 달려드는 순간, 마지막 사제가 수류탄을 던졌다.
콰앙 – !
조금 전에 핀을 뽑아둔 수류탄은 그대로 여명의 코앞에서 폭발했다.
사제 본인 또한 폭발에 휩쓸렸지만, 잠시라도 시간을 버는 게 중요했다.
8초.
사제는 순식간에 마나를 배열해 저주 주문을 시전 했다.
잠시 상대의 감각을 없애버리는 무감각의 저주.
아무리 뛰어난 초인이라도 몇 초간 적응해야 하는 저주였다. 시간을 벌었다고 확신한 사제는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이대로 용사 후보들과 합동 공격을 펼치면 어떻게든 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지원군이건, 찰나의 틈이건 뭐든 간에, 천여명이 붉은 별이란 사실을 알려야 했다.
9초.
그렇게 그가 뜀박질을 시작한 바로 그 순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날아온 얼음송곳이 그의 발목을 꿰뚫었다.
푹!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끔찍한 통증.
사제의 몸이 균형을 잃고 기우뚱 쓰러지는 가운데, 보이지 않는 힘이 그의 항마력을 뚫고 모가지를 붙잡았다.
“…하.”
10초.
이만한 마법 실력이라니. 숨겨 놓은 패가 대체 얼마나 많은-그 생각을 끝으로, 우드득-! 마지막 사제의 목이 한 바퀴 회전했다.
***
불과 10초 만에 교단의 사제 셋을 처리한 여명은 고개를 돌렸다.
그의 금색 눈동자 위로 비추는 다섯 개의 검.
그건 막을 수 없는 검이었다. 하나를 막으면 둘을, 둘을 막으면 셋이 그의 몸을 난도질 할 그런 검이었으니까.
여명은 개의치 않았다. 몇 초 전에 입은 상처조차 완전히 재생한 주가시빌리 때문에?
아니, 지금 그는 혼자가 아니기에.
두두두두 – !!!!
곧, 다섯 용사 후보의 뒤통수로 총알이 쏟아졌다. 아지랑이 뒤에 숨어있던 네티의 지원 사격이었다.
총알을 피하거나, 맞은 용사 후보들의 검이 흔들리며 틈을 만들었다. 여명은 손과 발을 묶고 있던 저주를 떨쳐낸 뒤, 그대로 뒤로 물러났다.
가장 앞선 용사 후보의 검이 쫘악-! 그의 등을 베었지만, 그뿐이었다.
화아악 – !
등에서 피를 뿌리며 몸을 회전한 여명은 아무렇지도 않게 무장 혈청을 뽑아냈다. 시뻘건 피가 검의 형상으로 변하며 용사 후보에게 쏟아졌다.
쩌엉 – !!!
다섯이면 10강을 막을 수 있다는 소장의 말이 빈말이 아니었는지, 녀석의 검과 충돌한 무장 혈청으로 꽤 묵직한 충격이 돌아왔다.
하지만 고작 이 정도로 용사를 운운하기엔 부족했다.
계단의 환상에서 만났던 진짜 용사는, 고작 이 정도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산의 눈물을 쥔 오른손에 힘이 들어갔다. 연노란 검신이 붉게 달아오르며 불씨를 토했다.
“실력 좀 볼까.”
나지막한 읊조림의 여명의 입에서 흘러나온 순간. 불씨가 폭발했다.
!!!
폭발이 공간을 채우고, 공기가 타올랐다.
약식이라고 해도 화산쇄설의 폭발을 정면으로 맞은 용사 후보는 그대로 얼굴을 붙잡고 쓰러졌다.
머리를 터트릴 생각으로 휘두른 건데, 생각보다도 단단했다. 게다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우, 으, 아아!”
네티의 총알을 피하던 용사 후보 중 하나가 쓰러진 용사 후보에게 손을 뻗었다.
뭔 짓을 하나 봤더니, 녀석의 손아귀가 빛나며 치유의 축복을 쓰는 게 아닌가?
‘신성? 그렇다면….’
설마가 역시나였다. 다른 용사 후보 두 놈이 검을 들지 않은 손을 여명에게 겨누더니, 각각 굵은 불줄기와 벼락을 쏘아냈다.
마법. 그것도 꽤나 위협적인 수준의 마법이었다.
그래, 이래야 용사 후보답지. 여명은 무장 혈청으로 마법을 갈라버린 뒤, 치유 받는 놈의 머리를 내려쳤다.
쩌어엉 – ! 검 두 자루와 두 개의 마법이 기다렸다는 듯 그의 검을 받아쳤다. 마나가 충돌한 반발력으로 연구소 바닥이 갈라지고, 천장이 흔들렸다.
콘크리트 건물이 비명을 지를 정도로 무시무시한 충돌.
저 멀리서 사격을 하던 네티가 중심을 잡는 가운데, 여명의 검에서 약식 화산쇄설이 터졌다.
!!!!!
폭발에 휩싸인 다섯 명의 용사 후보는 동시에 날아갔다. 아쉽게도 유효타는 아니었다.
‘동시에 폭발을 받아냈다… 단순히 합이 맞는 수준이 아닌데. 뭐지?’
눈을 가늘게 뜬 여명이 검을 고쳐 쥐는 순간.
날아간 용사 후보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기수식을 잡았다.
양손으로 검을 쥐고, 비스듬히 검을 든 자세.
용사의 무술과 닮은 그것은, 완벽한 수준의 천둔검법 기수식이었다.